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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우 박사를 회고하며
 
이대로   기사입력  2002/03/19 [12:59]
님이 이 땅을 떠나신 지 벌써 6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일요일 저는 제 처자식과 함께 삼청 공원에 가서 약수을 뜨고 난 뒤 님이 사시던 집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박사님은 안 계시지만 님이 마지막 사시던 집, 제게 셈틀을 손 수 가르쳐 주신 2층 방을 밖에서라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자주 삼청공원에 갑니다.

돌아가시기 전 해, 님은 저를 삼청동 집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삼청 공원의 약수가 좋고 또 그 근처 국밥을 잘하는 집이 있으니 자주 오라고 하셨습니다. 제게 셈틀을 가르쳐서 전자 통신을 이용해 한글사랑운동을 하게 하기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셈틀로 글쓰기를 배워 전자 통신을 이용해 한글 기계화운동에 앞장서라는 말을 여러 번 했으나, 다른 일로 바쁘고 시간이 없다며 미루기만 하는 제게  "이제는 마지막이다. 난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 내가 가르쳐주겠으니 우리 집에 와서 배우라"며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10시가 넘어야 제 자유시간입니다. 밤 11시도 괜찮겠습니까?"라고 시간 핑계를 댔습니다. 그런데 박사님은 "좋다. 내가 기다리겠다"고 하셔서 저는 빠져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해 여름은 유난스럽게 더웠습니다. 제가 밤 11시 님 댁으로 가 초인종을 누르면 웃옷을 벗은 채로 반갑게 뛰어 나오셔서 저를 맞이해 주셨고, 90이 다 된 할아버지 선생님 앞에 50이 다 된 학생은 어린애처럼 고분고분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님은 그렇게 저를 가르쳐 주시고 그 해 겨울 감기 증세로 입원하신 뒤 일어나지 못하시고 다음 해 봄 하늘 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님의 마지막 제자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밤 10시면 주무시는 데 제게 셈틀 사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미리 주무시고 밤 11시부터 12시까지 개인 과외 공부를 시키셨습니다. 그 때 낮에 박사님을 자주 찾아가 뵙던 제 후배 김 두루한 선생으로부터 " 박사님이 요즘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선배님이 컴퓨터를 열심히 배워서 기쁘다며 낮에 주무신 다음 기다리고 계십니다. 결석하지 마십시오" 라는 말을 듣고 하루도 안 빠지고 찾아가 배웠습니다.

그러나 당신 혼자 매일 통신에 글을 올리시기 외롭고 힘드니 저를 가르쳐서 함께 전자통신을 통한 한글 운동을 하자는 님의 뜻을 알면서도 바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뒤 청개구리처럼 후회하면서 바로 하이텔 통신에 가입해 오늘까지 님을 대신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셈틀 통신 공간에 글을 쓰고 읽고 있습니다.  

공 박사님! 고맙습니다!

못난 저를 사랑해주시고, 가르쳐주시고, 알아주셨고 참 삶을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눈 먼 자에게 눈을 뜨게 하시고 뜻있는 자에게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신만 재미있게 살려고 하지 않고 함께 잘 살려고 하셨습니다. 저는 큰 사람, 님을 만나고 모시고 함께 국어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을 매우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보다 젊은 사람들과 매일 통신 공간에서 만나 즐겁게 보람된 시간을 갖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공 박사님! 뵙고 싶습니다.

님은 병원에 문병도 오지 말라 하셨습니다. 님은 돌아가신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기억엔 삼청동 2층 방에서 셈틀 글쓰기 하시는 모습만 있고, 제 마음속엔 님이 살아 계십니다. 또 셈틀 통신 공간엔 아직도 님의 발자취가 여기 저기 보이고 있습니다. 님의 글이 있고 님을 기억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님이 연세 의대 병원에서 돌아가시고 육신을 학생들 교육용으로 바치셨기에 제 딸을 그 의대에 보냈고 자주 그 학교에 들르게 되어 더욱 님 생각을 합니다.

님이 가르쳐 키운 나모 박 흥호 사장이 요즘 잘 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보면서 강 태진 사장도 잘 하고 있고 미국에 있는 강 영우 박사가 부시 행정부에서 일하게 될 것 같다는 보도 기사를 보면서 님 생각이 더욱 납니다. 지난해 한글과 검퓨터 전 하진 사장을 만났을 때 " 제가 회사에 오니 직원들이 모두 한글 운동꾼 같더군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에게 그들이 박사님 제자들임을 말하고 한글을 위해 좋은 일 많이 해달라 부탁도 했습니다.

  1988년 박사님이 미국에서 오셔서 한글문화원을 열고  문제안 선생님과 저에게 [셈틀로 글쓰기를 배워라. 기가 막히게 편리하다]시며 셈틀 배워 사용하기를 권하셨을 때 70대인 문제안 선생님이 [이제 배워서 뭐합니까. 다 늙었는데 ...] 하시니까 [무슨 말이냐 젊은 사람이... 나는 더 늦은 80대에 배워 이렇게 한글 기계화 연구에 힘쓰지 않느냐]시며 호통치셨습니다. 그 뒤 문 선생님은 바로 셈틀 공부를 하시고 '문제안식' 글꼴까지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더 젊은 저는 바로 따르지 못했습니다.

한글학회에 셈틀을 그냥 주시며 사용하라고 했을 때 배워 쓸 생각을 하지 않고 되돌려 보냈습니다. 그 때 님은 외솔 선생이 살아 계셨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가르침과 좋은 영향을 주셨습니다. 늦었지만 이제 저도 한글학회도 셈틀 없이 하루도 못살게 되었고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박사님이 살아 계실 때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 부끄럽고 죄스런 마음이 이제야 듭니다.

그러나 아직도 선각자 선구자이신 님의 뜻과 나라 사랑 한글 사랑 정신과 한글 제작 원리와 과학정신에 가장 적합한 세벌식 조합형 한글기계 사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두벌식 완성형을 고집하고, 한자혼용을 하는 정치인과 학자들이 판치니 답답하고 서글픕니다. 그리고 박사님의 과학 탐구정신, 근면 박애정신, 자주 문화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이기주의 사대주의자가 판치니 앞이 캄캄합니다.  

박사님! 님의 뜻을 이어가고 온 누리에 펴려는 저에게 힘과 지혜와 자심감을  주십시오! 올해엔 꼭 동지들을 모아 님이 하늘 나라에서 편안히 계시도록 표나는 일을 해 보겠습니다!

세월이 흘러 또 돌아가신 날을 맞았으나 님의 무덤도 없고 님을 추모하는 자리도 없으니 제 마음속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님이 즐기시던 셈틀 통신을 통해 하늘 나라에 계신 맑은 술과 큰 절 올립니다.

음향하소서!  

       2001. 3. 7 돌아가신 날 마지막 제자 이 대로 올림  


* 본 글은 대자보 55호(2001.3.12)에 발표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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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3/19 [12:5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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