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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군대만 갔다오면 ‘사람’ 아닌 ‘개’가 돼나?
[기자의 눈] 가해자·피해자의 사선에서 경험한 폭력에 대한 토로
 
황진태   기사입력  2006/03/24 [11:51]
한 대학교 모꼬지(MT)에서 선배의 군기잡기에 후배가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며칠 전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한 대학의 경찰행정학과 학생들의 구타문화를 그리고 한 체육교육과 교수의 자성 어린 구타근절을 주장하는 칼럼도 연이어 실렸다.

기자는 여기서 숨기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폭력에 관한 경험과 심정을 토로해보겠다.

지난 2년 동안 군대를 다녀와서 일명 '복학생'이 되어 학교로 돌아왔을 때 (시대가 바뀐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후배들의 불성실한 예절에 감정이 상했다.

"여기가 군대였다면… 네가 내 후임이었다면…"하는 울컥하는 감정은 단순히 군대 2년 동안 몸에 베인 습속이었을까. 나름대로 진보성향의 학문을 공부하고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나조차도 이렇게 생활세계에서 부딪히는 사적 인간연결망에서의 전근대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자신에게 적잖게 당황스럽다.

"군대를 다녀오면 사람이 된다"는 말은 온갖 구타와 인격모독을 경험했던 예비역 병장들은 이 명제가 거짓임을 인정할 것이다. "군대를 다녀오면 개가 된다"는 이 명제가 참이다.

군대 내의 구타와 갈굼에 대한 해소책을 강구하는 것도 시급한 상황이다.

그러나 패배주의적, 냉소적 답변이겠지만 나의 2년 동안 군 생활을 돌이켜보면 국방부가 '마음의 편지'를 쓰는 수준의 사후약방문에 자족한다면 나는 군 입대를 앞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이 정도 밖에 솔직히 말 못해주겠다. "자존심은 부대 뒷산에 파묻고서, 2년 뒤에 제대할 때나 찾아가"라고 말이다. 

푸코가 연구하기 딱 좋은 규율기제인 군대보다는 이러한 군대에서 파생된 전근대적인 파놉티콘이 전 사회로 확산되는 것에 더 큰 우려가 생긴다.

이러한 확산의 역사적 뿌리는 일제침략기 일본에 의해 '황민'이 되어 '국민'학교를 다니다가 일본군 장교출신의 대통령을 만나서 이러한 '황민', '국민'이란 습속을 떨쳐내기는커녕 오히려 공고히 되어 폭력이 성스럽다는 관성이 지금까지 한국사회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중학교 시절 보았던 청소년 드라마 영향으로 고등학교 와서는 뭣 모르고 방송반에 가입했다. 사범대학에 다니는 예비교사라서 아직도 그 어떤 학교의 로망을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선생님으로부터 당구채나 PVC 파이프를 잘라서 만든 '사랑의 매'를 맞으면서 선생님의 사랑을 배웠다.

위로부터 받은 사랑은 아래로 전해진다. 선배들은 방송반실에 불을 끄고서 스탠드 마이크대를 휘둘러서 엉덩이에 포도송이를 주렁주렁 달아줬다.

간혹 졸업한 선배가 오면 1학년이었던 나는 군대에서보다 더 각진 자세로 한, 두 시간을 버텼다. 이 각진 자세는 뒤에 자대배치 받고서 내무실 고참들에게 A급이란 칭찬을 들었다.

당시 군대를 다녀왔던 졸업선배가 말하기를 "방송반에서의 경험이 군대 가서 적응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은 순전히 거짓말이다.

방송반 선후배들이 춘천 중도유원지로 모꼬지(MT)를 가서 받았던 '어깨동무하고 앉았다 일어서'는 군대에서 받은 유격이나 간부로부터 받은 얼차려는 새발의 피였다. 그 얼차려 때문에 상한 무릎관절은 군대를 가서는 "너 뺑기 부리냐"는 선임의 갈굼 때문에 오히려 군 생활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어느덧 신입생이라고 풋풋함이 있었던 학번도 복학생 아저씨 학번이 되었다. 4년 전 학교를 입학했을 때 "요즘 애들은 개념이 없다"는 선배들의 말을 똑같이 동어반복하고 있는 나를 돌아 볼 때나 군대에서 올챙이 이등병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말년 병장시절의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고민해봐야 한다.

