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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에도 들꽃으로 피어있을 분에게
삼성SDI해고 노동자 송수근 씨 부인 박미경 님에게
 
정문순   기사입력  2003/07/18 [09:34]

▲박미경씨가 1인시위하러 갈때 타고 다니는 탑차     
박미경 님, 저번에 보내주신 편지는 잘 읽었습니다. 대자보에 쓴 변변찮은 제 글이 힘이 되었다고 하시니 기쁘고도 부끄럽더군요. 두 번째 편지를 받고 아직 답장을 보내지 않았지만, 의례적인 편지로 읽고 넘어가기에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강인한 분이니 잘 이겨내리라는 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역시 몸이 목석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무쇠도 소화시킬 수 있을 나이인데 보양이 될만한 음식을 찾아야 할만큼 왜 그리 몸을 혹사시켰는지요.

잘 싸우기 위해서라도 몸에 탈이 없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오너라 정작 버팀목이 되어야 할 몸을 소홀히 하신 것 같군요. 하긴 어디 그럴 여력이 있었겠습니까. 자신의 안위보다 동료 노동자의 처지를 생각한 것이 죄라면 죄인 남편 분이 해고와 2차례에 걸친 구속을 당했는데 저 같아도 밥이 넘어가지 않았겠지요. 7살이던 딸 은지가 9살이 되어서야 아빠를 볼 수 있었다니 한 가정에 뻗친 삼성SDI의 횡포를 생각하면 그들을 결코 용서하고 싶지 않으실 겁니다.

[관련기사] 정문순, 노동자의 아내에서 운동가로, 투사로 서다 , 대자보

무노조 경영 신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직원이나 해고 노동자에게 협박이나 납치 등 어떤 인권유린도 못할 것이 없는 삼성이지만, 박미경 님 일터에까지 감시 차량을 하루 종일 주차해놓거나 남편과의 통화를 도청까지 한다는 사실 앞에서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물리적인 탄압으로는 두 분한테 어떻게 해도 먹히지 않으니 딴에는 머리를 좀 썼나보군요. 감옥 생활이 수형자에게 괴로운 건 감옥에 갇힌 것 자체보다 일상적인 감시를 당하기 때문이라는데, 그것처럼 누군가에게 일거수 일투족 감시 받는 상황을 견뎌낼 사람은 없을 거라고 저들은 계산했겠지요. 저들은 도대체 무엇이 그리 두려울까요. 세계에서 손꼽힌다는 모니터 제조업체가 위신에 어울리지 않게 한 노동자 가족한테 이렇게 좀스런 짓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최근에는 박미경 님까지 명예훼손으로 걸겠다고 협박한다면서요?

아마 그들이 정작 살 떨리게 두려워하는 것은 박미경 님 가족이라기보다, 동료의 해고에도 묵묵히 일터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러나 언제 무슨 집단 행동을 할지 알 수 없는 노동자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회사에 입 바른 소리하는 사람은 얼마만한 보복과 해꼬지를 당하는지 동료들에게 똑똑히 보여주는 것만큼 효과적인 노무관리는 없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회사에 대들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잘 봐두라고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떠벌릴 수 있을 만한 상황에 두 분이 처해 있는 것이겠지요. 두 분, 건강을 해쳐서는 안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닐런지요. 회사 정문 앞에서 시위하는 박미경 님과 남편 송수근 씨에게 눈길조차 주지 못하는 동료 노동자들도 아마 마음은 가시방석에 앉은 듯하겠지요. 함께 일하지 못하는 동료에 대한 미안함과, 목구멍이 포도청인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송수근씨     ©송수근 홈페이지
박미경 님 가게에 수시로 들이닥쳐 마음을 긁어놓고 간다는 노무과 직원들, 어떻게 보면 측은한 인생들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기업에서도 노무과 사람들이라면 한때 잘 나가는 시절이 있었죠. 쟁의라도 일어나면 몽둥이 휘두르며 현장에 들이닥치거나 여성 노동자들 머리채 끌고 나가던 열혈 충성파들인데, IMF 때 해고 1순위가 바로 이들이었다지요. 노동운동의 침체기와 경기불황기에는 기업으로서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이들인데, 박미경 님 가슴에 불을 지르는 이 사람들, 자신들의 존재 가치가 박미경 님이나 송수근 씨같이 삼성의 눈엣가시 같은 분들한테 있다는 것을 알면 두 분께 절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요? 그들이 박미경 님 가족을 유치하게 괴롭히는 데 아무 양심의 가책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자신들이 삼성의 사람이라는, 기업과의 일체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들 생각일 뿐이죠. 삼성에 아무리 충성해봤자 자신들의 용도는 한시적일 뿐이라는 것, 이들은 알고나 있을까요. 10년 뒤에도 두 분은 오늘처럼 들풀같이 강건한 노동 투사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저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며칠 전 어느 신문을 보니 삼성이 언론에서 자신들에 관해 언급하기 싫어하는 세 가지가 있다더군요. 하나는 총수 일가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는 구조조정 문제와 무노조 경영이라고 합니다. 저들 귀엔 무노조를 비판하는 소리가 당연히 듣기 싫을 테고, 그룹 구조조정 본부라는 곳은 악명 높은 노무 관리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데니 거기도 '품질'이 좋지 않은 곳이죠. 총수 일가 문제는 요즘 부쩍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삼성의 지배권을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는 황태자 이재용과 관련되겠지요.

박미경 님이나 저와 비슷한 연배인 이 사람은 삼성 계열사들의 온갖 비호 아래 주당 5만5천원 하는 삼성SDS주식을 7천원 남짓한 푼돈에 사들여 1600억원을 눈 감고 챙긴 적이 있죠. 이 사람, 모니터 한 대 제 손으로 만들어본 적이 있을까요. 자신이 법의 맹점을 악용하여 주식 가지고 장난하고 있을 때 삼성SDI에서 뼈가 부서져라 일하다가 말 그대로 뼈가 아픈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알고나 있으며, 그들 중 여성이라는 이유로 보상은커녕 부당해고를 당하고 회사정문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한 노동자의 물러설 수 없는 심정을 알기나 할까요. 삼성이 제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를 두고 못 보는 것도, 박미경 님과 송수근 씨 등 노동자의 자주적인 목소리를 막자고 그렇게 기를 쓰는 것도, 그 근원을 따지자면 이건희 일가가 기업을 사유화하고 주무르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 아닌가요.

제가 너무 흥분했나요? 은지도 곧 방학이겠지요. 이제는 아빠와 함께 있으니 은지 한이 반이나마 풀렸는지 모르겠군요. 한 가족이 들꽃이 바람에 살랑이는 들녘을 오붓하게 거니는 정경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두 분 모두 흔들림 없이 꿋꿋하시리라 믿습니다. 두 분의 싸움은 재벌기업과의 맞섬을 넘어서 인간의 위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게 해주는 것이자, 세상이 좋아졌으니 약자가 양보하라는 말이 범람하는 현실에서 노동자가 여전히 치열하게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짐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건강하셔야 합니다. 의지로 이겨낸다 하더라도 몸이 부실해지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남의 거처를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들쥐 인생들에게 즐겁고 밝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신다면 너무 통쾌할 것 같군요. 오늘 내일 끝날 싸움이 아닐테니 먼 길 숨을 고르고 간다는 뜻으로 느긋하게 움직이시라고 말한다면, 오늘도 땡볕 아래서 공룡과 맞선 두 분에게 너무 한가한 소리는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몸이 가장 큰 재산이라는 것만큼은 동의하시겠지요. 부디 이 더위에 건강과 안녕을 빕니다. / 편집위원  

* 필자는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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