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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전경이 겪었던 노 전 대통령 탄핵사태의 추억
[회고와 전망] 탄핵 직전의 미용실 풍경과 대통령 복귀 당시의 식당 모습
 
숨인씨   기사입력  2010/03/13 [13:49]

6년전 나는 순찰지구대에 파견나가 있었고 그날은 비번이었다. 식당에 갔을 때 TV화면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단상 점거를 비추고 있었다. "왜 저렇게 막고 있어?" 주인 아주머니가 중얼거렸다. 그로부터 며칠 전 새로온 지구대장은 이렇게 말했었다. "설마, 하겠어?" 나는 2월말과 3월초에 탄핵이 이뤄질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에는 식당 아줌마처럼 다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 아니면 설마 밀어붙이겠냐고 고개를 젓는 이들 뿐이었다.

 


2003년 가을쯤이었나, 한나라당의 어떤 의원이 노대통령을 개구리에 비유한 적이 있었다. 그때 어떤 순경이 내게 두가지를 물었다. "야, 대통령탄핵하려면 의석 몇석이 있어야 하냐?"; "한나라당, 민주당 합치면 몇석이지?" 대답을 들은 그는 한나라당이 마음가짐을 겸손히 하길 기원하였다. 부질없었다. 만일 노무현이 열린우리당 지지선언을 하지 않았다면,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왜 본심을 밝히지 않느냐고 호통쳤을 것이다. 당시 여론조사 1위로 올라선 열린우리당을 대통령의 저조한 지지율에 연계하고 싶었을 것이니까. 그러니까 야당의 시비는 이러나 저러나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탄핵 역시 예견된 일이었다. 

말꼬리 잡는 국민의 경망스러움 

식사를 마치고 간 미장원에는 아줌마 셋이 모여 대통령 흉을 보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어디선가 논리를 주입받고 온 것처럼 줄줄 레파토리를 읊었다. 종씨라서 노무현을 찍었다며 믿음이 가지 않는 사연을 늘어놓던 그는 주로 대통령의 스타일을 책잡았다. 그무렵 한국인들의 여론은 아주 웃겼다. 이라크파병이니 새만금이니 부동산이니 온갖 이슈가 지천에 널려 있었지만 유독 대통령의 말꼬리를 잡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성이 노씨라는 그 아줌씨는 갈수록 가관이었다. "노사모가 설쳐서 대통령 됐나? 정몽준이가 도와줘서 이겼지." "별 등신 같은 게 대통령이 되어 가지고... 어째 대통령 수준이 바뀔 때마다 낮아지나 몰라." "나는 수조원을 차떼기해도 한나라당 찍을 거야~" 구석에 앉은 내 얼굴은 벌개졌다. 탄핵에 관해 찬반 여론이 비등하다는 조선일보의 보도를 떠올렸다. 다른 아줌마 중 누구도 반박하거나 이견을 표하지 않았다. 그네들은 바로 몇시간 뒤, 거센 역풍에 어이를 상실하고 노무현보다 훨씬 경망스러운 그 주둥이를 닫아야 했을 것이다. 

비번이래봐야 갈 데는 읍내 PC방밖에 없었다. 친구들과 채팅을 하며 뉴스를 살폈다. PC방에 들어가기 전 어느새 탄핵안이 상정된 터였다. 탄핵안은 가결되었고 어느새 저녁이 다가왔다. 다시 들어간 식당의 티비엔 탄핵가결 시각 대통령이 방문한 공장의 풍경과 노무현의 덤덤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고, 청와대측은 새 시대를 낳는 진통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순간 나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는 있었지만, 대통령을 정말 잘 뽑았다고 생각했다. 

굿데이 2004년 3월 15일자 김준범의 '시방새' - <두고 보자> 
 
▲ * 현재 인터넷에서 이 만화가 처음 게재된 페이지는 찾을 수 없는 듯하다. 부득이하게 그림을 올린다.     ©숨인씨
숙직실로 돌아와 탄핵안 가결 장면을 지켜보다가 그만 땅을 치며 역정을 내고 말았다. 사제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그들은 시위현장으로 나가고 있었다. 횡성에도 탄핵안 가결 당일 이미 읍내에 피케팅이 등장했고, 이튿날에는 지역주민 오십여명이 하천변에 모여 촛불집회를 열었다. 전국적 여론은 분명했다. 반대 70, 찬성 20, 모름 10. 대반격에 대한 대반격. 지구대에는 아마도 전국 모든 경찰기관으로 보내졌을, 민주당, 한나라당, 자민련 당사 경비강화 팩스가 날아왔다. 

