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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의 '5.18' 소설과, 여성성의 후퇴
[정문순 칼럼] 피해자에게 짐 지우는 모성신화에 사로잡히다
 
정문순   기사입력  2013/06/18 [11:35]
올해 5.18을 한 달 쯤 앞두고 작가 공선옥이 광주에 바치는 소설을 냈다. 물론 공선옥에게 광주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1년 5.18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시민군의 후일담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광주 문제는 여성 서사와 더불어 공선옥의 서사를 이끌어온 쌍두마차이다. 그러나 하필 80년대가 아닌 90년대에 쓰기 시작한 공선옥의 광주 이야기는 결코 호의적인 환경을 만나지는 못했다. <자본론>의 낱장이 노점에서 번데기를 담아 주는 용기로나 쓰이는 당대의 탈이념화 물결 속에서 공선옥의 광주 서사는 세상이 외면하기 쉬운 것들이었다. 작가 스스로 인정하듯 철 지난 유행가를 혼자 부르거나 난파 당하는 배에서 홀로 버티는 것처럼 안타까운 몸부림으로 비치기도 했다.

▲ 광주의 아픔을 노래한 공선옥 작가의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 창비, 2013
그에 비하면 2013년에 부르는 광주의 노래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이하 <그 노래>)는 예전과 달리 외로운 외침을 탈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난 듯하다. 이는 5.18 광주가 아직 제대로 복권되지 않았음을 상기시켜주는 세력의 준동이 최근 잇달아 일어난 외부적 환경과 떼놓을 수 없다. 5.18을 훼손하려는 세력의 발호는 광주 서사가 결코 철 지난 노래가 아님을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외부적 환경을 배제하고 소설 자체로만 보아도 <그 노래>는 공선옥의 소설 계보에서 이전과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있다.

공선옥의 첫 소설인 <씨앗불>에서 세상으로부터 정신질환자로 손가락질 받는 시민군 출신 위준은 오랜 방황을 접고 제 마음 속에서 씨앗불을 지펴 내며 삶의 의지를 다진다. 그를 추동시킨 힘은 환경과의 교섭 없이 전적으로 그 자신의 내부에서 나온 것이었다. 물론 그런 극도의 주관적 낙관주의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없다는 것은 공선옥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위준을 제외하고는 공선옥의 초기 소설에서 제 정신을 차리고 사는 남자는 찾을 수 없다. 광주에서 역사의 중심에 섰던 남자들은 하나같이 5월이면 아프거나 집을 떠나거나 아이를 남기고 종적을 감추고 말며, 그 뒷감당은 고스란히 남은 여자들의 몫으로 떨어진다.

공선옥의 초기 소설들은 남자들이 역사로부터 받은 상처를 여성들이 어떤 식으로 감당하느냐 하는 데 쏠려 있었다. 남자를 따라 죽는 여자는 그나마 소극적인 선택을 한 경우다. 대부분은 남자가 내팽개친 아이를 돌보거나, 돌아올 기약이 없는 남자의 자식을 낳을 결심을 하는 등 남자의 상처를 자신의 일로 온전히 떠안으려고 한다. 심지어 역사의 피해자 위치에 서 있지 않은 남자의 경우에도, 즉 단지 외로움을 못 이겨서 가정을 돌보지 않고 외도를 하다 혼외 자식을 낳은 아버지라도 기꺼이 화해하고 배다른 자식마저 모성애로 돌보는 것이 5.18을 겪은 공선옥의 여자들이었다.

여자들이 광주에서 총을 잡아본 적도, 피를 흘린 적도 없다면 남자의 상처를 뒤치다꺼리 하게 만드는 것은 온당하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공선옥의 서사는 그 부분에 머물러 있지 않았으며 남자 일을 감당하는 것에서 그 자신이 직면한 삶과 응전하는 빈곤 여성으로 관심사가 옮겨졌다. 그런 공선옥에게 <그 노래>는 공선옥 문학의 젖줄이 여전히 광주에 있음을 다시금 되새겨 주고 있다.

