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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바람'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제 '색깔 장난'의 시대는 갔다
 
강준만   기사입력  2002/04/23 [15:10]
'악성(惡性) 발표 저널리즘'

{IMAGE1_LEFT}색깔 공세! '노무현 바람'이 거세게 일면서 드디어 예상되었던 일이 본격적으로 그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대한민국 선거판에서 그게 빠진 적이 있었던가? 이번엔 어떨까? 그러한 색깔 공세가 과연 먹힐까? 노무현에 대한 색깔 공세는 본선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질문에 대해 그 누구도 쉽게 답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이 갖고 있다는 '보수성'의 정체를 규명함으로써 앞으로 벌어질 일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 귀중한 안목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우선 노무현에 대한 색깔 공세는 '가짜'라는 점이 지적되어야 하겠다. 막연한 느낌과 이미지 위주의 공세라는 뜻이다. 수구신문들의 색깔 공세가 노무현에 대해 색깔 공세를 시도하는 사람들의 말을 대서특필해 부풀리는 '악성(惡性) 발표 저널리즘'의 형식을 띄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알맹이는 없이 그저 기사 제목으로 한몫 보자는 식의 시도는 올해 내내 계속될 것이 틀림없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조선일보』 2002년 3월 25일자 4면에 실린 머릿기사 제목이 재미있다. <이인제 '광기(狂氣)'운동꾼은 나라 망쳐 '노무현'민주주의 원칙 깬적 없다'>라는 제목이 바로 그것이다. 기사 내용의 일부를 여기에 옮겨보자. 다음과 같다.

"23일 충남, 24일 강원 등 3주째를 맞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는 '광기(狂氣)', '운동권', '돌풍' 등의 용어를 동원, 노무현 후보를 극단주의로 몰아붙이며 맹공을 가했다. (중략) 이 후보는 이에 앞서 23일 충남 연설에서 '독일의 나치 정권, 아르헨티나 페론 정권 등 광기로 해서 망한 나라가 많다. 1주일에 대통령이 3번이나 바뀌기도 했으며, 국민은 거리를 헤매고 있다'며 '지금 특정 후보가 광기와 분노의 불꽃 위에 올라 있다ꡑ고 말했다. 이 후보는 또 '민주당은 합리적 진보 세력과 건강한 보수 세력이 결집된 중도개혁 정당'이라며 '결코 극단적인 운동꾼들이 안방을 차지할 수 있는 정당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운동권은 사회 변혁을 선도하는 세력으로 소중한 가치를 갖지만, 민주당은 4500만 국민 전체를 견인해야 하며, 운동권 출신들이 구름처럼 다니면서 경선의 판도를 좌우하는 일이 없도록 판단해 달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노무현의 반론도 같은 비중으로 소개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사 제목을 통해 『조선일보』의 속내를 드러내고자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혹 오해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조선일보』는 그게 오해가 아니라고 항변하겠다는 듯 3월 28일자 4면 머릿기사 제목도 <이측 '급진좌파는 경제에 독약' 노측 '음모론 대신 색깔론이냐'>로 뽑았다. 3월 29일자 1면과 4면에 실린 다음과 같은 기사 제목들도 『조선일보』의 속내를 짐작케 하기에 충분하다.

<이인제 '노, 재벌주식 노동자 분배 주장' 노무현 '사상검증하려는 매카시적 방법'>, <이 '노, 토지도 매수 분배하자 했었다' 노 '어떻든 지금 생각과는 같지 않다'>, <이 '노, 노동자 주인되는 세상 선동' 노 '억압받는 시기에 상징적 발언'>.

'노무현 죽이기' 음모론?

색깔론에만 만족할 『조선일보』가 아니다. '음모론'을 키우는 데에도 아주 열심이다. 주필에서 편집인으로 자리를 바꾼 김대중은 지면만으론 성이 안 찼던 건지 강연회까지 이용해 '음모론' 퍼뜨리기에 열심이다. 그는 3월 19일 문민정부 시절 장ㆍ차관들의 모임이라는 '마포포럼'이 주관한 조찬모임에 참석, '언론이 본 정치 전망'을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 경선 후보 가운데 노무현 후보를 도와주는 것 같다'고 언급했는가 하면 '조만간 대통령이 부산행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또 '여론조사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말과 함께 '최근 방송사들의 여론조사는 김대중 대통령의 노 후보 밀어주기와 연관이 있다'는 요지로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1)

