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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미소, 내공 깊은 소리꾼 서도명창 유지숙
[김영조의 이 사람]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로 토종뮤지컬 만들어
 
김영조   기사입력  2011/05/31 [14:22]
 *  <김영조의 이 사람>은 한국의 전통문화 발전과 올바른 역사 의식으로 겨레문화 뿌리를 든든히 해온 분을 소개하는 마당입니다. 이 시대에 말없이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계신 분들을 찾아 직접 만나보고 그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생각과 역사의식을 캐내는 작업을 하려는 것입니다, 많은 애정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 향두계놀이 공연 한 장면, 가운데 유지숙 명창     © 김영조

나는 국악을 전공한 적도 없고, 실제 연주해본 적도 없다. 그래서 국악과 관련된 취재를 하고 글을 쓸 때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해야 그들의 세계를 제대로 표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말이다. 그런 과정에서 ‘예술도 예술인 자신과 주위의 삶을 풍요롭게 해야만 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곧 훌륭한 예술가란 예술 이전에 인격도야가 이뤄져야 진정한 예술의 세계를 펼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냄새 물씬 풍기는 예술가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 생각이 옳은 것인지 자신이 없을 때 만난 분이 이 시대 국악이론의 최고 권위자인 단국대 서한범 교수였다. 쟁쟁한 제자를 길러낸 서 교수는 “예술가이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자신과 이웃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갖지 못한다면 훌륭한 예술이 창조될 수 없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었는데 이는 내 생각과 일치되는 이야기였다. 이후 숱한 예술인들을 만나 글을 쓰면서 주로 내가 눈여겨보는 것이 예술성과 더불어 인간성이다. ‘김영조의 이 사람’ 코너를 만들면서 이에 걸맞은 사람으로 첫 번째로 꼽은 사람이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교육조교 유지숙 명창이다. 

유 명창은 공연장마다 청중을 몰고 다니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가 공연하는 무대마다 청중이 차고 넘치는 것은 그의 뛰어난 예술세계는 물론이려니와 그에 더하여 인간미 넘치는 그의 인품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서양 뮤지컬이 북적이는 분위기에서 토종뮤지컬인 추풍감별곡을 손수 만들어 서도소리의 매력을 한껏 돋운 실력파 유 명창은 기획·제작자로서의 카리스마만 있는 게 아니다. 국내 첫 시도인 토종뮤지컬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도 작용했겠지만 그를 따르는 많은 소리꾼은 유 명창의 따스한 인간미를 높이 사고 있다.

▲ 공연에서 제자들과 함께 소리를 하는 유지숙 명창     © 김영조


▲ 유지숙의 서도소리 제3집 북녘소리 <토리>     © 신나라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 서도소리에 연극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생동감 있는 무대로 만든 유 명창이지만 토종 뮤지컬 추풍감별곡을 첫 무대에 올릴 때는 뮤지컬 속에 나오는 매파역을 전문 연극인으로 배역한 적이 있다. 그러나 완벽한 소리 구성을 위해서는 역시 전문 소리꾼이 더 좋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과감히 제자를 기용했는데 이것이 크게 주효했다. 청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을 만큼 연극적인 요소와 소리영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제자를 신뢰하고 격려한 유 명창이 아니면 이루어 낼 수 없는 쾌거였다. 제자사랑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천부적 소리꾼’, ‘연습광’, ‘자선사업가’ 등 그의 별명은 많다. 그만큼 노력하는 소리꾼으로 그는 소리로서 승부를 거는 예술가이다. 그렇다고 옛 가락에만 안주하지도 않는다. 서도소리 창극인 토종뮤지컬을 만들어 대성황을 이룬 것만 봐도 그가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가 만든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은 2009년에 첫무대를 꾸며 해마다 선보이고 있다. 서도소리 뮤지컬인 이 작품은 채봉감별곡(彩鳳感別曲)이라고도 부르는데 순조(純祖)∼철종(哲宗) 연간의 작품으로 조선 후기 부패한 관리들의 추악한 이면을 폭로하고, 진취적인 한 여성이 부모의 명령을 거역하면서까지 사랑을 성취한다는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이야기 자체는 흔한 사랑이야기라 진부할 수 있지만 여기에 서도소리를 가미해 각고의 노력 끝에 토종 뮤지컬로 탄생시켰다. 구성진 소리와 함께 풍자와 해학을 보태 단순한 조선시대의 소설에서 현대인의 감성에 맞는 토종뮤지컬로 탈바꿈한 것이다.

▲ 평안도다릿굿 가운데 축원경을 하는 유지숙 명창     © 김영조

그런데 그가 더 훌륭한 것은 이러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데 드는 비용을 제대로 지원받는 곳이 없이 얇은 호주머니를 털어 공연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나 기업의 튼튼한 지원만 있어도 토종 뮤지컬은 한국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전 세계로 뻗어 나갈만한 수준인데 안타깝다. 

