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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과 개념없이 단일화만이 최선인가
[대선정책 분석] 진보정당은 대중들의 ‘합성의 오류’에 빠져서는 안돼
 
홍헌호   기사입력  2007/12/01 [11:35]
고성국의 진보진영 비판, 과연 방향이 옳은가
 
진보진영이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진보진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이 이 모양이니 누가 이에 반대할 수 있겠는가.그리고 지지율을 떠나 내용적으로도 진보진영이 반성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바다.
 
그러나 반성을 요구하는 쪽이나 반성을 해야 하는 쪽이나 ‘어떤 반성이 제대로 된 반성이냐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들이 없는 듯하다. 반성이란 그 내용이 미래지향적인 자기성찰을 수반하고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단순히 지지율이 낮다 하여 아무렇게나 대중들이 원하는 대로 립서비스를 해 주는 반성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의 반성이 개혁적인 자기성찰을 수반하지 않은 채 석고대죄나 삼보일배, 또는 립서비스에 그친다면 나는 그런 식의 반성은 차라리 안하는 게 낮다고 본다. 이들의 진정한 반성은 이들이 내놓는 공약의 개혁성과 서민지향성 등에 드러나는 것이 더 낫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성국씨는 <프레시안> 11월 30일자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이 “민주당과의 합당과 단일화를 어찌 그리도 쉽게 포기했”느냐며  민주당과의 합당과 단일화 실패에 대해서 크게 질타하고 있는데 나는 그런 고성국씨와는 생각이 좀 다르다.
 
내 생각이 고성국씨와 다른 이유는 대통합민주신당이 민주당과 합당이나 단일화를 결코 해서는 안된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진보진영 후보들의 단일화 과정 또한 개혁적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은 후보단일화를 추진하면서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민주당이라는 ‘순서와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왜냐하면 후보단일화는 이념과 정책의 유사성을 첫째로 고려해야 하고 동시에 미래지향적인 개혁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일찍부터 후보단일화 절대불가론을 펴왔기 때문에 그를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창조한국당, 민주당이라는 ‘순서와 절차’는 대통합민주신당이 결코 어겨서는 안 되는 원칙이었다.
 
그러나 대통합민주신당은 창조한국당을 제쳐 놓고 민주당과의 합당과 단일화를 신속하게 추진했다. 그리고 나서 창조한국당에는 손을 내밀었다. 이것은 올바른 정치 도의가 아니다. 그리고 당내 반발이 겹치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자 대통합민주신당은 결국에는 민주당과의 합당과 단일화도 무산시켜 버렸다. 꼴이 아주 우습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고성국씨처럼 민주당과의 합당과 단일화 무산을 아쉬워해야 하는가,나는 오히려 그 반대이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 보는 것이다. 원칙이 잘못되어서 일이 뒤죽박죽이 되었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신당에서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창조한국당이 지나치게 강경하게 후보 단일화 논의를 거부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민주신당은 확실한 원칙과 결단력을 보여 주었어야 했다. 창조한국당을 완전 배제하고 민주당에 올인하든지, 아니면 창조한국당에 집중하고 막판에 창조한국당과 협조가 이루어지면 민주당에도 손을 내밀든지 했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명분도 원칙도 절차도 실익도 모두 잃어버린 민주당과의 통합시도,그것은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기 때문에 차라리 무산된 것이 잘된 일이다. 민주신당은 이것에 대해 전혀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다. 민주신당이 아무리 목이 마르다 하더라도 함부로 독배를 마시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반복하지만 내가 민주신당의 민주당과의 통합시도 무산에 대하여 고성국씨와 달리 그렇게 아쉽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민주당이 단일화 대상이 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개혁을 지향하는 진보의 원칙’에 위배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향후에라도 민주신당과 창조한국당이 힘을 모으고 그 후에 민주당도 힘을 합치는 시나리오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순서가 뒤집어질 수는 없다.
 
고성국씨 글 중에서 내가 또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은 김근태 전 의장의 실언을 근거 삼아 진보진영에 대하여 “또 다른 권위주의, 또 다른 동원주의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고 경고하는 대목이다. 나는 그의 이런 비판이 지나친 비약이라고 본다. 그는 그의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혹 개혁진영에 속하는 사람들은 '우리도 하느라고 했다.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 우리가 이런 국민을 믿고 계속 정치를 해야 하느냐'는 심정을 토로할 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세력적으로 보면, 이런 집단정서야 말로 오만한 독선으로 비쳐질 것이 분명하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을 대상화하는 이런 발상과 정서야 말로 또 다른 권위주의, 또 다른 동원주의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는 사실이다.”-<프레시안 11월 30일자>, 고성국씨의 글 “그래도 이명박 찍겠다는 이유,정말 몰라?” 중에서.
 
