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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작가' 피천득의 진실과 권정생의 삶
[정문순 칼럼] 시대가 외면한 아동작가, 시대를 외면한 수필문학가의 삶
 
정문순   기사입력  2007/06/15 [14:54]
지난 5월, 두 명의 문인이 세상을 떠났다. 권정생과 피천득. 각각 한국의 아동문학과 수필문학을 대표하는 별로 추앙을 받았던 인물들이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비슷한 시기에 세상과의 인연을 놓았지만, 이들이 이승에서 누린 삶의 행보와 문학 세계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병고와 극빈 등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고행의 삶과,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사회적 지위와 명예에다 장수의 복을 누린 두 문인의 대조적인 이력은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한 사람의 문학은 피를 토하듯 처절하여 가슴을 서늘하게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담백하고 고상한 취향에 몰두했다. 또 한 사람의 문학적 업적에 관해서는 이의제기하는 목소리를 찾기 힘든 데 반해 다른 한 사람은 평가가 분분하다는 점에서도 서로 대비를 이룬다. 생전에 전혀 교류가 없었으리라 짐작될 만큼 문학적 행보가 조금도 일치하지 않은 두 사람이지만, 두 사람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는 데는 서로를 참조사항으로 끌어와야 할 듯하다. 피천득 문학을 둘러싼 소음을 제대로 살피기 위해서라도 권정생을 불러오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권정생이 아동문학의 빛나는 별임을 부정하는 이는 찾기 힘들다. 고인의 생전에, 평론가 김상욱은 이 땅에서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그 별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의 처지가 대견스러워질 정도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고인의 문학세계를 평론하는 자리에서 “억장이 무너진다”는 표현밖에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작품이 내뿜는 광휘에 압도되어 평론가의 필력은 날을 세우지 못하고 꼬리를 감춰버린 것이다. 또 어떤 이는 평생을 괴롭힌 처절한 병고에도 불구하고, 무소유와 무욕의 삶과 어린아이 같은 영혼을 일생토록 견지한 고인에게  “우리 시대의 스승”이라는 헌사를 바쳤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찬사가 지나치지 않을 만큼 권정생 문학은 특이하고 이채롭다. 권정생의 작품은 어린이를 계몽과 훈계의 대상으로 보는 데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끈질긴 한국 아동문학의 관습을 답습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세상이 밝고 아름답다고만 가르쳐야 한다는 강소천 등 주류 작가들의 고집과도 그는 처음부터 결별했다.

코흘리개들에게까지 냉전적 사고와 호전 의식을 주입하는 데 열을 올렸던 당대의 다른 작가들과 달리 권정생은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을 위시한 전쟁의 폭력성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 중 「패랭이꽃」은 아이들과 꽃을 사랑하는 착한 청년이 아무런 마음의 갈등 없이 베트남전쟁에 징집되어 가는 모순을, 6·25전쟁 때 월북한 아버지를 둔 여자아이의 항변을 통해 그리고 있다. 소설이 세상에 나온 때가 1970년대임을 생각하면 시대를 훌쩍 앞서 평화와 탈냉전을 탐색한 그의 선견이 돋보인다.

고전으로 대우 받는 외국의 명작동화들이 그렇듯 권정생의 동화는 아이들만 읽는 기존의 아동문학을 넘어섰다. 『몽실언니』와 『강아지똥』 등이 가진 철학적 깊이는 어른의 독서를 요구한다. 그에게 ‘어린이’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받고 고통당하는 소수자의 이름이었고, 밑바닥에서 짓밟히면서도 맑은 영혼을 잃지 않은 민중의 상징이었다. 그의 작품에 가난하고 헐벗은 하층민과 여성들이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강아지똥은 쓸모없다고 천대받았지만 노란 민들레꽃을 활짝 피워내지 않았는가.  

권정생 선생의 생전모습 ⓒ 월간 작은책
▲ 권정생 선생의 생전모습 ⓒ 월간 작은책
권정생은 민중이 남긴 구술문학을 활자로 옮기는 것이 시급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마을 할머니, 시장터 술장수 아주머니, 공사판 노동자 아저씨들까지 읽어주는” 문학을 쓰는 것이 작가적 소임이라고 했으며, 미완성작으로 남은『한티재 하늘』에서 구술형 문학이 본격적으로 시도되었다. 구술 문학의 복원 시도와 더불어 내가 생각하는 권정생 문학의 가장 큰 미덕은 생생한 현재형이라는 데 있다. 리얼리즘 정신에 투철한 문학이라는 평가가 대세를 이루긴 하지만, 그의 문학은 생태주의, 여성주의 등 다양한 잣대로 읽을 수 있는 열린 텍스트로 살아 있다.

