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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보다는 차라리 하인즈 워드 어머니를
[정문순 칼럼] 현모양처 신화에 갇힌 억울한 여성, 신사임당 신권
 
정문순   기사입력  2009/03/05 [11:22]
역사책에 남아 있는 인물을 친숙하게 만드는 데는 화폐만한 게 없을 것이다. 세종 임금이나 이순신이야 화폐에 등장하지 않았어도 만인이 기억할 이름이지만, 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이 화폐의 모델이 되지 않았다면 오늘날처럼 삼척동자도 이름을 알만한 친근한 인물이 되었을까.
 
이이와 이황이 조선 전기 유학의 양대 산맥이기는 하지만 그 어렵고 까다로운 성리학을 이해할 수 없는 일반인들이 이들의 이름을 일상에서 언급할 일은 거의 없다. 오직 역사교과서에서나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인물들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이나 이황에게 뒤지지 않는 학문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고봉 기대승이나 남명 조식의 대중적 지명도가 그들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신사임당은 아들 덕분이 아니더라도 애초에 남성 화원들만 풍미한 조선 시대 화단에서 여성 화가로 자신만의 입지를 탄탄하게 세웠을 인물이다. 한시도 적지 않게 남겼다. 자식의 그늘만 아니라면 인문적 소양이 뛰어난 사대부 여성으로 알려져 있을 그녀는, 잘난 아들 때문에 현모로 격상되었고 그 아들이 지폐의 모델이 된 뒤로는 현모양처의 표상으로까지 지위가 올랐다.
 
21세기에 20세기 취향으로 살고 있는 한국은행이 단단히 오해하고 있지만, 신사임당은 그들이 생각하는 기준으로는 현모양처가 결코 아니다. 19세에 결혼하여 9년을 남자 자손이 없는 친정에서 어머니와 지내고 38세에 시집인 서울로 온 신사임당의 행적은, 시댁과의 갈등이 여전히 삶에서 주요 고민 중의 하나인 오늘날 기혼 여성으로서도 엄두를 내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이다. 
 
▲ 한국은행은 지난달 25일 5만 원권의 시제품 도안을 공개했다.     © CBS노컷뉴스

그러나 당시를 생각하면 여성의 친정 중시는 그다지 파격이 아니었다. 여성이 친정의 재산을 상속하고 제사를 받들 수 있고, 축첩을 주장한 관료가 사회적 지탄을 받았을 정도로 조선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었던 고려시대 여성의 지위는, 가부장제 유교통치가 뿌리내리기 시작한 조선초기에도 잔영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왕조 초기에는 인경왕후(태종의 비), 인수대비, 폐비 윤씨, 문정왕후처럼 권력욕이 강하고 규방에 얌전히 머물지 않았던 왕가의 여성들이 줄줄이 등장할 수 있었다.
 
자식이 태어날 때부터 장성할 때까지 남자가 처가살이하는 것은 임진왜란 전까지만 해도 양반가의 일반적인 관례였다. 이이의 경우 외가 강릉에서 태어나고 자랐을 뿐 아니라, 아들 없는 외가의 제사를 받드는 자손 중 하나로 기록에 남아 있다. 친정에 눌러앉아 십 년 가까이 지내고, 거기서 자식을 낳고 키운 여성이라면 그녀를 현모양처로 떠받들어온 사람들 눈에는 배반에 가까울 것이다.
 
사임당이 남긴 한시들은 대부분 친정을 생각하는 것들이며, 시에서 드러난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은 남편이나 자식에 관한 것이 아니라 친정에 언제까지고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임당의 관심사는 오로지 백발이 된 친정어머니였다. 친정살이를 끝내고 대관령을 넘어 서울로 향하는 길에서 지었던 시에서 고향을 향한 그녀의 자아는 자신을 등 돌려 세우려는 가부장제와 충돌한다.
 
