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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 왜 대중의 지지와 인기못얻나
[강준만의 세상이야기] 래리 타이 <여론을 만든 사람, 에드워드 버네이즈>
 
강준만   기사입력  2009/09/21 [16:55]
“때때로 수백만 명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한 사람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누군가에게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존경 받는 권위자를 내세우거나 자신의 견해에 대한 논리적 틀을 설명하고 전통을 고려하여 설득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도록 하는 것이 더 쉽다.”

▲     © 커뮤니케이션북스
미국 저널리스트 래리 타이(Larry Tye)의 <여론을 만든 사람, 에드워드 버네이즈: ‘PR의 아버지’는 PR을 어떻게 만들었나?>(송기인 외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4)에 나오는 말이다. 물론 에드워드 버네이즈(Edward L. Bernays, 1891~1995)의 주장이다. 그를 가리켜 ‘현대 PR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이 타이틀을 놓고 아이비 리(Ivy Ledbetter Lee, 1877~1934)와 경합하기도 하지만 104세까지 장수한 덕분에 아무래도 버네이즈가 더 유리한 입장이다.

오스트리아 태생 유태인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버네이즈의 어머니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여동생인 안나였으며, 아버지의 여동생은 프로이트의 부인이었다. 버네이즈는 미국에서 사실상 프로이트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등 두 사람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였다. 이와 관련,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삼촌과 마찬가지로, 어떤 잠재의식적 요소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지에 대해 몰두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사항을 이해하기 위해 삼촌의 글들을 참고했다. 그러나 이 명망 있는 심리분석가 프로이트가 심리학을 이용하여 환자들에게 감정적 장애물을 제거하려 했던 반면, 버네이즈는 소비자들에게서 자유의지를 빼앗기 위해 심리학을 이용했다. 즉, 소비자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양식을 클라이언트가 미리 예측하고 또 조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이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선전국에서 일했던 버네이즈는 1923년 <여론의 구체화(Crystallizing Public Opinion)>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당시 PR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미미한 판매량으로 시작되었지만 궁극적으론 PR 연구의 고전이 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선전과 교육의 유일한 차이점은 실제로 관점일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것을 주창하는 것은 교육이고, 믿지 않는 것을 주창하는 것은 선전이라고 한다”며 선전의 가치를 열정적으로 주창했다. 그는 자신이 조작자(manipualtor)로 불리는 것도 개의치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바로 PR 전문가의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클라이언트의 사적인 이익과 사회의 공적인 이익을 조화시키는 것이 PR 전문가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많은 진보적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 직업은 수년 내에 서커스단의 곡예를 대리하는 하잘것없는 지위에서 세계사를 움직이는 중요한 위치로 발전하였다”고 주장했다.(Boorstin, 1991)

버네이즈는 1928년에 출간한 <선전(Propaganda)>에서는 “정치나 비즈니스, 혹은 사회적 관행이나 윤리적 사고방식 등 우리 일상생활 거의 대부분의 행동에서, 우리는 대중의 사고과정과 사회적 패턴을 잘 이해하고 있는 소수에 의해 지배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전체 1억 2000만 인구 중 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 소수는 버네이즈와 같은 PR 전문가들을 의미하는데, 그들은 “공중의 마음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종하며, 세계를 결합하고 이끄는 새로운 방식으로 모색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단체생활이 질서 있게 가능하는 데에 이러한 보이지 않는 통치자들이 얼마나 필요한지 보통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식인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즉, 선전은 생산적인 목적을 위해 싸울 수 있고,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현대적인 도구라는 점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문제는 선전이 늘 좋은 의도로만 쓰일 수는 없다는 데에 있었다. 1933년 나치의 선전 지휘자인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는 버네이즈의 책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네이즈는 권력을 장악하기 직전의 아돌프 히틀러로부터 PR 자문 요청을 받았으나 거절한 바 있었다.(Bernays, 2009) 그는 훗날(1965년) 자서전에서 자신의 책이 괴벨스의 서재에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썼다.