<그 노래>의 정애는 초기 공선옥 소설의 남자들처럼 광주의 직접적인 피해자로 등장한다. 공선옥이 광주의 피해자로 여성을 그린 적이 있었던가. 그동안 공선옥의 여성들은 남자들의 상처가 전이된 2차 피해자들이었다. 연전에 나온 <꽃 같은 시절>에서 비로소 광주의 피해자로 여성이 등장한다. 그러나 소설의 주된 관심은 광주항쟁 당시 헌혈하러 병원에 가던 도중 유탄을 맞고 사망한 여학생이 아니라 그 죽음이 주변 친구들에게 끼친 영향이었다. 이에 비하면 <그 노래>는 광주의 상처를 피해자 스스로 말하게 함으로써 이전의 소설들과 변별을 이룬다.

이때 피해자의 말은 예사 언어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거나 노래 같기도 하고 주문처럼 들리기도 하는 것들이다. 정애가 “군인들이 사람들을 죽였던 그 봄날의 한밤중” 군인들에게 몹쓸 짓을 당한 이후로 입에서 내뱉는 “수리수리마수리 수수리 사바하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아바아바사융기샹가바”는 “사람이 말로는 더 어떻게 해볼 수 없을 때 터져나오는 소리인데 보통의 사람들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정애는 열 다섯 살에 부모를 잃고 동생들을 데리고 광주로 이주하면서 일찍부터 한 가족의 엄마 노릇을 한다. 가난한 집 딸이자, 조실부모한 미성년이자, 도시의 하층 여성인 정애의 몸에는 세상의 폭력이 집중적으로 가해졌다. 정애의 가해자들은 고향 새정지에서 이웃으로 살던 남자 어른들, 밤 늦도록 오지 않는 동생을 찾으러 나간 광주 시내에서 맞닥뜨린 군인들, 다시 새정지로 돌아온 후의 아버지뻘 마을 남자들이다. 이들의 폭력에 대해 정애는 어떻게 대응했나. 정애의 대처 방식은 저항이 아니었다. ‘노래’라는 비의적인 차원의 방식이었다. “노래를 부르면 몹쓸 짓을 하던 사람들이 웃다가 울었다. 울면서 그들은 도망을 갔다. 욕을 하면서 갔고 총을 쏘면서 갔다.”

같은 광주의 피해자이지만 정애의 태도는 시민군 출신으로 출소 후 정신이상을 일으켜 아내 묘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다 자신이 겨눈 칼에 도리어 죽고 마는 ‘오일팔 또라이’ 용재와 사뭇 다르다. 정애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으며 자신의 슬픔을 남에게 투사하기보다 거꾸로 가해자가 준 세상의 폭력을 그 자신이 고스란히 받아 안는다. 정애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정애는 가해자의 아픔을 대신 앓는다. 약 먹고 잠을 잘 때만이 아픔을 쉬게 할 수 있다. 오월 광주를 잊고 사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정신 이상자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정애의 주술 같은 말과 노래는 세상의 폭력을 고스란히 자신의 속으로 받아들인 결과이다.

정애 입에서 수시로 나오는 “우리 집 다무락에 도야지 피는 끈적끈적 이발소 솥단지에 도야지 지름이 찐덕찐덕”이라는 노래는 음산하고 기괴함을 자아낸다. ‘피’와 ‘기름’은 뒤섞일 수 없는 상극이지만 ‘끈적끈적’, ‘찐덕찐덕’이라는 유사한 속성을 갖추고 있다. ‘피’ 흘린 피해자 정애와, 정애로부터 ‘기름’을 착취해 낸 성폭력 가해자 이발소 주인 ‘오샌’은 결국 만나게 되어 있는가?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가해와 피해의 소통 가능성이다.

