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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공동체와 세월호 공동체
[변상욱의 기자수첩] '세월호 공동체'를 다시 일으켜 세우자.
 
변상욱   기사입력  2014/06/30 [01:51]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축구는 지구촌 어디에서나 즐기는 스포츠이다. 월드컵 축구는 지구촌이 들썩거리는 최대의 스포츠 축제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회원국은 204개로 유엔 가입국보다 많다. 지구촌 모두가 즐기고 관중이 되어 흥분하니 축구의 부가가치는 대단히 높다. 상업 자본들이 축구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계화를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자 게임의 규칙과 대회의 절차 등도 국제표준화 작업을 거쳤고, 공(ball)까지 월드컵 대회 때마다 공인구를 지정해 쓴다.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장치들을 FIFA가 마련하면 상업 자본들은 축구와 스타의 이미지 안에 자기네 기업의 이미지를 반죽해 전달함으로써 거대한 규모의 글로벌 비즈니스를 벌이는 것이다.

◈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

여기에는 축구가 갖는 본래적 속성이 크게 작용한다. 그것은 원초적이고 공격적인 본능의 자극이다. 팬츠만 입으면 맨발로라도 할 수 있을 만큼 축구는 원초적이다. 스포츠 경기 중 가장 '전투적인 양식'을 채택하고 있다.

경기 규칙은 단순하고 건장한 남성들이 땀에 흥건히 젖어 뛰고, 격렬하게 부딪히며 태클로 넘어지고 뒹군다. 이런 거친 남성성의 발현에 남녀 관중은 모두 강한 대리만족을 느끼며 빠져드는 것이다.

거기에 중계 미디어들도 한 몫 거든다. 온갖 역동적인 화면과 쿵쾅거리는 음악으로 관중을 흥분시키는데 일조한다. 신문은 애국심을 끌어올린다. 시청자·독자를 축구팬으로 바꿔줌으로써 축구산업을 거들고 정치권력의 축구를 통한 국민 통합을 거드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속 깊은 저널리즘이라면 경기 결과나 비즈니스만 보도할 게 아니라 월드컵과 축구가 갖는 사회정치적 의미나 시대적 구조를 설명할 책임도 있다. 시민을 그저 축구장으로만 떠밀어 넣지 말고 균형 잡힌 시각과 넓은 안목을 제공해야 한다.

축구 특히 월드컵 축구는 정치적 목적에 따른 '가상의 통합과 가상의 공동체'에 기여한다. 남아메리카·아프리카 후진국들은 유럽 선진국들에게 뒤진 열등감을 해소할 유일한 통로가 축구이고 월드컵이다.

축구의 종주국은 유럽일지 몰라도 오늘의 축구강국은 남미와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들이다. 유럽의 명문 클럽들이 모셔가는 축구스타에도 남미와 아프리카 선수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축구에서 이긴다고 몇몇 선수들이 거액연봉을 받는다고 대륙의 형편이 달라질 건 없다. 유럽 대륙도 부국과 빈국으로 나뉘어 서로 손가락질 하는 마당에 남미와 유럽의 대결, 다크호스 아프리카 대륙의 등장은 지구촌 민중들에게 실익이 없다.

월드컵 대회를 유치하거나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면 집권세력의 지지율도 당연히 영향을 받는다. 특히 정치적 기반이 부실하거나 정권의 정통성이 약한 경우 축구는 단점을 가리고 통합을 이뤄내는 데 효과적이다. 대표적인 예가 멕시코 월드컵이다.

멕시코 집권 세력(당시 제도혁명당)은 국민의 민주화 요구에 떠밀리기 시작하자 가난한 살림에 억지로 1968년 올림픽을 유치한다.

그러나 국민들의 저항은 거세지기만 했고 조급해진 멕시코 정부는 올림픽 10일 전인 1968년 10월 2일 군경 합동작전으로 평화 시위에 참석한 시민학생들을 진압했다.

군경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고, 대대적인 체포에 들어가 200여명이 희생됐다. 이러면서 멕시코 정부는 월드컵 유치에도 나서 1970년 월드컵을 유치한다. 그러나 1970년 월드컵이 끝나자 1971년 6월 10일 거리에서 평화롭게 행진하던 학생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해 학생 30여 명이 희생되는 알코나소(Halconazo) 학살을 저지른다.

멕시코에서는 1968년 올림픽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532명이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치부를 가리기 위해 멕시코 정부는 다시 1986년 월드컵을 유치한다. 카드 돌려막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도 같은 맥락이다. 쿠데타 정권은 군사평의회(Junta Militar)를 설치하고 국가안보를 내세우며 1976~1983, 8년의 기간에 양민을 학살하고 저항세력을 탄압했다.

국민을 향한 이 폭거는 '추악한 전쟁'이라고 훗날 이름 붙여진다. 저항 시민들을 가두었던 비밀수용소만 340개에 이르렀다. 죽여서 파묻는 게 번거롭다고 바다에 던져버리기까지 했던 최악의 시대에 월드컵은 치러졌다.

◈ 월드컵 공동체와 세월호 공동체

우리도 88서울 올림픽이 가졌던 정치적 순기능과 역기능을 겪어 알고 있다. 또한 2002년 우리나라를 뒤덮은 붉은 응원단을 떠올리면서 축구를 통한 '가상의 공동체'가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그 엄청난 힘의 응집과 하나됨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건 '세월호 공동체'이다. 끔찍한 참사를 통해 우리는 우리 국가와 사회의 문제가 무엇이고, 우리 각자의 책임과 과제가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울면서 '하나'가 되어갔다.

관중으로서 팬으로서 붉은 악마 응원단으로서 뭉치게 될 '월드컵 공동체'와는 의미와 가치가 다른 '세월호 공동체'를 간과하거나 이대로 끝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국가의 비전과 미래에 대한 대단히 소중한 경험이자 하나됨의 기회이다.

월드컵 축구, 즐기자! 조금은 더 넓은 시각으로 우리가 세계 축구 비즈니스에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도 눈 여겨 보자. 그리고 월드컵 축구가 끝나면 몇 강까지 올랐는가에 관계없이 '세월호 공동체'를 다시 일으켜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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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6/30 [01:5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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