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입시제도는 교육이 실종된 권력간의 야합(野合)의 산물 자본주의 사회이든 공산주의 사회이든 제도란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제한된 자원으로 충족시켜야 하는 희소성(希少性)에서 출발한다. 이 희소성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제도로 발현되는 것이다.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통해서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방식을 결정하는 대한민국의 입시제도에는 크게 3개의 거대한 이익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교육부, 대학교, 그리고 전교조 등의 교사들 모임이 그것이다. 학부모나 학생들은 조직화되어 있지도 못하고 이 제도를 소비해야할 소비자이므로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사회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세 단체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 세 단체의 탐욕에 의해서 자신들의 권익이 침해당해서 불량 서비스를 억울하게 감내하고 있다고 보아야 정확한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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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2일 정부청사 후문에서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주최의 고교등급제 반대집회가 열려 고교등급제에 대한 저지를 밝히고 나섰다. © 대자보 |
논의를 쉽게 하기 위해서 그동안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대입제도의 시행에 따른 위 세 단체의 편익관계를 살펴보자. 이 구조를 과학적으로 파악하지 않고는 한국의 입시문제가 이렇게 실타래처럼 얽힌 이유를 제대로 파악해 내긴 힘든다.
1. 본고사(대학별 고사) : 대학교의 편익이 증대한다. 특히 명문대의 편익이 증대한다. 대학의 자율성은 증가하고 교육부의 권한은 크게 축소된다. 편익 증대의 순서는 대학교 >교사(실력있는 교사)> 교육부 그래서 이 제도는 교육부가 가장 싫어할 개연성이 높다. 현재 3 不정책 중에서 [대학별 지필고사 不可원칙]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것과 연관이 없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못할 것이다. 소위 실력 있는 교사의 권익은 증대되고 실력 없는 교사들은 입지가 대단히 약해진다. 국영수 등 중요 과목과 비중요 과목의 교사간에 분화(分化)가 일어난다. 따라서 대부분의 교사들은 대학별 고사를 반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2. 학력고사 또는 수능고사 (논술 면접 등을 제외한 유일한 평가기준으로서의 시험만 말함) : 편익은 교육부 > 교사 > 대학교 순(順)다. 출제와 관리 등을 교육부가 주관하므로 교육부의 권한이 가장 커지고 대학교의 자율권은 크게 위축된다. 그래서 대학교들은 수시입학이나 논술과 면접 등으로 자신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3. 내신제도 : 교사>교육부>대학교 順이다. 이렇기 때문에 전교조 등의 교사들은 비록 내신부풀리기로 교육을 엉망으로 만들지라도 내신제도를 유지하려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며칠전 mbc 토론에서 내신부풀리기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자 전교조 부회장은 내신을 없애야 한다고 하지 않고 상대평가제도의 도입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 이유와도 상통한다. 내신제도가 상대평가가 되어도 교사들의 권익은 더 커지면 커지지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럼 위 제도의 시행에 따른 소비자 입장에 있는 학부모와 학생의 편익을 보자.
1. 본고사(대학별 고사) : 과외비가 상승하여 사교육비가 지나치게 많이 든다.
2. 학력고사 또는 수능고사 (논술 면접 등을 제외한 유일한 평가기준으로서의 시험만을 말함) : 학부모와 학생의 편익 입장에서는 사실 이 제도, 특히 과거 학력고사 제도가 가장 낫다. 사교육비도 중간정도다. 아니 절대평가로 중간 정도라는 것이지 세 가지 제도 중에서는 가장 적게 든다.
3. 내신제도 : 교사들은 공교육 정상화 등을 내걸고 내신 제도를 주장하고 있는데 사실은 사교육비는 2 번째 제도(학력고사) 때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간다. 과거 내신 반영이 없는 학력고사 시절에는 고등학교 1-2학년 때는 놀다가도 3학년 때만 공부해도 원하는 대학에 가는 학생들이 많았다. 하지만 내신제도는 고1 첫 시험부터 또 모든 과목을 잘 쳐야 하므로 3 년 내내 학원에 다녀야 한다. 사실 사교육 기관인 학원에서 가장 바라는 것이 바로 이 내신만으로 대학을 뽑는 제도이다. 사설 학원에서 본고사를 가장 바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본고사는 과외 교사의 수입을 늘여주지 학원의 총수입을 그렇게 증대시키지는 않는다.
공교육 정상화 등 밖으로 내세우는 명분이야 그럴듯하지만 교육부에게 가장 유리하고 소비자인 학부모 학생들의 편익에도 좋은 학력고사 제도를 도입하지 못하고 내신제도의 비중이 이토록 커진 것은 교육부와 전교조의 파워게임에서 전교조가 압도적 우위를 가지게 된 점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그 증거로 교과 편성권에도 관여할 정도로 교사들의 권력이 커졌고, 내신제도의 비중이 대단히 커진 이후에도 공교육 정상화의 흔적은 전혀 안 보인다. 그대신 자신들에게 확보된 기본 권리조차도 내신 부풀리기로 추락시키고 말았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입장에 처해 있다. 과거 촌지 거부 운동 등으로 교육계에 참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리라고 기대했던 전교조도 "인간이 탐욕스러운 동물이고 자신들의 이익에는 나약하다"라는 근본적인 한계는 극복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현 제도는 3 대 권력기관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제도를 골고루 나누어 가지고 있다. 수학 능력 시험(교육부) 내신제도(교사) 대학별 고사의 역할을 대신하는 심층면접, 논술 등(대학교) 참 절묘한 배합이 아닐 수 없다. 현 상황은 온갖 부작용은 도드라지고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논술 면접 등을 대비시키느라 온갖 명목의 사교육비가 지출되어 유래가 없는 이민열풍까지 일고 있다. 사교육비가 아무리 심했다한들 교육 이민 열풍이 이렇게 화두가 된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3 개의 거대한 이익단체가 야합하여 그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와중에 정작 보호받아야 할 학부모와 학생들의 편익은 어디로 가고 참교육의 이념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반성해 봐야 한다. 대학의 자율권과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선 대학별 고사가 적합할 것이고 사교육비를 줄이고 교육의 기회 균등이란 측면에서는 학력고사의 장점이 돋보인다. 어쩌면 고교평준화 정책 자체를 변경할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른다. 3 개의 거대단체에 대한 횡포에 대항하여 올바르고 충실한 교육서비스를 확보하기 위하여 학부모들간의 연대가 확대되어야 할 시점이고 참교육을 위하여 지식인들이 제대로 된 주장을 해야 할 때다.
교육이 붕괴되면 우리의 미래도 어두울 수 밖에 없다. / 독자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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