정애는 가해자의 폭력을 수용했지만, 정애의 고향 친구인 묘자는 그렇지 않았다. 폭력에 대해 폭력으로 맞서다 그 자신이 가해자의 위치로 뒤바뀌었다. 물론 시민군 출신 용재와 사귀며 그를 돌보았음에도 그의 폭력에 시달리다 살인자로 전락하는 묘자는, 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보였다는 점에서 공선옥의 광주 서사에서 보기 드문 인물 유형일 수 있다. 그러나 묘자 역시 공선옥의 초기 소설처럼 역사의 정면에서 비껴나 있는 존재이면서도 역사의 상처를 고스란히 감당했던 여자들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광주의 직접적인 피해자도 아닌 여성에게 피해자를 감당하도록 맡긴 것은 무리였다.

공선옥의 <내 노래>는 5.18을 역사의 한복판에서 정면으로 감당한 여성의 목소리를 알려 주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5.18은 30년이 넘은 역사가 되었고 공식적인 복권을 이루었어도 역사의 엄중함을 할퀴는 세력의 준동 때문에 5.18의 주역들은 여전히 설 자리가 없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다. 유공자 대우를 받으며 당당히 살아야 할 5.18 희생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계속되고 있다. 계엄군의 유혈 진압과 잔인한 고문 속에서도 살아남은 후 남은 인생은 덤이라며 잘 살아보자고 동료들을 다독이던 시민군 출신이 끝내 자살을 선택하거나, 공식적으로 복권된 지 십 수 년이 흘렀어도 어떤 지역에서는 여전히 ‘폭도’라고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참혹한 현실이다.(영화 <오월애>)

그러나 공선옥처럼 광주에서 피 흘린 정애를 새와 바람과 쥐와 소통하다 고통도 한숨도 없는 저 세상으로, 바람이 어루만지고 달빛이 태워주는 곳으로, 이승의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노래가 충만한 곳으로 떠나보내는 초월적인 대책이 과연 온당하기만 할까. 세상이 무엇 하나 해준 일 없이 폭력으로 짓밟은 여성을 끝내 “몸 없는 혼”으로 만든 것이 온당한 대접인지 의문이다. 그건 세상과의 적극적인 응전이나 교섭을 통한 해결책을 포기하고 모성 신화에 붙들린 작가의 손쉬운 선택은 아닐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는 초월적인 선택을 하거나 먼저 손을 내밀고 화해를 청하기에는, 광주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렸고 지금도 피가 그치지 않고 있다.

“혹시 지금 내가 누리는 이 행복이 누군가에게는 슬픔이 되지 않을까. 따뜻한 내 집 창밖에 지금 누군가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지는 않은가 노심초사해야만 겨우 안심이 되는 못말릴 습성이, 노인네들처럼 온갖 세상 세상 근심 걱정 다 떠안아야만 겨우 내가 사람 노릇하고 있는 것같이 느껴지는 이 딱한 습벽이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란 말인가.” 
 
<꽃 같은 시절>에서 작중 화자의 입을 빈 공선옥의 이 진술을 공선옥에게 도로 돌려주고 싶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남 걱정을 여성들이 대신 하게 하는 공선옥의 “딱한 습벽”이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란 말인가. 광주가 그렇게 만들었나? 내가 보기엔 작가의 본연적 기질이 그런 것 같다. 공선옥의 여자들은 초기에는 피해자 남자들이 부려놓은 짐을 치우더니 이제는 그 자신이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의 몫까지 감당한다. 적어도 <내 노래>에서 공선옥은 “<어머니의 신화>에 자족”한다는 초기의 평가에서 크게 발전한 것 같지 않다. 오히려 후퇴가 아닌지 안타깝다. 다른 일에서는 대차고 씩씩한 엄마들을 그리는 작가가 5.18에는 왜 이리 약해지는지 알 수 없다. 5.18은 문학적으로도 작가들이 아직 넘어서지 못할 벽인지도 모른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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