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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학교에는 교복과 졸업식이 없다
[비나리의 초록공명] 교복폐지는 대한민국 교육이 정상적으로 가는 지표
 
우석훈   기사입력  2006/05/18 [15:07]

1.

나는 전두환이 쿠테타할 때 중학교 1학년이었다. 당연히 머리 빡빡 밀고 깜장 교복 입고, 깜장 신발 신고, 푸르딕틱한 가방 옆에 메고 학교 다녔다. 그 해 7월에 과외가 금지되어 과외에서 해방되고, 3학년 때 두발자유화가 생겨났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도 정신착란이 일어날 것 같던 그 깜장 교복을 고등학교 때는 안 입었다.

2. 

그래서 난 지금도 교복에 대해서 별로 호감이 없다. 예전에 개선문 근처에서 살았을 때 창문 앞에 프랑스 제일이라고 자랑하지만 재수는 없는 파스퇴르 학교가 있었다. 여기도 교복은 안 입는 것 같았다. 이튼 스쿨이 교복을 입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프랑스는 교복은 없다. 프랑스 학교에 교복만 없겠는가?

6년 약간 넘게 프랑스에 살았고, 1년 조금 안되게 영국에 살았고, 다 합치면 1년 정도 독일에 살았고, 그 외의 나라에서도 조금조금 살아봤는데, 그 중에서 확실하게 프랑스가 '자유'로운 나라인 것이 있다.

정복으로 행사 때 입는 교복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 사관학교가 있기는 하지만, 프랑스에는 교복 같은 건 대부분 없을 뿐더러... 졸업식이 없다. 중고등학교에는 하는 데가 있기도 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국립대를 포함해서 졸업식이 없다는 아주 아름다운 전통을 가지고 있다.

3.

프랑스에도 졸업식이 원래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졸업식을 없애는 것이 근대를 지나오면서 정착된 그야말로 자유 정신의 길고 긴 투쟁과정과 비슷하다. 졸업식에 자랑스럽게 참석하는 사람들이 입학식을 없애자고 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졸업식과 입학식에 자랑스럽게 참석하는 학생들이 조회와 같은 공식행사를 없애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에서는 교복을 없애자는 것이 말이 되기가 어렵다. 두발자유도 마찬가지이다.

프랑스가 졸업식을 없애는 과정은 교회로부터의 독립과정이기도 했다. 최초의 대학 소르본느 대학이 신학대학으로 출발했듯이 신권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과정이 약간 개입되어 있다. 물론 그렇게 까마득한 시기에 졸업식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60년대 이후의 일인데, 신권을 넘겨받은 정부가 학교를 통해서 권위를 재생산하려고 하는 순간에 졸업식에 대한 반항이 벌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학교가 가지고 있는 쓸데없는 '유니폼 권한' 중에서 없애기 제일 쉬운 것이 졸업식이다. 안 가버리는데 어쩌겠는가! 졸업식에 참석하는 것이 또래집단에서의 '창피함'이 되었고, 아무도 졸업식을 안 가니까 졸업식이 없어졌다. 미국이 '자유'에 대해서 아직도 촌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성대하게 졸업식을 치루고 있다는 데에서 약간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4. 착한 교복의 가격 혹은 교복의 착한 가격

내가 교복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교육과 관련된 어느 시민단체에서 교복 가격이 정상적인지에 대해서 문의를 받고 난 다음의 일이다. 원가 같은 것들은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는데, 교복 가격이 좀 황당하게 비싸기는 하다. 물론 유기농 전문매장의 유기농 식품 가격처럼 부르는게 값인 정도는 아니기는 한데, 1/3 정도의 가격은 충분히 낮출 수 있을 정도이고, 약간 경쟁 시장처럼 움직이면 절반 정도의 가격으로 교복 가격을 착하게 만들 수 있기는 하다.

참고로 하이엔드, 미드엔드 그리고 로우엔드라는 내 나름대로의 분류기준을 가지고 교복값을 보면, 미드엔드와 로우엔드 사이 어디엔가 가격이 있다고 보면 된다. 때때로 교복도 하이엔드로 가자고 하는 정신 나간 학교들이 없지는 않은데, 그렇게 자기 맘대로 되는 건 아니라서 대체적으로 미드엔드 상품의 가격을 따라가는 편이다.

5. 교복 없애면 안될까?

난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학교가 정상적으로 가는 지표가 교복이 언제 없어질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학생은 학생다와야... 이건 순 꼰대소리다. 학생이 학생과 구분이 되지 않으면... 웃기는 소리 하지 말지어다... 학교 평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가장 가까운 도시 중에 하나인 춘천에만 가보시라. 고등학생들은 가방에 사복을 가지고 와서 갈아입고 비로소 떡복기도 먹고 책방에도 들어가고 자신들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명문고가 아니라면 창피해서 교복을 입고 다닐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자유의 도시 춘천 혹은 신여성의 도시 춘천이라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자랑스러운 춘천의 아들, 딸이 아니라서 어른들이 독사눈을 뜨고 교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들을 꼬나본다. 이 중압감을 견딜 수가 없다고들 한다.