버네이즈는 무엇보다도 PR 분야에 ‘의사사건(pseudo-event)’을 적극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PR 전문가는 뉴스가치가 무엇인지를 알 뿐만 아니라 뉴스가 일어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이벤트의 창조자이다”라고 말하였다. 그가 꾸며낸 ‘의사사건’의 예를 들면 이렇다. 손님이 떨어지고 낡아빠진 어느 호텔 주인이 어떻게 하면 호텔을 살릴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한다. 그에게 내려진 처방은 ‘호텔 창설 3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이는 것이었다. 또 호텔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각계 저명인사들이 참여한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 결과 떠들썩한 언론보도에 의해 그 호텔이 지역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재평가되었으며 그 호텔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호텔로 인식되었다.

1920년대 초 여성들이 머리를 짧게 깎는 바람에 위기에 처하게 된 머리 그물망(hair net) 제조사인 베니다헤어네트(Venida Hair Net)를 위한 처방도 비슷했다. 버네이즈는 사회적 저명인사들로 하여금 긴 머리를 좋아한다는 발언을 이끌어냈고, 다음에 보건 전문가들로 하여금 공장이나 레스토랑에서 단정치 못한 긴 머리는 위생상 좋지 않다는 발언을 하게끔 만들었다. 그 결과 일부 주에서는 공장이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헤어네트를 착용해야 한다는 법을 통과시켰다.

버네이즈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들을 몇 가지 더 살펴보기로 하자. 1924년 재선을 노리는 캘빈 쿨리지 대통령의 후원자들이 버네이즈의 도움을 청했다. 쿨리지의 가장 큰 문제는 성격이 차갑고 내성적이어서 유권자들의 비호감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버네이즈는 쿨리지를 유권자들이 백악관 주인으로 앉히고 싶어 하는 서민적인 소박한 인물로 바꾸는 데에 캠페인의 목표를 두었다.

버네이즈의 치밀한 연출에 따라, 선거를 약 3주 앞둔 어느 날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공연이 끝난 무대가수 알 졸슨(Al Jolson) 등 40명의 공연단은 워싱턴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탔다. 백악관 입구에서 쿨리지 대통령과 영부인이 그들을 맞았다. 모두 차례대로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었고, 공식 만찬을 가졌다. 다음날 아침식사를 하고 난 뒤 대통령은 손님들을 백악관 잔디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졸슨은 “쿨리지로 계속 가자(Keep Coolidge)”라는 제목으로 대통령에게 세레나데를 불러주었다. 영부인과 브로드웨이 대표단이 후렴을 같이 불렀다. “쿨리지로 계속 가세! 쿨리지로 계속 가세! 4년도 두려움 없이 살아보세!”

다음 날인 10월 18일자 신문들은 앞다퉈 기사를 실었다. <뉴욕타임스>의 기사 제목은  “배우들, 쿨리지와 케이크를 함께 들다. 대통령, 거의 웃을 뻔하다”, <뉴욕리뷰>의 기사 제목은 “졸슨,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공식석상에서 웃게 하다”였다. <뉴욕월드>는 “워싱턴 사회 지도자들이 시도했다가 실패했고, 그간 2년 반 동안 의장으로 있었던 상원에서도 하지 못했던 일을 뉴욕 연기자들이 3분 만에 성공했다. 그들은 그가 이빨을 보이고, 입을 열어서, 웃게 만들었다”라고 썼다. 3주 뒤 쿨리지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대선이 있던 그해에 프록터앤갬블(Procter & Gamble)사의 아이보리(Ivory) 비누를 유행시킨 것도 버네이즈의 작품이다. 청결에 대한 무관심으로 아이들이 비누를 싫어한다는 게 아이보리 비누 제조업자의 고민이었다. 버네이즈는 아이보리 비누의 판매촉진을 위해 전국적인 ‘조각위원회’를 구성, 아이보리 비누로 조각을 하는 대회에 자금을 지원하였다. 그 결과 몇 년간 미국에서는 아이보리 비누 수백만 개를 조각으로 소비할 정도로 학생들 사이에 비누 조각이 대인기를 끌게 되었다. 중요한 건 그 당시 비누라면 질색을 하던 어린이들이 비누와 몹시 친근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비누 조각 콘테스트는 1961년까지 35년 이상 계속되었다.

