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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타령 속에 불에 타 죽는 장애인들
[바라의 장애없는 세상] 장애인 화재예방을 위한 대책 강구가 시급하다
 
이훈희   기사입력  2006/01/02 [18:09]
2006년에도 장애인은 화마의 희생양이 되었다. 올해는 좀 다를까 내심 기대 안 한 게 아니다. 하지만 매년 겨울마다 장애인이 얼어죽고 불에 타 죽는 일은 반복된다. 장애인은 화재에 가장 취약한 사람이기 때문.

SBS TV 2004-1-2 장애인 부부 화재로 숨져

전남 목포의 가정집에 한밤 중에 불이 나 67살 김인수씨 부부는 불길에 휩싸여 숨지고, 23살 된 아들만 목숨을 건져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가족 모두 정신장애와 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중증 장애인들로, 전기 대신 켜놓은 촛불이 달력에 옮겨 붙으면서 변을 당했습니다.
이번 참변은 석 달째 전기세를 내지 못해 전기공급이 끊긴 게 화근이었습니다. 이들 장애인 가족들은 매달 생계비 지원금 58만원과 고물 수집으로 견뎌 왔지만, 계속된 불행으로 최근에는 삶을 거의 포기하다 시피했습니다.

장애인이 타 죽는 걸로 시작된 2005년

2005년은 장애인이 불에 타 죽는 걸로 시작되었다. 1월 8일 경북 칠곡에 위치한 시온 글러브 화재가 그것. 노동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중대 재해 다발 사업장 등 산재예방관리 사업장 15곳의 명단을 노동부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는데, 1월 첫 장을 장식한 사업장이 바로 시온 글러브였다. '사망 4명, 부상 1명‘

그런데 시온 글러브 부상자에 대한 수는 발표 기관마다 다르다. 2005년 10월 금융 감독원이 밝힌 부상자는 5명이다. 또한 대구지역 장애인 단체들과 시민사회 단체들이 꾸린 진상조사단이 밝힌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사망자를 제외한 22명의 장애인이 현장에 있었다. 진상조사단에서는 경찰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지만, 글쎄.

하여튼 이 화재 사건을 통해 장애인들 보험가입 차별 문제가 대두되었다. 9명의 장애인이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었지만. 장애인이란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부당해 보상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 국가 인권위원외와 금감원이 나선 그때서야 장애인의 보험가입은 그나마 조금 나아졌다.

2005년 봄에 들어서 날이 좀 따뜻해졌지만, 장애인은 여전히 화마의 희생자가 되었다.

서울신문 2005-03-09 장애인 시설 화재 1명 사망
8일 오후 7시20분쯤 서울 도봉구 도봉동 5층짜리 다세대 주택 1층에서 불이 나 지체장애인 최모(27)씨가 사망하고 역시 장애인인 김모(32)씨 등 2명이 중상을 입었다.

경기일보 2005-03-11 안양, 미인가 복지시설 화재
안양, 미인가 복지시설 화재 원장의 후원금 착복 의혹 등으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던 미인가 복지시설에서 화재가 발생, 원생 등 50여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다.

2005년 12월 31일에도 장애인은 타 죽고 ..

이외에도 장애인 시설의 화재는 계속 되었고, 뒤늦게 정부가 내놓은 후속 대책은 ‘사회복지시설의 화재보험 의무가입 추진’이었다. 지난해 9월 한나라당의 나경원 의원 등이 발의한 화재로 인한 재해보상과 보험가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그것.

하지만 이 개정안조차 불이 나 집도 타고, 사람도 타 죽고 난 다음 화재보험 보상금을 받으라는 논리에 불과하다. 장애인 시설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예산확보가 가능하냐는 장향숙 의원의 질문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커튼, 바닥재 등 바꾸는 문제다. 재정의 문제는 따로 예산을 책정하기는 어렵고, 기존의 기능 보강비가 있다.”면서 사실상 예산 확보를 거부했다.

2005년이 끝나던 12월 31일 새벽에도 화재가 발생했고, 장애인은 타 죽었다.

KBS TV 2005-12-31 날품으로 끼니 잇던 장애인 화재로 숨져

오늘 새벽 제주시 오라동 주부 이 모 씨 집에서 불이 났습니다. 이 불로 청각 장애인인 주부 33살 이 모 씨가 질식해 숨졌습니다. 함께 잠자던 세 딸과 막내 아들은 긴급히 대피해 두 딸만 가벼운 상처를 입었습니다.
불이 나기 직전 주부 이 씨는 다음날 호떡 장사에 쓸 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가스레인지에 물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기초생활 수급자인 이 씨 가족은 노점상과 하루하루 품을 팔아 생계를 꾸려왔습니다.

대안이 없을까?

이 끔찍한 참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을까. 보건복지부는 커튼, 바닥재 등 화재시 목숨을 뺏는 화학제품에 문제가 있다고 하니, 화재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장애인은 겨울에 추워도 이불을 안 덮고 자야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정부로선 대책이 없으니 얼어 죽든, 타 죽든 개인이 알아서 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만약, 장애인이 거주하는 자택과 시설에 열과 연기를 감지하여 자동으로 물을 뿌리는 스프링 쿨러가 있었다면 혹은 인근 파출소와 연결된 벨 등 화재경보시설이 있었다면 불과 30분 화재에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을까. 의무적으로 작은 휴대용 소화기라도 나눠주어 각 가정마다 비치되어 있었다면 피해를 더 줄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

또한 소방기관에서 장애인 단체와 함께 각 장애인 가정과 시설마다 도시 가스가스, 전기시설 및 취사시설을 정기적으로 점검한다면 실질적인 예방이 될 것이다. 가장 좋은 건 장애인 활동 보조인 제도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활동 보조인을 통해 장애인 당사자가 주도적으로 화재에 민감한 집안 환경을 개선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

화재예방을 위한 정책적 뒷받침 시급해

정부는 장애인이 화재에 절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청와대에 불이라도 나야지 정신을 차릴까. 얼마나 더 많은 장애인이 불에 타 죽어야 그제야 후속 대책을 내놓을까. 보건복지부는 전국적으로 시설을 만들어 장애인들을 시설에 몰아넣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인지도 모른다. 그땐 불이 나도 한꺼번에 타죽을 것이다. 어차피 화재 예방을 위한 예산이 없으니까.

장애인 단체가 나서서 화재 예방을 위한 대책 강구를 요구해야 한다. 이어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직권으로 화재 예방을 위한 대책 수립을 권고해야 마땅하다. 또한 정부는 동절기에는 전기, 수도, 가스료 체납자에 대해 한시적으로 공급중단을 유예함이 당연하다. 그러나 지난 2일 전남 목포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이 증명하듯 체납자가 저소득층이라도 과감하게 전기를 끊어 버렸다.

2006년에도 장애인들이 여전히 반복될 화마의 희생양이 되어선 결코 안 된다. 장애인은 불에 타 죽으려고 태어난 게 아니며, 장애인의 인권이란 화재로부터 안전한 생활 환경이 포함되어 있음을 정부는 하루 빨리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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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1/02 [18:0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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