평준화 안되어 있는 도시에서는 교복을 없애는 것이 가장 간편하게 청소년들의 중압감을 없애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런 전국적 기준을 서울에서 만들어서 소위 "서울, copy and paste" 방식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정책과 문화가 움직이고 있는데, 서울은 평준화지역이라 교복 입고 나간다고 해서 특별히 공부잘한다와 못한다라는 편견어린 시각으로 학생들을 보지는 않는다. 그래서 춘천 같은 곳에서도 교복을 없애지 못한다.

6. 가난한 여학생과 교복 논쟁

교복옹호론자들과 꽤 길게 논쟁을 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교복 논쟁에서 졌다. "가난한 여학생"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 때문에 그렇다. 만약 교복을 없애면 중고등학교 때부터 명품 입고 다니는 아이들이 힘을 쓰고 그럴 수 없는 아이들은 학교에서부터 기죽고 다녀야 하는, 예의 그 '나이키 운동화'현상이 벌어질터인데, 여기에 대해서 어떤 답을 가지고 있는가?

교복이 없어지고 나면 당연히 의복에 대한 개별 지출이 높아질터인데, 이 초과지출을 어떻게 감당하고, 가난한 여학생들의 소외감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아니 그러면 프랑스처럼 명품 화장품은 은퇴한 할머니들이나 바르고, 대학생들까지 화장하지 않고, 또 사치스럽게 옷을 학생들이 입지 않는 문화로 진화하면 될 거 아니야? "어느 천년에"라는 질문에 답하기가 또 쉽지가 않다.

그래서 많은 시민단체에서도 교복을 없애자는 의견에 찬성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에 "착한 교복값" 계산을 원한다. 교복을 더 평상복처럼 간편하게 해주고, 그리고 가난한 아이들도 학교와 교복업자 사이의 결탁을 없애 경제적으로 더 부담없게 만들어주는 것이 옳지 않으냐... 이게 대체적으로 어른들이 교복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결론인 것 같다.

가끔 한복으로 교복을 입혀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DJ DOC 말대로 교복을 반바지로 해달라는 소박한 부탁을 하기도 한다. 
 
7. 그래도 나는 교복이 없어지기를 원한다.

서른 살 넘은 사람들이 열 명 이상 모이면 가끔 투표를 해보는데, 교복찬성파와 교복반대파가 대체적으로 절반 정도 된다. 이유야 약간 다양한 편인데, 대체적으로 가난한 여학생들을 위해서 사복이 위화감을 주면 안 된다는 주장에는 다들 공감한다.

그래서 내 의견은 약간 소수파 의견이기는 하다. 나는 그래도 교복이 없어지기를 원한다. 내가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되면 나는 교복을 입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여학생이라면? 이 질문에 대해서 답할 수 없기 때문에 나도 나의 주장을 강하게 개진하지는 못하지만 설령 내가 여학생이라도 나는 교복을 입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설령 가난한 여학생이라서 피곤하기는 하더라도 어차피 교복을 위해서라도 돈을 지출할 것이기 때문에 그 비용 내에서 한 벌을 입고 살더라도 교복을 입는 편을 선택할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교복, 즉 '유니포미즘(uniformism)'이 나의 정신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너무나 클 것 같고, 또 국가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교복 때문에 좋아지는 약간의 장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획일화로 인한 부정적 효과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획일화가 국민경제에 좋아, 나빠? 물론 경제적으로도 나쁘다. 극우파들이 좋아하는 '혁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든 혹은 좌파들이 좋아하는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사용하든, 교복은 사실상 그 이후에 생겨나는 획일주의의 한 뿌리를 형성한다는 면에서 좀 치사하게 경제적으로 계산을 해보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훨씬 높을 것 같다.

8. 어떤 절차에 의해서 교복이 없어질 수 있을까?

어차피 민주주의라는 의사결정 절차를 우리가 사용하기 있기 때문에 사실상 어른들이 교복에 대해서 덩더꿍 덩더꿍하는 것이 교복을 없애거나 유지하는데 별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현재 시스템대로라면 교장선생님과 학교의 선생님 일부 그리고 학부형과 지역유지로 구성되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대체적인 골격을 결정하게 될 것이므로, 사실상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교복의 결정에 대해서는 별 상관은 없다.

요즘 유행하는 '당사자(stake-holder)' 결정의 원칙 같은 걸 생각하면 매일 교복을 입어야 하는 학생들은 이 중요한 결정에서 너무 심하게 소외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학생들에게 물어보고 학생들이 의견을 낼 수 있는 절차가 있으면 좋기는 하겠다. 만약 내가 다시 학생이 된다고 생각하면, 이런 절차에 의해서 내가 교복을 입고 있지 않기 위한 뭔가를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학생들은 자신의 의복과 두발에 대한 아무런 결정권이나 영향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작은 생활 속의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교복을 입을 것이냐 말 것이냐라는 자신에 영향을 미치게 될 중요한 결정에 대해서 아무런 기본적인 의사권 표현 절차가 확보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누군가 타협안을 제시해서 교복을 입고 싶은 사람은 교복을 입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교복을 입지 않는다...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로서 이 사회에서는 학생들의 교복을 없애는 건 물론이고, 전두환이 해준 두발자유화도 해줄 맘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가볍게 생각해볼 수 있는 몇 가지 절차가 있기는 할 것 같은데, 하여간 학생들이 먼저 스스로 움직이기 전에는 아무런 절차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뭔가 교복을 입을 당사자들이 투표 같은 거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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