김대중의 악의(惡意)일까? 나는 꼭 그렇진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 정치판 논리에 찌들은 그의 사고(思考) 틀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만큼 스트레스로 터질 것 같은 머리를 돌보기 위해 그런 음모론을 애써 자신에게 주입시킨 결과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음모론'을 말하자면, 『조선일보』를 위시한 수구기득권 세력의 '노무현 죽이기' 음모가 훨씬 더 설득력 있는 게 아닐까? SBS-TV가 여론조사를 두 차례나 해놓고서도 두 번 모두 노무현이 이회창에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자, 아예 방송을 하지 않은 것도 영 심상치 않은 일이다. SBS는 여론조사를 두 번이 아니라 한 번 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하여튼 보도하지 않은 건 사실인 만큼 이건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아직은 SBS를 수구기득권 세력으로 보는 성급한 판단은 유보해야 할 것이나, 도대체 언제부터 SBS가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그렇게까지 '신중한' 태도를 취한 적이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동아일보』의 활약도 만만치 않다. 다른 신문들과는 달리, 3월 28일자 1면 머릿기사 제목을 <정계개편론 이념갈등 심각>으로 뽑은 것도 그렇거니와 <정계개편과 '좌경화'>라는 제목의 사설도 기가 막히다. 다음과 같은 주장이 타당한가?

'이(인제) 후보는 노 후보를 겨냥해 "민주당은 서민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지 급진 개혁을 추진하는 정당은 아니다" 고 말했다. 노 후보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자신의 구상을 좀더 분명히 밝혀야 한다.'

아니 언제 노무현이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을 끌어 안고 정계개편을 하자고 그랬나? 기껏해야 한나라당에 들어가 있는 변질된 개혁 세력을 세탁해서 다시 개혁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취지의 말을 했을 뿐인데, 도대체 뭘 더 밝히라는 말인가? 오히려 이인제에게 좀더 구체적인 내용의 색깔론을 제기하라고 주문하는 게 타당한 게 아닐까?

그러나 『동아일보』에겐 그럴 뜻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논설실장 최규철이 3월 28일자 6면에 쓴 칼럼에서 '이(인제) 후보측의 '좌경화 우려' 지적은 의미심장하다'고 평한 것도 이만저만 의미심장한 게 아니다. 『동아일보』가 하루빨리 제 정신 차리기를 바랄 뿐이다.

기자들까지 왜 이러나?

노무현으로 인해 민주당이 좌경화될 우려가 있다? 노무현은 시장을 부정했으며 '시장을 부정하는 것은 공산주의 아니냐'고? 코미디 하자는 건가?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건 그걸 대서특필해대는 신문이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 또는 알맹이는 전혀 없으니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이인제가 문제삼은 노무현의 1988년 국회 대정부 질문과 1989년 현대중공업 파업 현장에서의 발언이 중요한 근거가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아닌게아니라 이인제의 그런 발언 이후 수구신문들은 신이 나서 그걸 대서특필해대고 있다. 이젠 기자들까지 나서서 칼럼의 형식으로 노무현을 공격해대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그런 반론을 하려는 사람은 1988년 및 1989년의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처신했고 무슨 발언을 했는지 그에 대해 먼저 밝혀야 할 것이다. 십수 년 전 비상한 상황에서 나온 상징적 발언을 맥락을 제거한 채 단세포적으로 물고 늘어지면서 '오늘'까지 규정해 보겠다는 건 터무니없는 난센스다.

이인제보다는 이성에 더 충실할 기자들의 발언을 검토해보는 것이 좋겠다. 먼저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박신홍이 4월 1일자 3면에 쓴 <취재일기: 노무현의 이말 저말>이라는 칼럼을 살펴보자. 박신홍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노 후보는 지난달 28일 민주당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이 후보가 노 후보의 과거 발언을 들춰내 공세를 가하자 '당시 발언과 지금 생각은 같지 않다'고 답변했다. 1989년 현대중공업 파업 현장에서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 운운한 대목에 대해 그는 '장(場)의 논리라는 게 있다'고 했다.

그는 다음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 '재벌 주식을 정부가 매수해 노동자에게 분배하자(1988년 7월 국회 대정부 질문)'는 발언에 대해 사회자가 추궁하자 "당시 권력과 재벌에 대한'비유적 야유 발언'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권력과 재벌을 비꼰 발언이었다는 뜻일 것이다.

