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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과 조중동은 '상생'을 외칠 자격이 없다
[주장] 각 정치세력의 과거 잘못에 대한 처벌 이후 통합과 상생 모색해야
 
이태경   기사입력  2004/04/25 [21:34]
4.15총선이 끝난지 불과 일주일여가 지났다. 탄핵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치러진 이번 총선결과로 향후 한국사회의 정치지형은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번 총선이 남긴 유산을 요약하자면 열린우리당으로 대표되는 중도보수정당의 원내 과반의석 확보, 민주노동당으로 상징되는 진보정당의 원내진출, 민주당과 자민련의 몰락, 영남패권주의와 박정희 향수에 터잡은 한나라당의 선전 등이 될 것이다.

중도보수정당이 의회의 과반수를 획득하고 진보정당이 원내 3당으로 발돋음한 것은 한국 정치사에서 자못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할 것이다. 이는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기 계속되었던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의 대립이라는 이중권력 상태가 상당정도 해소되고 일정수준의 개혁조치가 탄력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진보정당의 원내 입성에 따라 기존 보수정당들과는 차별화된 정책과 비젼이 국민들에게 제시될 수 있는 구체적인 단초를 얻었음을 의미한다.

바야흐로 의회의 다수를 점하고 있던 수구기득권세력들에 의해서 번번히 방해받던 개혁의 수레바퀴를 힘차게 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아울러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옹호자임을 참칭(僭稱)하고 있는 수구기득권세력들의 본질이 사익추구에 다름아님을 폭로하고 온전한 의미에서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추진할 수 있는 장이 열린 것이다.

해방 이후부터 시작되어 어언 60년간 고착되어 온 한국사회 각 부면의 모순과 부조리를 바로잡고 상식과 정의가 사회의 운영원리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냉전과 지역패권주의라는 구시대의 유물을 청산하고 각종 연고에 기댄 특권과 반칙들을 퇴장시킬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들리는 소리는 개혁이 아니라 상생(相生)이란다. 총선이 끝난 직후부터 한나라당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의 지면을 연일 덮고 있는 것은 상생과 통합이라는 단어다. 물론 열린우리당도 상생의 목소리를 내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다.

이데올로기는 각종 상징들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현현(顯現)된다. 그 상징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말과 글이며, 최근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주문처럼 외치고 있는 상생이라는 말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상생이라는 말은 의미상으로는 참으로 아름답고 좋은 말이지만, 그 말이 어떤 정치적, 사회적 맥락에서 사용되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용법을 갖는다.

총선 패배 후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상생을 외치는 정치적 배경과 맥락에는 피차간에 과거의 잘못을 더는 따지지 말고 덮자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긴다. 별다른 개혁과 변화 없이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유지하고 싶다는 심정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고 평가하면 그들의 충정을 지나치게 왜곡하는 것일까?

만약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상생이라는 단어를 그런 의미로 사용한 것이고 열린우리당도 이를 간파하여 호응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총선에 나타난 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총선 결과가 지시하는 것은, 정치세력 모두에게 사회 각 부면에 대한 근본적이고 간단(間斷)없는 개혁을 추진하라는 국민 대다수의 주문이다.

무릇 중한 병에 걸리면 이를 빨리 찾아내어 정확히 진단하고 적절한 처방을 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이다. 사회도 이와 같다. 이미 한국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전 부면에서 환골탈태에 버금가는 변화와 개혁을 단행하지 않고서는 지속적인 발전을 담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모든 정치세력이 한국사회의 각 부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모순과 문제점을 진지하고 철저하게 파헤친 후 이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는 일이다. 그 진단과 해법은 서로 다를 수 있고, 그 이름은 보수라고 불려도 혹은 진보라고 불려도 좋다.

또한 각 정치세력들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과 과오에 대해서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추상같은 처벌이 있어야 함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과거에 저질러졌던 과오에 대한 철저한 청산을 거치고, 새로운 한국사회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할 때 비로소 상생과 통합이라는 화두가 설득력을 갖게 될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지금 한국사회에서 상생과 통합을 운위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지금 한국사회에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사회 각 부면에 대한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개혁이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과 결과를 두 눈 부릅뜨고 지켜d야 하는 것은 허울 뿐인 상생이 시대정신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경계하는 까닭이다.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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