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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성범죄에 관대한 이유는
[정문순 칼럼] 성적충동 아닌, 폭력충독…약자 배려 없는 사회가 '주범'
 
정문순   기사입력  2009/10/19 [21:49]
남의 일 같았는데 남의 일이 아닌 것이 돼버린 일. 아니 남의 일이 내 일이 될지 알 수 없다는 불안은 늘 있었다. 제 철 만난 듯 빈발한 미성년 성폭력 기사를 보며 나는 울적해진다. “미성년자 입맞춤 추행 30代 집유” 이 기사는 그대로 내가 겪은 일이 돼버렸다.  

부엌에서 그릇을 부시고 있는데, 옆방에 가만히 있던 딸이 나를 불렀다. 대뜸 ‘갑이 아저씨’를 아느냐고 묻는다. 아이 아빠와 알고 지내는 사내 이름이다. 나이는 서른 어름쯤.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몰랐다. 내가 모르는 이름을 아이는 어떻게 아는가? 자기 아빠와 둘만 있을 때 집에 몇 번 왔더란다. “나, 그 아저씨가 싫다.” 평소 꾀꼬리 같이 요란하던 아이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는 이유를 그 순간에도 몰랐다. 왜 그러냐고 무심하게 던진 질문에 대해 아이가 내 눈치를 보며 이야기를 꺼낸다.  

며칠 전의 일이다. 그 자가 집을 찾아와서 아이 아빠와 술을 먹었다. 애 아빠가 중간에 두 번 자리를 비웠단다. 그때 아이는 자기 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한창 흥에 빠져 있는데 방문이 열리더란다. 설거지 하는 손이 떨렸다. 아이가 풀어놓는 이야기의 실타래를 들으며 머리카락이 곤두섰지만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실타래를 차근차근 정리하는 건 내 몫으로 넘어왔다. 부모가 자제력을 잃고 흥분해버리면 아이는 위축되거나 말문을 닫을지 모른다. 
 
▲ 이른바 '조두순 사건'을 처음으로 알린 KBS <쌈>     © KBS

연신 아이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엄마가 해결해주겠다고 달래며 대범한 모습을 보였지만, 가슴 속은 화산이 폭발하고 있었다. 아이가 기억을 잊어버리기 전에 진술을 기록했다. 아이의 생각과는 별개로 난 처음부터 처벌하겠다는 결심이 확고했다. 그러자니 아이를 설득해야 했다. 엄마가 해결하겠으니 믿고 따르라고 했다. 아이의 지금 생각을 물어보았다.  

-마음 상태: 불쾌하고 수치스럽다. 그때 생각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어느새 생각은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 있다.

-바라는 것: 처벌할 수 있다면 처벌을 바란다. 단 절대로 대면하고 싶지는 않다. 대면을 해야 한다면 경찰에 가지 않겠다.  

곧바로 가해자의 연락처를 캐어내 전화했더니 크게 놀라며 당장 만나자고 한다. 찻집에서 만난 가해자는 내게 커피를 권했으나 마실 생각은 없었다. 아이의 진술 내용을 보여주었다. 아이 방에 여러 차례 들어가 애인이 없으면 자기와 사귀자고 하며 아이의 몸매까지 거론하며 싫다는 아이를 집요하게 추근댄 후 강제추행한 것이 맞느냐고. 뻔뻔스럽게 오리발을 내밀 경우를 걱정했는데 다행히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범행을 순순히 인정한 것도 아니다. 만취해서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자는 살려달라고 하며 눈물을 보였다. 이미 폭력 전과도 있단다. 자기한테 세 살짜리 아이가 있다며,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사정을 봐달라고 했다. 이건 코미디인가. 어이가 없어 뒤로 넘어갈 뻔했다.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여성의 전화’에 찾아가 도움을 청했더니 상담자가 담당 형사와의 대면 날짜를 잡아주었다. 아이는 정해진 날에 여자 형사의 조사를 받았고 그 장면은 비디오로 녹화되었다. 검찰에 사건이 넘겨진 후 경찰에서 오라는 연락이 왔다. 검찰에서 아이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며 보완 조사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했다. 대질조사까지 갈 수 있다는 형사의 말을 듣고 아이의 간곡한 뜻을 전하느라 식은 땀이 흘렀다.  

얼마 후 기소되었음을 알리는 검찰 통보를 받고는 일단 마음이 놓였다. 벌금형으로 끝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었다. 마음은 재판 결과가 어떻게 되나 신경이 곤두섰지만 엉뚱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두려워서 알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 채로 몇 달이 흘렀다. 법원에서는 아무 통보가 없고 여전히 내 편에서 알아보길 주저하고 있는데, ‘여성의 전화’ 상담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사건 결과가 어떻게 됐느냐고 묻기에 모른다고 했더니, 대신 알아보고는 연락이 왔다.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신상공개자로 등록. 피고의 항소는 없었단다. 재판이 끝난 지 이미 2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무심한 보호자도 다 있네’ 하는 생각이 상담자의 음성에서 읽혔다. 나는 민사소송을 준비하겠다고 말해주었다. 

검찰에서 판결문을 떼어 보니 차라리 안 보는 게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고와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에서 전가의 보도로 쓰이는 예의 ‘음주’를 들고 나왔다. 재판부는 음주로 인한 피고의 심신미약 상태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술에 취한 건 참작한다고 했다. 범행 당시 아이가 거부하자 더 이상 범행을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도 참작한다고 했다. 판사는 피해자 진술서를 제대로 읽어나 보았는가.  

