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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송가-그들이 대신 울며 부르다
크라잉넛, 못난 그 청춘들의 행운과 건투를 빌며ba.info/css.html'><
 
김별아   기사입력  2002/12/21 [13:41]
1.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내가 다니던 대학 교정의 상징물 독수리탑 근처에는 붉은색 스프레이로 함부로 뿌려 써진 낙서들이 가득 덮여 있었다. 그 대부분의 내용이 각각 다른 운동권 정파의 슬로건이었는데, 학교 당국에서 관리 용역을 총동원하여 매일 지우고 씻어내도 좀처럼 그 낙서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구호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AIDS만이 살 길이다!'라는 것이었다.

에이즈? 그것이 'Anti Imperial Direct Struggle'(반제국주의 직접투쟁)의 약자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그 시대를 직접 부대끼지 않은 사람이 지금 그 뜻을 쉽게 이해하려면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나 체첸 반군을 연상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 정치적 혼돈 한가운데를 빠져나오는 동안 에이즈라는 낯선 단어는 어느새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후천성 면역결핍증)이라는 새로운 의미로 해석되고 있었다. 21세기의 흑사병이며, 프리섹스주의에 도덕이나 제도보다 더 강력하게 태클을 거는 공포의 질환, 그 역시 에이즈였다. 이를테면 구호를 그때 식으로 바꾼다면 'AIDS는 곧 죽는 길'인 셈이다.

시간의 흐름은 그 파격적인 의미 사이의 간극보다는 훨씬 더뎠다. 그때의 에이즈와 지금의 에이즈를 서로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다르게 만든 세월은 고작 십 년, 때로는 강산을 변하게 만들만큼 위력적이라고 하나 때로는 잠깐 사랑했던 한 사람을 잊기에도 너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지난 1990년대는 서로 다른 두 에이즈의 의미만큼이나 커다란 진폭으로 한국사회를 흔들었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식의 언어로는 1990년대를 설명할 수 없고, 1990년대 식으로는 1980년대를 회상하기 어려웠다. '주변인'의 자격인 십대로 1980년대를 보내고 여전히 '질풍노도'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한 채 이십 대로 1990년대를 보낸 나로서는 세기가 바뀐 200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거친 숨을 고르며 그때를 돌이켜 볼 수 있을 정도이다.

기실 내게 1990년대는 다수의 젊은 세대가 그러하듯 서태지 전과 후로 나뉘어 기억되는데, 이미 서태지가 데뷔하던 1992년에 이십 대 중반으로 들어선 터라 그 의미와 영향이 당시의 십대나 이십 대 초반과 또 달랐다. 나는 양다리의 전형적인 꼴이었다. 전의 애인을 부정하지도 못하면서 후의 애인을 포기하기도 싫고, 둘 다의 장점에 매혹되면서도 단점 또한 여실히 알고 있는. 그래서 결국 어느 쪽으로도 온전히 포함될 수 없었다. 양쪽 어느 편으로도 쉽게 기울지 못했고, 양쪽을 이해하면서도 여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측면 또한 있었다. 나는 무언가의 추종자가 되기에 이미 늦어버린 것이었다.

다만 새로운 조류, 새로운 세대의 신호탄처럼 등장한 서태지가 쏘아댄 노래 한 구절에 가슴이 쓰렸던 기억이 있다. 그에 의하면 1980년대의 꿈을 잠시나마 꾸었던 나는 이미 낡고 늙은 타파의 대상 같았다.(물론 서태지의 의도와 상관없는, 나만의 '제 발 저림'이다)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에 아직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 <환상 속의 그대> 中


그렇게 1990년대가 시작되었고, 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늙었다고 말하기엔 민망하지만 더 이상 젊다고 말하기 힘든, 그런 '기성세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십대, 그리고 이십 대 초반에 얼마나 들끓었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왜 그리도 방황해야 했고 고뇌해야 했는지도 서서히 잊어갔다.

{IMAGE2_LEFT}그때 우연히 그들을 보고 듣게 되었다.

