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독도주변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백남준의 작품을 전시하다 논란이 되자 뒤늦게 철거하는 소동을 빚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백남준의 작품은 지난 5일부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3층 제5전시실에서 전시하고 있는 '한국 현대 드로잉전' 코너에 독일의 행위미술가 요제프 보이스와의 관계를 드로잉으로 형상화한 1998년 작품 '고지도 2'이다.

이 작품에는 서양의 옛 지도를 오브제(기존의 사물을 본래 용도 이외의 것으로 이용하는 것)로 이용한 작품으로 동해로 표시돼야 할 자리에 일본해를 뜻하는 불어 '메르 뒤 자폰(Mer du Japon), 일본해'라고 씌여있다.

▲ 김용경 씨가 촬영한 백남준의 '고지도 2'. 국립현대미술관은 확인하지 않고 1달 가까이 전시해왔다.     © 김용경

처음 문제제기 한 북한 유도선수 계순희 선수의 팬클럽 '계순희를 사랑하는 모임'의 운영자인 김용경(28) 씨는 "지난 주말 미술관을 찾았다가 3층 전시실에 들렀을 때 '한국 현대 드로잉'이라는 공간이 있는데 왜 꼭 영어를 써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백남준 선생의 작품 '고지도 2'를 본 순간 눈을 의심했다"고 심정을 밝혔다.

김 씨는 "우리가 독도와 동해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할 때 쓰이는 것이 독도가 표기된 고지도인데 백남준 선생은 그 수 많은 고지도 가운데 왜 하필 일본해가 표기된 고지도를 가지고 작품을 만든 건지 모르겠다"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김 씨는 "더 답답한 것은 백남준 선생 작품이 전시된 지 한 달이 넘는 동안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눈여겨보지 못했다"며 "이 같은 사실을 발견하고 미술관측에 항의했지만 큰 문제가 아니라는 대답만 들었다. 개념없는 미술관 관계자들은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은 문제인 것 같다"고 성토했다.

그러나 미술관 관계자는 "백남준 작품은 비디오 설치 작품을 제외하고는 지난 2년 동안 전시된 적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확인 결과 '고지도 2'를 비롯한 백남준의 드로잉 작품 5점이 전시중인 것을 알고 "미술작품은 미술작품으로 봐줘야 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 동해가 아닌 일본해라는 표시가 되어있다.               © 김용경

현대미술관 장엽 학예연구관은 "고지도는 동지나해를 한국해로 표기할 정도로 엉터리여서 동해를 일본해로 적은 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외국에서 살았던 백 선생이 동해로 적힌 지도를 구하기 힘들었을텐데다 작가의 미술작품이므로 전시는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김 씨가 일본해가 표시된 작품을 미술관에 전시된 내용을 인터넷에 올리자 누리꾼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가 '일본해'라고 명시된 작품을 사용한다면 동해가 바른 표기라는 우리의 주장을 어떻게 외국인들에게 말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하자 25일 오후 미술관측은 작품을 철거했다.

미술관 관계자는 "오브제로 쓰인 고지도는 동지나해를 한국해로 표기할 정도로 엉터리여서 동해를 일본해로 적은 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최근 일본의 독도 해역 탐사 시도로 불거진 국민의 정서를 고려해 철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립미술관에 전시중인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홍보영상으로 둔갑했던 논란과 증폭되면서 '고지도2' 전시중단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