민중의 지팡이가 되겠다는 경찰행정학과 학생들이 그 지팡이를 안으로 휘둘러 폭력의 마이너스 게임을 수행할 경찰이 정작 폭력의 재생산에 가담하고 있다거나, 장차 체육교사가 되어서 이 나라의 꿈나무들의 성장을 도와줘야 할 체육교육과 학생들이 정작 자신들을 예비교사로서의 성장은 퇴화시키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MT(membership training)는 말 그대로 구성원들의 친목과 화합을 위한 수련회를 의미한다. 무슨 사도-매저키즘도 아니고 폭력을 통한 '친목과 화합'은 바로크 양식에서 엿보는 변태적인 악취미 아닌가.

학교와 군대, 사회 전체가 폭력으로 엮어져 있다. 폭력을 막는 방안을 바른생활이나 윤리 교과서에서 찾아야 하나. 필자는 폭력의 방파제를 건설할 자신이 없다.

다만 몇 가지 폭력의 강도나 횟수를 줄이는 방법은 제안할 수 있겠다. 군대에서의 기억은 다 지우고 싶지만 막사 현관에 새겨진 "역지사지(易地思之)"만큼은 머리에 남아있다.

"요즘 젊은것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이집트 피라미드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불가피하게 폭력을 행사하게 될 때에 자신의 이등병 시절을 신입생 시절에 그 고참, 그 선배들에 대한 반감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후배들의 입장을 역지사지해보자.

폭력을 막는 제도적인 방안은 무수하겠지만 그러한 외면적 제재 이전에 내면적인 변화가 더 근본적인 해결책임을 경험한 나로서는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방송반 선배였을 때, 말년 병장일 때, 복학생일 때의 이렇게 역지사지와 내가 후배였을 때 이등병일 때를 생각해서 꽤 효과를 보았다. 물론 그 후임들이 나를 우습게보기는 했지만 말이다.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앞서서 필자는 군대의 폭력 근절에 대해서 '마음의 편지'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사병들의 갈굼과 구타도 문제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간부들의 의식수준부터 바뀌어야 한다.

가령 변기통에 머리를 박고서 원상폭격을 한다는 학군단이나 부사관들 간의 주먹다짐을 종종 목격한 나로서는 간부들이 이렇게 전근대적인데 무슨 병사들에게 갈굼과 구타를 예방하자는 말을 남발하는 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말 "너나 잘하세요"다. 국방부 장관은 병사들에 앞서서 간부들에게도 '마음의 편지'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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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3/24 [11:5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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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방위 아자씨 2006/03/29 [18:39] 수정 | 삭제
  • 글이 후지니까 리플 하나 않달리지 않느냐...
    이런 사이트에서 양심고백만큼 박수받는 소재도 없단다.
    '나는 남자지만 한국남자 좆같은 놈이다.'라거나
    '나는 경상도지만 경상도 반성해야 한다.'
    이런식의 글이 박수받기 딱 좋은 글이야
    너처럼 군대 갔다온 예비역이 '군대 갔다오면 개가 된다.'는 소리는
    자칭 진보주의자들에게 박수를 받아야 정상이란다.
    그런데 이토록 시장의 반응이 무심한 것은 네녀석이 무척이나 통속적이고
    후진방식으로 시장에 접근하기 때문이지.
    진태야. 이 아자씨가 진심으로 충고 한마디 하마.
    이 나라의 예비역들이 반성해야 하는 것은 틀림없어. 그런데 그것이 진정
    한 의미에서 반성으로 연결이 되려면 후배들이 우리와 같은 고통을 반복하
    지 않도록 기억할 것은 기억해야 하는 것이야.
    절대다수의 평범한 아들들이 처한 비인권적이고 열악한 복무시설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뜬금없이 '양병거'지지한다고 목소리 높이거나,
    불공평한 징집제도와 그로인한 개인의 극심한 피해는 아랑곳 않다가 군가산
    점 문제나 시위 농민의 사망사고 따위에는 비판의 날을 세우는 것은 결코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되지 못한단다.
    이 나라의 군대를 어떤 아들들이 끌려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대우를 받으며, 그들이 제대후 어떤 불이익을 받고 있는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도 동일한 관심과 실천을 보여야 진정으로 양심있는
    자의 행동이고 처신일게다.
    요컨대 이 아자씨의 말씀은 쇼 하지말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진정으로 니가 느낀 군대의 불합리성을 개선하기위해 노력하라는 것이다.
    군대를 갔다 온 니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보다 지금도 무관심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이 아자씨는 그렇게 하기위해 노력하다 보니 종종, 아니 무척이나 자주
    자칭 진보주의자들과 충돌하게 되더구나.
    그러다 보니 이 나라의 진보를 참칭하는 세력들이 진정으로 민중을 위한
    집단인지 의심스러울때가 많더라.
    진태는 양심적인 학생일테니 이 아자씨의 말씀 귀 담아듣고,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거라.
    그리고 지금의 그 순수한 양심만큼은 변치 말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