이미 클럽에서 머리를 흔들다가는 몹시 위험한 육체적 질환을 보일 수 있는 나이였기에 처음에는 통신상의 소문으로 그들을 접했고, 음악을 먼저 들었고, 우연히 텔레비전에 나와 열악한 연주 환경에서 가까스로 라이브를 하는 어색한 모습을 보았다. 이름도 괴팍했다. 크라잉 넛, 울부짖는 땅콩이라니. 처음 인상으론 '연예인스럽게' 생기지 않은 모습이 낯설었고, 꽥꽥 놓아 지르는 노래도 이물스러웠다. 하지만 못생긴 애들이 볼수록 귀엽고 정이 갔다. 한 번 귓속을 파고든 노래에 시끄럽다가,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가, 어느덧 슬퍼졌다.


우리는 달려야 해 바보놈이 될 순 없어
말 달리자 말 달리자 말 달리자 말 달리자
--크라잉 넛 1집 <말달리자> 中


그래, 크라잉 넛의 노래는 슬펐다. 무릇 슬픈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자기만의 고립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지친 가족들을 대신해 망자를 위해 대신 울어주는 곡비(哭婢)처럼, 그들은 누군가를 대신해 노래 부르고 있는 것이다.

[관련기사]이우일, [Book Reviw] 크라잉 넛-그들이 대신 울부짖다', 대자보 94호

그제야 내가 빠져나온 그 시절을 고스란히 겪어내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여전히 젊은이들이 젊음 때문에 뒤척이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퍼뜩 깨달았다. 여전히 어설프고, 여전히 좌충우돌하면서, 여전히 상처입고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상처 입히면서, 여전히 그 때문에 아파하면서 살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었다. 비로소 다른 행성에서 온 것처럼 생경하게만 느껴졌던 그들이 언젠가 난리 통에 손을 놓쳐버린 동생처럼 애틋하게 느껴지기에 이르렀다.
그때 나는 막 서른 살이 되어가고 있었고, 그 길고 지루하던 1990년대는 바야흐로 막을 내려가고 있었다.

2.
예전에 불리던 노래의 가사가 아니더라도, 젊은 날에 젊음을 알기는 어렵다. 태풍의 눈이 고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막상 젊음을 향유하고 있을 때 그것의 실체를 생생히 느끼며 마음껏 즐기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그 아름다운 시절에 저주를 받은 양 방황하고 고뇌하기 십상이다. 구체적인 고민거리가 있어서도, 없어도 마찬가지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고통스럽다.

물론 아주 무뇌아적인 청춘도 없지는 않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그런 젊은 뇌없음족(특정 장애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기에 불가피하게 신조어를 만들어 쓴다)들은 일정한 비율로 존재해 왔다. 그들의 존재는 왜 발생하는가? 그들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젊음의 본질과도 같은 '방황'의 근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젊은 날의 방황, 헤맴, 정처 없음에 대해서는 이미 혜성같이 짧은 스물 네 해를 살고 삶 자체로 전설이 되어버린 영원한 젊음 제임스 딘의 대표작이 그 모두를 설명한다. 제목처럼 '이유 없는 반항'이다. 그러면서도 이유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그들이 반항하는 것은, 그 반항에 이유가 없어 보일 정도로 좌충우돌인 것은 바로 불안 때문이다.

불안, 사랑의 상실을 눈앞에 두고 흔들리는 육십 대 과부 할머니에게 아랍계 외국인 노동자 청년이 틀린 어법으로 가르쳐주는 속담, 그 독일 영화의 제목처럼 그것은 영혼을 잠식한다. 불안은 젊은 영혼 속을 파고들어, 그들의 연약한 뿌리를 움켜잡고 사정없이 뒤흔든다. 이제 막 사춘기의 터널을 빠져나와 세상 앞에 홀로 선 그들은 스스로를 알기 전에 맞닥뜨린 세계가 두려운 것이다. 그것과 어떻게 싸워야 할 지, 어떻게 타협해야 할지조차 모른다.

그토록 막대한 숙제와 버거운 과제 때문에 오히려 비겁한 포즈를 취하게 된다. 당장 맞닥뜨리기보다 도망치려 하기도 하고, 술에 취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허랑방탕하게 시간을 허비하려 한다. 몸은 다 큰 어른이고 가끔은 자신이 어른이라는 사실을 주장하고 싶어 하지만, 정작 스스로 생계를 꾸리고 진정으로 독립하기가 두려워 어린아이 흉내를 낸다. 칭얼칭얼, 그들이 한심해 보이는 건 당연하다.