나는 이 대목이 김근태 전 의장의 발언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것이라고 본다. 진보진영의 인사들 중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라고 항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가 잘못한 점이 많다는 것은 잘 아는데 국민들이 해도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라는 항변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김근태 전 의장도 그런 취지의 발언을 하다 실언을 내뱉은 것이고 말이다.     
 
다시 ‘반성의 개혁적인 원칙’으로 돌아가서 나는 진보적 지식인들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반성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히 답하면서 정치가들과 대중들의 행태를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수구보수정당 지지율이 높다 하여 진보진영 정당들의 이념과 정책들이 현재의 수구정당의 이념과 정책에 보다 더 가까워져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으로 대중들이 진보진영에 실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서민경제침체,다른 하나는 부동산 가격상승. 물론 시시콜콜한 다른 이유도 많겠지만 이 두 가지만큼 큰 것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서민경제 침체의 회복이 더딘 이유는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추진된 ‘세계화, 국제화,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미FTA도 그 연장선상에 있고 말이다. 그리고 수구정당 후보는 이를 더 강화하자고 하므로 그가 결코 서민경제 회복의 대안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진보진영 정부가 부동산 가격안정 시기를 놓친 이유는 진보진영 정부가 수구정당의 노선과 확실하게 선을 긋지 못하고 수구언론과 대중들의 이기심에 끌려다녔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2007년 부동산 가격은 ‘분양가 상한제 기대’와 ‘부동산 대출규제 강화’,그리고 ‘부동산 세제 강화’ 등등 여러 가지 조치에 힘입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런 조치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뒤늦게 나온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런 조치들을 이루어 내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수구정당과 수구언론과 대중들의 이기심이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진보를 대변하는 한겨레신문마저 ‘생애 첫 주택구입자에 대한 장기저리 대출 지원확대’규모가 작다고 비판할 정도로 개혁적인 부동산 정책의 추진 여건은 좋지 못했다. 지금도 이명박 후보는 신혼부부에게 신규주택을 우선 공급하겠다는 반서민적인 공약을 내세우고 있고 정동영 후보도 신혼부부에게 장기저리 주택자금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반서민적인 공약을 내놓고 있다.
 
진보정당 부동산 정책이 실기(失機)한 이유는 이렇게 정치가들과 언론사들과 대중들이 “합성의 오류”에서 빠져서 빨리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통계청이 공식승인한 국민은행 주택금융수요조사에 의하면 주택구입자의 평균대출액은 7000만원이 넘는다. 그렇다면 LTV(주택가격 대비 대출액)를 현재의 40~60%에서 20~40%로 강하게 규제하면 어떻게 될까. 평균대출액은 7000만원에서 4000만원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그러면 전국의 주택 매수세는 상당한 속도로 냉각되게 된다. 그리고 매수세가 냉각되면 가격 또한 상당히 떨어진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서민대중들이 ‘부자만 투기하느냐. 우리도 투기해서 불로소득 좀 벌어보자’라고 주장하며 부동산 대출규제 정책에 딴지를 걸게 되면 투기꾼들만 신나는 것이다.투기꾼들은 이런 서민들의 투기열기를 노리고 선행(先行) 투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는 이러한 대중들의 “합성의 오류”에 결단력있게 대처했어야 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건설족 관료들과 금융족 관료들의 경제위기론 협박과 수구정당과 보수언론의 교활한 공세에 밀려서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유럽의 사례에서 보듯이 ‘부동산 가격은 보수정당이 아니라 진보정당이 잡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2000년대 진보정당 집권기에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이 조기에 잡히지 않은 이유는 진보진영 정당이 진보진영 정당답지 못했고 진보정부가 진보정부답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민경제회복이 더딘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진보진영 정당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진보진영 정당이 진보진영 정당다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진보진영 정당이 진보진영 정당답지 못해서 실패했다는 뼈저린 자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보진영 정당의 변신의 방향이 그렇게 설정되었다면 지금이라도  이들이 주로 들어야 할 목소리는 보수화된 다수 대중의 목소리가 아니라 소수라 하더라도 진보적인 대중들의 목소리인 것이다. 
* 필자는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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