올바른 전통의 계승은 “법고창신(法古創新)” 해야 한다고 했던가? 옛것에 그 바탕을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털끝 하나 안 건드리고 옛것만 고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변화를 준다면서 된장 냄새는 전혀 나지 않고 버터 냄새가 나게 하는 국악인도 있다. 이것은 자칫하면 국악이 도태할 수도 있는 위험한 자세이다. 그에 견주어 철저히 기본을 공부하고 그 기본 속에서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유 명창의 법고창신 자세는 국악이 현대와 살아 숨 쉬고 세계로 발돋움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철학이며 유 명창은 바로 그런 법고창신 진수를 잇는 소리꾼이다. 

내가 꼽는 “이 사람”의 첫 번째 인물은 그런 점을 두루 갖춘 유지숙 명창이 적격이다. 앞으로 이러한 “법고창신”의 세계를 추구하는 명인들을 찾아나서는 첫걸음을 유지숙 명창으로 시작하여 한 걸음 한 걸음 한국의 위대한 예술가들을 찾아 나서고자 한다.



 



자신을 끝없이 성찰하고 닦아내는 것만이 나의 길이다
[대담]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교육조교 유지숙 명창

 
▲ 대담하는 유지숙 명창     ©김영조

 

-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서도소리로 스타란 평가를 듣는다. 그리고 관객과 많은 공연자를 몰고 다닌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서도소리의 스타라는 말은 참 쑥스럽다. 나는 일단 오시는 손님들을 거의 일일이 전화로 직접 확인해서 자리를 정해드리고 공연한 다음 날은 공연평과 문제점을 확인하면서 가신 뒤의 안부를 꼭 확인하는데 그래서 한번은 귀가 너무 아파 전화를 못 받은 적도 있었다. 또 공연자들은 각자의 개성과 소양을 살펴 배역을 정해주고 무대가 즐거워야 객석이 즐겁고 재미있다는 것을 공연자 스스로 알게 하면서 자유로이 감정을 표현하게 하다 보니 그런 결과가 나  온 듯하다. 그리고 청중들이 나를 위해 손뼉을 쳐주고 격려해 주시는 것에 당연히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데오히려 팬들은 그것을 겸손으로 높이 치하해주시니 더욱 큰 용기로 재생산되니 좋은 공연이 되는 것 같다. 

- 남들이 시도하지 못하는 토종 뮤지컬을 만들고 있다. 무척 어려운 일일 텐데 그렇게 해야만 하는 사연이라도 있는가?

내가 토종뮤지컬을 만드는 까닭은 어렵게 공연을 만들어 이해하기 어렵게 하기보다는 자연스럽고 편하게 공연을 보게 되면 극적인 재미와 함께 저절로 서도소리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대중 속으로 서도소리가 스며들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소리를 왜 몰라주느냐고 하기보다는 ‘이래서 서도소리가 좋다.’라고 외치고 싶은 것이다. 또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기에 어렵게 이어오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서도소리가 세상 사람이 좋아하는 날이 올 수만 있다면 끝까지 열정을 태울 생각이다.

- 대부분 소리하는 사람들은 그저 소리에만 파묻힌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야기가 있는 공연을 추구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국악을 감상하는데 제일 어려운 부분은 그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서도소리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야기가 있는 공연을 해야 하고 또 그럴 때 청중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설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소리가 왜 생겨났는지, 내용은 무엇이며 무엇을 뜻하는지를 실제 나도 공부를 많이 하게 되고 청중의 이해도 한층 높일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이런 공연형태는 끊임없이 시도할 것이다.

- 요즘 젊은 국악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즘 젊은 국악인들은 재미있고 즐거운 공연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새로운 퓨전형태의 음악을 많이 연주하려고 한다. 특히 내 제자들이 "별악"이라는 팀을 만들어 새로운 형태의 공연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데 서도소리를 새롭게 해석해 얹고 한소리를 가지고 장단의 변화를 주어 다양하게 변화를 시도하며 현대적인 의상으로 무리 없이 공연하고 있어 이런 공연도 서도소리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는 생각이 들어 기쁘다. 다만, 이것이 잠시 시도해보는 것이어야 하고 결국은 전통의 길로 다시 되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감각적이고 순간적인 것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국악은 도를 닦는 길이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의 삶과 인격, 철학 모든 것이 음악에 실리기 때문에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닦아내지 않으면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닦아도 끝이 없고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은 "도"의 길과 같은데 그것을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 

-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소리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좀 더 이론적인 공부를 많이 하고 싶다. 무대에 서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서도소리에 어느 정도 음악적인 마무리를 하고 나면 공부를 좀 더 하여 서도소리의 깊은 멋과 흥을 글로 남기려는 욕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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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5/31 [14:2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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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형 2011/06/04 [22:18] 수정 | 삭제
  • 아 우리도 이제 토종뮤지컬을 볼 수 있나요?
    토종뮤지컬 꼭 보고 싶네요
    유지숙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씀 드립니다.
  • 신소희 2011/06/03 [06:12] 수정 | 삭제
  • 판소리라는 말은 들었어도 서도소리란 말은 처음입니다. 그만큼 국악을 몰랐다는 뜻이네요.더구나 토종뮤지컬을 만들어 공연한다니 꼭 보러가고 싶습니다.언제 어디서 하는지 알 수 있다면 좋겠는데요. 부지런을 좀 떨어야겠지요? 좋은 기사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