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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학교? 진실은 귀족학교로 가는 '초'자사고
[하재근 칼럼] 한국에 일반 한국인을 위한 한국정부가 있기는 한 것일까?
 
하재근   기사입력  2009/01/29 [15:15]
28일,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국무회의에서 외국인학교 및 외국인유치원 설립·운영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정안을 통과시켜 내주부터 시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정초부터 국사에 분주한 정부를 보며 감탄해야 하는 걸까? 이런 식으로 ‘근면성실’할 거면 차라리 태만한 게 좋겠다. ‘개혁속도’가 너무 전광속도 같다.  

문제는 그 개혁이 ‘지옥으로 가는 특급열차’라는 데 있다. 방향은 ‘지옥’으로 정해져 있는데 속도가 ‘특급’이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방향설정에서부터 토론하고 여론을 수렴할 것이다. 지금 정부는 방향설정은 고사하고 ‘속도’마저도 일방적으로 ‘특급’을 강요하고 있다. 이른바 외국인학교 규제완화가 초래할 엄청난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공론장에서 의견을 모아본 적도 없는데 그야말로 전광석화같은 속도로 내달린다.  

▲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이번에 나온 제정안에 따르면 지금까지 외국인학교를 설립할 수 있는 주체는 외국인으로 한정돼 있었으나 앞으로는 비영리 외국법인과 국내 사립학교법인도 추가된다. 
 
내국인의 외국인학교 입학요건이 ‘외국 거주기간 5년 이상인 자’에서 ‘3년 이상인 자’로 완화된다. 이건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나왔던 얘기다. 이번에 나온 놀라운 대목은 비율이다. 내국인 입학비율을 정원의 30%로 제한하기로 했었는데 ‘시·도 규칙에 따라’ 추가로 20%까지 늘릴 수 있도록 했다. 다 합치면 무려 50%다.  

기존엔 외국인학교 졸업자가 국내 학력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 이제부턴 국어와 사회 교과를 각각 연간 102시간 이상 이수하기만 하면 국내 학력을 인정받게 된다. 또 외국인학교에도 사립학교법에 의거한 재정지원이 가능하도록 하고, 대신에 시도교육청의 지도감독권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한다.  

- 국가가 국민 상대로 장난하나? -  

자, 다시 정리해보자. ‘한국인’이 설립해(국내 사학법인), ‘한국인’이 다니고(50%), ‘한국 학력’을 인정받는다. 게다가 거기에 ‘한국인’의 세금이 지원된다.(사립학교법상 재정지원) 이 학교를 뭐라고 불러야 하나? 정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건 외국인학교입니다.’  

장난하나? 외국인학교는 ‘외국인’이 설립해, ‘외국인’이 다니고, ‘외국 학력’을 인정받는 학교다. 설립은 물론 필요에 따라 한국 정부가 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외국인’을 위해 ‘외국 교육과정’을 가르쳐 ‘외국 학력’을 인정받도록 하는 학교가 외국인학교란 점이다. 
 
반대로 한국인에게 한국 교육과정을 가르쳐 한국 학력을 인정받도록 하는 것은 한국 학교다. 정부가 추진하는 ‘새로운 외국인학교’를 외국인학교라고 부르는 근거가 무엇인가? 국가가 국민 상대로 말장난하나?  

- 진실은 귀족학교로 가는 ‘초’ 자사고 -  

외국인학교는 거짓이다. 외국인학교로 인해 구분되는 건 한국과 외국이 아니다. 외국인 학교는 한국 내부에서 부자와 일반 국민을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똑같은 학력인정을 받는다 해도 절대로 같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돈’이다.  

흔히 등록금 우골탑이니 하면서 한탄할 때 항상 등장하는 구호가 ‘공포의 등록금 천만 원’이다. 등록금이 이 수준이 되면 한국인에게서 곡소리가 난다. 요즘 추진되는 자사고도 일단 시작은 천만 원 미만으로 한다.  

이러면 곤란하다. 돈 천만 원으로 어떻게 부잣집 자식과 일반 국민의 아이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인가? 등록금은 더 비싸야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외국인학교다. 외국인학교는 비싸다. 연간 2천만 원이 넘을 수 있다. 여기에 한국인들이 다니도록 하면 부잣집 ‘도련님’들을 정확히 분리해낼 수 있게 된다. 자사고를 뛰어넘는 자사고, 진정한 귀족학교로 가는 ‘초’ 자사고다. 
 
- 구질구질한 한국교육은 평민들이나 받아라? -  

한국 학교는 지옥이다. 이건 누구나 알고 있다. 선진 외국의 학교는 전혀 다르다. 그곳엔 우리나라처럼 입시경쟁이 없거나 훨씬 약하다. 그래서 인간답고 창의력을 기르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새로운 외국인학교’를 외국인학교라 부를 수 있는 근거가 있긴 하다. 바로 교육과정의 차이다. 외국인학교는 ‘인간다운’ 외국 교육과정을 배우는 곳이다. 거기에서 일부 교과목만 일정 시간 이수하면 국내 학력을 인정해준다는 얘기다. 이건 결국 억대의 돈(조기유학 3년+등록금)으로 한국 교육에서 해방될 표를 사란 소리다. 그 돈이 없는 일반 국민은 자식을 ‘지옥같은’ 한국 학교에 보내야 한다. 
 
부자와 일반 국민의 자식이 학교 차원에서 갈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교육과정에서까지 갈리는 것이다. 몸도 마음도 교우관계도 교육내용도 전혀 다른 두 개의 국민. 서로 섞일 수 없는 두 집단이 따로 따로 사는 나라. 귀족사회다. 외국인학교는 대한민국을 그런 모습으로 바꿔나갈 것이다. 바로 교육이 아이들 차별장치가 되는 ‘지옥’같은 나라로.  

설이 지나자마자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정부가 제일 먼저 한 일이 ‘국민교육 정상화’가 아닌 ‘외국인학교 규제완화’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한국에 한국인의 한국 정부가 있기는 한 것일까?
 
* 이 글은 <프레시안>에도 동시 게재됐습니다.
* 필자는 문화평론가이며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는 http://ooljiana.tistory.com, 저서에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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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1/29 [15:1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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