'장의 논리'라거나 '비유적 야유' 등의 용어는 언뜻 들으면 그럴 듯하지만 사실 별 내용이 아니다. 시간과 장소ㆍ청중에 따라 말이 과장될 수 있는 것 아니냐, 또 못마땅해서 비꼴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된 노 후보의 과거 발언 내용은 그런 식으로 넘어가기에는 심각한 것이다. 재벌과 노동자 문제에 대한 노 후보의 기본 인식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또 노 후보는 그 동안 다른 후보를 '정통성ㆍ정체성이 없고 원칙과 지조를 지키지 않는 인물'이라며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해 왔다. 그처럼 엄격한 '원칙'을 앞세워 온 그가 스스로에게는 엄격하지 않은 게 아닌지 묻고 싶다.

그러니까 한나라당이 '과거 주장을 지금 와서 부정한다면 현재 주장도 미래에 바꿀 수 있다는 말이냐'며 노 후보를 비난할 빌미를 주게 된 것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도 '10여 년 전 시대 상황을 감안하면 노 후보의 발언 취지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럴수록 떳떳이 대응했어야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다른 의원은 '노 후보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면서 '변명과 합리화에 치우치다 보면 앞으로 본격 검증이 이뤄질 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과거의 발언이 잘못될 수도 있고 정책을 바꿀 수도 있다.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변해 본인의 생각도 달라졌다면 그 부분을 솔직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노풍'을 만들어낸 주역은 기존 정치에 식상한 유권자들이다. 노 후보가 기존 정치인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기 바란다.

<노무현의 이말 저말>에 대한 반론

위 주장은 언뜻 들으면 그럴 듯하지만 사실 별 내용이 아니다. 노무현에게 이인제의 색깔 공격 내용을 수긍하든지 아니면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라는 뜻일 것이다. 도대체 노무현이 뭐라고 말해야 '솔직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될까? 기자가 인용한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도대체 어떻게 해야 노무현이 '떳떳이 대응'하는 게 될까?

1980년대 말과 지금의 한국 사회는 엄청나게 다르다. 공권력의 비호를 받은 재벌들의 노동자 탄압은 극에 이르렀고 언론은 재벌의 촌지를 받고 재벌이 제공해준 호텔에 머무르면서 진실을 전달해주지 않았다. 계속 그런 식으로 노동자들을 코너에 밀어 붙였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는 노무현이야말로 진정 '보수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당시 한국 사회의 파탄을 막기 위해 '노동자 달래기'에 나선 것이었다.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이란 건 정부와 재벌과 언론이 짜고서 '노동자 죽이기'를 하는 것에 대응하는 발언이었다. 노동자가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누리면서 사는 세상을 말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의 극심한 '노동자 죽이기'에 참여했거나 그걸 방관했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이라는 발언만을 물고 늘어지면서 '좌경'이니 '사회주의' 운운하는 게 과연 온당한가?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의 노사 관계는 매우 불안정하다. 나는 무조건 '사'가 잘못됐고 '노'가 무조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노'쪽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노조의 조직 이기주의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앞으로 계속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건 바로 불안정한 노사 관계일 것이다. 나는 그걸 믿어 의심치 않기에 일방적으로 재벌 편을 드는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이 나라가 엄청난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믿는다. 양쪽의 이해를 조정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재벌 주식을 정부가 매수해 노동자에게 분배하자'는 발언도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볼 일이다. 기업이 누구의 것인가? 노사 모두의 것 아닌가? 그런데 한국 기업 문화에선 기업은 '사'의 것이고 '노'는 품을 팔고 있을 뿐이라는 의식이 매우 강하다. 노동자들에게 '주인 의식'이 없다는 말이다. 한국 노사 관계의 가장 큰 문제도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이렇게 된 데에는 재벌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 종업원 주주제를 포함하여 가능한 한 노동자가 회사에 대해 주인 의식을 갖고 파업 없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제도와 풍토를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 문제 의식을 노무현이 그렇게 표현했다고 해서 그게 무어 그리 큰 문제가 된단 말인가?

