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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개입,우려되는 '정치의 사법화'
[논평] BBK 관련 검찰 무혐의 결정이 지닌 정치학적 함의와 국민주권
 
이태경   기사입력  2007/12/05 [18:19]
대선을 앞두고 초미의 관심을 끌었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BBK관련 의혹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즉 주가조작, BBK 및 (주)다스 관련 의혹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을 제외한 정당들이 이 같은 검찰의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다. 벌써부터 대통합민주신당 등에서는 특검 발의와 범국민저항운동 조직과 같은 말들이 나오고 있는 중이다.
 
‘정치의 사법화’ 혹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전성시대
 
대선 승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정치권은 유권자들의 표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검찰의 결정에 대해 당연히 갑론을박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러나 헌법상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인 대통령을 선출하는데 검찰이 이토록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은 정치학의 관점에서도 새삼 주목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 탄핵 기각 결정과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에 대한 위헌 결정으로 단숨에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기구가 된 헌법재판소의 사례와 함께 대선의 향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검찰의 결정을 보면서 문득 대한민국에도 '정치의 사법화' 내지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제 정치 세력이 국가와 사회 내의 주요 이슈를 헌법 문제화하여 ‘헌법적 결정’에 의지하려는 경향을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라고 하는데 그 단적인 예가 바로 앞에서 언급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기각 결정과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에 대한 위헌 결정이다.
 
또한 일찍이 쉐프터(Martin Shefter)와 긴스버그(Benjamin Ginsberg)가 말한 바 있는‘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라 함은 역시 정당정치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치인과 정당의 부패가 정치의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등장하면서 폭로-수사-기소가 정치를 지배하게 되고, 여야간 힘의 대립에 있어 제 3의 힘, 즉 정부 내의 사법기구인 검찰과 사법부의 판결에 의존하는 정도를 크게 높임과 동시에 언론매체가 주도하는 여론의 힘이 크게 증가하게 된 현상을 말한다.(‘미국헌법과 민주주의’에 담긴 최장집 교수의 서문 중 일부 인용)
 
최근에 보여 준 대한민국 검찰의 행보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 혹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본격화되는 것이 걱정스러운 이유는 무엇보다 이런 현상이 ‘대표와 책임의 원리’라는 민주주의의 근본원칙을 형해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이번 BBK 사건에 대한 소극적, 혹은 적극적 개입은 정치의 또다른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우려되고 있다.     © 인터넷 이미지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1조 2항)라고 해서 국민주권의 원리를 천명하고 있다. 한편 국민주권이 실현되는 구체적 방법은 '직접 민주주의'가 아닌 '간접 민주주의' 즉 '대의제 민주주의'다.
 
쉽게 말해서 주권자인 국민은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자신들의 대표로 선출하여 권력을 위임한다. 또 대부분 정당 출신인 국민의 대표들은 선거를 통해 자신이 속한 정당과 자신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
 
그런데 ‘정치의 사법화’ 혹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본격화하면 위와 같은 ‘대표와 책임의 원리’를 통해서 구현되는 국민주권이 심각하게 왜곡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미 대한민국 국민들은 주권자인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굴복(?)하는 장면을 목도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 검찰의 결정 역시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범주 안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할 것이다.
 
국민주권의 구현 혹은 정치의 정상화를 위해
 
위에서 열거한 헌법재판소와 검찰의 경우는 국민의 대의기관들이 마땅히 해야 할 '정치'가 사라진 자리를 국민이 뽑지도 않았고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지도 않는 '사법기구'들이 대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중대한 위험요소일 뿐만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 주권 행사에서 소외되는 비극을 낳게 된다.
 
따라서 지금 여야 정치권에게 중요한 것은, 검찰의 결정을 가지고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수단으로써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 이런 주문은 또 얼마나 공허한가?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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