1920년대 중반 미국은 주스, 토마토, 커피 등으로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는 추세로 급속히 돌아서고 있어서 베이컨 제조사인 비치너크패킹(Beechnut Packing)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버네이즈의 자문을 요청했다. 이에 버네이즈는 미국인들의 식습관을 바꾸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의사들을 설득해 넉넉한 아침식사가 건강에 좋다는 증언들을 끌어내면서 ‘베이컨과 달걀’을 강조했다. 베이컨 판매고가 급상승했다. 저자의 말마따나, “동맥경화를 부르는 이 베이컨과 달걀의 결합은 이리하여 영원히 미국인의 아침식사 테이블은 물론 미국 어휘사전에 나란히 붙어서 등장하게 됐다.”

1928년 아메리칸토바코(American Tobacco)사 사장인 조지 워싱턴 힐(George Washington Hill)은 자사의 주력 브랜드인 럭키스트라이크(Lucky Strike)의 판촉을 위해 “달콤한 것 대신 럭키를 찾으세요”라는 슬로건을 정해놓고 이의 실행을 버네이즈에게 의뢰했다. 버네이즈는 자신의 주특기인 ‘전문가 이용’ 수법을 썼다. 전문가들로 하여금 마른 몸매를 치켜세우는 말을 하게끔 했고, 특히 영국 보건의료계연합의 전 의장인 조지 뷰캔(Dr. George F. Buchan)을 포섭해 “식사를 바르게 끝내는 방법은 과일, 커피 그리고 담배 한 개비다.” “담배는 구강 내를 살균하는 효과를 가지며 신경을 진정시킨다” 등의 발언을 하게 만들었다.

호텔에는 디저트 목록에 담배를 추가하도록 촉구했다. 주부들을 앞세워 선반 제조업자들에게 담배를 넣을 특수한 공간도 마련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이에 코코아, 땅콩버터, 사탕 제조업자들이 분노하자, 버네이즈는 오히려 이 논쟁을 홍보에 역이용하였다. 그해 럭키는 다른 모든 담배 브랜드를 합친 것보다 많은 판매 증가량을 보였다.

1929년 초 힐은 버네이즈에게 “어떻게 하면 여자들이 길거리에서도 담배를 피우게 할 수 있을까?”라는 숙제를 던졌다. 그렇게만 되면 여성의 담배 소비량이 두 배로 늘 수 있다는 게 아메리칸토바코사의 생각이었다. 버네이즈는 삼촌 프로이트의 제자인 브릴(Brill) 박사에게 담배를 여성해방과 연결시키라고 조언했다. 즉, 담배를 여성해방이라고 하는 ‘자유의 횃불’로 만들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버네이즈는 ‘자유의 횃불’을 밝히는 퍼레이드를 구상했다. 퍼레이드에 나설 사교계의 젊은 여성들을 섭외했고, 퍼레이드를 알리는 광고를 여러 신문에 게재했다. 1929년 3월 31일 부활절에 미국 뉴욕시 맨해튼 5번가에서는 아주 이색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10명의 젊은 여성이 담배를 피우며 거리를 활보했던 것이다. 늘 진기한 사건에 굶주려 있는 신문들은 이 행진을 보도하기 위해 1면을 아낌없이 할애했다. 버네이즈는 이어 보스턴, 디트로이트, 휠링, 샌프란시스코 등에서도 ‘자유의 횃불’ 퍼레이드를 연출했다.

이에 여성클럽들은 격분했지만, 그러나 이게 또 뉴스가 됨으로써 화제는 더욱 만발했다. 버네이즈는 배후에 아메리칸토바코사가 있다는 걸 철저하게 숨김으로써, 이 퍼레이드를 문화적 사건으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이 사건 이후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 반발은 점차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공공장소에서 여성 흡연에 대한 태도는 이 이벤트 이전부터 변하기 시작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 퍼레이드가 그런 흐름을 가속화시킨 건 분명했다.

버네이즈는 1960년대 들어 “1928년에 알았더라면 담배 회사의 의뢰를 거절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담배의 위험성을 홍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Bernays, 2009) 그러나 너무도 때늦은 전환이었다. 1920년대 말 이제 영리하게 생긴 여성이 담배를 손에 들고 있는 사진이 광고판에 대담하게 등장했다. 일부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에도 불구하고 어떤 잡지는 “이제 여성도 남편이나 형제들과 함께 맞담배를 즐길 수 있다”는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Allen, 2006)

▲ 에드워드 버네이즈     © 커뮤니케이션북스
1920년대 말 짐을 가볍게 하고 다니는 게 유행이 돼 큰 여행가방이 안 팔리자 여행가방 제조업자들은 버네이즈의 도움을 청했다. 그는 언론매체들로 하여금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여행할 때 옷을 충분히 가지고 다닌다는 기준을 세우도록 했다. 또 그는 건축가들로 하여금 더 많은 수납공간을 만들도록 하고, 대학들에는 학생들이 캠퍼스에 가방을 많이 가져올 필요가 있다고 고지하도록 했다. 유명 가수 겸 코미디언인 에디 캔터(Eddie Cantor)로 하여금 그가 콘서트 투어를 떠나면서 커다란 트렁크에 짐을 꾸리는 사진을 찍어 널리 배포했다.

