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은 본지 무위의 "'경제는 심리'라는 국민사기극의 본질"이라는 기사에 대한 21세기경제학연구소(www.taeri.org) 최용식 소장의 반론입니다. 생산적 토론을 위해 반론을 해 주신 최용식 소장께 감사드리며, 본문에 대한 네티즌 여러분들의 다양한 평가와 참여를 환영합니다-편집자 주
대자보의 무위가 올린 글은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호소력도 훌륭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경제학 공부를 앞세우기에 앞서 논리학의 기초부터 더 연마해야 할 수준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내 평가가 다소 가혹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무위의 글을 조목조목 따져보면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1. 우선 내가 '경제는 심리'라는 레토릭을 만들어냈고, 이것이 널리 전파된 것도 사실이라는 점은 확실하게 해두자. 무위는 이런 내 주장의 문제점으로 "첫째는 경제가 심리에 달린 문제에 불과하므로 심리만 잘 풀리면 경제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이라는 지극히 한심하고도 안일한 희망사항이었다."는 점을 들었다. 이것이 진짜로 문제의 핵심이라면 반증이라도 해야 했다. 즉, 비관적인 심리가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경제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지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관적인 심리는 전혀 풀리지 않았다.
|
▲21세기경제학연구소 최용식 소장의 저서 '경제역적들아 들어라'의 표지 ©자인, 2001 |
2. 무위는 "둘째는 경제가 심리인데 한국경제에 대한 심리가 나빠지도록 조중동이 저주를 퍼붓고 있으므로 우리나라 경제가 나빠지고 있는 책임이 경제 정책을 집행하는 현 참여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저주를 퍼뜨리고 있는 조중동에 있다는 식의 저급한 책임회피를 위한 술책이 깔려 있다는 사실이었다."고 지적했다. 내가 마치 참여정부의 경제실책을 전혀 거론하지 않았거나 옹호한 것처럼 글을 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경제학자보다 가혹하게 경제실책들을 거의 빠짐없이 미래형으로 경고해왔으며, 어떤 실책들이 어떤 결과를 빚었는지도 충분히 밝혔다.
3. "경제가 심리라는 주장을 일삼던 사람들이 한국 경제의 불경기를 호경기로 바꾸는 데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는 무위의 주장도 논리적으로 옳지 않다. 심리가 낙관적으로 변했어야 경기가 호전될 터인데, 심리는 여전히 비관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심리를 낙관적으로 바꿀 책임은 '이 주장을 일삼던' 힘없는 나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책임은 정책당국에게 있다고 해야 하지만, 그가 쓴 글처럼 "경제가 정말로 심리적인 문제로 해결될 사안이라면 그 심리를 바꾸는 데 참여 정부는 사활을 걸었어야 했는데 그런 노력을 한 흔적도 안 보인다." 그런데 그 책임을 나에게 전가하다니, 좀 심한 것 같다.
4. "한동안은 아예 경제위기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무위는 썼지만, 지금도 나는 경제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 어려운 정도에 불과하다. 조금 어려운 것을 위기라고 부르는 것은 용어선택의 잘못이다. 우선 무위는 위기라는 용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사전이라도 찾아볼 일이다. 파국이 눈앞에 닥쳤을 때에나 쓰는 용어가 바로 '위기'다. 세상 어느 나라에서 성장률이 5% 전후를 기록하는데 경제위기라는 용어를 쓰는가? 파국이 눈앞에 닥친 진짜 경제위기가 왔을 때에는 무위는 이것을 무엇이라고 부를까?
5. "노무현 대통령이 최용식을 청와대로 부른 것이 최용식 류의 주장을 신뢰한 것이 아니라 경제에 대해서는 정말로 무식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으로 그 주장을 믿고 싶었을 뿐이었다"는 표현은 국가원수 모독죄에 해당한다. 최소한 노 대통령 개인의 명예를 명백하게 훼손했다고 해야 한다. 기초적인 논리적 소양만 갖췄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에 대해서는 정말로 무식하다'면 그 증거들을 제시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근거도 없이 딱지 붙이기를 했을 따름이다. 옛날 독재정권이 '너는 빨갱이야'라고 딱지를 붙였 듯이 말이다.
내가 아는 한,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경제학자에 못지 않을 정도로 경제학은 물론이고 실물경제에 높은 식견을 갖췄으며, 학습능력까지 뛰어나다. 이것은 내가 직접 겪은 바이다.
