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IT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숙부의 난' 결전임박, 현대상선은 어디로?
현정은 회장 vs 정상영 회장의 비하인드 스토리
 
취재부   기사입력  2004/02/09 [08:35]

 ‘숙부의 난’의 서곡
 
현대 엘리베이터의 이른바 ‘숙부의 난’은 작년 8월 4일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갑작스런 투신자살로부터 야기된다. 대주주 지분율이 높지 않아 구조적으로 취약했던 현대 엘리베이터에 적대적 인수합병(M&A)의 손길이 뻗칠 기미를 보이자, 시숙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을 비롯해 범(凡)현대가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사들이며 지원을 했다. 그리고 이 때 정몽헌 회장의 장모인 김문희 여사가 대주주로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지원군은 사태가 안정될 즈음 칼을 돌렸다. KCC가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을 장악하려고 한 것이다. 이에 정몽헌 회장의 부인 현정은 씨가 김 여사의 지분 의결권을 모두 위임, 상속받고 10월 21일 서둘러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에 취임한다.
 
하지만 이미 KCC는 물밑작업을 거의 마친 상태였다. 몇 개의 펀드를 동원,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을 은밀히 매집한 KCC측이 11월 중순 지분 과반수 확보에 성공한 것이다. KCC의 완승이 눈앞에 보이려는 순간이었다.
 
본격적인 세(勢) 싸움
 
그러나 현 회장측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현 회장이 “1,000만주 유상증자를 통해 현대엘리베이터를 국민기업화하여, 시아버지인 정주영 명예회장과 남편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유지를 이어가겠다”고 선언하면서 분위기는 역전된다. 거기에다 금융감독원이 지분 매집의 위법성을 이유로 KCC가 보유한 지분에 제재를 가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표명하면서 ‘승리의 여신’은 현 회장측에 웃어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경영 일선에 나선지 얼마 안 되는 현 회장에게 쉽사리 무너질 KCC도 아니었다. KCC는 온갖 방안을 구상한 끝에, 법원으로부터 ‘유상증자 정지 가처분’이라는 소득을 얻어냈다. 현 회장의 카드였던 ‘유상증자’를 물거품으로 만든 것이었다.
 
(여기에서 ‘유상증자’는 보통 기업이 자금조달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으로, 기존 주주들에게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보다 싸게 신주를 나눠주면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현 회장측이 ‘유상증자’를 시도했던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KCC의 지분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누가 더 깨끗하고 더 정통이냐?
 
양측의 신경전은 이 같은 법정 공방뿐만 아니라, 도덕성 시비와 정통성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우선 현 회장측이 내세우는 무기는 KCC가 지분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비도덕적이었다는 것이다.
 
지난달 현 회장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정상영 명예회장이 정몽헌 회장이 죽기 전부터 현대그룹을 탐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폭로했다. 또 이미 그 전에도 정상영 회장이 정몽헌 회장의 장례식에서 경영권을 넘길 것을 종용했다는 보도로, KCC측은 도덕성 차원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
 
더구나 현대 엘리베이터의 주식 매집 과정이 은밀히 진행되었던 점까지 부각되면서, 정상영 회장은 조카처를 공격해 현대그룹을 집어삼키려는 야욕가로 매도됐다.
 
흠집이 날대로 난 KCC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KCC는 현 회장의 부친인 현영원 씨가 현대상선의 주식을 매입하면서 뒤늦게 공시한 사실을 포착하고 불법매입이라며 도덕성 차원에서의 맞불작전을 폈다. 또 1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현대상선 분식회계 및 해외 매각추진, 현대그룹 해체 등의 의혹을 제기하면서 현대엘리베이터를 공격했다.
 
현영원 씨의 뒤늦은 주식매입 공시에 대해 현 회장측은 “정몽헌 회장 사후 현대상선에도 외국인 매수세가 증가해, 단지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차원에서 그랬을 뿐이었고, 이런 사실을 그간 알면서도 가만히 있다가 지금에 와서 문제 삼는 것은 흠집내기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KCC가 제기한 세 가지 의혹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법적 대응까지도 고려하고 있다.
 