아빠는 내게 말했지 넌 뭔가 이루어야 해
이제와 생각해보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데 이 좁은 방에서
--크라잉 넛 1집 <갈매기> 中


갑자기 어딘가에서 튀어나와 아무도 부르지 않는 자기네만의 방식으로 노래를 하기 시작한 네 명의 악동, 프로필이라곤 되는대로 지껄인 장난 같고 웬만하면 진지해지기 힘들 것만 같은 삐딱한 포즈, 엄청나게 신경 쓴 듯 아무 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걸치고 나온 듯한 우스꽝스런 입성......그러나 그 모두가 철저히 1990년대의 산물이었음을, 1990년대식 젊음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앞서 젊은 뇌없음족들을 말했고, 불안을 말했다. 이제 문제를 공식에 맞춰 풀어보자. 그렇다면 과연 이 시대의 젊은 뇌없음족들은 불안해서 방황하며 오두방정을 떨면서라도 자기 정체성을 찾아보려고 몸부림치는 한심한 족속들을 가리킴인가? 아니다. 그건 같은 공식으로 잘못 풀린 오답이다. 물론 그들 역시 지성과 교양은커녕 머리가 텅텅 비어있음은 마찬가지일 수 있다. 하지만 불안하기 때문에, 흔들리기 때문에 그들은 소수 젊은 뇌없음족의 왕좌에 오를 수 없다.

어느 시절 어느 세대에나 굳건한 이들이 있다. 편의상 이들을 불굴의 의지족이라 부르기로 하자.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의 능력을 강력히 믿는다. 그들은 머리도 좋고 인물과 집안도 좋고, 가끔은 드물게 성격까지 좋다. 설령 그 중의 한두 가지 조건이 빠진다 해도 불굴의 의지(!)로 그 정도의 콤플렉스는 간단히 해결한다. 그들에게 젊은 날은 가장 활발하게 공부하고, 일하고, 미래를 준비할 기간이다. 촌음이 아깝다. 술 마시고 연애하고 노닥거리면서 탕진할 시간이 어디 있는가. 그들이 박사도 되고 의사도 되고 판사 변호사도 된다. 정치를 이끌고 경제를 이끌고 이 나라의 미래를 이끈다. 이들의 눈에 방황하고 흔들리는 또래들은 바퀴벌레처럼 보인다. 꿈이 없는 한심한 놈들이다.

그런가 하면 아까의 뇌없음족, 그들은 거의 세습된다. 유전자로부터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다른 이유에서 방황하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 부모 세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었고, 자기들은 오로지 향유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앞길은 주름살 하나 없이 쫙 펼쳐져 있다. 그들에게 젊은 날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가장 즐기기에 알맞은 황금기다. 돈이 곧 지위이자 인격인 세상이니 두려워할 일이 어디 있으랴. 그들은 불굴의 의지족과 함께 가끔 텔레비전 드라마나 달콤 말캉한 유행가 사랑타령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곤 한다. 그들에게 불안으로 방황하는 젊음은 그저 구릴 뿐이다. 별로 맞닥뜨릴 일도 없고, 마주쳐도 서로에게 외계인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가진 능력도 변변치 않고 물려받은 재산도 없는 한심하고 꿀꿀한 청춘들은 어찌해야 할까. 그나마 음지의 바퀴벌레 같은 그들을 불러내는 것이 크라잉 넛의 노래 가사다. 그 속에서 그들의 존재는 확인된다.

때로는 겨울잠 자고 싶네 흰 눈이 내리면 너무 추워
개미들 열심히 일할 동안 술 취해 비틀거려나 보세
게으른 나는 바보 베짱이, 배짱도 없는 베짱이
그래도 나는 일하기 싫어 날보고 손가락질 한다네
--크라잉 넛 2집 <베짱이> 中


3.
젊음의 본래적 특질인 '불안'과 함께 크라잉 넛을 동세대의 발언자로 만든 또 하나의 요인으로 '이방인 의식'을 꼽고 싶다. 이 또한 젊음의 특성 중 주요한 것인데, 우선은 크라잉 넛의 네 악동들이 밴드를 결성해 모의 작당하기 시작한 백그라운드가 '동부이촌동'이라는 동네라는 것을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울부짖는 땅콩들의 고향인 그곳이다.

