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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속의 촛불, '힘 없는' 여성 연예인들
[정문순 칼럼] 바람속의 촛불들을 더 절박한 처지로 내몰지 말아야
 
정문순   기사입력  2009/05/06 [11:37]
권력에 희생된 여성 연예인을 생각하면 ‘만인의 이브’로 불렸던 마를린 먼로가 먼저 떠오른다. 가수 엘튼 존이 고(故) 다이애나 비의 사망 후에 바친 노래 ‘바람 속의 촛불’은 본디 그녀를 기리는 노래였다. 죽은 지 거의 반 세기가 된 지금도 의혹이 규명되지 않은 먼로의 죽음에 줄곧 드리워져 있는 것은 권력의 검은 그림자다.  

생존해 있을 때부터 당시 케네디 대통령 형제와의 염문설이 있던 그녀는 사망 후에 그들과의 비밀스러운 관계가 더욱 부각되었다. 권력 최고위층과 밀접한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먼로는 생전에 정보기관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는 처지였다.  

먼로에게 가해진 권력의 감시, 권력의 개입이 의심스러운 죽음을 통해 여성 연예인은 힘 있는 자에게 짓밟히고 농락당하는 약자라는 이미지로 떠오른다. 여성 연예인의 피해자적인 위상은 한국에도 드물지 않다. 고(故) 최진실이 한국판 먼로라 불리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 고 최진실.     ©CBS노컷뉴스

최진실 사망 사건에 경찰과 검찰이 서둘러 뛰어든 건 국민 여배우에 대한 예우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검찰이 별 뚜렷한 근거 없이 인터넷상의 악성 댓글을, 고인을 곧장 죽음으로 몰고 간 저승사자로 서둘러 단정 짓는 것부터 고인에 대한 예우와는 거리가 멀었다.  

자살 원인을 ‘악플’과 연관 짓는 데 조심스러워한 주변인도 있었으나 권력의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유명 연예인의 극단적 선택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명박 정권은 사이버 모욕죄 입법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일사천리로 한달음에 내달렸다. 국민을 때려잡는 데 눈이 먼 정치권력에 의해 고(故) 최진실은 사이버 모욕죄 도입을 위한 순교자로 거듭 난 것이다. 자신의 죽음이 설령 사이버 공간의 모욕과 관련 있을지라도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다루어지는 것을 고인이 원했을 리는 없다. 생전에 피땀 흘려 쌓은 국민 여배우라는 지위는 권력의 장난질을 감당하기에 오히려 좋은 토양일 뿐이었다. 

정신적 모욕으로 인한 피해와, 자살을 곧장 연결 짓는 권력의 상상력은 고인이 여성이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국민적 배우의 위상을 가진 이라도 나쁜 소문을 못 이기고 무너지는 나약한 여성일 뿐이라는 대중의 성적 편견을 노렸다는 점은 고약하기까지 하다. 억척스러운 노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나 악플을 감당하지 못하고 목숨까지 버리는 연약한 사람으로 자신의 삶이 규정되는 것에 대해, 고인은 흔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죽음을 농락당한 국민배우에 비해 그보다 힘 없는 고(故) 장자연의 경우 권력의 마수는 그녀를 성적 농락의 대상으로 삼아 기어이 생명까지 앗아갔다. 스타를 꿈꾸는 신인 여성 연기자의 몸은 이른바 '리스트'에 언급된 조선일보 매체의 사주들, 드라마 감독, 기업체 사장 등 권력 남성이 자신의 독점적인 소유욕을 발휘하고 싶은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생존시에도 그 몸을 능멸한 권력이 망자가 된 사람에게 예우를 갖출 리 없었다. 고인은 자신의 49제가 쓸쓸히 치러지는 날 경찰로부터 기별 하나를 받았다. 경찰은 그녀가 남긴 유언이나 다름없는 문건 내용을 신뢰할 수 없다고 했고 구체적으로 대상을 적시해 놓은 그녀의 기억력을 조롱했다.  
 
▲ 고 장자연.     ©CBS노컷정보

남성 정치인과 여성 연예인 사이의 스캔들을 다룬 글에서 두 직업의 유사성을 거론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남성 정치인과 여성 연예인의 관계는 대등한 것과 거리가 먼,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압도하고 흡수하는 관계이다. 권력을 가진 자에게 여성 연예인은 아무리 세상을 끌어당기는 매혹적인 존재일망정 바람 속에 위태로운 촛불 한 자루에 불과할 수 있다.
 
자신을 힘 없는 신인 여배우일 뿐이라고 자조한 고(故) 장자연뿐만이 아니라 대중 스타로서 더 올라갈 데 없는 자리까지 올랐던 고(高) 최진실도 마찬가지였다. 힘 없는 여자 연예인의 처지에서 벗어났다면 병적이고 뒤틀린 소유욕을 가진 권력 남성들과의 술자리나 잠자리에 불려가지는 않겠지만 권력의 억누름이나 농락이 자신을 비껴간다는 보장은 없다는 점에서 여자 연예인은 파리목숨이나 다를 바 없는 존재다.  

권력에 의해 꺼지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삶을 내던진 여린 불꽃이, 자신이 하루살이 목숨에 불과한 존재임을 세상에 확인시키는 게 궁극적인 소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변호하는 바람이 꺼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회가 스스로 소진을 택한 촛불을 폐기 처리하는 데만 급급해한다면 바람속의 촛불들은 더 절박한 처지로 몰릴지 모른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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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5/06 [11:3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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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소자 2009/05/07 [10:36] 수정 | 삭제
  • '고(故) 최진실이 한국판 먼로라 불리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 부분 읽다가 정말 가소로워서 웃음을 터뜨렸다.
    최진실이 한국판 먼로라고? 그렇게 불리운다고?
    미안하지만 너 어디서 그런 소리 줏어 들었는지 출처 좀 제시해 줄래?
    증권사 찌라시에 상처받았던 사람을 비슷한 수준의 말장난으로 명예회복을 시켜주겠다는거냐?
    너 최진실을 있게했던 저 유명한 명대사 기억하니?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니까요'
    페미들한테는 저것도 여성주의적 대사로 들리는 모양이구나.
    최진실을 비난할 마음은 없다. 마찬가지로 필요이상으로 확대해석하는 것도 가당찮다. 그는 대중들이 원하는 이미지에 스스로를 맞춰갔을 뿐, 생활인으로서 최진실은 인기를 위해서 권력자들과 야합하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최진실을 정치권력에 희생된 여성과 비유한다면 그거야말로 망자가 불쾌하게 여길것 같지 않냐?
    내 보기에 최진실의 죽음을 이용한다는 측면에서는 늬들 페미들이야말로 정치권과 가장 부합하는 집단인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