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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정치적 과잉'들
[기자수첩] 황색저널리즘 매도하기 전에 자신부터 성찰해야
 
홍성관   기사입력  2004/04/09 [01:45]

본 기자는 진중권이 지은 책은커녕, 지금껏 진중권의 이름으로 적혀있는 글 한 편 제대로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기자 역시 그가 서울대에서 강연을 하던 때 그 장소에 있었다. 강연이 있던 시기 즈음에 그가 친 사고(?)를 미루어보아 그날 그 자리에서 왠지 그가 또 한 차례 사고(?)를 칠 것이라는 감이 왔었기 때문이다.

그날 처음으로 대면한 진중권은 이전에 사진에서 접한 이미지 그대로 털털한 편이었다. 그는 기사를 위해 조그마한 카메라를 들이대도 잘 나오게 찍어야 된다며 순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이전에 만났던 많은 유명인사들은 보통 기자의 앙증맞은 카메라를 온전한 것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었기에, 그 포즈 하나로도 그는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진중권씨     ©브레이크뉴스

그러나 기자는 강의가 시작된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그의 ‘그리스’ 이야기는 사뭇 재미 있었지만, 기사로서의 가치는 없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그가 내뱉는 ‘한마디’는 그야말로 ‘조선일보’다운 소재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중에 그 자리에 정말 조선일보 기자가 있었다는 소리를 듣고는 허, 하고 바람 빠지는 웃음을 낼 수밖에 없었다. 어찌됐든 기자는 조선일보 기자의 끈기에 져 낙종한 셈이 되어버렸으므로. 만약 자리에 끝까지 남아있었다면 혹 진중권의 항변을 뒷받침해주는 증인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각설하고, 오늘은 진중권에 대한 인간적 경의는 잠시 제쳐두고 쓴소리를 좀 해야겠다.

조선일보 기자가 쓴 진중권의 오마이뉴스에 대한 발언은 물론 맥락을 제대로 짚지 않은 황색저널리즘의 소산일 가능성이 크다. 진중권 자신이 미디어다음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오마이뉴스가 나에 대해 인성이 안됐다는 요지의 기사를 쓴 데 대해 파시스트적이라고 말했던 것 같고, 오마이뉴스가 친 열린우리당이라고 말한 것을 조선일보는 한 문장으로 묶어서 썼다”며 “내 강연의 맥락을 완전히 무시한 기사”라 비난했고, 조선일보가 그간 보여준 행태만으로도 충분히 그런 유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원인을 비단 조선일보 기자에게만 돌릴 수 있을까.

사실 그의 전공인 미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나, 그의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을 제외하고, 대한민국에서 '진중권'이란 이름 석자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이 어떤지는 쉽게 예측해볼 수 있다.

이 얘기를 더 풀어보자면, 조선일보에 설령 그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났다한들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진중권이 누군데? 라며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란 말이다.(이는 진중권에 대한 인지도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고, 실제 주위에서 살펴본 사실이다.) 그는 자신이 신랄하게 비판한 도올보다 훨씬 덜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왜 그런 진중권의 말 한마디를 그렇게 확대해서 기사화시켰을까. 다시 쉽게 그가 조선일보의 대치점에 서 있는 오마이뉴스나 열린우리당에 대해 어쨌든 날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선일보가 보기에 그들과 별 차이가 못 느껴지는 지식인이 그런 날을 세웠으니, 조선일보로서는 반가울 따름이다.

하지만 진중권 본인은 이런 사실을 너무 간과하는 것 같다.

진중권은 진보누리에 실린 글을 통해 조선일보나 중앙일보를 닭대가리라고 폄하하면서, “닭 머리가 제 아무리 커도, 용량이 얼마나 되겠는가? 기껏 한 짓이 대학생들이 주최한 강연에 스파이를 잠입시켜 진중권 어록을 채취해 간 것이었다. 요 며칠 MBC의 특정 프로그램을 비판했더니 ‘혹시 써먹을 거 없나’ 하고 계획적으로 잠입을 한 모양이다. 이 정도면 기자가 아니라 완전히 KGB 밀정 내지 게슈타포 요원 수준이다. 닭짓하다가 양계당(黨)이 무너지자, 최후의 발악을 하기로 했나 보다”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했다.

그런데 그 자리가 어떤 자리였고, 진중권 자신이 당시에 어떤 상황에 있었나를 짚어보자. 그는 강연 며칠 전, MBC의 <신강균의 사실은..>을 비난하는 글을 써 이슈가 됐었고, 그날 강연은 서울대 진보정치 실천단이 마련한 ‘2004년 총선 정치강연회’였다. 사회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예민한 주제를 다루는, 결코 사적이지 않은 자리였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조선일보 기자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예측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사실 조선일보 기자가 자리에 있고, 없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혹 그 자리에 본 기자가 있었더라도 (조선일보처럼은 아니어도) 그렇게 썼을지도 모른다. 엄연히 공적인 자리였기에, 말과 글로 밥벌이하는 사람으로서 조심할 필요는 어느정도 있었다. 이에 대해 어느 글에 쓴 것처럼, 그럼 입닥치고 있는 수밖에, 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이건 그 사람 참 솔직하더라, 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다. 진중권이 만약 인터넷에 막 글을 쓰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면, 인터넷 글쓰기의 속성이 제법 그러하니 굳이 문제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단지 인터넷에 글을 쓰는 사람만은 아니지 않는가. 또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진중권은 자의든 타의든 이미 공인이 되었고, 그가 말하고 글쓰는 것은 저널이 된다.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쓰고 있는 전규찬 교수의 “싸잡아 매도해버리는 순간의 망각되고 희생되는 개별 주체의 자율성에 대한 모독은 참기가 힘들다”는 말을 진지하게 성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또 하나. 그가 지식인으로서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조선일보 기자에 대해 취한 글쓰기는 다음과 같다.