조선말기까지 모래벌판이었던 한강변의 작은 마을, 그 곳은 부동산 사이트에서 확인해 보면 알겠지만 서울 시내의 주거지 중 이른바 부촌, 부자 동네에 속한다. 그러면서도 강남과 또 다른 분위기를 지닌 지역으로 꼽히는데, 무엇보다 외인부락에 가까운 동네의 특성 때문일 듯싶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거의 대부분이 거주하는 지역이 바로 동부이촌동이며, 최초로 로바다야끼라는 형태의 일식집이 문을 연 곳도 바로 이 지역이다. 그 거리에선 슈퍼마켓과 빵집에서 외국인을 마주치는 일이 낯설지 않다.

배타적이기로 유명한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들이 거주지로 삼은 지역이라는 사실만으로 그 동네의 성격이 어느 정도 설명된다.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문화적인 세련됨이 있어야 하고 개방성과 포용성이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급격히 개발된 신시가지가 아닌 전통적인 주거지로서 안정성을 가진다. 그 곳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에게도 이런 분위기가 충분히 흡수되고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고질적인 패거리주의와는 거리를 둔 이국적인 문화가 그들의 감성을 어떤 식으로든 자극했을 것이다.

앞서 불굴의 의지족과 뇌없음족을 특이 형질로 분류해 놓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젊은 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중반까지의 젊은이들을 보통 '학생'으로 통칭해 부르지만, 이미 그 나이에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 직업인으로 생활전선에서 뛰고 있는 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칭얼거릴 여유도 엄살 부릴 겨를도 없이 가장이 되어 누군가를 부양하기도 하고 스스로의 노동으로만 생존할 수 있는 이들이다. 이들은 현재 젊음의 주류에서 밀려나 있다. 누구도 그들의 존재를 부러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며, 같은 세대를 형성하는 이들.

부잣집 아드님으로 자라났을 네 악동이지만 '이방인 의식'의 영향으로 낯선 것을 바라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이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여사님 보석들이 번쩍번쩍 비추네 작업복 공순이의 눈물들이 비추네
이것이 대한민국 거리의 불빛 인생을 즐길 것인가? 이렇게만 당하고 있을 것인가?
--크라잉 넛 2집 <더러운 도시> 中


쇼윈도우 속의 현란한 상품들로 유혹의 촉수를 뻗치는 소비의 거리 곳곳에는 말랑말랑하고 달콤달콤한 사랑의 찬가들이 울려 퍼진다. 그 역시 청춘 예찬이다. 하지만 그 젊음에는 독성이 있다. 힘이 없고, 돈이 없고, 젊지 아니한 사람들을 사정없이 밀쳐버리는 배타적인 젊음이다. 이 사회를 뿌리로부터 장악하고 있는 힘의 논리, 자본의 논리에 한 치도 예외 없이 찬동하는 유겐트다.

{IMAGE1_RIGHT}불굴의 의지족과 뇌없음족은 그 자체로 죄가 없을지 모르나, 이러한 논리의 그물 속에 처음부터 사로잡힌 상태다. 그들은 부정하지 않는다. 사회가 이미 치밀하게 축조한 상승의 계단을 차곡차곡 걸어 올라가거나, 부모의 비위를 맞춰 그들의 주머니를 울궈 낼 궁리에 골몰할 뿐이다. 그들은 더 이상 젊지 않다. 이미 노인으로 태어났거나, 자랄 수 없는 영원한 어린아이다.

그래서 크라잉 넛의 노래들은 저절로 불온해진다. 젊음의 다수가 앓는 고뇌와 방황의 병을 읊조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비주류에 속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서히 거대한 세상의 벽에 부딪혀 스러지는 소외된 이들에게 눈을 돌린다. 그들을 특별히 동정하거나 시혜하려거나 계몽하려는 것은 아님에 분명하다. 그들은 그저 있으면서도 없는 취급을 당하는 그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 또 다른 이방인들을 껴안으려는 것이다.

붉게 물든 슬픈 소녀여 새장 속의 새는 슬피 우네
스쳐지나간 손들이여 잊혀져간 나의 이름이여
--크라잉 넛 3집 <붉은 방> 中


4.
얼마 전에 약속 때문에 신촌에 갔다.
열아홉 해 동안 변방의 해안도시에서 자란 시골 계집아이에게 신촌은 서울 그 자체였고 서울은 곧 신촌이었다. 그리고 그 곳은 내 젊은 날의 눈물, 한숨, 가끔씩 빛났던 웃음이 고스란히 묻힌 장소였다.

