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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꼼수', 4가지 방패 뒤에 숨다
[정문순 칼럼] 반성 없는 '나꼼수', 말장난과 허세 가득해
 
정문순   기사입력  2012/02/12 [00:58]
아팠다더니 아프기는 했을까. 세 남자의 ‘시시덕거리는’ 웃음소리가 적잖이 귀에 거슬린다. ‘나는 꼼수다’ 진행자들은 몇 가지 비겁한 방어막 뒤에 숨어 있는 중이다. 한때는 그 능력이 아까워 안됐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알고 보니 이들은 겹겹의 방패막이를 동원하고 있었다. 비판자들을 역공격함으로써 자신들을 합리화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점에서 좀 못됐다는 생각마저 든다. 

1. 김어준들은 비키니 수영복 사진을 올린 여성들 뒤에 숨으려고 한다. 김어준들이 큰소리 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이것인 듯하다. 수영복 사진이 자발적으로 올려진 것인데 뭐가 문제냐고. 해당 여성들은 자신들과 권력의 상하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이 자신들과 비키니 차림을 게시한 여성들과의 관계가 아니라는 점은 외면한다. 김어준들은 자신들-여성 청취자들의 관계를 자신들-비키니 수영복 시위 여성들로 교묘히 뒤바꿔놓고 있다. 불특정 다수의 모든 여성 청취자들, 정확히는 당시 방송을 안 들은 나를 포함한 모든 여성들이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쏙 빼놓고 비키니 여성들의 ‘자발성’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그녀’들의 자발성은 김어준들에게는 소 잡고 닭 잡는 데 두루 쓰이는 만능 칼이다. 

성범죄를 낳는 요인은 약자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이나 권력욕이다. 그런 생각이 함부로 해도 될 것 같은 힘없는 약자를 상대로 실행에 옮겨지는 것일 뿐이다. 성범죄를 개인간의 사적인 범죄로만 볼 수 없는 것은, 가해자가 모든 여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비키니 수영복 착용이 가능한 모든 여성들을 대상화시켜놓고도, 몇몇 여성들과의 문제로만 축소하며 그 방패 뒤에 숨는 것은 조금 비겁하다. 

2. 김어준들은 농담과 유희의 가면 뒤에 숨어 있다. 정봉주 전 의원이 성욕감퇴제 복용하고 있으니 그에게 비키니 사진 마음 놓고 보내라고 한 말은, 사실은 실천에 옮길 생각을 못한 말을 장난스럽게 말한 것일 뿐인데, 사람들이 그 말을 성희롱이라고 곧이곧대로 알아듣고 ‘발랄’, ‘통쾌’한 언어유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타박한다. 한바탕 신나게 놀아보자는 것인데 왜 정색을 하느냐고? 이 지식인 남성들은 자신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패러디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치부하고 있다. 

물론 나도 농담이라고 생각한다. 설마하니, 김어준들이 ‘비키니 수영복 입은 여성 사진으로 정봉주의 성적 욕구를 달래줘야 한다’고 진짜로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슴 응원 사진 대박, 코피를 조심하라.”는 영락없는 성희롱적 발언도 제 정신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김어준들은 아무리 성희롱 의식이 깔린 담론이라도 농담으로 만들어버린다면 재미있게 넘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깐 것은 성에 대한 진지함뿐만이 아니라 성적 비하를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포함되었다. 진지함을 비틀어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것은 패러디의 속성이기는 하나, 장난을 쳤을 뿐이라면 아무 것이나 다 된다는 사고방식이 반여성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왜 입을 다무는가? 성희롱도 농담으로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연유할까? 그것도 성적인 개방성이나 발랄함의 일종인가? 장난으로 성희롱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사고에서 나는 남성에게 현저하게 기울어진 권력 추를 확실히 느낀다. 

3. 김어준들은 말장난의 뒤에 숨어 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했으니 성희롱이다라는 욕을 듣고는 성적 대상화가 뭐가 나쁘냐고 한다. “인간이 자신 외 인간을 대상화하지 않는 경우도 있나”라고 하며 철학적인 수사까지 동원한다. 아무래도 김어준들은 파트너를 성적 대상화하지 않고는 절대로 섹스는 못할 사람들인가 보다. 그러나 타인의 몸과 영혼을 대상화하지 않는 사람은 ~와 섹스하지,  김어준들처럼 ~를 섹스하지 않는다.
 