기자가 노무현의 "당시 권력과 재벌에 대한'비유적 야유 발언'이었을 뿐"이라는 답을 비판하려면 일단 노무현의 문제 의식에 지지를 보낸 다음에 '왜 그 좋은 뜻을 더 당당하게 역설하지 못하느냐?'고 따져 묻는 게 온당하지 않을까? 재벌과 노동자 문제에 대한 노무현의 기본 인식이 건강하다는 걸 칭찬한 후에 그 건강성을 더 밀고 가라고 말하는 게 온당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노무현의 과거 발언은 노무현이 그 동안 다른 후보를 '정통성ㆍ정체성이 없고 원칙과 지조를 지키지 않는 인물'이라며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해 온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나는 기자가 그걸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달라진 게 없는 반면, 1980년대 말과 오늘의 노사 문제 성격은 크게 달라졌는데, 그걸 어찌 그런 식으로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노무현의 말>에 대한 반론

『동아일보』 정치부 차장 이동관이 4월 1일자 A7면에 쓴 <노무현의 말>이라는 칼럼도 앞서 거론한 칼럼처럼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중복을 피하기 위해 이 칼럼의 앞부분만을 인용한 뒤 논평에 임하도록 하겠다. 이동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랑 전쟁을 하자는 거냐."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노무현 후보는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이던 2000년 12월 한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DJ의 총재직 사퇴 결단'을 얘기했다가 여권 내에서 물의가 빚어지자 이 내용을 빼줄 것을 요구했고 거절당하자 내뱉은 말이다. '흠집내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실제 노 후보는 아직도 많은 정치부 기자에게 열정과 진솔함의 이미지와 함께 '튀는 언행'으로 기억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가 구사하는 말에는 과격하다 싶은 느낌을 주는 단어들이 심심찮게 돌출한다. 최근 그의 언론관을 문제삼을 때 단골로 등장하는 '언론과의 전쟁'이란 표현도 한 예다."

나 역시 이동관이 노무현에 대한 '흠집내기'를 위해 이런 말을 한 건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이동관이 매우 불공정하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동관은 다음과 같은 발언이 누구의 것인지 잘 알 것이다.

'너희들 씨를 말려버리겠어! 너희 창자를 뽑아버릴 거야.'

이 발언은 지난 1997년 대선 당시 어느 후보가 정치부 기자들과의 저녁 회식 자리에서 한 말이다. 결코 사적 자리라고 말하긴 어려운 자리에서 나온 발언인데도 어느 신문도 이 발언을 보도하지 않았다. 그 후 이동관처럼 과거의 발언을 거론하는 식의 형식으로도 이 발언을 문제삼는 정치부 기자는 없었다. 나는 이에 대해 이동관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반면 이동관은 자신이 직접 들은 것도 아닌, 다른 기자의 말을 인용하여, 그것도 단둘이 사적으로 나눈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적어도 결과적으론 노무현에 대한 '흠집내기'를 하고 있다. 나는 이게 과연 공정하다고 생각하는지 이동관에게 묻고 싶다.

나는 위의 '씨말리기론', '창자론'이 누구의 발언인지 밝히지 않았다. 누구라고 말 안 해도 다 알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밝히지 않은 게 아니다. 정치인의 기자들과의 회식 자리는 공적 성격도 있긴 하지만 사적 성격도 있는 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나온 발언을 실명으로 인용하는 것이 온당한가 하는 문제 의식 때문이다. 나는 이동관이 '노무현의 말'을 문제삼기에 앞서 자신이 과연 기자로서 공정하고 윤리적인 칼럼을 썼다고 자부할 수 있는지 그 점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우 - 좌' 구도의 악용

앞서 했던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오늘'의 상황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 그'도 따져볼 문제다. 예컨대, 『조선일보』가 3월 22일자 4면 머릿기사 제목으로 올린 국가보안법 문제를 살펴보자. 국가보안법의 개정 또는 폐지가 좌경적이거나 과격한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건 유엔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까지 나서서 개폐해야 한다고 주문했던 것이다. 그간 여러 차례 이루어진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절대 다수가 국가보안법의 개정 또는 폐지에 찬성했다는 걸 상기해야 할 것이다.

언론개혁 문제도 그렇다. 이인제는 '언론과의 전쟁 선포는 과격 성향'이라고 주장했지만, 그건 수사(修辭)를 문제삼는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인제 자신의 국민신당이 지난 대선시 『조선일보』의 왜곡 보도에 분개하여 그 신문사 앞에서 과격한 항의 시위를 벌였던 걸 상기해야 할 것이다. 나는 당시 그 시위에 박수를 보냈으며 앞으로 그와 유사한 시위에도 또 박수를 보낼 것이다. 내가 과격한가? 아니면 언론으로서의 최소한의 원칙을 유린한 『조선일보』가 과격한가?

