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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말 드러난 '국정원 사찰'…박원순 '분노'
박 이사, 귀국 후 첫 기자회견 "MB 반드시 실패"…국정원 '사찰' 전말 공개
 
이석주   기사입력  2009/09/17 [12:24]
국정원으로 부터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하는 과정에서 미국에 체류해 있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귀국 후 이번 소송과 관련한 첫 공식입장을 17일 표명, "국정원이 자신과 연관된 다수의 단체를 사찰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의 전방위 사찰 "좌파단체 왜 후원하나"…박원순 "실제는 더 심각"

박원순 상임이사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백승헌 회장과 함께 이날 오전 서울 평창동 희망제작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가 힘겹게 일궈온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성, 자유와 가치, 삶의 질 등 그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박 이사는 '진실은 이렇습니다'(A4지 14페이지 분량)란 제목의 자료를 통해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일련의 상황과, 국정원의 전방위 사찰, 국가권력의 민간단체 개입 사실을 설명한 뒤 이명박 정부를 강도높게 비판하며 향후 대응방안 등을 밝혔다.
 
▲ 박원순 상임이사와 백승헌 민변 회장은 17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정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 CBS노컷뉴스

박 이사는 먼저 "참여연대를 떠나 '투쟁'과 거리를 둔 제가 아름다운재단에서 활동할 당시, 하나은행과 함께 '하나희망재단'을 설립하고 마이크로크래딧 사업을 추진했지만, 올해 초 갑자기 하나희망재단 이사회에서 사업을 중단하겠다는 연락했다"고 전했다.

박 이사는 "이후 하나은행의 한 임원이 저에게 '국정원 직원들이 이 사업에 개입해 희망제작소와의 협력관계가 중단되었다'고 말했다"며 "이밖에도 다른 경로를 통해 개입사실을 들었다. 국정원이 개입한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다"고 잘라 말했다.

박 이사는 '아름다운 가게'와 관련해서도 "이명박 정부의 사찰과 억압의 망령이 이곳에까지 손을 뻗쳐왔다"고 폭로했다. '아름다운 가게'는 헌 물건을 기부받아 이를 판매한 뒤, 남는 수익을 자선에 사용하는 순수 민간 자선단체이자, 친 환경단체다.

박 이사에 따르면, 올 4월 '아름다운 가게'가 모대학에 카페 매장을 개설할 당시, 국정원 직원이 해당 대학 총무과를 찾아와 "좌파단체들의 자금줄이며 운동권 출신 직원들이 대다수인 아름다운가게를 후원한 사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6월엔 이 단체를 지원하고 있는 모 은행 담당자에게 국정원 직원이라고 밝힌 사람이 "아름다운가게와 무슨 관계가 있길래 오랜 시간 많은 돈을 지원했느냐"고 문의한 사실도 밝혀졌다. 명백한 '민간 사찰'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 이사는 "실제 문제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며 "이러한 국정원의 행태를 일반 대기업들이 모를 리 만무하다. 대기업들의 정보력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상호간에 이러한 정보를 유통까지 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와 함께 "아름다운가게나 희망제작소의 일에 대한 국정원의 사찰과 압력은 당연히 알려지기 마련"이라며 "우리는 그 이상의 수준이라고 단언한다"고 못박았다.

이명박 정부, 뉴라이트 관계자 물갈이 뒤 거액의 정부보조금 지원

박 이사는 자신과 관련한 단체 이외에도, △사회투자지원재단,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회연대은행 등에 대해서도 국가기관이 사업을 취소하거나 운영과 관련한 압력을 행사하는 등의 사례가 공공연히 이뤄져 왔다고 주장했다.

박 이사 주장에 따르면, 실제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경우엔 보건복지가족부의 실무 담당자들이 이 단체의 사무총장에게 연락해 사퇴를 종용했으며, 심지어 "감시를 하겠다", "아래 사람들까지 힘들게 만들겠다"고 압력을 넣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이사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엄연히 민간기관인데 임기까지 있는 상임이사를 이렇게 쫓아내는 것은 공적 기관에 대한 존중과 상식을 뒤엎는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이런 일을 자꾸 한다면 그 정부가 상식 있는 정부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올해 정부 지원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된 사회연대은행의 경우에도, 한 이사진이 박 이사에게 "참여정부와 친했던 인사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밝혔으며, 이후 뉴라이트 계열의 단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 뒤 거액의 정부지원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 박원순 상임이사는 이날 자신과 자신의 지인들, 관련단체를 둘러싼 이명박 정부의 전방위 압력 등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 CBS노컷뉴스

이밖에도 국정원은 시민단체의 평생회원 리스트를 파악하기도 했으며, 단체 임원 및 관계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회원을 그만두라"는 말을 전했다고 박 이사는 설명했다.

