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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조선, 순수 시민운동으로 진행중
조반연, 시민단체 외형에만 치중, 시민참여 이끌어야
당파성 논란은 똘레랑스 부족, 다양한 참여 이끌어내겠다
 
윤익한   기사입력  2003/09/10 [12:24]

▲안티조선 우리모두 운영위 대표 햇귀     ©대자보
2000년 1월 9일 오픈 한 이래 인터넷 토론문화의 산실이자 수많은 인터넷 논객을 배출했던 안티조선 '우리모두'(http://neo.urimodu.com)가 최근들어 적잖은 침체를 겪고 있다. 그러나 안티조선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우리모두'의 침체가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는 분석이다. 지난 4년간 안티조선을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낸 성과에도 불구하고 분열과 분화를 거듭한 '우리모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보기 위해 지난 봄부터 새롭게 '우리모두'의 운영대표를 맡고 있는 '햇귀'씨(이하 존칭생략)를 9월 9일 광화문에 위치한 본지 사무실에서 만났다.  

'햇귀'는 독일에서 9년간의 독일 유학생활을 마치고 지난 8월 12일 귀국. 올 초여름부터 '우리모두'의 새로운 운영위 대표를 맡고 있다.

그동안 독일에서 '우리모두'에 열성적으로 참여한 것과 막상 한국에 와서 활동하는 것의 차이는
가장 큰 차이는 사람과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혼자 할 때는 현장감이 많이 떨어졌다. 돌아와서도 아직은 그런 점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다. 물론 외국에 있으면 우리나라에서 찾을 수 없는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외국에서 정보를 더 많이 찾을 수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대표적으로 조선일보가 외신을 인용 할때, 외신에 실린 기사의 출처가 사실은 조선일보 기사를 똑같이 인용한 것이다. 조선과 외신이 피드백한 것이다. 외신에서는 보통 한국언론이라고 하면 조선일보를 지칭한다.

PC통신 시절 대한매일 네티즌 칼럼리스트부터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본명보다 햇귀라는 필명이 더 알려져 있는데. 온라인에서 햇귀라는 필명을 쓰는 이유는
햇귀라는 필명을 고등학교 때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때 최익현 선생의 '금강산 기행'에 '햇귀'라는 말이 나와서 알게 됐다. 나중에 햇귀를 보면서 상당히 아름다웠다. 또 우연찮게 햇귀에 선구자라는 뜻이 있는 것을 알았다. 내가 추구하는 길과 상당히 부합하는 것이 많아서 쓰게됐다.

'우리모두'가 탄생할 때부터 활동했는데, 초창기 '우리모두'와 현재 운영대표를 맡은 지금 어떤 차이와 변화가 있는지
처음에는 일일 방문자수가 400명 정도였는데 한때 방문자수가 7천명에서 이른 적도 있었다. 지금 그 수가 천명 남짓으로 줄어드는 과정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느낀다. 처음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추진력을 갖고 활동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결국 갈라져 나가게 됐다. 현재 우리모두는 안티조선과 언론개혁에 뜻이 있는 사람만 남았다.

2000년 들면서 인터넷이 본격화되었는데, 당시 환경이 현재에 비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역사상 자발적인 네티즌들의 모임체로서 우리모두는 큰 성공을 거뒀다. 당시 안티조선이라는 모토를 건 우리모두가 단시일내에 급성장하고 환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때 당시 민의가 표출될 공간이 없었다. 우리모두라는 공간은 언론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일종의 해방구 역할을 했다.

온라인 매체의 어떤 특성이 우리모두를 확산시키는데 기여했다고 보는지
온라인이 오프라인과 다른점은 빠른속도와 전파력 그리고 익명성이다. 또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고 무엇이 문제인지 서로가 이야기할 수 있는 쌍방향성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0년 초만 해도 안티조선이 소수의 언론전문가들에 의해 다뤄져서 일반인들이 접하기 힘들었는데, 인터넷상에서 우리모두가 빠른 시일에 폭발력을 가진 근본적인 이유는
그동안 시민운동은 시민이 없이 진행돼 왔다. 그런데 안티조선 운동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데 가장 큰 장점이 있었던 것 같다.