노무현에 대해 색깔 공세를 하려면 민주노동당처럼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노무현은 '보수'다. 한국의 현 상황은 '진보-보수'를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기본이 잘못 돼 있다. 지역주의 청산하고 부정부패 척결하고 돈 정치 퇴치하자는 주장을 '진보-보수'의 기준으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지역주의 청산하고 부정부패 척결하고 돈 정치 퇴치하자는 게 '진보'라면 노무현은 진보임에 틀림없겠지만, 그건 그렇게 분류하기보다는 '개혁적'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의 '개혁 성향'을 공격하려면 자신은 '반(反)개혁'이라는 걸 전제로 하는 셈인데 굳이 그렇게 자신의 반개혁적 성향을 과시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또 '귀족적' 성향과 관행을 유지하고 있는 정치인이 노무현의 '서민적' 풍모를 비판하려면 자신이 '귀족적'임을 전제해야 할 것이나, 이 경우에도 '귀족-서민'의 구도를 '우-좌'의 구도로 바꿔치기 하려는 시도를 벌일 것이 분명하다.
한국에서 '우-좌' 구도의 악용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권모술수였다. 해방정국의 친일파들과 군사독재 정권 세력이 그걸 써먹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제 그 권모술수의 효용이 다 해 가고 있다는 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인의 '두 얼굴'

한국인은 '보수적'가? 바보 같은 질문임에 틀림없다. 누구나 다 한국인은 보수적이라고 답할 것이다. 나 역시 그런 평가에 일면 동의하면서도 나는 그 이중성을 잘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해왔다. 한국인의 보수성은 강요된 보수성이었다. '좌'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냄새를 조금이라도 풍겼다간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보수적이지 않으면 어찌 살란 말인가.

그런데 이젠 세상이 크게 달라졌다. 사람들은 김대중 정권이 한국 사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력을 평가하는 데에 매우 인색한 경향이 있는데, 그러지 말고 잘 보시기 바란다. 김 정권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표출하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들 역시 김 정권이 '용공'이니 '경'이니 하는 색깔 공세에 시달려왔다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이는 한국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그게 의미하는 게 과연 무엇일까?

어디 그뿐인가. '용공', '좌경' 정권이라면 진보정당이나 노동자들로부터는 조금이라도 지지를 얻어야 할 터인데 어찌된 게 그들의 정권 비판이 가장 심했다. 사람들은 이것 역시 똑똑히 목격했다. 이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색깔 공세라는 것은 일종의 허깨비 싸움이며 정략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온몸으로 깨달은 것이다.

지금 한국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의 '두 얼굴'에 주목해야 한다. '낮의 얼굴'과 '밤의 얼굴'이 다르다. 밤의 술좌석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를 들어보라. 전국적으로 수많은 '쿠데타'가 벌어지고 있다. 썩어빠진 정치, 아니 국민 위에 군림하는 걸 본분으로 삼고 있는 듯 보이는 특권 엘리트 계층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 특권 엘리트 계층이 지배하거나 그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직장으로 나가야 한다. 그들은 넥타이 곱게 매고 어제 밤 풀어 헤쳐진 긴장을 다시 찾아 삶의 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그들의 삶의 전장은 그들이 '보수적'일 것을 요구한다. 자신이 어젯밤 개탄해마지 않은 총체적 부패 구조에 영합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꿈은 있다. 먹고 살기 위해 굴종하지 않을 수 없는 기존의 '게임의 법칙을 누군가 끝장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낮의 여론'에만 부응하기에 바쁘다. 그들은 한국인들은 보수적이라는 미신을 버리지 못한 채 서로 치열한 '보수화 경쟁'을 벌여왔다.

'밤의 여론'이 '낮의 여론'으로 바뀌는 건 쉽지 않다. 생활 전선의 여러 장치들이 그걸 방해한다. 그러나 '숨통'이 트이면 그러한 전환은 순식간에 이루어질 수 있다. 패배주의가 형성되는 데엔 오랜 세월이 필요하지만, 그게 깨지는 데엔 순식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영남 출신으로 오랜 세월 정치인 김대중과 더불어 민주화투쟁을 해온 김태랑이 최근에 자서전을 냈다. 나는 그 책에서 김태랑이 김대중의 정치 활동이 금지되었던 1970년대 후반에 잡지 광고 영업을 하면서 겪은 일에 대해 말하는 것에 주목했다. 나는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걸 읽으면서 한국인의 '보수성'은 강요된 것이기 때문에 출구만 있으면 언제든 쉽게 부서질 수 있는 것이라는 평소 소신을 재확인했다.

