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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적(敵)이다
[폴리티즌의 눈] 이건희 회장이 말한 "소란"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류철원   기사입력  2006/02/08 [20:38]
얼마전 삼성의 이건희는 회피성 외유를 마친 귀국길의 휠체어 위에서 "소란을 피워 죄송하다. 모든 책임은 나 개인에게 있다"고 소위 대국민사과의 첫멘트를 날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피웠다고 주장하는 "소란"의 내용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또한 우리는 그것을 한갖 "소란"이라는 표현으로 가볍게 뭉갤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혼동스럽기 그지없다. 하긴 요즘같은 건조기에 누군가가 잘못 버린 담뱃불로 산불이 난 것도 "소란"이요, 출근길 도로 위에서 접촉사고를 일으킨 누군가가 차량통행에 방해를 준 것도 "소란"은 "소란"일테니 말이다.
 
목하 이건희 일가의 8000억 사재 헌납설이 주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일부 넋나간 언론들은 이러한 사재 헌납설을 '부의 사회적 환원'을 운운하며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모범인 것처럼 몰아가려는 분위기를 보면 역겨움을 넘어서 구토까지 치밀어 오르는 심정이다.
 
사실 그 사재헌납이라는 껍데기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이미 재단의 형태로 헌납 예정이었던 5500억원과 이재용에게 편법으로 증여된 전환사채 이익(1조원이 훨씬 넘는) 중에서 극히 일부분인 1500억이 대부분이다. 즉, 삼성과 이건희는 총수일가의 검찰소환을 앞두고 어차피 빼도박도 못할 돈을 미리 땡겨서 새발의 피만큼 납부하는 모습을 통하여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공분을 희석시켜 보려는 얕은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말도 안되는 짓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금방 알 수 있다. 사실 이건희가 "소란"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무게를 줄여보고자 시도했던 실체는 돈으로 적당히 땜빵을 할 수 있는 사안이 결코 아니다. 하물며 당장 그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대표적이며 중요한 두 가지만 살펴보더라도 이건희 일가와 삼성의 상석하대 행위는 결코 물에 물탄 듯 묵과될 수 있는 성질과는 거리가 멀다. 막말로 저들로서는 계륵과도 같을 8000억원이라는 손가락으로 이건희 일가의 법률적 기소라는 달을 가릴 수는 결코 없다는 말이다. 자, 그렇다면 이건희가 자백한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소란"의 내용이 무엇인지 귀찮지만 되새김질을 해보자.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짓밟은 이건희 일가
 
자본주의는 기존 경제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자체의 규율과 작동원리를 내부적으로 형성시킨 역사적 산물이다. 이는 통상 자본주의 스스로의 룰과 법칙에 의하여 형성된 시장의 선택에 의하여 자기존재를 확인받고 성장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기업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규칙을 무시하고 공정한 경쟁보다 외부적 요인에 의한 탈불법에 의존하여 시장을 지배하고자 획책한다면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은 국민권력의 핵심인 정부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남한의 역대 정부는 그러한 위임권력을 행사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성장과 국익이라는 명목으로 총자본과의 더러운 유착을 통하여 자신의 탐욕과 재벌의 이익을 분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보통 이러한 사회를 일컬어 파행적(비정상적) 자본주의라고 지칭하는 것이며, 나아가 이러한 반칙과 유착의 꼬리를 근절하는 것에서 남한사회 재벌개혁과 경제개혁의 준거를 찿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자본주의적 복마전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이자 질료가 바로 삼성이라는 기형적 집단인 것이며, 나아가 국민들은 자칭 개혁정권이라고 잠칭하는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는 시금석으로서 이건희 사태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대응태도를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거창하게 이런 성격은 아닐지라도, 국민들 대부분은 근대적 국민국가의 기본적 대전제인 법치에는 그 어떠한 경우라도 예외가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일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벼랑 끝에 몰린 이건희가 자신의 입으로 책임지고자 했다는 "소란"의 주요한 두 가지가 과연 무엇이었던가? 우선은 전체 삼성지분의 2% 남짓에 불과한 이건희 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세금포탈을 밥먹듯이 하고도 모자라, 정상적인 국가권력까지 장악하여 금산법이라는 희대의 삼성법을 만들기 위한 시도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건희는 삼성의 계열사를 통하여 이재용의 황태자 등극을 위하여 불법적 내부거래와 주주이익 침해를 불사하는 에버랜드 불법증여라는 범죄행위를 성공리에 완수하였고, 소위 외국자본을 방어하기 위한 지배구조 유지라는 애국질적 명분으로 국가의 기본경제에 대한 법과 제도마저 편의적으로 사익화하려는 행위마저 남한사회에 널리 포진한 삼성 장학생들을 통하여 관철시키고자 발악을 하였다. 바로 이것이 삼성과 이건희 일가의 반자본주의적 행태의 주요한 일부분이다.
 