정통성 시비도 붙었다. 현 회장측은 정몽헌 회장이 정주영 회장의 직계이고, 그의 사후에 자신이 이어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KCC는 당연히 ‘정’씨가 물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정은 체제의 강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현 회장은 작년 12월 18일, 일괄 사표를 제출한 현대그룹 사장단 8명의 절반을 퇴진시킴으로써 `현정은 체제`로의 가속페달을 밟았다. 이 때의 인사는 하루빨리 경영진을 구축, 안정적인 경영체제를 갖추겠다는 의지와 더불어, 그동안 핵심 가신(家臣)으로 꼽혀왔던 강명구 현대택배 회장과 김재수 경영전략팀 사장을 퇴진시켜 KCC측이 주장해온 `가신 청산`논란을 잠재우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최용묵 현대엘리베이터 사장, 김지완 현대증권 사장, 노정익 현대상선 사장 등 전문경영인들을 재신임하면서, 명분과 체제강화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 된 것이다.
 
현 회장은 새해 신년사에서 "전문경영인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조력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것"이라며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 보강 및 전문경영인에 대한 성과형 평가보상 시스템 도입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KCC와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불거진 소액 주주들의 불만에 대해 "소액주주의 이익과 의견을 수렴하는 소액주주 전담창구를 전사적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을 표명하면서 도덕적 우위를 점해가기 시작했다.
 
김문희 여사가 현 회장을 조종한다?
 
현 회장의 최측근 관계자에 따르면 김문희 여사는 현대 엘리베이터의 내부사정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바가 없다고 한다. 다만 경영권 싸움으로 시끄러우니까 걱정이 돼서 회사를 오가기만 할 뿐이라는 것이다.
 
정몽구 회장은 ‘어쩔 수 없는’ 중립
 
정주영 회장의 맏아들인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입장은 어떨까. 정몽구 회장은 이른바 ‘숙부의 난’ 초기부터 자신은 중립이라고 표명해왔다. 이에 대해서 현 회장의 측근 관계자는 “현대자동차의 기업구조가 취약해 자기경영권을 위해 불리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다임러크라이슬러가 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일단 우호지분으로 보고는 있지만, 다른 싸움에 끼어들 여력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또 정상영 회장은 숙부이고, 현 회장은 동생의 처 인만큼, 끼어들기도 불편한 심정이라는 예측이 많다. 그래서 애초에 중립이라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쓸데없는 뒷공론에 휘말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몽준 회장은 KCC 편, 여자가 경영하는 것을 반대한다?    
         
정몽준 회장과 정몽헌 회장은 유년기 우애가 두터운 형제였다고 한다. 하지만 성장한 이후, 거대재벌그룹의 왕자로서 세다툼이 불가피해지고, 결국 사이가 틀어진 것이다.
 
이런 틀어짐은 정몽헌 회장의 사후 금강산에 추모비를 세우려고 할 때, 정몽준 회장이 ‘사람들 있는데 이런 걸 왜 세워?’라고 반대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관계자는 정몽준 회장은 완전한 KCC의 편이라고 말한다.
 
우선 정몽준 회장이 11%정도 보유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의 지분을 KCC가 약 8.2%정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 회장의 편을 들었다가는 경영권이 위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정 씨 일가의 가풍 때문에라도 KCC의 편이라고 한다. 자고로 정주영 명예회장이 자식교육을 시킴에 있어, ‘사내다움’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몽준 회장이 현 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대해 “여자가 무슨 경영을 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후문도 있다.
 
‘숙부의 난’, 승리는 누구에게로
 
양측의 경영권 다툼은 금융감독원이 KCC에 대해 `5% 룰`위반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향배가 가려질 전망이다. 금감원은 KCC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매입과정에서 발생한 대량보유 보고의무 위반혐의에 대해 조사가 거의 마무리단계에 왔으며 11일(수) 정례회의에서 최종 결론이 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때 현영원 회장에 대한 제재여부 문제도 함께 처리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KCC에 대한 처리결과는 무혐의, 의결권 제한, 지분 일부 또는 전체 처분명령, 검찰수사 의뢰 등 여러 가지로 가능하기 때문에, KCC나 현 회장측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현 회장은 얼마 전 승리를 확신한다는 발언을 했다. 관계자들 또한 여러 정황들이 현대 측에 유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
 
또 결과의 여부와는 별도로 범 현대가가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판도가 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최후의 승리자가 누가 될지는 적어도 3월 주주총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지난 2000년 ‘왕자의 난’에 이은 현대가의 새로운 경영권 다툼이 어느 쪽의 승리로 결말이 나든 양측의 상처가 아물기에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4/02/09 [08:35]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