6. "국민들은 현재 신용불량자란 족쇄에 갇히고 비정규직의 설움에 울고 나날이 쌓여만 가는 가계부채에 신음하고 있다. 보다시피 청년 실업 50 만 명, 비정규직 700만 명, 500 만 명에 가까운 신용불량자와 함께 2004년 12월 6일 현재 가계부채는 무려 465 조로 유사이래 최대치를 갱신했다. 한 가구당 가계부채는 3000 만원에 육박했다. 이런 빚더미 속에 허우적대는 경제 주체들이 막연한 심리로 내수를 진작시킬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고 무위는 썼으나, 이런 단정을 하려면 그 반대의 사례는 없는지 먼저 살펴야 했다.
미국은 1980년대 후반에 가계부채는 물론이고, 기업부채와 국가부채까지 급증하는 등 우리나라보다 훨씬 심각한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1990년대에는 자본주의 역사상 최장의 경기팽창국면을 연출했다.
우리나라도 경제정책만 올바르게 수립하여 집행했더라면, 얼마든지 가계부채나 신용불량자 문제를 딛고 경제번영을 구가하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미국이 성공했던 선순환 정책을 정책당국에 권유했지만 정책당국은 오히려 악순환 정책을 선택했고, 그 결과 신용불량자와 가계부채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무위는 이와 관련한 내 글은 하나도 읽어보지 않고, 나를 비판한 것 같다. 그러나 진짜 문명비평가라면 이래서는 안 된다.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은 자가 어떻게 상대방을 비판할 수 있다는 말인가.
7.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하다고 주장하려면, 이 문제가 언제 어떻게 사회문제로 대두했는지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무위가 그런 노력을 기울인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청년실업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대두시킨 때가 대단히 악의적이기 때문에 내가 이런 지적을 하는 것이다. 무위는 지금이라도 청년실업률이 언제 가장 심각했는지, 그리고 이것이 사회문제로 대두한 때의 청년실업률이 얼마였는지, 이런 정도라도 확인해보기 바란다. 참고로, 청년실업률이 가장 낮았을 때에 사회적 의제로 설정되기 시작했다는 점만은 여기에서 밝혀두고자 한다.
8.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면, 그 원인을 먼저 찾아보는 노력은 '문명비평가'가 기초적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생산성이 훨씬 높다고 모두 답변한다. 정규직의 승진욕구와 애사심이 성실성과 부단한 자기계발 노력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경영인들은 비정규직을 더 선호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다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그 하나는 장래가 불안해서 정규직을 고용할 수 없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 노조가 세계적으로 가장 전투적이라는 점이 그것들이다. 정규직을 고용하면 경기가 부진해져도 해고하기 어렵고, 그래서 비정규직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기업인들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9. 무위가 자신의 논리에 경제학의 라이프사이클 가설을 등장시킨 것은 그나마 평가해줄 만하다. 논리적 근거를 충분히 갖췄기 때문이다. 논리적 근거를 갖췄다고 모두 진리는 아니다. 논리적 근거는 필요조건일 뿐이다. 사실, 라이프사이클을 포함한 현 경제학의 소득이론은 천동설 수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에 비해 '최용식과 그 친구들의 경제학'은 지동설 수준으로 진화했다는 점을 먼저 밝혀두고 싶다. 경제학을 전공한 무위라면, 이런 문제제기에도 관심을 기울일 가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위는 '최용식과 그 친구들의 경제학'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래도, 지금부터는 라이프사이클 가설에 입각한 무위의 논리가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 간략하게 지적해보자.
10. 무위는 외환위기 당시의 구조조정을 문제로 삼았지만, 그에 앞서 당시의 구조조정이 과연 국가경제적으로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 채, 구조조정이 무조건 잘못이라고만 주장했다. 이것은 논리적인 글쓰기는 결코 아니다.
자, 따져보자. 외환위기를 우리나라처럼 성공적으로 극복한 나라가 세상에 단 한 나라라도 있었는가? 우리나라는 IMF로부터 당시까지 사상 최대규모였던 58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로 외환위기가 심각했지만, 외환위기를 겪은 지 불과 1년 만에 외환위기에서 벗어났고, 외환위기를 벗어난 직후의 성장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다. 그래서 세계의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그들은 한결같이 신속한 구조조정이 그런 성공을 거두게 했다고 평가했다.