<나만 당했다면 그냥 지나가다 닭똥 밟은 셈치려 했다. 그런데 다음날 보니 이번엔 명계남씨 발언을 낚았다. 요 녀석, 앞으로 상습범이 될 모양이다. 대체 어떤 분인가 찾아보았더니,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의 젊은 기자다. 인터넷에 보니 사진도 올라와 있다. 범인이 아니니 몽타주 사진 내붙이고 현상수배를 할 수도 없고, 앞으로 이런 언론피해를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앞으로 강연을 할 때는 최모 기자의 사진을 복사해 강연장 입구에 걸어놓고 미리 미리 경계해야겠다. 하여튼 수법이 악랄하다. 왜 이렇게 독할까. 조류독감 먹었나?>-진보누리에서 쓴 글 中

불쾌한 감정에 대해 그냥 ‘침 뱉기’ 수준에 그치는 진중권의 태도를 보고 시원시원하다며 박수치기가 영 찜찜한 이유는 무얼까.

다음과 같이 최근의 정세를 짚어내는 그에게 다시 한번 실망하게 된다.

<....(전략)서프에 있는 노빠들이 슬슬 불안감을 느끼는 모양이군요. 하지만 그 동네의 몰락은 저들이 그토록 바라는 총선의 승리와 더불어 시작될 겁니다. 역설이지요. 열린우리당은 선거에서 패할 때만 '강력한 수구세력의 수의 횡포'를 내세워 상대적 진보성을 유지할 수 있거든요. 선거에서 승리하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을 제 편으로 끌어들였던 그 논리가 스스로 무너지게 됩니다. 노무현의 승리 후에 외려 수많은 노빠들이 떨어져 나갔던 것을 생각해 보십시요. 이제까지 시민들은 열린우리당을 '진보'라 착각해 왔습니다. 이제 선거가 끝나고 열린우리당이 의회의 과반의석을 점하게 되면 이 착각은 깨질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열린우리당의 보수화가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동당의 존재가 그들이 보수라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럼 열린우리당을 '진보'로 잘못 알고 찍었던 시민들이 대거 민주노동당으로 건너올 겁니다....(중략)....주둥이로 말 퍼뜨리는 논객들도 이미 이쪽으로 건너왔거나, 서서히 이쪽으로 건너오는 중입니다. 홍세화 선생, 무서운 활약을 보여주고 있고, 박노자 선생도 서서히 스탠스를 옮기는 것으로 보이고, 심지어 김민웅, 김동민처럼 노골적으로 민주당/열우당 지지를 해 왔던 글쟁이들까지도 이제는 공공연히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겠다고 밝히는 판입니다. 유시민, 노혜경은 보수정당에 기어들어갔고, 저 동네는 제대로 글질 할 사람 하나 남아있지 않습니다....서프? 걔들은 오합지졸에 선거 끝나면 어차피 흐지부지될 겁니다. 오마이, 한겨레는 눈치보며 민주노동당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겠지요. 어차피 '진보' 팔아 해먹는 장사, 주섬 주섬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후략)...>

그가 민주노동당에 대해 비판적 지지를 하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그의 자유니까. 그러나 위에 발췌된 부분을 보고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하는 회의를 가지는 것은 단순히 그간 진중권이라는 사람을 몰랐던 무지의 소치일까.

그렇기에 “민주노동당을 통해서 우리 정치가 더 깨끗하고 더 생산적이고 더 재미있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현실적 가능성으로 느끼게 된 겁니다”는 진중권의 말에서 쓴웃음을 짓게되는 것은 기자의 착각에서 비롯된 것일까.

강연장에서 대면했던 진중권은 소탈해 보이는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글쓰기에서는 허탈감만 맛보았다. 그가 열변한 그리스의 공론의 장에서도 결코 이런 글쓰기는 환영받지 못하지 않을까. 대학에서 후학양성에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그이기에, 가볍다 못해 경박함마저 느껴지는 글쓰기에 좀더 신중을 기했으면 한다.

제 아무리 좋은 술자리라도 얄미운 사람이 있으면 가기 싫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그런지 진보누리에 올려진 “이번 기회에 민주노동당에 관심을 가지려 하는데 너무 배타적인 진중권의 글을 읽고 나면 이건 아니다 싶어진다”는 답글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그날 자리에서 기자가 기억하는 진중권의 한 마디인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정치과잉에 빠져있다”는 말을 조금만 손질하면 진중권 본인에게도 유효하지 않을까 싶다. /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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