"나는 광고를 하면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병행했다. 하나는 순수한 의미의 광고맨으로서의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광고 활동을 정치 활동과 연결시키는 일이었다. 대기업의 기획실과 홍보실에 근무하는 젊은 사원들의 생각은 그 시대 한국 지식인들의 고뇌와 갈등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았다. 재벌기업 사원이라는 '선택받은 자의 자부심'과 그 같은 지위를 계속 누릴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정을 바라는 마음과 함께 머릿속으로는 독재정치를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이성의 소리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데서 오는 갈등과 이중성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업무상의 대화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 정치적 현실의 광장으로 끌어내기만 하면 금방 '분노하고 절망하는 지식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는 어렵지 않게 그들을 선생의 지지자로 만들 수가 있었다. 정치적인 생각이 일치하여 동지적인 감정이 싹트면 어렵게 추진되던 광고 결재도 의외로 쉽게 이루어지는 수가 많았다. 이처럼 내 활동의 목표는 길게는 민주화에 있었고, 짧게는 광고 수주에 있었다. 대부분 그 두 가지 목표는 병행되었다."

물론 지금은 군사독재 치하가 아니다. 일반 시민들에게 '양심의 가책' 비슷한 게 있을 리 없다. 그러나 기존 체제의 포로로 잡혀 있기 때문에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건 말건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곤 있지만 '한국 정치, 이대론 안 된다'는 문제 의식만큼은 확실하게 갖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론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누군가가 한국 정치의 기존 틀과 '게임의 법칙'을 바꾸자는 비전을 제시하고 그 가능성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보여줄 때에 대중은 그 굳은 '보수성'의 껍질에서 얼마든지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신민(臣民)이 되기를 원하는가?

이른바 '노무현 바람'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 '바람'을 가리켜 '광기(狂氣)'니 '운동꾼 행태'니 하고 폄하하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한국의 억압된 민주주의에 이제 비로소 트일 조짐을 보이는 숨통을 틀어 막겠다는 시대착오적인 망상이 아니고 무엇이랴.

{IMAGE2_RIGHT}구시대의 패러다임(틀)으로는 '노사모'의 행태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활동에 대해 무슨 '음모론'까지 제기된 게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건 그렇게 볼 일이 아니다. 그간 정치의 졸(卒)로 기능해 온 국민이 이제 더 이상 졸(卒) 노릇은 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직 그런 패러다임 전환의 조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눈길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한 늘 뒤처질 수밖에 없다. 구태를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노력과 시도에 '급진', '과격', '파괴'의 딱지를 붙이고자 하는 시도는 이제 더 이상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제 싸움은 정치권을 벗어났다. 싸움은 국민 각자의 마음 속으로 이동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 국민 모두를 찍어 눌러왔던 살벌한 세상에 대한 공포감의 흔적과 새로운 희망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이야말로 '노무현 바람'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이제 이 물음도 다시 던져져야 할 것이다. 일부 깨인 국민들조차도 바람직한 리더십의 모델을 여전히 국민은 졸(卒)로 기능하는 가운데 지도자가 모든 걸 알아서 끌고 가는 방식에서 찾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수동적인 자세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전제되지 않는 변화란 있을 수 없거니와 그런 변화가 시도된다 해도 그건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게 김대중 정권이 우리에게 준 가장 귀중한 교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모두 더불어 같이 가는 세상을 열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갖고 있는 피동적인 신민(臣民)의 자세에서 탈피하여 좀더 나은 세상을 열기 위한 주체로 우뚝 서야 할 것이다.