11. 목숨이 경각에 달린 심각한 질병에 걸렸을 경우에는 생살을 잘라내는 수술도 해야 하고, 독한 약도 써야 한다. 그런데 외환위기는 경제질병 중에서도 가장 악질이다. 이 사실은 중남미 국가들이 충분히 증명했다. 그런데 외환위기라는 경제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구조조정이라는 수술을 무위는 거부했다. 그렇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아르헨티나가 어떤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는지 한번만 돌아봤다면, 무위는 "천하의 무식한 놈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까지 받아 가면서 국민들을 향해 칼을 겨누고 길거리로 내모는 일을 한다는 말인가? 어떻게 이런 광범위한 경제 학살극을 국가 정책의 일환이라고 칭(稱)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는 글은 차마 쓸 수 없었을 것이다.
12. 무위는 한국경제의 가장 큰 강점까지 문제점으로 들추어냈다. 즉 자영업자 비율이 34%에 이른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자영업자 비율이 높다는 것은 한국인의 생활력과 자립심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또 우리 국가경제의 활력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저주를 퍼붓다니,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13. 무위는 "투자도 심리가 아니라 냉정한 투자효율에 대한 기대가 좌우"한다고 썼으나, 이것도 논리적인 모순이다. 우리 경제의 투자효율은 어느 다른 나라보다 높기 때문이다. 지금이라고 한국은행에서 발표하는 '기업경영수지'라는 자료를 찾아보기 바란다. 우리나라 기업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위도 '투자효율에 대한 기대'가 투자를 좌우한다고 썼다. 그렇다면 그 기대라는 것이 심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은 자가당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14. 환율 문제를 거론하려거든 최근에 내가 20개에 가까운 글을 썼다는 사실이라도 먼저 확인할 일이다. 남의 글도 읽지 않고 함부로 비판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리고 환율하락이 문제가 아니라, 더 심각한 문제가 다른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 문제가 무엇인지는 내 글 중 최근 것 하나만 읽어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15.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글을 쓰려면 경제위기설이 제기되는 때가 언제인지 그 현실을 먼저 확인한 뒤에 할 일이었다. 현실만 확인하면, 아무리 경제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경제위기설이 제기되던 때가 대단히 악의적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경기가 진짜로 어려웠을 때에는 잠잠하다가, 경기가 호조를 보이거나 상승세로 돌아서던 때마다 경제위기설이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올해 연초부터 경제위기설이 제기된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4분기의 전기대비 성장률은 연률로 무려 11.2%에 달했었다.
만약 이 추세가 이어졌더라면, 금년 성장률은 10%를 넘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도 무위는 모르는 듯 하다.
16. 나도 이제는 손가락이 아프다. 반론할 가치도 별로 없는 글에 댓글을 다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대충 마무리하자. 지금 우리 주식시장은 외국인이 지배하고 있다. 외국인 지분비율이 43%를 넘어섰다거나, 우량기업은 대부분 5-60%에 이른다고 언론은 보도한다. 그리고 외국인은 지난해에 배당수익으로 2조 7천억원을 벌었고, 올해에는 4조원이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 이유라도 따져봐야 할 것 아닌가?
|
▲한국 사회의 개혁은 조중동 제몫 찾아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한겨레신문 |
내 판단은 이렇다. 외국인은 우리나라 신문을 보지 않고 통계지표만 분석했고, 우리 경제의 성장력과 경쟁력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장차 큰 수익을 남길 것으로 보고 우리 주식에 투자했다. 그런데 무위와 같은 사람들은 무슨 짓을 했던가? 우리 경제가 내일 곧 무너질 것으로 봤다. 특히 신문언론은 아무리 좋은 소재도 비관적이고 부정적으로 해석하여 보도를 내보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우리 경제가 큰 위기에 닥친 것으로 봤고, 우리 주식을 헐값에 팔아치웠다. 외국인은 그만큼 싼값에 우리 주식을 사들일 수 있었다. 자, 누가 국부를 유출시켰는가? 누가 경제역적인가? 무위가 대답할 차례다.
끝으로 한가지만 더 지적해두자. 세계의 물류중심지, 금융허브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변천해왔다. 최근 역사만 보더라도, 실크로드의 도시국가들에서, 페르시아와 북아프리카로 옮겨갔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로, 그 뒤에는 포르투갈로, 다시 스페인으로, 다시 네덜란드로 옮겨갔었다. 이런 지역은 모두 영어를 사용하는 지역이 결코 아니다. 현실을 떠난 관념적 글쓰기는 이런 어이없는 오류도 흔히 범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