철학에 무식한 나도 사물화니, 대상화니 하는 말이 어떤 자리에서 쓰이는지는 대충 윤곽이 떠오른다. 나와 동등한 존재로 간주하는 대상에 대해 감히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 성적 대상화가 상대에게 성욕을 느끼거나 비키니 여성 몸매에 감탄한다는 말인 줄 아는가.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욕망에 상대를 일방적으로 종속시키는 걸 이를 뿐인 것을. 

4. 김어준들이 자신의 편의에 따라 말을 오용하는 것은 하나로 그치지 않는다. 자신들을 비난하는 이들에게는 성적 보수주의자라는 탈을 씌우고 스스로는 성적 자유주의자라는 탈을 쓴다. 페미니스트들을 성적 보수주의나 남성에 대한 피해의식에 젖은 이들로 격하하는 이들이 간혹 있기는 하다. 여성에 대한 농락이나 남성적 우월의식의 작동을 성적인 자유로움으로, 그것에 반발하는 여성을 조선시대 꽉 막힌 여자로 매도하는 이들이 있기는 하다. 아니 마초들 중에 이런 식의 어법을 구사하는 이들이 꽤 있다. 

김어준들은 여성은 성 문제에 예민할 권리가 있다느니, 성폭력은 약자의 관점에서 봐야 하느니 하는 말로 여성을 이해하는 척하더니 자신의 몸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면서, 비키니 시위 여성들의 자발성을 내세워 언제까지 여자들이 피해자 틀에 갇혀 있어야 하느냐고 항변한다. 이들은 왜 입만 열면 비키니 입은 ‘그녀’들을 언급하는 걸까. ‘그녀’들을 끌어들여 비판자들의 ‘성적 보수주의’를 공격하는 데 활용하는 것을 ‘그녀’들도 바랄까. 김어준들의 변명을 추려내면 이것 하나다. '그녀들이 좋다는데 늬들이 왜 난리냐?' 거듭 말하지만, 여성들이 분노하는 것은 자발적으로 몸을 드러낸 그녀들이 아니다. 그들과는 별개로 성희롱을 장난스럽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김어준들의 어쩔 수 없는 마초 본능이다. 진짜 성적보수주의자는 의도와 무관하게 남성 우월주의에 기울어지는 측면이 있으므로 김어준들을 욕하지도 않을 것이다. 

김어준들이 페미니즘 용어의 맥락을 도막도막 끊어내어 자의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은 어설픈 지식인 남성들의 먹물 근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맥락에서 이탈한 용어는 죽은 시체일 뿐이다. 이들의 말을 듣다보면 이들이 존중한다던 피해자 중심의 관점은 어느새 피해자 콤플렉스로 둔갑해 있다. 김어준들이 하는 변명은 성폭력 가해자들이나 옹호자들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고색창연이 만발한 정신으로 지금의 궁지를 돌파할 수 있을지 심히 기대된다. 아마 위기를 탈 없이 사뿐히 넘긴다면 남성우월주의자도 페미니스트의 가면 쓰기를 용인하는 한국 지식사회의 수준 때문일 것이다. 

김어준들은 앞으로 ‘에로틱 코드’를 강화해서 각하와 잘 놀겠다고 했다. 못생긴 마사지 걸을 찾는 분하고 어쩌면 죽이 잘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사지 걸 이야기도 농담이지 않았나. 각하는 어지간한 성적 농담에는 꿈쩍도 안하시는 분이니 부디 실력을 갈고닦아 일취월장하기 바란다. 열녀를 다룬 고전소설에 대해 ‘따묵는다’는 성적 발랄함과 섹시함의 절정에 이른 표현을 구사하신 경기도지사와 노는 건 어떨까. 고전 명작의 권위를 비트는 패러디 정신과 성적 상상력은 아무래도 그분이 한 수 위니 배울 게 많을 듯하다. 

대략 서글프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가.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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