'노풍 막아선 다섯 가지 '바람벽'

『시사저널』을 읽다가 좋은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시사저널』 2002년 4월 4일자에 실린 <노풍 막아선 다섯 가지 '바람벽'>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바로 그것이다. 요약ㆍ정리가 아주 잘돼 있어, 이번엔 이런 세간의 시각에 대해 답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해보자.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인제 캠프에서 나온 노무현 고문에 대한 첫 비난은 '서민을 가장한 귀족'이라는 것이었다. 이어 요트가 취미였다, 재산이 많다, 고급 승용차를 탄다, 여자 문제가 있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이 중 호화 요트 논란과 부동산 투기 의혹은 이미 10여 년 전 『주간조선』이 보도해 문제가 된 사항이다. 당시 노 고문은 법정 소송까지 불사한 끝에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런데도 이 고문 쪽이 이를 다시 거론한 이유는 단 하나. 노 고문이 바로 '서민 후보'라는 이미지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과 자질에 대한 검증이 별로 없었다는 점도 그가 넘어서야 할 부분이다. 그의 정책은 아직 추상적이다. 새로운 정책 비전을 제시한 것도 별로 없다. 여권의 한 선거 전문가는 '국민통합이나 개혁이라는 구호만으로 대선을 치르기는 어렵다. 뭔가 노무현만의 구체적인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용인술과 인맥 확대도 그가 새롭게 헤쳐 가야 할 과제다. 그의 참모진은 민주당 대선 주자들 가운데서도 '경량급'이다. 얼마 전까지 그의 곁에는 현역 의원이 없었다. 노사모라는 열성 조직과 보수적인 당 조직을 조화시켜 이끌고 가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과격하다거나 가볍다거나 불안하다는, 이른바 '마이너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것도 과제이다. 민주당 동교동계 한 의원은 '민주노총과 전경련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는 없더라도 두 집단 모두에서 이해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조선일보』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는데, 후보가 된다면 이 문제가 그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계속 거절하면 협량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고, 입장을 바꾸면 '극성 팬'들의 반발이 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노 고문이 후보가 된다면, 6월 지방선거가 현실적인 최대 복병이 될 수 있다. 수도권이나 영남에서 참패한다면, 후보 교체론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왜 노무현에게만 묻나?

노무현이 '서민을 가장한 귀족'이라면, 노무현의 색깔에 대해선 의심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상호 모순되지 않는 한 가지만 물고 늘어지는 게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노무현이 '서민 후보'라는 이미지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기 때문에 둘 다 문제삼아야겠다고? 그러나 노무현이 과연 그런 '이미지' 때문에 얼마나 큰 재미를 보고 있는 걸까? '아무리 봐도 생긴 게 대통령감은 아닌 것 같다'는 식으로 이미지 문제를 거론하는 기사들도 나오던데, 이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닌가? 내가 보기엔 노무현은 '서민 후보' 이미지로 재미를 보는 게 아니라 기존 정치의 틀을 바꾸겠다는 내용의 알맹이로 재미를 보고 있다. 그렇다면, 기존 정치의 틀을 바꾸면 안 되는 이유를 제시하든가 노무현 못지 않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걸로 노무현을 공격하는 게 옳지 않을까?

정책과 자질에 대한 검증은 어떤가? 이게 왜 노무현만의 문제란 말인가? 누구의 정책은 추상적이 아니고 구체적이었나? 또 누구는 새로운 정책 비전을 제시한 것이 엄청 많았나? 그러나 이런 식으로 시비 걸 일은 아니겠다. 나는 여권의 한 선거 전문가가 했다는 다음과 같은 말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국민통합이나 개혁이라는 구호만으로 대선을 치르기는 어렵다. 뭔가 노무현만의 구체적인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 말에 수긍하기 때문에 가슴에 와 닿는다는 게 아니다. '뻥치는 버릇'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가슴에 와 닿는다는 것이다. 노무현의 '국민통합'은 구체적인 비전이며 거대 비전이다. 그것 이상 중요한 비전이나 정책이 있을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그것을 제쳐놓고, 아니 정반대로 '국민 분열'을 이용해가면서 제 아무리 좋은 비전을 제시하면 뭘 하나? 우리 모두 뻥치지 말고 그간 '절대 불가능하다'고 여겨왔던 한국 사회 최대의 난제부터 하나씩 해결해가자.

용인술과 인맥 확대? 그의 참모진은 민주당 대선 주자들 가운데서도 '경량급'이라고? 얼마 전까지 그의 곁에는 현역 의원이 없었다고? 이건 모순이다. 이런 흠을 잡으려면 기존 정치판을 긍정해야 한다. 정치판이 개판이라고 욕해 놓고 나서 그 개판에서의 용인술과 인맥이 약하다고 흠을 잡는 건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과격하다거나 가볍다거나 불안하다는, 이른바 '마이너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것도 과제라는 것도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은 종류의 모순이다. 박정희와 같은 독재자의 모습에서 온건하고 무겁고 안정감을 느낀다는 게 아니라면 제발 스스로 권위주의적이고 썩었다고 손가락질하는 기존 정치판의 논리를 잣대 삼아 노무현에게 이러쿵저러쿵 하는 바보 같은 짓은 그만 하자.