1929년 10월 21일 토머스 에디슨의 전구 발명 50주년 기념식인 ‘빛의 50주년 축제(Light‘s Golden Jubilee)’도 버네이즈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힌다. 이 행사는 허버트 후버 대통령을 포함한 각계 유명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적 축제가 되었다. 버네이즈는 정부를 설득해 에디슨의 전구를 기념하는 2센트짜리 특별 우표를 발간케 했으며, 42개주에서 미래의 에디슨이 될 소년들을 에디슨의 뉴저지 연구소에 초청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 축제는 제너럴일렉트릭과 미국의 전력을 독점하기 위해 제너럴일렉트릭이 내세운 비밀 전위부대인 미국전력협회(National Electric Light Association)의 이익을 대변하는 선전공세였다.(Bernays, 2009)

버네이즈는 1930년엔 주요 출판사들을 위해 “책장이 있는 곳에 책이 있게 될 것이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건축가, 실내 장식업자들을 설득해 장서를 보관하기 위한 선반을 설치토록 한 것이다. 이후 많은 집에 붙박이 책 선반이 생겨나게 되었다. 책을 읽건 안 읽건 그 선반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책을 사야 할 게 아닌가.

1918~1928년까지의 10년 사이에 미국의 담배 생산량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담배회사들은 아직도 배가 고팠다. 1929년 여성 흡연은 1923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났지만, 그건 전체 흡연 인구의 12%에 불과했다. 그래서 담배회사들은 여성 흡연 인구를 늘리기 위해 발버둥 쳤다. 1934년엔 버네이즈가 주도한 또 다른 럭키스트라이크 캠페인이 벌어졌다.

설문조사 결과 럭키스트라이크의 붉은 황소 눈이 박힌 녹색 담뱃갑 색깔이 여성들이 좋아하는 옷 색깔과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럭키를 피우지 않을 것이라는 게 밝혀졌다. 실제로 당시 초록색에 대한 거부감은 매우 컸다. 이미 엄청난 광고비를 쏟아 넣었기 때문에 색을 다시 바꿀 수도 없었다. 버네이즈가 내놓은 해결책은 초록색을 유행시키라는 것이었다. 그는 초록색을 유행시키기 위해 럭키스트라이크 담배회사의 PR 비용을 익명의 독지가가 내놓은 자선기금으로 위장하여 그 돈을 각종 자선무도회에 기부하였다. 단 조건은 무도회의 모든 색상을 초록색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패션업계와 액세서리업계도 공략하였고, 심리학자, 미술학자 등을 동원한 녹색에 관한 강연회도 개최했다. 녹색 연구소 비슷한 걸 만들어 관련 보도자료뿐만 아니라 자문에도 응하는 방식으로 언론매체에 녹색 관련 기사가 흘러넘치게끔 만들었다.

버네이즈는 1935년엔 맥주업자들을 위해 맥주를 ‘절제의 술(the beverage of moderation)’로 인식시키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맥주는 과음을 막기 위한 예방주사 같은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1933년에 금주법은 폐지되었지만 아직 금주 분위기가 강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농부들이 재배하는 보리, 옥수수, 쌀 등의 주요 구매자가 맥주업자들이라는 것을 강조했고, 노동자들에게는 맥주야말로 그들의 주머니 사정에 맞는 유일한 알코올음료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중세 수도승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패트릭 헨리 등과 같은 애국자들이 맥주를 즐겨 마셨다는 걸 강조하는 종교적·애국적인 홍보 수법을 썼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버네이즈는 제품이나 서비스 대신에 행동양식을 판매하는 방법을 썼다. 그는 이런 방식을 ‘간접적 수단의 매력(appeals of indirection)’으로 불렀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이런 방법을 긍정한 건 아니었다. 1934년 대법관 펠릭스 프랑크푸르터(Felix Frankfurter)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PR을 개척한 아이비 리와 버네이즈를 “어리석음과 광신, 그리고 이기심”을 이용해 “직업적으로 대중의 마음에 해악을 끼치는 독”이라고 불렀다.