안티조선이 가벼운 사안이 아니었음에도 네티즌들에게 폭넓은 호응을 얻은 이유는
네티즌들이 폭넓게 호응한 것은 언론 자체가 그만큼 왜곡돼 있었고 사람들이 언론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지와 민언련의 탄생에서 보듯 그런한 움직임은 꾸준히 있어왔다. 당시 성유보 민언련 이사장께서 말지 창간호를 내고 오후에 교보문고에 갔더니 말지가 안보여서 "왜 내렸냐. 정권이 무서워서 숨겼냐"고 하니까, 카운터에서 "오전에 다 나갔다"고 한 일이 있었다. 한겨레신문 창간도 87년 대선보도가 공정하지 못했던 공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안티조선을 형성한 것은 초기 인터넷 논객들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생각되는데
안티조선 역사를 돌아보면, 80년대 후반 민언협에서 이미 조선일보 왜곡보도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고 90년대 중반 말지에서 이 내용을 시리즈로 연재했다. 그때 나왔던 스타들이 정지환 당시 말지 기자, 정운현 대한매일 기자(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들이다. 또 당시 진중권씨가 게시판에서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와 논쟁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한우 기자가 안티조선에 역설적으로 폭발적인 동력을 제공했다고 볼 수도 있다. 진중권씨가 논쟁중에 "나 좌파인데 그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비꼬는 식으로 시작해, 이전에 무거운 것들을 새롭고 가볍게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호응이 컸던 것 같다.

당시 스타논객들의 역할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대신 해줬다. 구심점 역할을 한 것이다.

'우리모두' 초기에는 안티조선이라는 명분하에 다양한 스펙트럼과 계층의 사람들이 모였었는데,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차이를 극복하고 활동했는지
안티조선 초기에는 전선을 확연하게 긋고 있었다. 두말할 것 없이 조선이 절대 악은 아니지만 악이라고 규정했다. 지금은 그 전선이 많이 훼손된 상태다. 안티조선 한다는 사람이 조선일보와 똑같은 행동을 하기도 하고, 기회주의적으로 배반하는 사람도 종종 보인다. 그런 점에서 지금과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모두'가 안티조선을 우리사회에 알리는데 일정정도 역할을 했지만 현재는 사이트만 봐도 많이 침체된 부분이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전선의 분열이다. 2000년 9월 MBC 100분토론에서 안티조선이 사회적 의제로 등장한 이후에 시민연대가 우리모두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안티조선 진영에 옥상옥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까지도 그러한 균열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전선이 확연했었다. 또 이러한 모순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이 있었다.

'우리모두'가 분열되기 시작한 것은 안티조선이 민주당 지지로 비쳐지면서 내부에 마찰이 심해졌는데, 우리모두의 당파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수많은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을 때는 똘레랑스가 필요한데, 예를들어 2000년 4월 총선에서 내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면서 최소 1석 이상 기성정치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을 때는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2002년으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해 서로간에 그러한 부분들을 못참기 시작했다. 그만큼 서로가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어한 것이 분열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결정적인 이유는 2002년 6월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티조선이 특정정당을 지지하는 것 아니냐는 좌파측의 지적과 안티조선이 큰 틀에서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입장이 해소되지 못했기 때문 아닌가
2001년 후반부터 정치이야기가 나올 때 서로가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2002년 봄에 노무현 지지가 사회의 진보성을 갖고 있다는 이해가 있었는데, 대신 노무현이 안티조선을 하기 때문에 노무현을 지지했던 것이지 노무현을 지지하기 때문에 안티조선을 한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진중권씨 같은 경우 강하게 비판하기 시작했고, 일부 우리모두 참여자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이것은 서로가 이해를 할 부분이었는데, 진중권씨가 워낙 아픈 부분을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진중권씨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조선일보와 한나라당 등 외곽 세력들에 대항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지적이었던 것 같다. 이는 안티조선 안에서 다수파가 소수파인 좌파세력을 몰아내면서 결국 소외를 시킨 것 아니었나
사실 많이 소외된 측면이 있었다. 물론 진중권씨의 안티조선=민주당 지지='광신도' 발언은  지나친 측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시민운동적 측면의 '안티조선'이 정치적 외피를 두르는 것에 대한 강한 경계와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진중권씨는) '시민적 상식'을 들어 일부 사람들의 정치적 기동을 강하게 비판한 것인데,  수구언론과 수구정당의 호남소외를 진중권씨 및 좌파들이 간과한 것이 아니냐며 격한 반발을 보인 것이다. 

우리모두에서 아직 그 정서가 많이 있을텐데 앞으로 어떻게 추스를 생각인지
지금은 이미 나갈 사람은 다 나갔으니까 오히려 좀 나은 편이다. 좌파 분들은 진보누리(www.jinbonuri.com)로 활동무대를 옮겨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다.

얼마전에도 '안티조선 하면 정치적으로 지원하겠다'라는 명계남씨의 발언 때문에 안티조선이 순수 시민운동이냐 정치운동이냐를 두고 논쟁이 붙은 적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순수 시민운동이 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안티조선을 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안티조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적 입지를 쌓아간다면 모르겠다. 시민운동과 정치운동이 엄격하게 구분될 수는 없지 않느냐. 거기까지는 참겠지만 안티조선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이용하는 사람들은 결딜 수가 없다. 어떤 분들 같은 경우는 실제로 안티조선 활동은 전혀 안하면서 자신이 안티조선을 한다고 말하고 다닌다. 명계남씨의 그런 발언의 경우는 당연히 조선일보에서 이를 왜곡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방법적으로 위험했다고 생각한다.