'민주노총과 전경련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는 없더라도 두 집단 모두에서 이해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주문이 왜 노무현에게만 해당된단 말인가? 그리고 그 두 집단 모두에서 이해나마 구할 수 있는 정치인이 누가 있는가? 오직 전경련의 편만 들겠다는 어느 정당의 후보에 대해선 그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으면서 가급적 두 쪽의 이해 관계를 조정해보겠다는 노무현에 대해 그런 주문을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스스로 속고 속이는 바보 같은 게임 그만 하자

『조선일보』 인터뷰를 계속 거절하면 협량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고? 독일 수상이었던 헬무트 콜은 자신을 부당하게 비난한다는 이유로 『슈피겔』지와 15년간이나 인터뷰를 거절했지만, 그랬다고 콜이 협량하다고 비판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노무현이 민주당 후보가 되면 그때 가선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이 입장을 바꾸면 '극성 팬'들의 반발이 일 수도 있다고 했지만, 그건 '조선일보거부운동'의 정신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씀이다. 또 그건 입장을 바꾸는 게 아니라 노무현의 위상이 달라진 걸로 보아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그 어떤 종류의 사람이나 집단이건 그들을 다 끌어 안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노무현이 민주당 후보가 된다면, 6월 지방선거가 현실적인 최대 복병이 될 수 있다고? 수도권이나 영남에서 참패한다면, 후보 교체론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고? 그렇게 되게끔 애쓰는 사람들이야 많겠지만, 그런 식으로 가게끔 용납해선 안 될 것이다. 그런 주장은 노무현에게 모든 공천권을 주거나 아니면 노무현이 제시하는 개혁적 기준에 맞는 사람들만 공천을 했을 경우에 한해서 타당성을 가질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민주당은 노무현의 사당(私黨)이 아니기에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이 여태까지 실망스러운 행태를 보여 점수를 크게 잃어놓고 대통령 후보 하나 내세워 그 책임 다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간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힘의 논리에 따른 정치'가 아니라 '화합과 통합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외치지 않았던가? 그 정신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6월 지방선거와 대선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리더십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꾸는 '자기 개혁'을 먼저 해야 한다는 걸 반복해 강조하고 싶다. 민주화의 과실은 한껏 누리면서 박정희식 리더십을 높게 평가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절대 그래선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모델을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최초의 다인종 선거가 확정된 이후 만델라가 환호하는 군중 앞에서 행한 다음과 같은 연설의 의미를 음미하고 또 음미해보자.

"선거를 치른 다음날 벤츠를 몰고 다닌다거나 자신의 뒷마당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나는 여러분 자신의 자존심을 높이고 여러분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 외에는 생활에 극적인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김대중 정권을 매우 어렵게 만든 이유 가운데 하나는 김 정권에 대한 과도한 기대였다. 특히 김 정권이 ① 50년만의 수평적ㆍ평화적 정권교체(민주주의적 방법에만 의존해야 하는 제약) ② 유효투표의 40.3%, 2등과 39만 표차, 여소야대 국회로 출발(지역주의적 구도) ③ DJP연합(시민사회가 그 비용을 고려해 주지 않았다) ④ 국가부도 위기 상황에서 출발(노동 및 진보 세력의 공격) ⑤ '공안정국'이라는 카드를 쓸 수 없었고 오히려 매카시즘 공격을 받는 등 과거와는 전혀 다른 열악한 여건을 안고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김 정권의 지지자들마저 김 정권에게서 '박정희식 리더십'을 기대하는 어리석은 착각을 범했던 것이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당면하고 있는 최대 복병이 바로 그런 종류의 착각이다. 그 착각은 정면 돌파해 깨야 한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는 악순환에 종지부를 찍고 유권자들에게 '이제 스스로 속고 속이는 바보 같은 게임 그만 둡시다'고 호통칠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 바람'은 밖에서 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머리와 가슴 속에서 불고 있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그 바람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구경꾼의 자세로 임한다면 그 바람은 꺼질 수도 있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인물과사상 5월호에 발표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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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4/23 [15:1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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