그러나 세상은 권정생을 제때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삶과 문학의 비주류성은 제도권 문학이 환영할 수 있는 범위 바깥에 있었다. <권정생 이야기>에 나와 있는 데뷔 초기의 일화는 그와 주류 문단과의 거리를 잘 말해준다. 문학상에 입선하여 문단에 나왔을 즈음 그는 시상식에 입고 갈 옷이 없어 여기저기 기운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아는 사람이 그것을 보고 바지 한 벌을 구해 억지로 덧입게 했는데, 그 입성이 얼마나 초라해 보였는지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행사가 끝나자마자 등을 치며 빨리 떠날 것을 종용했다고 한다. 그의 등을 떠밀었던 문단은 코흘리개 아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몽실언니』와 『강아지똥』등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것과는 반대로 교과서에서 오래도록 그를 소외시켰다.

피천득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과 중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엘리트 출신에다 춘원의 제자였으며 해방 이후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다 은퇴한 후 백수에 가까운 나이까지 수복을 누린 문인이다.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월드컵 대회 때 붉은 티셔츠를 입고 대표 팀을 응원했다고 할 정도로 정정한 만년을 보냈다. 평탄한 인생만이 아니라 수필문학가라는 타이틀로도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문인들이 가문의 영광이라 부를 정도로 영예로 삼는 교과서 작품 수록에서 피천득은 저작권료 수입 1위를 기록한 적이 있을 만큼 해방 이후 교과서에서 단골로 만나는 작가다.

피천득의 문학은 자신이 「수필」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말한 대로 ‘청자 연적’, ‘학’, ‘난초’ 등의 ‘온아우미(溫雅優美)’한 세계를 지향한다. 호흡이 짧고 간결하며 화려한 비유를 자제한 그의 문장은 크게 욕심 부리지 않는 담백한 성정을 느끼게 한다. 피천득은 “마음의 여유”가 글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꽃잎 하나가 비뚤어진 연꽃 모양의 청자 연적에서 흠이 아닌 파격을 발견하는 태도처럼, 그의 글은 무미건조하고 천편일률적인 일상에서 각별한 멋을 발견하는 삶의 태도를 드러낸 것들이 많다. 그의 글은 정치·사회적인 논점이 등장하는 일은 드물다. 평온한 일상에서 포착한 새로움, 신변과 관련된 소소한 화제 거리가 작품의 주조를 이룬다.

▲수필문학가, 국민작가(?)의 타이틀이 붙은 피천득의 작품세계를 재조명 할 때가 되지 않았나?     © 인터넷 이미지
피천득 수필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신변잡사나 일상적인 것들은 마치 수필문학의 본디 특성인 양 알려져 왔고, 제도권 교육을 통해 굳혀져왔다. 그러나 일상의 시시콜콜한 가벼움을 다루는 것만이 수필의 전부는 아니다. 정치적이고 논쟁적인 무거운 글들도 수필의 한 식구에 들어가는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수필은 정치 연설, 철학자의 사변적 글, 학술논문 같은 딱딱한 글에서 잡담 수준의 글까지 산문에 해당하는 글을 모두 포괄한다. 수필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여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라고 정의해 놓고서도 정작 비정치적이고 신변잡기적인 글들이 전부인 것처럼 가르치고 유포해온 데는 제도권 문학의 책임이 크다.

수필의 영역이 제한을 받게 된 것은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보수적이고 친체제적인 문인들이 문단의 주도권을 장악한 것과 관계가 있다. 김진섭, 이양하, 유치진 등 1930년대에 프로문학과 각을 세웠던 ‘해외문학파’의 후예들이 해방 이후의 문단을 틀어쥔 세력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영미 유학을 통해 영문학을 배워온 사람들로 구성된 ‘해외문학파’들은 독립적인 문학 영역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던 수필을 개척하는 데 힘써 해방 이후 교과서에 수록된 수필을 자신들의 것으로 채웠다.

자족적이고 비정치적인 피천득의 글은 이들의 구미에 들어맞는 것이었고 오랜 세월 동안 중등학교 교과서에서 그의 작품은 해외문학파들과 함께 빠지지 않고 실렸다. 김진섭, 이양하, 이하윤 등의 해외문학파 작가들과 피천득의 글은 오늘날에도 중등 교육과정 6년 동안 학생들이 만날 수 있는 수필 작가의 전부나 다름이 없다. 피천득은 영문학자이자 번역가이기도 했다. 왕성한 전업작가로 활동했다고 보기 힘든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수필문학가로 만인에게 각인되어 있는 것은 「인연」 등 교과서에 실린 4-5편의 작품들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피천득 수필의 비정치성은 삶과 현실의 일치를 강조하는 리얼리스트들에게는 용납하기 힘든 것이 많다. 제도권 교과서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피천득의 작품은 야유에 가까울 정도의 비판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의 대표작이자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 일본 유학 당시 하숙집 딸과의 추억을 회고한「인연」은, 태평양전쟁(2차대전 당시 미일전쟁) 같은 엄혹한 현실을 사적인 추억의 들러리로 치부했다는 격한 비판을 받는다.

