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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교회 '빽'으로 둔 장로 대통령의 오만
[정문순 칼럼] 오만한 장로대통령 MB와 그를 낳은 '배후세력' 보수기독교
 
정문순   기사입력  2009/07/27 [21:48]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6일 제41회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다. 참석만 한 게 아니고 인사말도 했다. 그것도 신앙과 국정 운영을 결부시켜 말하였다. 평소에 종교 편향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다운 행동이다.그는 제정일치 사회의 샤먼인가,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인가. 그는 대통령과 장로의 자리를 구분하지 않았던 이승만, 김영삼 장로 출신 대통령의 전통을 계승하고야 말았다. 1500여 명이 참석하여 일찍이 유례 없는 성황이었다고 한다. 정당의 전당대회인지 교회 행사인지 몰라도 모두 한 목소리로 찬송가를 합창하니 터져나갈 듯한 분위기였다. 국민들한테는 찬밥 신세인 대통령은 이곳에서만큼은 열기에 기운을 내어 자신의 격을 한껏 높였다.  

“하나님께서 이 같은 삶을 저에게 허락하신 것은 이 시기에 서민을 돌보는 사람이 되라고 허락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소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겸손히 지혜와 명철을 구하겠습니다.” 

목사를 비롯하여 열렬 기독교 신자들이 평소에 하는 말을 들으면 ‘왕’인지 ‘사람’인지 구별이 안갈 때가 많다. 전제군주가 하느님을 빌려 자신의 독점적 지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건 이해하고도 남는다. 권력을 혼자 전유하는 비정상적인 존재라면 신의 이름을 끌어들여서라도 변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대통령은 스스로를 왕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서울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제41회 국가조찬기도회를 갖고 인사말을 통해 서민경제를 살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 청와대

대통령은 ‘겸손’을 언급했지만 결코 겸손과 어울릴 만한 발언이 아니다. 겸손한 신앙인은 하느님의 뜻을 쉽게 재단하지도 헤아리려고 들지 않는다.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제 판단에 따라서 하는 일을 섣부르게 하느님 갖다 붙이며 합리화하지 않는다. 평생을 낮은 자리에서 살았던 작가 권정생의 소신이기도 하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존재가 유권자들이 아니라 하느님이라고 생각하는 건 국민주권을 깡그리 무시하는 사고일 뿐이다. 그래봐야 5년 만기 계약직 공무원인 자신의 처지도 모르고 주권재민의 원리에도 무지한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헤아릴 수 있다면 거짓말이다.  

종교인이든 정치인이든 의심도 의문도 없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위험하다. 하느님이 자신에게 서민을 돌보라는 소명을 내렸다는 판단은 누가 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왜 빠져있는가. 만사를 하느님과 결부하는 보수 기독교에게 이유나 근거를 묻는 것은 물론 부질없는 일임을 안다.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고, 신의 뜻을 캐묻는 것은 불경이라고 할 것이다. 자신을 하느님의 격으로 올려놓으니, 그 입에서는 오만스런 발언밖에 나오지 않는다.

대통령은 자신이 서민을 돌보는 구세주인 양 생각하지만, 대통령은 서민을 돌보는 사람이 아니며 서민은 결코 돌봄의 대상이 아니다. 돌봄이 필요한 존재는 정신적, 육체적 자립 능력이 떨어지는 어린이나 노인한테 가능한 말일 것이다. 서민은 돌봄을 필요로 할 정도로 무력하거나 자립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젊은 날 밑바닥 서민 생활을 경험했다는 이대통령도 그때 자신을 대통령이 돌봄이 필요한 대상으로 언급하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서민만큼 생존력이 강한 존재가 어디 있는가. 맨 주먹으로 성공신화를 창조했다는 젊은 날의 그에 뒤지지 않게 질경이보다 질긴 생명력을 갖춘 사람들을 우리는 서민이라고 부른다.  

집권자가 할 일은 그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악전고투해가며 지켜내고자 하는 밥그릇을 빼앗거나 생존 기반을 허물지 말고 가진 자들과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터를 골라 주는 것이다. 그러나 서민을 무력하고 불쌍한 ‘아랫것’으로 보는 권력자가 서민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벌일 리 만무하다. 시장통에서 경찰과 경호원 떼의 호위 속에 ‘불쌍한’ 서민이 파는 어묵을 덥석 입에 무는 장면을 보여주면, 서민을 돌보는 대통령으로 인식될 줄 아는 수준의 불성실하기 이를 데 없는 상상력이 나오는 것이다.  

그가 시장을 돌아보면서 상인들과 나눈 동문서답식 대화도 자신을 남의 머리 위에 올려놓은 사람다운 것이었다. 민생탐방을 한다고 시장을 찾으니 상인들은 대통령이 자신들의 어려움을 경청하러 온 줄 알았다. 대형마트 때문에 못 살겠다고 이구동성으로 하소연하는 상인들에게 하소연할 자유라도 있으니 세상이 좋아진 것 아니냐고 대꾸한 그의 천연덕스러움은 웃기 힘든 한 편의 블랙유머 같지만, 서민을 돌봄이 필요한 무력하고 능력 없는 자들로 생각하는 사람의 의식 구조에서는 무리한 발상이 아니다. 애쓰지 않고 징징대기만 하는 무능한 것이 서민이라는 그의 소신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평범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사람으로 드높이는 것은 제 한 몸만 다치거나 주변에서 광신도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것으로 끝나겠지만, 최고 집권자가 허위 망상에 빠질 경우 그 파급력은 가늠할 수 없다.  

부족한 자신의 흠을 알고도 선택해준 국민을 만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겸손한 대통령을 만나기는 어려울까. 그러나 대통령의 개인적 성품이나 자질 탓만 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개심해서 서민의 사랑을 받고 싶다고 생각하더라도 배후에 그를 가로막는 것이 분명히 있다. 오만한 장로 대통령을 낳은 것은 해방 이후 남한의 독재권력이 휘두른 칼에 묻은 피를 핥으며 영화를 독점해온 수구세력의 상징인 보수기독교일진대, 배후세력이 든든한 대통령 한 사람을 실컷 욕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은 부족하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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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7/27 [21: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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