박 이사는 "내가 들은 것만 나열해도 이 정도이니 훨씬 더 많은 국가권력의 개입 사례가 있을 것"이라며 "5공화국 당시 고문사례 보고회가 열렸듯, 이제 국가권력의 사찰사례를 보고하는 보고회라도 열어야 할 판이다. 어쩌다가 이런 나라가 됐느냐"고 개탄했다.

박 이사, MB 맹공 "지방선거 이후 진실 터질 것"…법적대응 '검토'

박 이사는 향후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이명박 정부는 반드시 실패하는 정권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피력했다. 그는 "이렇게 시민사회를 적대적으로 모는 정부가 이 지구상에서 몇 개나 되겠느냐"며 현 정부의 전방위적 탄압과 사찰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박 이사는 "이 정부에서 권력이 얼마나 순식간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새삼 목격하고 있다"며 "우리가 피땀을 흘리고 구축해온 민주적 질서나 시민의식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음을 새삼 깨닫고 있다"고 맹성토했다.

박 이사는 "현 정부는 '권력은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며 "하지만 그 권력은 무소불위로, 그리고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한 안에서 절차에 따라서 행사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비록 당장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보복과 억압의 두려움 때문에 진실을 말하기를 두려워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제 내년 지방선거가 끝나고 정권의 후반기로 들어서면 진실은 한 순간에 터져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박 이사는 향후 대응책과 관련, "어제 저녁 귀국했기 때문에 지인들과 충분한 상의를 하지 못했다"며 "국정원장 고발운동 등을 검토하겠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걸려 있는 문제를 모든 국민과 함게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볼 것"이라고 검토의 필요성을 거듭 제기한 뒤, "국가는 기본적으로 추상적인 실체로서 인격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주권자인 국민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제기할 수 없다"고 법적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귀국 전 자신의 블로그에도 글 올려…진중권도 "내 강의에 형사들 왔다가"

이에 앞서 박 이사는 귀국 이전인 지난 15일(현지시간) 저녁 자신의 블로그에 '고난받는 사람들과 함께 해서 너무 행복합니다'란 제목의 글을 올리고, "처벌받아야 할 사람이 그것을 문제삼은 사람을 벌하는 것이 우리가 뽑은 정부의 할 일이냐"고 맹성토했다.

 
▲ 박원순 상임이사는 귀국 전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자신을 향한 '국가'의 소송을 맹성토하기도 했다.     © <원순닷컴>

특히 박 이사는 자신을 둘러싼 국정원의 '사찰'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하며, "국정원이 온갖 기업이나 기관, 시민단체에 돌아다니면서 저에 대해 묻고 이런 저런 조사를 한 사례는 제 귀에 들려온 것만 해도 수십 건"이라고 폭로했다.

구체적으로 박 이사는 "국정원의 소송 이야기를 전해 들은 오재식 전 월드비전 회장님은 저에게 자신도 기꺼이 증언을 서 주시겠다고 했다"며 "자신이 관여하는 사회투자지원재단에 보건복지부가 14억을 주기까지 했다가 다시 빼앗아갔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백낙청 선생님이 관여한 시민방송 역시 스카이라이프라는 곳에서 돈을 지원해주기로 했으나, 약속이 임박한 순간 갑자기 연락이 와서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은 철회될 수 없다. 이것은 독자적으로 내린 결정이다'라고 통고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박 이사는 자신을 둘러싼 일련의 상황을 "시대착오적인 일"로 규정한 뒤, "(국정원이 나에게 소송을 제기해) 참으로 행복하다. 이 시대의 고난받고 억울하고 힘든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고맙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한편 진중권 전 중앙대 겸임교수 역시 16일 저녁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최근 자신이 전남대에서 강연을 할 당시 광주 경찰서 소속 정보과 형사들이 왔다고 밝혀, 진보성향 지식인에 대한 '사찰'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대자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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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9/17 [12:2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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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9/17 [23:39] 수정 | 삭제
  • 지금까지 살아온 거처럼 그대로 사세요. 당신은 진짜 좋은 사람입니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