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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시대, 문제는 경제학이다!
[논단] 진보·개혁진영은 정치공학 아닌 대안적 경제학 구성해야
 
이태경   기사입력  2008/02/20 [19:17]
지금은 진보·개혁진영이 기뻐할 때가 아니다  
 
이명박 당선인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10년간 절치부심했다는 보수세력의 실력이 그것밖에 되지 않느냐는 진보진영의 냉소도 눈에 띈다.

심지어 예정된 총선 참패를 위해 달려가던 통합민주당조차 이 당선인과 인수위의 거듭된 헛발질에 전열을 가다듬는 기색이 완연하다. 민노당 탈당을 선언한 노회찬 의원과 심상정 의원을 비롯한 이른바 평등파(PD)도 비록 제 코가 석자이긴 하지만 출범도 하기 전에 흔들리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이 싫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유권자들 중 상당수가 임기가 시작되지도 않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데다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는 마당이니, 이명박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큰 실책만 저질러준다면 총선에서 기사회생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 아마 야당의 희망 섞인 예측일 것이다.

그러나 설령 야당의 예측이 적중해 야당이 4·9총선에서 선전한다고 해서 지금의 통합민주당이나 평등파(PD)가 건설할 신당이 유권자들로부터 한나라당을 대체할 수권정당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보다는 상대방의 실수에 편승한 반사이익으로 평가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실수에 편승해 기사회생하는 것은 통합민주당 및 평등파(PD)가 건설할 신당에 오히려 독(毒)이 될 수도 있다. 대선 참패를 통해 비로소 본격화된 진보·개혁 진영의 통절한 자기반성 및 대안모색을 위한 노력이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제도권 정당과 현실 정치인들 입장에서야 총선 승리가 지상과제라 할 수 있겠지만, 진정 대한민국의 장래를 책임지려 하는 정치세력이라면 총체적이고도 근본적인 그리고 구체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마련하는데도 지속적으로 관심과 자원을 배분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안적 경제체제 혹은 대안적 경제학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진보·개혁 진영에는 대안적 경제학이 부재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의 진보·개혁 진영에 제대로 된 경제학이 존재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진보·개혁 진영은 많은 한계와 부작용을 내포하고는 있었지만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룬 박정희의 이른바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모델을 대체할 만한 경제학을 구성하는데 실패했다.

발전국가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물론 장하준 등의 학자들은 이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기도 한다)한 외환위기 도래 이후 집권에 성공한 민주정부들이 시장근본주의에 투항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발전국가 모델을 대체할 만한 경제학 혹은 경제체제의 부재 탓이 크다. 이를 단지 DJ나 노무현의 무지 혹은 의지박약에서 기안한 것으로 보는 것은 단견에 불과하다.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발전국가론이 쇠퇴한 빈자리를 대신할 대안적 경제체제 혹은 대안적 경제학이 부재한 상황에서 민주정부들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처음부터 매우 협애했고 이들이 당시 국내외의 주류 경제학이던 시장근본주의에 매료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시장근본주의에 투항한 민주정부들의 과오를 덮어두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노동·재벌·금융·토지 등 경제 전 부문에서 시장근본주의를 극복할 대안적 경제체제 혹은 대안적 경제학을 구성하지 못한 진보·개혁 진영의 지적 무능과 게으름을 지적하는 것일 뿐이다.

지난 대선에서 많은 유권자들이 도덕성과 준법정신에 심각한 흠결이 있는 이명박 후보를 선택한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 후보가 천명한 시장근본주의가 다른 후보들이 내세운 경제체제 보다 나아 보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 크다. 민주정부 아래서 시장근본주의의 폐해를 실컷 경험한 유권자들이 그 보다 훨씬 더한 시장근본주의자를 대안으로 선택했다는 점은 분명 역설적이지만 말이다.

발전국가론과 시장근본주의를 넘어서 
 
분명한 것은 진보·개혁 진영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대안적 경제체제 혹은 대안적 경제학의 구성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위시한 보수세력의 실수나 조악한 정치공학에 의존해서는 진보·개혁 진영이 수권세력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아니 수권은 커녕 잔존하는 수준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진보·개혁 진영은 지금이라도 대안적 경제체제 혹은 대안적 경제학의 구성에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 노동·재벌·금융·토지 등을 유기적으로 아우르는 대안적 경제체제 혹은 대안적 경제학이 발전국가론 및 시장근본주의를 발전적으로 지양해야 함은 물론이다.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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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2/20 [19:1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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