안티조선을 표방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됐고, 현재에도 조중동과 일정한 대립각을 보이고 있다. 노대통령의 등장으로 우리모두의 역할도 더 커지는 것이 아닌가
우리모두는 안티조선을 한 노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이지, 대통령 노무현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 우리모두는 언론, 특히 조선일보에 관한 모니터링과 제도적 언론개혁 등을 더욱 모색해야 할 것이다. 

▲본지 기자와 인터뷰 모습     ©대자보
시민운동 차원으로 어떤 식으로든 연계가 됐어야 했다는 목소리가 있다. 최근에는 예전에 비해 시민단체와 안티조선 활동이 적극적으로 결합되지 못하고 있다

엘리트 이론으로 표현하고 싶다. 엘리트라는 존재는 대중속에 있으면 대중들이 엘리트를 따라가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지만 엘리트가 해야될 일은 필요하다. 그런데 엘리트가 중심을 잡아주지 못한다면 대중들은 방향을 못잡고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가 시민운동 차원인데, 거기서 지식인 선언과 활동가 선언 등 외형적인 것에만 치중했지 민언련처럼 DB를 쌓지는 못했다. 우리모두를 연 시점부터 지금까지 햇수로 4년동안 아직까지 조선일보 왜곡 및 오보 자료집 하나 만들지 못하는 것은 사실은 시민연대의 역할이고 책임이다. 이러한 것들이 안티조선의 탄환이라고 할 수 있는데, 탄환제작은 안하고 외형적으로만 치중했다. 당시 왜 조선일보에 기고 및 인터뷰를 하면 안되는 지에 대한 논쟁이 없이 외형에만 치중한 실수를 범했다.

온라인에 네티즌들의 참여열기를 시민단체가 잘 연결해줬어야 했는데. 자발적 네티즌과 시민단체가 왜 연계가 안 됐다고 보는가
2001년 3월말부터 5월까지 있었던 1인시위 얘기를 하면. 이것은 한마디로 '몇몇 사람들의 즉흥적 발상'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1인시위 하는 것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1인시위를 하기 위한 충분한 논쟁없이 한 것은 "티만 내고 끝내겠다"는 것이다. 뒷감당은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터트리고 보자고 했던 것이 안티조선의 동력을 많이 갉아먹었다. 안티조선은 시민 우선이었기 때문에 여론을 수렴해서 여론이 모인 것을 가지고 동력을 이끌어 내야했는데, 이 부분에서 기층의 사람들 간에 많은 괴리가 있었다.

시민단체가 이후 변화해야 할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시민과 더 가까이 접근해야 한다.

시민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왜냐하면 우리모두는 순수 온라인운동으로 '네티즌의 참여'에 주력하지 않나
사실 '시민'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일상의 소시민을 '시민'으로 볼 수도 없고, 온라인을 통해 안티조선의 문제의식을  공감하고 현실에 실천할 수 있는 계층을 확대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달라.

일부에서는 안티조선 우리모두를 인문학과 학술토론 중심사이트로 키우자는 제안도 있는데
현재는 우리모두 초창기와 같은 동력이 부족하다. 커뮤니티의 복원 등 사이트가 활성화 되면  많은 분들과 대화를 나눠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겠다.

'우리모두'의 향후 추진방향은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것이다. 또 조선일보의 왜곡 오보에 대한 DB를 정리할 생각이다. 안티조선 내에서도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을 중심부로 끌어들이면서 사이트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번개를 많이 추진해 적극적인 참여의 계기를 만들겠다. 


[인터뷰 후기]

깡마른 체격에 뿔테안경, 얼핏 보아도 햇귀는 고집스럽게 생긴 사람이다. 독일에서 오랜 기간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공학도임을 밝히지 않아도 대화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럽게 공학도임을 알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햇귀는 PC통신시절부터 대한매일 네티즌 칼럼리스트, 그리고 우리모두에 참여하면서 글만 쓰지는 않았다. 물론 지리적으로 대한민국과 멀리 떨어진 독일에 있었지만, 통신상의 이슈에는 언제든 그 현장을 지키고 발언했다. 특히 우리모두나 살류쥬에서 박남철씨 성추행 사건, 밥꽃양 문제가 불거졌을 때  '연대'의 차원을 넘어 적극적 참여를 한 실천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스로 좌파임을 밝히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그에게 안티조선 사이트 우리모두는 조그마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햇귀의 건투를 빈다.
사족이지만, 위의 인터뷰 내용은 어디까지나 햇귀 개인적 의견이지, 우리모두의 공식적 입장이 아님을 밝혀둔다.

대담 : 이창은 편집국장, 정리 : 윤익한 미디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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