차떼기 정국 때부터 조짐이 있었다. 지역주민들이나 경찰관들이 한나라당을 욕하는 것이 빈번히 목격되었다. 누구를 지지한다기보다 대통령을 욕하는 사람과 한나라당을 욕하는 사람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것이 탄핵 직후, 전자의 침묵으로 이어진 셈이다. 
 
아닌 사람도 있었다. 하루는 어떤 취객이 한 경관과 싸움이 붙었다. "무시하지마! 내가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할 거야!" "하이구, 한나라당 조땠는데?" "내가, 살릴 거여 반드시." 한나라당을 싫어하는 쪽도 열린우리당으로 결집한 건 아니었다. 민노당 당원이었던 어느 형은 탄핵역풍으로 사표심리가 발동할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나는 모르는 소리하지 말라며 적어도 정당명부에서는 사표심리가 되레 누그러질 거라고 안심시켰다. 

"햇볕에 투표용지가 비쳐서 보이는데, 정말 민노당 많이 찍었더라고." 투표함 호송을 위해 도착한 투표소에서 참관인인 지역 주민에게 들었다. 호송 근무 나온 경관들이 민노당을 놓고 열띤 대화를 벌였다. 논쟁이 아니었다. 누군가 경찰도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소리높였고 다른 이들도 수긍하였다. 이번에 민노당을 찍지 않은 사람도 이번엔 대통령 살리느라 못 찍었지만 다음에는 꼭 찍어야겠다고 한마디씩 덧붙였다. 바로 그때, 티비에 열우당과 민노당 지도부의 환호가 올랐다. 

 '계급 투표'란 말보다 더 계급적인 한 아저씨의 수사 

총선 이튿날 식당에서 부부로 보이는 아저씨와 아줌마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아줌마는 박근혜가 훌륭한 정치인이라며 연신 박정희와 한나라당을 찬양하고 있었고, 아저씨는 가슴을 치다 못해 "아이구 이걸 확 쥐어박아 버릴까 보다"라며 씩씩거렸다. 옆에 있던 일행이 그에게 당신은 그럼 누굴 찍었냐고 물었다. 그는 위풍당당히 커밍아웃했다. "민주노동당." 지지 이유는 그야말로 걸작이었다. "없는 놈은 없는 놈에!" 

탄핵 후 두달쯤, 총선 후 한달쯤이 지나 대통령이 복귀했다. 그때도 나는 치안현장 근무 중이었다. "중환자에게 모르핀 주사 놔주고 걸어라, 뛰어라, 할 수는 없다." "경기부양이 아니라 경제개혁을 해야 한다." 식당안의 30대 사내들이 껄껄 웃었다. "난 대통령의 저런 말투가 참 좋아." 그들은 별반 달라진 것 같지도 않은 대통령의 얼굴을 두고도 한마디했다 "아이구, 얼굴이 반쪽이 됐네." "주름도 깊어졌어." 문득 이 아저씨들과 탄핵 당일 미장원에 있던 아줌마들이 한판 붙으면 재밌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재개한지 얼마 안 되어 대한민국 정부는 김선일의 죽음을 방조했다. 탄핵반대를 외치던 시민들 일부는 이라크파병이 침략전쟁 동조금지를 명시한 헌법에 위배된다며 도로 대통령을 탄핵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군에 있었지만 내심 나도 그런 쪽이었다.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진보정당을 키워야 한다는 취지로 민주노동당에 들어갔었지만, 참여정부는 악화일로를 걷다 정권을 내줬고 민주노동당은 토막이 났다. 탄핵 직후부터 그해 총선 사이에 펼쳐진 비분강개와 속시원함을 다시는 느끼지 못했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보아하니 민주당이 망해온 것은 필연일 뿐이다. 그러나 없는 놈은 없는 놈에 투표하는 거라던 그 아저씨가 기억날 때마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 글쓴이는 경북 구미시 시의회 의원(무소속)입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 최연소(27세) 기초의원에 당선돼 현재 시의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2002년 <대자보> 필진으로 참여한 이래 다년간 정치칼럼 등을 연재해 왔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대자보> 독자들과 만납니다.
기초의원으로서 풀뿌리 정치 현장에서의 경험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블로그 : http://kimsoomi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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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3/13 [13:4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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