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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변신아닌 <트랜스포머>에 실망하는 이유
[컬처뉴스의 눈] <트랜스포머> 스크린 대공세의 덫에 걸리나
 
안효원   기사입력  2007/07/03 [18:42]

사람마다 한 영화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다르다. <트랜스포머>도 마찬가지. 어떤 이들은 어렸을 때 갖고 놀던 ‘변신 로봇’이 눈앞에 펼쳐질 장관을 기대했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마이클 베이(감독)와 스티븐 스필버그(제작)의 만남만으로 영화가 궁금했을 것이다. 더구나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되고, ‘로봇들의 변신장면만큼은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으니, <트랜스포머>는 이래저래 기대작이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트랜스포머>는 지난 28일 개봉 후 관객 점유율 74.8%를 기록하며, 전국 관객 1,894,788명(3일 아침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자료)을 동원했다. <트랜스포머>의 이 같은 흥행기록은 918개 스크린을 확보한 <캐리비안의 해적 3>의 관객 점유율 71.7%보다 앞선 수치이다.

‘로봇들의 변신장면만큼은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트랜스포머>
▲ ‘로봇들의 변신장면만큼은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트랜스포머>

하지만 기자가 기대한 것은 다른 것이다. 올 상반기 한국영화계의 최대 쟁점을 꼽으라면 단연 <스파이더맨 3>나 <캐리비안의 해적 3>의 스크린독과점이다. 지난해 <괴물> 개봉 당시 620개 스크린이 논란이 되었지만 두 영화는 <괴물>의 스크린수를 훌쩍 뛰어넘어 각각 800, 900여 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두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흥행 신기록을 세웠지만, 최종 결과에 이른 현재 500만 관객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각각 전작의 수준에 머문 것이다.

<트랜스포머>의 출발은 두 영화의 공격적인 방식과는 사뭇 달랐다. 두 영화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물론 대다수의 영화들에 비하면 공룡 같은 덩치지만, 550개 스크린에서 출발했다. 기자가 기대했던 것은 바로 이점이다. 무작정 뿌려놓고 보는 ‘막가파식’이 아니라 적정한 규모에서 시작해서 일정한 상영기간을 유지함으로써 어떤 흥행결과를 얻을 것인가. 600개 미만의 스크린에서도 3~4주 이상 안정적으로 상영된다면, 충분히 <스파이더맨 3>나 <캐리비안의 해적 3>의 흥행기록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너무 성급한 것이었다. <트랜스포머>의 스크린수는 개봉 이틀만에 전국 697개로 늘어났다. 또 소위 ‘프라임 타임’이라고 불리는 관객이 극장을 찾기 좋은 시간은 <트랜스포머>가 모두 차지했다. 지난 주말에 당신이 극장을 찾았다면 아마 “극장에서 <트랜스포머>밖에 안 하네”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기자는 ‘개봉 첫 주 스크린수 제한’을 제안한 바 있다. 개봉 첫 주 스크린수를 제한하고, 2주차부터는 극장이 자유롭게 스크린수를 정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 제안은 적절한 스크린수 조절이 영화다양성을 보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극장 등 영화계의 수익면에서도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왔다. 한 영화가 800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하고 그에 따라 다른 영화의 상영기회를 박탈한다면, 극장이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영화는 오직 한 영화일 뿐이다.

통합전산망 박스오피스(3일). <트랜스포머>가 74.9%의 관객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영진위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한 영화가 다수의 스크린을 그리고 프라임 타임까지 확보한다면 다른 영화들의 관객은 현저히 줄어든다. 하루에 한두번 상영하는 시간을 맞춰야 하고, 밤 늦께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관객의 선택권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올 상반기 한국극장가의 현실이 이러했다. 그 결과 한 영화가 전체 관객의 75%를 차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첫 주 70% 이상 관객 점유율을 기록한 영화가 한주가 지나면서 관객이 반으로 줄어든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스파이더맨 3>나 <캐리비안의 해적 3>는 대규모 개봉으로 초반 흥행은 성공했지만 1주차가 지나면서 관객수는 현저히 감소했다. 최대 관객동원 시점을 기준으로 관객 감소율을 일컫는 ‘드롭율’이 크다는 것이다. 올 상반기에 개봉한 영화들의 경우 스크린수가 많은 영화일수록 드롭율이 컸다.

개봉 첫 주 스크린수 제한은 무작정 700~900개 스크린을 잡는 것이 아니라 한 주 동안 관객 점유율을 살펴보고 적절한 개봉 규모를 정하자는 것이다. 이는 관객에도, 극장에도,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Win-Win-Win’이 될 수 있는 제안이다.


지난해 천영세의원실에서는 멀티플렉스의 스크린을 제한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또 올해 스크린독과점이 심화되면서 영화계 일각에서도 스크린독과점 제한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과 스크린쿼터문화연대는 스크린독과점 제한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고,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차승재 대표 또한 적정한 개봉 규모가 전국 400개 스크린 정도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극장은 자율경쟁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반대의사를 표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스크린독과점 제한과 자율경쟁은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인가. 그렇지 않다. 개봉 첫 주 스크린수 제한은 합리적 조정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이렇듯 <트랜스포머>에 대한 기대는 관객, 영화, 극장 등 모두에게 제살파먹기식의 치고 빠지는 공격적인 와이드릴리즈가 아닌 합리적 규모를 시험해 보자는 것이었다.


한편 <트랜스포머>의 주말 스크린 확대를 지켜보면서 지난해 12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시행한 ‘상영신고 의무 면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진위는 통합전산망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극장 상영 전에 구청 및 해당기관에 최소 하루 전에 신고를 해야하는 의무를 없앴다. 스크린쿼터 일수 감시를 위해 시작된 상영신고는 ‘어떤 영화를 상영하겠다’는 일종의 약속이자 의무였다. 


하지만 극장 상영 후 보고만 해도 되는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 극장은 ‘드는’ 영화를 선별해 상영 시간표를 조정하는 데에 골몰하고 있다. 당신이 보고자 했던 영화가 하루만에 상영 시간표에서 사라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트랜스포머>가 며칠 사이 550개에서 697개 스크린으로 확장됐다면, 그 과정에서 사라진 영화가 왜 없겠는가. 흥행 1등 영화가 아닌 이상, 자기 자리를 언제 <트랜스포머>와 같은 영화에 내줘야 할지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

문득 ‘배급업자의 비애’가 느껴진다. 소위 큰 영화가 아닌 이상 스크린을 확보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미 확보한 스크린 또한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 주말에 잠이나 잘 잘 수 있겠는가. ‘눈 감으면 코 베는 세상’이 아니라 ‘눈 감으면 스크린이 사라지는 세상’이다.


* 본 기사는 민예총 컬처뉴스 (www.culturenews.net) 에서 제공했으며, 본문의 제목은 원제와 조금 다르게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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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7/03 [18:4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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