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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보다 긴 백일'이 된 이명박 출범 100일
[논단] 이명박 정부, 부도덕함과 무능함의 기묘한 결합보여줘
 
이태경   기사입력  2008/05/29 [18:38]
'백년보다 긴 하루'라는 말이 있다. MB가 취임한 이후의 시간들을 대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심정을 표현하는 말로 이 보다 더 정확한 말이 있을까 싶다. 아무리 느리고 고통스러운 시간일지라도 뒤로 가는 법은 없어서 다음달 3일이면 어느덧 MB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100일이 된다. 많은 국민들을 절망과 분노로 몰아넣고 있는 MB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이제까지 MB가 거둔 성적을 살펴보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치솟는 물가, 불어나는 무역적자, 심화되는 양극화

먼저 MB가 그렇게 자신했던 경제부문 지표들을 살펴보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월 3.9%, 2월 3.6%, 3월 3.9% 등으로 3% 후반대를 계속 유지해 왔고 심지어 지난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4.1% 올라 정부를 아연실색케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 초 정부가 목표로 했던 3%물가상승률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진단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저성장 속에 물가 불안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감마저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역수지도 사정이 좋지 않기는 매 일반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무역 적자는 올해 들어서도 계속돼 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누계 무역 적자 규모가 이미 60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 추세가 5개월 연속 이어진 것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처음이다.

사회적 양극화도 빠른 속도로 심화되고 있다.
전국 가구의 소득격차가 관련 통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지난 23일 내놓은 ‘1·4분기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 계층(5분위)의 월평균 소득은 731만2000원인 반면, 소득하위 20% 계층(1분위)은 86만9000원에 그쳤다. 이에 따라 5분위 소득을 1분위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은 8.41배에 이르러 2003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벌어졌다. 특히 1·4분기 가구당 근로소득은 5분위 계층이 9.6% 늘어난 반면 1분위 계층은 2.4%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3.8%)을 감안하면 1분위 계층의 실질 근로소득은 1.4% 감소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장래에도 양극화 현상이 개선될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은 소득세 인하, 상속 및 증여세 인하, 종합부동산세 인하 등 고소득층만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MB는 도덕적 해이를 이유로 저소득층에 대한 직접 지원에 인색하다. MB가 이른바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의 신봉자이니 이런 정책을 취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런 마당에 양극화 현상이 완화되길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이 모든 게 MB의 무능과 무지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MB가 경제주체들에게 전혀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경제대통령을 자임했던 MB의 성적표치고는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 없다는 사실은 움직일 수 없다
.

절차적 민주주의의 전면적 후퇴

MB가 화끈하게 한 것이 있긴 하다. 6월 항쟁 이후 20년간 쌓아올린 절차적 민주주의를 근저에서부터 허물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불도적 MB앞에서는 법치주의도, 언론의 자유도, 권력기관들의 독립성도 한낱 모래성처럼 허망하게 무너져 내린다. 대신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은 인치(人治)와 언론통제 그리고 공안정국의 음산한 그림자다. 한국사회가 20년 동안 힘겹게 가꾸어온 절차적 민주주의를 그토록 단기간에 훼손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MB는 참으로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라 아니할 수 없다.

 
국정장악능력과 소통능력의 부재
 
MB집권 백일을 혼란의 연속이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수위 시절 영어몰입교육으로 시작된 정책혼선은 한반도 대운하부터 뉴타운·혁신도시 재검토, 건강보험 민영화, 남북관계 등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지속되고 있다. '강.부.자', '고.소.영'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인사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특정 정책에 대한 한나라당과 정부의 입장이 서로 상이하다 보니 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국정의 중심에 서서 정책의 혼선을 최소화해야 하는 대통령은 그 역할을 전혀 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한편 최근의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협상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MB와 국민들 간의 갈등은 MB의 대국민 소통능력이 절망적인 수준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협상에 대한 MB의 인식은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된다'에서 '미안하지만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줘야겠다'로 바뀐 정도인데, 이쯤되면 MB가 국민들을 소통과 설득을 해야 할 주권자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CEO의 지시에 불평없이 따라야 하는 부하 직원으로 여기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4년 9개월을 어찌 버티나?

 

위에서 살핀 것처럼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 100일 동안 거둔 성적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앞으로 남은 임기도 저런식으로 했다가는 MB가 야심차게 밝혔던 '선진화·실용·변화·화합'라는 4대 국정철학 키워드의 실현은 요원할 것이 분명하다. 

 

특히 많은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시장주의를 천명하고는 있지만 MB물가지수를 만들어 관리하는 것을 보면 박정희식 관치경제에 대한 지향도 엿보이고, 건강보험 민영화나 공기업 민영화를 강하게 추진하는 것을 보면 시장방임주의자 같아 보이기도 하는 등으로 말이다.

 

이명박 정부가 자신들 입으로 보수주의 정권이 아니라고 할 뿐더러 보수주의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덕'과 '국익'을 가벼이 여기는 것으로 보아 보수주의 정권이 아닌건 분명해 보이는데 그렇다고 진보적 가치나 정책들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니 국민들은 매우 혼란스럽다.        

 

하긴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이 일관되게 나타나는 대목이 없는 건 아니다. 기업 프렌들리, 출총제 폐지, 금산분리 철폐, 자사고의 대폭 허용,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이 상징하는 것처럼 재벌들과 힘센 자들의 이익을 옹호하겠다는 데에는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문제는 대한민국이 부자들과 힘센 자들만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애초부터 대한민국 국민들은 MB에게 청렴함이나 도덕성을 기대하지 않았다. 국민들이 MB에게 기대한 것은 유능함이었다. 그러나 그런 기대조차 지금으로선 무망하게 보인다. 더욱이 MB의 관심이 철저히 부자들과 힘센 자들에게 맞춰져 있음에랴! 남은 4년 9개월이 참으로 아득해 보인다.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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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5/29 [18:3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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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과 2008/05/30 [10:39] 수정 | 삭제
  • 노빠전력이 있는 이태경의 글이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귀에 안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