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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일본인 옛말, 줄어든 와세다 고서점가
[일본 현장] 고서점은 한산, 젊은이들은 슬기전화, 미래도 암울해 보여
 
이윤옥   기사입력  2014/08/06 [15:18]

“한 오십년 정도 했지요. 그런데 정말 책방 운영이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깎아드리지 못해서...” 책방 할아버지(이이지마서점 '飯島書店', 이이지마히사요시 '飯島芳久,'77살')는 책 몇 권을 골라 값을 치르면서 깎아달라는 기자의 말에 연신 고개를 수그리며 사죄를 했다. 문고판 7권 값은 모두 2,050엔(우리 돈 2만 원 정도)인데 기자는 설마 50엔은 깎아주겠지 싶어 우수리를 떼자고 말을 건넨 것이었다.

    
도쿄 와세다대학이 자리한 거리 이름은 “와세다거리(일본말로는 와세다도오리)” 인데 이곳에는 고서점이 줄지어 들어 서 있다. 적어도 예전에는 그랬다. 깎아 줄 수 없다는 책 값 2,050엔을 다 건네고 나니 할아버지는 흰 포장지에 책을 곱게 포장하기 시작했다.
 

▲ 이이즈마 책방 할아버지     © 이윤옥

 

▲ 이이즈마 할어버지네 책방     © 이윤옥

    
대충 비닐 봉투에 담아 주어도 되련만 예전 방식대로 책을 포장하는 할아버지의 더딘 손놀림이 왠지 정겨워 말을 붙였다. 사실 기자는 15년 전 와세다대학에 연구원으로 와 있었기에 와세다거리의 고서점은 늘 드나들었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와세다대학에 와있어 시간을 내어 고서점 거리를 찬찬히 걷다보니 눈에 띄게 책방이 줄어든 것을 피부로 느껴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음, 많이 줄었지요. 15년 전이라면 말이에요. 그때는 꽤 많이 있었어요. 그러나 당시 이층짜리 건물들이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책방이 많이 사라졌지요. 나도 저 아래에서 오랫동안 하다가 그곳이 헐리는 바람에 이곳으로 왔지요.”라며 2004년에 펴낸 와세다대학 고서점 거리 지도를 하나 건네준다.
 

▲ 2004년 4월에 발간한 와세다거리 고서점가, 그때는 서점이 좀더 촘촘하게 있음을 알 수 있다.     © 이윤옥

 

▲ 2004년 4월에 발간한 와세다거리 고서점가, 그때는 서점이 좀더 촘촘하게 있음을 알 수 있다.     © 이윤옥

      
할아버지가 준 홍보용 지도에는 줄잡아 이곳 와세다거리에만 39곳의 고서점이 번호를 단채 소개되어 있었다. 10년 전 지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데 할아버지는 또 다시 2014년 3월 현재 지도를 건네준다. 살펴보니 여기에는 29곳만 소개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와세다거리만 이야기 하는 것이고 주변까지 치면 더 많은 서점이 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 3/1은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사정은 일본 최대의 고서점가인 간다고서점가(神田古書店街)도 마찬가지다.  간다고서점가는 명치10년(1880) 때부터 명치대학, 중앙대학, 일본대학, 전수대학들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대학가의 책 수요로부터 시작한 곳으로 그 역사는 무려 130여년에 이른다. 이곳에는 2008년 2월 9일(일본 위키참조)에 약 200 곳이 소개되고 있으나 간다고서점연맹(神田古書店連盟, 2012.9월 현재)에 따르면 158 곳으로 줄어 든 상태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한국에서는 “일본인은 전철 안에서 모두 책을 읽는다”는 말이 나돌았는데 이제는 그 말도 옛말이다. 일본도 전철 안 풍경은 모두 슬기전화(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분위기다. 책방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 만큼 책 읽는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고서점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지 신간을 다루는 책방은 여전히 건재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것도 앞으로 모를 일이다.
 

▲ 일본 최고의 고서점가로 알려진 도쿄 간다서점가 모습     © 이윤옥

 

▲ 일본 최대의 서점 기노쿠니야의 1-5위 베스트셀러     ©이윤옥


 
일본의 최대서점인 기노쿠니야(紀伊国屋)의 베스트셀러 1위부터 3위를 보면 일본인의 독서 성향을 대충 짐작할 수 있는데 1위는 기업의 도산을 내다보는 책이고 2위는 요괴와 인간사를 다룬 책이며 3위는 베스트셀러의 비밀을 다룬 책이고 보니 좀 싱거운 느낌마저 든다.
    
올해 일흔일곱이라는 이이지마서점 할아버지는 사진을 찍겠다는 기자를 위해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그래도 어딘가 어두운 모습이 역력하다. 일본의 고서점은 단순한 싸구려 헌책방 개념이 아니라 고전부터 희귀본까지 고루 갖춘 일본인들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도 한국의 대학가에 책방이 완전히 사라진 것 보다는 많이 남아있긴 하지만 전철 안에서 슬기전화(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일본인들을 볼 때 이제 '책 많이 읽는 일본인'이라는 말도 옛 말이 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자주 들리라는 할아버지에게 늘 건강하시고 장사가 잘 되었으면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나오는데 습도 높은 도쿄의 무더위가 확하니 온몸을 감싼다.
 

▲ 책 속에 묻혀 책방을 나오는 기자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할아버지     © 이윤옥

 

▲ 와세다거리 (JR야마노테선 다카다노바바에서 와세다대학에 이르는 20여분 거리에는 고서점이 즐비했으나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 이윤옥
이윤옥 소장은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찾아 왜곡된 역사를 밝히는 작업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서로 제대로 된 모습을 보고 이를 토대로 미래의 발전적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거름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외대 박사수료,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연수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을 지냈고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과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민족자존심 고취에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밝힌『사쿠라 훈민정음』인물과사상
*친일문학인 풍자시집 『사쿠라 불나방』도서출판 얼레빗
*항일여성독립운동가 20명을 그린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도서출판 얼레빗
*발로 뛴 일본 속의 한민족 역사 문화유적지를 파헤친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 답사기』 바보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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