하지만 십 년의 세월이 지난 후 다시 찾은 신촌은 너무도 낯설었다. 예전에도 대학가라기보다 유흥가에 더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긴 했지만, 지금의 규모와 화려함에 비한다면 예전은 소박한 셈이었다. 그 중에서도 신촌을 강북 지역 소비의 새로운 중심으로 우뚝 세운 일등 공신을 뽑자면, 단연 로터리에 떠억 자리를 잡은 재벌회사의 백화점에 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그 위풍당당한 모습, 진열된 고급품들, 정결하고 화려한 인테리어, 나긋나긋 상냥한 서비스......약속 시간을 맞추느라 한 시간 정도 그 속에서 머물렀다 나오니, 기운이 쭉 빠지며 절로 나른해졌다.

역시 물신의 위력은 대단하다. 누구의 모가지라도 잡고 흔들어 혼까지 쏙 빼놓을 수 있다. 없던 욕망까지 자아내, 미미한 욕망을 부추겨 무엇이든 사게 만들고, 쓰게 만들고, 소유하게 만드는 괴력이다. 나는 새삼 지금 젊은 날을 보내는 이들이 가엾어졌다. 얼마나 갖고 싶을 것이며, 갖지 못해 괴로울 것이며, 갖기 위해 내달려야 할 것이며, 그러한 욕망의 충동과 좌절을 매일 느끼며 살아갈 것인가.

나는 나 자신의 속물성을 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이 백화점이 떠억 버티고 서 있었다면, 나는 아마도 변혁이나 변화 따위의 말에 그토록 깊이 매혹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만난 젊은 친구들의 모습도 내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있지 않았다. 세상은 그토록 많이 변했다고 느껴지는데, 사람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여전히 젊음은 불안정하고 위태롭다. 가끔은 특유의 당당함으로 가슴을 쭉 앞으로 내밀며 호기를 부리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 모습이 차암 예쁘면서도 눈물겹다.

그들 세대는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어디에서 찾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더 이상 사회 변혁의 전위부대로 자처하지도 않고, 상아탑의 빛나는 지성으로 자부할 수도 없으며, 어딘가 있을 처녀지를 향해 모험심과 개척의지를 불태우지도 않는다. 대학생은 너무 많아 흘러넘치고, 학점에 목숨을 걸거나 아예 포기하고, 그래도 취업은 잘 되지 않고, 졸업을 미루고 미루다 밀려 백수나 백조가 되는 일이 특이상황도 아니고, 그럼에도 뭔가를 하긴 해야 할 것 같고, 이렇게 살 수는 없을 것 같고, 부모님처럼 되기도 싫고 부모님처럼 되는 일도 쉽지만은 않을 것 같고......

그들의 젊음은 한밤중에 들판을 걷는 일 같다. 캄캄하고, 정처 없다.

밤이 깊었네 방황하며 춤을 추는 불빛들 이 밤에 취해(술에 취해) 흔들리고 있네요
벌써 새벽인데 아직도 혼자네요 이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요
이 슬픔을 알랑가 모르겄어요 나의 구두여 너만은 떠나지 마오
--크라잉 넛 3집 <밤이 깊었네> 中


사랑 타령 안 하고도 사랑을 이야기하고, 쉽게 희망을 말하지 않고, 가끔은 위악적으로 오버를 해도 비굴하거나 비열하지 않은 크라잉 넛이 좋다. 사실 나는 <말달리자>나 <지독한 노래>보다 <밤이 깊었네>와 <몰랐어>가 더 좋다. 솔직히 말해 나보다 일곱 살 먹은 내 아들놈이 그들을 더 좋아한다.

언젠가 그들도 더 이상 스스로 젊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날을 맞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날의 빛나는 순간들을 다 잊는다 해도, 그들이 목 놓아 불렀던 그들 세대만의 노래, 청춘 송가는 순간 속에서 영원할 것이다.

언젠간 난 별이 되겠지 꿈을 꾸겠지 기억하겠지
어린시절은 꿈도 많았지 용감했었지 낭만 있었지 별이 되겠지
--크라잉 넛 3집 <만성피로> 中


못난 그 청춘들의 행운과 건투를 빈다.

* 필자 김별아씨는 [축구전쟁] [꿈의 부족] 작가이며, 본문은 '크라잉 넛-그들이 대신 울부짖다'(아웃사이더, 2002)에 수록된 글입니다.
* 인터넷 아웃사이더 바로가기 http://eoutsi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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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12/21 [13:4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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