전쟁의 광풍이 몰아친 뒤 재회하고 보니 그녀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다. 그래서 “십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되었더라면” 그녀와의 결혼이 이루어졌을지 모른다고 아쉬움을 나타내는 대목이 있다. 전쟁이 미리 났더라면 운운하는 진술은 분명 경박하고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비판을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전쟁 같은 극단의 비극이 ‘일어나지 말았으면’이 아니라 미리 일어나기를 바랄 수도 있다는 것에서 그의 현실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게다가 그가 태평양전쟁의 비극을 고스란히 감당한 식민지를 나라로 둔 사람이라는 작품외적인 점까지 고려하면 전쟁을 쉽게 입에 올린 실수는 더 참을 수 없는 것이 돼버리기도 한다.

현실에 무책임해 보이는 그의 이런 태도는 삶이 정치와 무관하다는 의식이 작용한 탓이리라고 본다. 정치가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믿는 태도는 순진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딸이 장성하여 집을 떠나자 딸에게 어릴 때 사준 인형을 목욕시키며 딸처럼 대할 정도로 아이 같은 순진함이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순진함은 전쟁의 비극성에 눈감은 데서 드러나듯 대체로 정치적 무책임성과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 「인연」이란 작품의 치명적인 약점은 상대 여성의 마음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짝사랑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미화한 데 있다. 고작 세 번의 만남에다 악수도 나누지 않고 어색하게 이별했다고 하면서도, 작가는 결혼까지 진전할 수도 있었던 애틋한 사랑이라 말하고 있고 교과서도 그렇게 가르쳐왔다. 이만한 작품이 교과서에 단골로 올라 그에게 대표적인 수필문학가라는 위상을 부여해준 데는 씁쓸한 마음이 인다.

권정생과 피천득 두 사람의 문학에서 순수함이나 천진함이란 낱말을 떠올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정생의 순백함은 강아지똥처럼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피워낸 민들레꽃인 반면, 피천득의 그것은 혼탁한 현실의 접근을 처음부터 배제한 바탕 위에 가능한 것이어서 격이 서로 다르다. 현실을 만만하게 볼 수 있는 태도는 대체로 안정된 물적 기반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 피천득 문학의 여유와 너그러움, 담백한 풍취가 과연 그가 궁핍한 처지였어도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피천득이 세상을 떠나자 언론들은 ‘국민 수필가’가 부음했다고 앞다투어 소식을 전했다. ‘국민’이라는 낱말이 국정교과서 편수자들의 선호를 받아 교과서에 붙박이로 자리를 차지한 작가가 아니라,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만인의 사랑을 받은 작가에게 붙일 수 있다면 정작 그 호칭을 받아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고 본다.

『몽실언니』의 작가는 생전에 이웃의 가난한 할머니들이 그 소설이 자신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고 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대변한 작가를 통해 해갈하지 못한 독서 욕구를 조금이라도 풀 수 있었다. 독서 시장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는 서민 노인들까지 독자로 둔 이는 『몽실언니』작가 외에는 찾기 힘들 것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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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6/15 [14:5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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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2007/06/19 [12:42] 수정 | 삭제
  • 짝사랑의 상대와 결혼할 수도 있었다는 저자의 진술은, 짝사랑을 당한 그 여성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태도라고 봅니다.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말이 인간관계를 왜곡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감정 교류가 전혀 없었는데 저자가 '결혼'의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아쉬워하고 애틋한 인연으로 간직하는 것, 아름답게 보이지 않습니다. 해당 여성으로선 일방적인 감정의 대상이 될뿐이지요.
  • aa 2007/06/17 [12:22] 수정 | 삭제
  • 피천득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작품의 치명적인 약점은 상대 여성의 마음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짝사랑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미화한 데 있다'

    짝사랑을 미화한 게 왜 문제가 되지요? 알퐁스 도데의 '별'은 어떻습니까? 짝사랑이라는 애틋함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 아닌지요? 피선생이 스토커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인연'에는 그 여자가 피선생을 어떻게 생각했다 식의 착각성, 추측성 표현도 없습니다.
    합의된 사랑(짝사랑에 대비해서)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아직 확인하지 못한 부분은 자기 기대만큼의 짝사랑을 하면서 살기도 하고요...

    답변을 꼭 듣고 싶은데요...그럼 총총.
  • 이재홍 2007/06/17 [05:42] 수정 | 삭제
  • 저도 권정생씨의 글이 피천득씨의 글보다 좀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아마 이런 느낌의 차이는 피천득씨의 수필이 아름다운 글임에는 분명하나
    우리의 척박한 삶이 그 안에 제대로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이 점 이후 평론가들이 제대로 평가를 하겠지요.

    우리나라에 친일 및 친독재를 이유로 비판 받는 문인들이 많습니다.
    저도 물론 문학에 있어 글재주보다는 삶의 진정성이 우선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친일 및 친독재 문인들은 욕을 먹어도 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그리 큰 오류 없이 근현대를 살아온 한 문인에 대한 글로는 너무 자기 가치관에 치우친 주장인 것 같습니다.
    삶에 대한 치열함도 좋지만 이 정도라면 과연 우리 곁에 누가 남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