범행 후 아이가 제 입을 손으로 막으며 저항하자 그 자는 손을 떼라고 하며 아이를 압박했다. 그때 인기척이 들려 범행을 중지했을 뿐이다. 더욱이 아이는 그 자가 술에 취한 것 같지 않았다고 진술했는데 판사는 누구의 말을 더 신뢰했다는 것인지. 설령 술에 취했기로서니, 재판부가 일부러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여러 차례 아이의 방을 무단으로 들어와 점점 수위를 높여가며 가해를 행사한 자의 주도면밀함을 단지 술에 취해 정신이 없는 사람의 행동으로 판단한 근거는 무엇인가. 나한테 연락 한 번 없었던 검찰은 집행유예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항소하지 않았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 한 줄의 글에도 판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자신에게 배당된 사건에 대해 얼마만큼 고심했는지 묻어난다. 술 마셨다는 피고의 말을 무조건 믿고 음주를 감형 요소로 받아들인 판사는, 정말 피고가 만취했을 경우 아이가 혼자 힘으로 맞닥뜨렸을 공포에 대해 짐작이나 해보았는지 의심스럽다. 음주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사유로 인정된다면, 술 마신 가해자가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피해자의 공포와 불안은 얼마나 큰지 고려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판단 없이 술에 취했으니 봐줘야 한다는 주장은 가해자의 책임을 덜어 피해자에게 떠넘기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면 성립될 수 없는 논리다.  

법원이 가해자가 주장하는 범행 당시 상황을 형벌의 참작 사유로 삼는 한 범행은 물론이고 피해자가 직면했던 고통스러운 환경에 대한 고려나 배려가 없음을 스스로 실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이는 가해자가 어른이니 그 와중에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아이는 공포 속에서도 나쁜 놈에게 꼬박꼬박 공손하게 말대답을 해주었고 화를 내거나 불쾌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도 못했다. 나쁜 놈의 말도 안되는 요구에 대해 “제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어요.” 라고 조심스럽게 대꾸하거나, 범행하는 놈의 몸을 밀쳐내며 하지 말라고 소극적으로 저항한 것이 아이가 대처한 방식이다. 공포감 속에서 실컷 소리 지르거나 욕하는 적극적인 응대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아이의 당시 처지를 생각하니 아직도 머리에 피가 몰릴 것 같다. 법원이 범인의 확실하지도 않은 만취 상태를 참작해주는 역할을 맡는다면, 마음 놓고 소리 지르지도 화를 낼 수도 없었던 아이가 받았을 스트레스와 공포에 대해서는 누가 배려할 수 있는가.  
 
▲ (자료사진)     © AP통신

취객으로 인정한 자의 범죄를 가볍게 봐주겠다고 마음먹은 재판부에게 성장해가는 미성년 아이에 대한 배려를 기대하는 것도 내 과욕인가 보다. 판사도 기성세대이고 어른이다. 어른으로서 성장기에 있는 세대에 대한 자기 나름의 판단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커가면서 혹시 성(性)과 관련하여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지는 않을까,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자긍심을 가진 성년으로 커갈 것인가 하는 염려는 찾아볼 수 없다.  

성폭력 가해자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오는 데 음주가 톡톡히 기여하는 것으로 드러나자 한국사회가 음주문화에 관대한 탓이라는 진단이 흔하다. 틀렸다. 술을 누가 먹었느냐에 따라 다르다. 한국 사회는 오직 남자의 음주에만 관대할 뿐이다. 성폭력 피해 여성이 술을 먹었을 경우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은 수많은 판결이 말해준다. 

국가가 성폭력 가해 남성의 음주에 관대한 것에는 가해자가 술을 먹지 않았다면 성범죄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작용하고 있다. 특히 미성년자가 성범죄 대상일 경우에는 가해자가 음주한 상태가 아니라면 어린 피해자를 성적 대상으로 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러나 성폭력은 성적 태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폭력일 뿐이다. 성폭력 가해자가 미성년 피해자에게 느낀 것은 성적 충동이 아니라 폭력에 대한 충동이며, 어디까지나 폭력을 행사하기 위한 도구로 성이 동원되었을 뿐이다. 성폭력을 약자에 대한 폭력이 아닌 성적인 욕망이나 충동으로 환원하는 한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상습적 성범죄자에게 화학적 거세가 실시되어도 별반 효과가 없는 것은 성욕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자는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다른 방법으로 약자에 대한 폭력을 시도할 것이다.  

미성년에 대한 성범죄는 아이에게조차 충동을 느끼는 이상 성욕자의 변태적 행위가 아니라 어린이나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나 관용이 없는 자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 이를 간과할 경우 국가가 성범죄에 왜 그렇게 관대한지, 미성년자가 피해자인 경우에도 음주 따위 핑계를 대며 범죄자를 봐주는 데 기우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성범죄에 대한 관대함은 약자에 대한 감수성이 없는 한국 사회의 지배적 정서를 고스란히 반영할 뿐이다.  

미성년자 강제추행에서 집행유예 이상이 나오는 것은 통계적으로 희귀한 일이라고 알고 있다. 그럼 나는 운이 좋은 경우일까? 아니다. 피고에게 폭력 전과가 없었다면 집행유예는 필경 힘들었을 것이다.  

그 뒤로 아이와 한 번도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다.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도 해주지 않았다. 괜히 여린 마음에 생채기를 낼까 조심스럽기만 하다. 명랑하게 보이는 아이의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떤 기운이 잠재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아이한테 나는 죄인이다. 한동안 집에서 혼자 있는 것조차 무서워졌다고 말했던 아이다. 가장 안전해야 할 집에서조차 어미 새는 연약한 새끼를 지켜주지 못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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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0/19 [21:4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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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우스트 2009/10/21 [16:55] 수정 | 삭제
  • 난 이게 더 궁금하다. 자국민 성범죄는 성희롱까지도 난리를 치는 언론이 외국인 성범죄(성범죄 살인까지도)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 은폐, 축소보도를 하는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