또한 삼성과 이건희 일가는 소위 'X-File'로 상징되는 정경유착의 물밑 두더지라는 사실이다. 그동안 과거 정주영과 같이 남한사회의 재벌집단이 정치권력까지 넘보며 현대판 제정일치사회를 꿈꾸었던 미개한 시도를 비롯하여 숱한 부패와 탐욕의 중심고리에 부패자본과 그 우두머리가 존재하였다. 이러한 재벌과 정치권력의 유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몇몇 피래미 재벌들은 국민적 요구와 정권의 생색내기용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았던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움직임 속에서도 삼성과 이건희 일가는 언제나 삼성 장학생들의 원조와 그들과의 뒷거래를 통하여 무사했으며, 최악의 경우에도 고작 종범에 가까운 가벼운 견제만을 받아왔다.
 
그러나 온 사회를 경악에 빠트렸던 'X-File'을 살펴보면 이건희와 삼성이 정경유착의 몸통이자 주범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X-File'은 그동안 왜 유독 삼성과 이건희가 정권교체기에서 순환적으로 되풀이되었던 정경유착 수사에서 경미한 처벌로만 그쳤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바로 삼성의 국가경제 장악력과 이건희가 흘리는 떡고물에 휘둘린 사회 각 분야의 이건희 머슴들의 적극적 비호와 몸빵이 바로 핵심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노무현 정권 또한 이러한 인식과 행태에서 결코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것이 기간 참여정부의 각종 정책적 삼성 감싸기 사례에서 여실하게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노무현 정부의 친재벌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자신이 저지른 엄청난 사회적 범죄행위마저 그저 가벼운 "소란"쯤으로 착각하게 만든 근원적 이유가 아닐까? 바로 이것이 삼성과 이건희는 물론 노무현 정권 역시 건강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암적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이유이다.
 
이제는 자칭 시장주의자들이 먼저 분노해야 한다. 남한의 시장주의자들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전제를 뿌리로부터 무너뜨리고 온갖 반칙과 불법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는 삼성과 이건희의 행태에 분노해야 하며, 또한 이를 묵인하고 원조하며 삼성과 이건희 체제에 대한 몰빵을 시도하려 숨죽이고 있는 노무현 정권의 반시장적 경제관료들에게 준엄한 경고를 서슴치 않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자칭 시장주의자들의 진정한 역할이며, 역대 신자유주의 정권이 자본과 결탁하여 올인했던 무분별한 성장중심주의 아래에서만이 가능했던 기존 재벌부패구조를 온전하게 되돌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 본문은 대자보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정치공론장 폴리티즌'(www.politizen.org)에서 제공한 것으로, 다른 사이트에 소개시에는 원 출처를 명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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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2/08 [20:3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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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앞에 평등 2006/02/09 [10:19] 수정 | 삭제
  • 법앞에 만인은 평등하다고 배웠지만,
    법조차도 그 앞에서는 무릎을 꿇으니 그는 법치 민주주의의 적.
    여러 번 구속되어 마땅하지만 수많은 검찰, 국회의원 언론인, 교수 등등을 꼬붕으로 거느린 그는 법을 무용지물로 만들었으니 그는 민주주의의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