 백발이 되신 어머니 강릉에 계시니,
 서울로 향하는 몸, 홀로 정만 남겨두고 가노라.
고개 돌리니 고향마을이 한눈에 보이는데
흰구름 날아가는 아래 저무는 산이 푸르구나.
                                       <대관령 넘으며 친정을 굽어보다>
 

흰구름이 피어나고 날 저물면 산빛이 더 푸르게 보이듯이 고향 정취는 언제나 아름답다.  그 풍광은 내일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다만 몸이 떠난 사임당에게는 현재로서 누릴 수 없는 것들이다.  한눈에 고향을 온통 품을 수 있는 사임당에게 고향땅 친정은, 대관령을 넘는 순간 이제는 몸을 담고 생활하는 현재의 공간이 아니라 절절한 그리움으로 남는 과거의 땅이 된다.
 
친정에서의 삶을 아련한 추억의 과거로 보내고 싶지 않은 사임당은 대관령을 넘는 순간을 시를 통해 영원한 현재로 잡아두고 싶었다. 가부장제의 고통을 겪은 여성을 가부장제의 틀로 재단하며 현모양처 운운하는 것이 어불성설임을 사임당이 남긴 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신사임당은 가부장제의 구미에 들어맞는 현모양처이기는커녕 오히려 그 제도 때문에 고통을 받은 여성일 뿐이다. 남자 집안에 종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인 그녀의 실체를 왜곡하고 입맛에 맞게 가공한 것은 현대의 가부장주의자들일 뿐, 사임당에게는 죄가 없다. 21세기에 그들이 원하는 것은 여자는 자식이 뛰어나면 덩달아 귀하게 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의 고착화이거나, 여자의 행복은 자식을 잘 키우는 데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지폐를 만지면서 확인하는 데 있다.
 
새 지폐 모델에 현모양처가 꼭 필요하다면 구태여 반천 년 전의 인물에게서 찾을 것까지는 없다. 미식축구 스타 하인즈 워드의 어머니 김영희 씨야말로 한국은행이 찾는 어진 어머니상에 꼭 들어맞는 인물로 떠오른다. 좋은 환경이 갖추어져도 자식을 잘 키워내기는 쉽지 않은데, 낯선 나라에서 제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든 환경에서 피눈물 나는 고생을 마다않고 아들을 훌륭히 키워냈으니 그녀만큼 이상적인 어머니상에 어울리는 여성도 드물 것이다. 조폐공사는 아들이 유명하지 않으면 그 어머니를 현모로 취급도 해주지 않으니, 김씨는 그 기준도 충족하지 않는가 말이다.
 
주변을 살펴보면 김씨같은 어머니들이 적지 않을 텐데, 오백 년 전을 살았던 양반가 여성의 넋은 왜 자신을 제멋대로 재단하는 무례한 후손들에게 끌려나와 곤욕을 치러야 하는 것일까.
 
대관령을 사이에 두고 친정과 시집, 욕망과 제도 사이에서 갈등을 겪어야 했던 그녀의 내면은 무시해버리고, 자신에게 고통을 준 제도를 잣대로 그녀를 추켜올리고 여성을 억압하는 데 이용하는 건 사임당 본인조차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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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3/05 [11:2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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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미까 2009/03/09 [14:39] 수정 | 삭제
  • 화폐에 오를만한 여성인물이 딱히 없다고 인정하는거냐?
  • 김영조 2009/03/07 [15:18] 수정 | 삭제
  • 신사임당이 가부장제에 고통받던 인물?
    정 편집위원은 신사임당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가부장제에 고통받지는 않았다.
    남편에게 자신이 먼저 죽으면 재가하지 말라고 당당히 주장했던 사람이 어찌 가부장제에 허덕였다는 말인가?
    그리고 신사임당은 누구나 인정하는 훌륭한 예술가였고,
    아들을 뛰어난 학자로 키워낸 분이다.
    제발 헐뜯지말라.
    정 편집위원은 문학평론가답게 문학평론만 하면 어떨까?
  • 시민 2009/03/06 [15:14] 수정 | 삭제
  • 요새 정말 못봐주겠다. 신사임당 거부한다고 하인즈워드 어머니? 참 기가막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