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더나은 세상으로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저작권법, 정부 '인터넷 대왕마마'에 등극하다
[하재근 칼럼] 게시판 폐쇄? 왜 연대책임 물리나...공론 영역 사라질 것
 
하재근   기사입력  2009/04/03 [09:56]
저작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 문제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이 저작권법 개정안은 정부로부터 3차례 불법복제물 삭제 등의 조치를 받은 게시판은 저작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6개월간 정지 또는 폐쇄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나?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들은 말이 무슨 뜻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몇 번씩 되물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복제물을 올리다 3번 이상 걸리면 게시판 전체를 폐쇄한다구요?’
‘네, 그렇습니다.’
‘게시판 전체를요?’
‘네’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누군가 올린 불법 게시물에 왜 모든 사용자가 연대책임을 진단 말인가? 불법 게시물이 올라오면 그 글을 삭제하면 되고, 상습 게시자에겐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하면 된다. 하지만 게시판 폐쇄라니. 왜 아무 죄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게시판 활동을 금지당해야 하나? 신종 인터넷 연좌제인가?  

- 대왕마마 엿장수 마음대로 - 
 
이제부턴 저작권 피해 당사자의 문제제기 없이도 정부의 판단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펌글이 존재하는 모든 게시판에 문제가 생긴다.  

언론 기사엔 이익을 위한 사적 소유물의 성격도 있지만, 공공성을 위한 공유물의 성격도 있다. 일반인이 정부관계자를 만나려고 하면 안 만나주지만, 기자는 만날 수 있다. 기자가 국민을 대리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기사는 언론사의 재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민의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언론사 기사를 펐을 경우에도 출처만 표시한다면 재산권 침해가 아닌 여론형성 행위로 인정됐었다. 이런 배경에서 한국인은 기사나 만평을 퍼나르는 것에 아무 저항이 없으며, 심지어는 그런 여론행위를 민주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펌글의 존재를 저작권 침해라고 규정하게 되면 이 나라의 게시판 중에 안 걸리는 게시판이 없게 된다. 사업자가 불특정 다수의 게시물을 일일이 관리할 수도 없다. 정부가 미운 게시판이나 인터넷 사업자가 있다면 언제든지 저작권 문제를 걸어서 폐쇄할 수 있는 ‘인터넷 대왕마마’가 되는 것이다.  

좀 더 음모적으로 상상한다면, 미운 게시판이 있을 때 알바를 풀어서 펌글을 몇 번만 올리도록 하면 그 게시판을 폐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게 말이 되나? 이렇게 황당하니까 이 말을 들었을 때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시판 폐쇄가 사실이냐고 몇 번이나 되물어야 했다. 아직도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 IT산업에도 독이 될 것이다 -  

이런 법이 존재하면, 설사 그 법이 현실에서 발동되지 않더라도 사업자에겐 협박의 효과로 작용한다. 그것은 사업자를 ‘알아서 기게’ 할 것이다. 국가가 가만히 있어도 사업자가 네티즌들을 단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네티즌과 사업자간에 불신과 불화가 생기면 한국 인터넷 산업은 위축되게 된다. 또 정보를 유통할 수 없게 된 한국인은 외국 사이트로 피신해 그곳에서 활동하려 할 것이다.  

IT산업은 미래 전략산업이다. 정부의 가혹한 처벌은 결국 한국의 전략산업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자유분방한 쌍방향 소통과 정보 공유 및 집적이 특징인 IT산업을 위축시키고, 한국인을 톱다운 방식의 명령에 묵묵히 순응하는 삽질 일꾼으로 만드는 것이 정부의 선진화 전략인가?  

아마도 정부가 광대한 인터넷 세상의 모든 게시판을 일일이 다 확인할 순 없을 것이다. 몇몇 게시판만 시범적으로 규제될 텐데, 그것은 정부로부터 미운 털이 박힌 곳일 수밖에 없다. 미운 털이 박히지 않기 위해서 모든 사업자와 관리자들은 정부에 비판적인 분위기를 줄여나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론탄압의 문제가 발생한다.  

- 공론장의 퇴행 -  

요즘 방송통제가 문제가 되고 있다. 비판적 신문은 도산 직전 상황이다. 여기에 인터넷 여론까지 통제된다면, 한국 공론장에서 정부 비판은 씨가 마르게 된다. 그것이 현실화 됐을 때, 우리가 맞게 될 ‘아름답고 조용한’ 세상은 과연 민주공화국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작권이나 인터넷 관리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토대가 흔들리려 하고 있다. 정부가 모든 게시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것은 공포다. 그 공포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밖에 없다.  

현재 자본과 권력의 통제에서 벗어난 유일한 공론장 영역이 인터넷이다. 저작권법은 인터넷 공론장이 권력의 수중으로 넘어간다는 의미가 있다. 엄중한 사태다. 인터넷 사용이 약간 불편해지는 수준이 아니다. 전략산업인 IT산업을 위축시키면서, 민주주의까지 퇴행시키는 일을 왜 우리가 21세기에 해야 하나? 당장 중지해야 한다.
* 필자는 문화평론가이며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는 http://ooljiana.tistory.com, 저서에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등이 있습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9/04/03 [09:56]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