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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렬대표와 노무현대통령은 닮은꼴?
'개혁적 보수주의'는 '우익적 포퓰리즘'의 다른 이름
 
김윤철   기사입력  2003/07/21 [14:51]

한나라당은 지난달 26일 두 차례의 대선 패배 후유증을 수습하고 ‘포스트 이회창’ 체제를 열 새 사령탑으로 예상과 달리 최병렬 후보를 선택했다.

이에 대해 보수언론들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강력한 견제를 기대하는 당원들의 뜻이 결집된” 것이며, “정권 대안세력으로서 ‘강한 야당’의 출현을 고대하는 국민의 바람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나섰다.

이런 평가는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일런지 몰라도, 노무현 정부와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여전히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별다른 개혁성을 발휘하고 있지 못한 상황을 감안할 때, 나름대로 타당성을 갖고 있는 평가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듯 하다.

▲합리적인 보수주의를 주창하면서도,'최틀러'라 불리우는 최병렬 대표. 보수독점정치의 날이 저물어가는 시점에 등장한 그가 과연 합리적인 판단의 기회를 민중들에게 선사할 수 있을까?  ©인터넷합성이미지
실제로 최병렬 대표는 ‘개혁적 보수’, ‘합리적 보수’를 이념적 모토로 하여 ‘강력한 야당건설’을 역설해왔다. 그간 최병렬 대표에 대한 정계와 언론계 등의 평가를 고려할 때에, 이는 단지 선거를 위한 정치적 레토릭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때문에 항간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이제 그야말로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난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도 애초 기대와 달리 최병렬 대표체제가 출범하게 되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의 정국운영이 더더욱 힘겹게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평가들처럼 최병렬 대표체제 하에서의 한나라당이 DJ 정권 시기나 노무현 참여정부 출범 이후 보여왔던 ‘발목 잡기’ 식의 정치를 탈피하고, 진정 개혁적 보수 이념의 정책정당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면, 이는 분명 한국정치의 발전에 있어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정치의 핵심적 문제점 중 하나가 기성 정치세력들 모두가 개혁을 이야기하면서도 분명한 이념,정책적 정체성을 담지하고 있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때문에 한국정치는 단지 지역주의 동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발목잡기 정치도 바로 이러한 이념,정책적 정체성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관련기사] 김광선, 이회창은 푸대접, DJ에게는 문전박대 당하고 (대자보 2003 .7.19)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최병렬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의 현재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결여된 것이다. 최병렬 대표를 보면, 특히 그가 대표로 선출되는 과정을 보면 그가 “무릎을 꿇게 할 것”이라고 말한 노무현 대통령과 매우 흡사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우선 그가 말하는 개혁적 보수주의가 도대체 정확히 어떠한 이념인지, 그것이 어떠한 정책으로 구체화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둘째, “노무현 정부가 정당성을 상실하면, 타협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보수언론에 대한 태도에서 그러했듯이) 정부를 미리 ‘적’으로 설정하고, 적대감을 표출하면서 ‘긴장의 리더쉽’을 형성, 지속적인 ‘위기의 정치’를 동원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 점에서 보면 노무현 정부와 똑같이 마치 선거국면에서의 긴박감이 일상화된 듯한, 즉 ‘일상화된 선거정치’의 재연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셋째, 여론정치에 능하다는 점에서도 양자는 공통점을 갖는다. 애초 약세이던 최병렬 후보 진영은 특정 언론보도를 활용한 여론조작을 통해 인위적인 양강구도를 형성, 대안카드로써 세몰이를 했다는 것이 정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모신문의 기자와 간부 출신이라는 점이 커다란 잇점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넷째, 당내 기반이 그다지 강고하지 못하다는 점에서도, 또 당내외 이해갈등조정의 경험이 부재하다는 점에서도 양자는 닮은꼴이다. 즉 최병렬 대표체제 역시 노무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당내 결속을 위해 뚜렷한 역할을 한 적도 없을 뿐더러, 그것을 위한 물질적 기반도 부재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전문 ‘위기관리사’로서 명성을 떨쳐왔다. 노동운동이 87년 7,8,9월 대투쟁으로 한참 급성장하던 90년 노태우 정권 시절 노동부 장관으로, 94년 김영삼 정권 시절 성수대교 붕괴 때는 서울시장으로 ‘활약’했다. 그 과정에서 그가 보인 강력한 추진력 때문에 그는 ‘최틀러’라는 별명마저 얻은 바 있다.

하지만 사실 그가 수행한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 엄밀한 평가가 내려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가 수행한 위기관리 능력이라는 것이 90년도에는 ‘공안정국’, 94년에는 ‘주사파 파동’ 등으로 모두 국가의 억압적 물리력에 바탕한 ‘힘의 정치’가 병행된 과정에서 발휘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의 강력한 물리력이 위기관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인지, 아니면 그의 독자적인 능력이 발휘되었던 것인지가 분명하게 가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이때문에 그를 강력한 리더쉽의 보유자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시대별 정치사회적 상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된다고 할 것이다.

이때문에 최병렬 대표체제 하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사실 개혁적 보수주의라고 하기 보다는, 한나라당과 조선일보 등의 수구보수주류언론이 노무현 참여정부에 대한 공격논리로 애용하고 있는 포퓰리즘, 그것도 ‘우익적 포퓰리즘’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릇 개혁과 수구-보수를 망라해 그야말로 포퓰리즘의 정치가 만개하는 시대의 도래라고나 할까.

히틀러는 선동력을 높이기 위해 석양이 질 무렵에 주로 대중연설을 했었다고 한다. 아마도 붉은 태양을 뒤로 한 채, 열정적으로 연설하는 히틀러의 모습에 군중들은 매료되었던가 보다. 적어도 합리적인 보수주의를 주창하면서도 ‘최틀러’라고 불리우는 최병렬 대표는 어떠할까? 보수독점정치의 날이 저물어가는 시점에 등장한 그가 과연 합리적인 판단의 기회를 민중들에게 선사할 수 있을까? 자뭇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 필자는 민주노동당(http://www.kdlp.org) 정책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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