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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노벨문학상 작품, 여성전사의 삶 기록한 작품
[책동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김철관   기사입력  2016/02/21 [23:15]
▲ 표지     © 문학동네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를 쓴 러시아의 대문호 레오 톨스토이는 전쟁을 두고 “전쟁처럼 악하고 소름끼치는 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톨스토이의 원작 <전쟁과 평화>가 2015년 영국 BBC에서 드라마로 제작돼 현재 KBS2에서 토요일 저녁 10시 35분부터 6부작으로 방송하고 있다. 19세기 초 프랑스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혼란에 빠진 러시아를 배경으로 피에르, 나타샤, 안드레이 등 수많은 인물들의 삶을 다양하게 조명하고 있다. 

현재 북한의 미사일(로켓) 발사로 유엔 대북제재 등 남북관계 긴장이 맴돌면서 전쟁 위협까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외신에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들은 둔감한 것 같다. 

최근 전쟁과 관련한 책을 우연한 기회에 지인에게 받아 틈틈이 읽었다.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쓰고 번역가 박은정씨가 옮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문학동네, 2015년 10월)는 전쟁에 직접 참전하고 살아남은 러시아 여성 200여명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2015년 이 책을 통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저자는 ‘전쟁은 인류역사의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고 강조한다. 

전쟁에 관한 책이 시중에 다양하게 나왔지만 거의 하나같이 남자 입장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인 남자의 목소리로 들려준 남자의 전쟁이야기였다. 여자들 역시 전쟁의 당사자이자 가장 큰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의 입장에서 그 누구도 심지어 여자들 자신조차도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었다. 

우리나라도 종군위안부로 알려진 2차세계대전 성폭력피해자(할머니)들의 절규를 보면서 여자들이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이 책의 등장인물인 여성 참전자들은 전쟁에 승리나 패배 그리고 작전이나 영웅 등을 말하지 않는다. 요란한 구호나 거창한 웅변 같은 것도 얘기하지 않는다. 다만 침묵을 강요당하면서도 가혹한 운명 앞에서도 평범한 여성들의 일상의 삶을 추구하면서 전쟁의 실상을 밝히고 있다. 

경비행기 조종사로 전쟁에 참여한 아나스타시야 페트로브나 셀레그 하사의 증언은 가슴을 울린다. 

그는 동료들과 다 같이 목욕탕에 딸려 있는 미용실로 가 함께 눈썹을 물들였는데, 부대로 와 보니 지휘관이 불같이 화를 냈다는 것이다. “싸우러 온 건가 아니면 무도회에 온 건가?” 이 말을 듣고 밤새 울면서 눈썹을 문질러 지웠다고. 지휘관이 아침에 다시와 “나는 병사가 필요하다, 숙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숙녀는 전쟁을 통해 살아남지 못한다.” 

한 마디로 전쟁이라는 가혹한 운명 앞에서도 군인 아가씨들이 하고 싶은 일상의 평범한 삶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들은 죽음이 오가는 전장에서도 여전히 철없는 소녀였고, 예뻐 보이고 싶은 아가씨였다는 점이다. 

이 책은 여자가 겪고 여자가 목격한 여자의 목소리로 들려준 여자의 전쟁이야기이다. 가장 참혹했던 2차 세계대전은 심지어 10대 소녀들까지 전쟁의 한가운데로 내몰았다. 백 만명 이상의 소련 여성들이 2차 대전에 참전했다. 이들도 남자들처럼 자동소총을 쏘고, 폭탄을 터뜨리고 탱크를 몰고 전투기를 조종하고 적의 진영에 침투해 정보를 캤다. 

하지만 남자들의 전쟁 얘기처럼 승리, 패배, 영웅, 작전, 군기 등의 증언을 하지 않는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장에서도 평소 일상에서 여성들이 갈구하고 있는 평범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고나할까. 

천진난만하고 철없는 소녀, 예뻐 보이고 싶은 아가씨, 먹고 싶어 사탕을 사는 아가씨, 첫 생리이야기, 첫 사람을 죽이고 엉엉 울어버린 소녀, 얼마나 자랐는지 매일 키를 재는 소녀 등 가혹한 전쟁 속에서도 일반 여성들처럼 느끼는 삶의 얘기를 들려주면서도 그들의 아픔과 고뇌를 느끼게 한다. 그러면서도 조용히 전장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스베틀라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1983년 작품이다. 원고가 2년 동안 출판사에 있었으나 출판하지 못했다. 이유는 영웅적인 소비에트 여성들에게 찬사를 돌리지 않고 그들의 아픔과 고뇌에 주목했다는 사실 때문에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2년 후인 1985년, 벨라루스와 러시아에서 첫 동시 출간을 해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1992년 신화화되고 영웅시 되던 전쟁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 책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하지만 민주적인 의식을 가진 시민들의 노력으로 재판이 종결됐다. 전 세계 200만부가 팔렸고,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불가리아 등 35개 언어로 번역돼 출간됐다.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재단 최고정치서적상, 국제 헤르더상,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평화상, 전미 비평가협회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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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2/21 [23:1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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