버네이즈는 자신에 대한 과대 홍보로 욕을 먹기도 했지만, 그런 과대 홍보는 자신의 PR관과는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는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매스커뮤니케이션 시대에 겸손은 개인적으로는 미덕이지만 공적으로는 잘못이다”라고 주장했다. 시드니 블루멘탈(Sidney Blumenthal)은 버네이즈에게 자기 선전을 너무 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물고기에게 헤엄치는 것을 나쁘다고 하는 말과 같은 것”이라고 썼다.

버네이즈를 인터뷰했던 저널리즘 교수 마빈 올라스키(Marvin N. Olasky)에 따르면, “버네이즈의 기저에 깔린 믿음은 그가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인터뷰 중에, ‘신이 없는 세상’이 급속하게 사회적 혼돈상태로 전락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는 PR 전문가들이 사회적 조작을 함으로써, 세세한 부분까지 사회적 통제를 할 수 있고, 재난을 방지할 수 있는, 인간이 만든 신을 창조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보이지 않게 뒤에서 조종하는 존재가 개인적인 이득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원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을 믿건 신을 믿지 않건, 버네이즈의 PR관은 오늘날 미국, 아니 전 세계 여론정치의 기본 문법이 되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버네이즈에 대한 프랑크푸르터의 분노는 역설적으로 그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 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매우 천박한 것일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이게 바로 버네이즈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리라. 그러나 바로 여기서 조심해야 한다. 여론의 천박한 면을 지적하면 곧장 날아오는 말이 있다. ‘엘리트주의자’라는 딱지다. 역사상 이름 높은 엘리트주의자와 귀족주의자들이 다 여론을 경멸했으니, 전혀 근거가 없는 딱지는 아니다. 그러나 그게 바로 함정이다.

이와 관련,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주변 사람들에게 권했다는 책 가운데 하나가 눈길을 끈다.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Richard H. Thaler)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Cass R. Sunstein)이 쓴 <넛지(Nudge):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안진환 옮김, 리더스북, 2009)이다. ‘넛지’의 이데올로기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tarian paternalism)인데, 이는 좌우도 우도 아니고 초당파적이라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넛지’가 새로운 건 아니다. 그 원조는 버네이즈가 역설한 ‘간접적 수단의 매력’이라는 개념이다. ‘넛지’는 공익을 추구하는 반면, 버네이즈의 ‘간접적 수단의 매력’은 대기업을 위해 봉사한다는 차이는 있지만, 대중을 설득하기 위한 방법론이라는 본질에선 같다.

오늘날 ‘계몽의 종언’이 외쳐지고 있는데, 그건 과연 진실일까? 누구에게든 어떤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말하면 “감히 누굴 가르치는 거냐?”고 반발하지만, 교묘하게 오락이나 놀이의 형식을 취해 주입시키면 열광적으로 받아들이곤 하는 게 현실이다. 즉, 문제는 계몽의 포장술이다. 그런데 포장엔 돈이 많이 든다. 버네이즈의 이벤트 연출 묘기는 모두 다 대기업의 금전적 물량공세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다. 금력과 권력을 가진 쪽의 포장술은 갈수록 세련돼가는 반면, 그걸 갖지 못한 일부 개혁·진보주의자들은 계몽에 들러붙은 엘리트주의 딱지를 떼면서 대중의 지지와 인기를 얻어내기 위해 독설과 풍자 위주로 카타르시스 효과만 주는 담론에 집착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우리 시대의 계몽과 설득이 처해 있는 딜레마다.

(참고문헌) F. L. 알렌(Frederick Lewis Allen), 박진빈 옮김, <원더풀 아메리카>, 앨피, 2006; 에드워드 버네이즈(Edward Louis Bernays), 강미경 옮김, <프로파간다: 대중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 공존, 2009; 다니엘 J. 부어스틴(Daniel J. Boorstin), 이보형 외 옮김, <미국사의 숨은 이야기>, 범양사출판부, 1991.
 
* 본문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09년 10월 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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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9/21 [16:5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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