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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아나운서와 연예인의 자살에 숨겨진 현실
[정문순 칼럼] 불공정과 편견, 남자들의 천박한 인식이 여성 역할 얽매
 
정문순   기사입력  2007/03/13 [15:14]
텔레비전 뉴스를 잘 보지 않지만 어쩌다 여성 아나운서의 진행이 귀에 들어올 때는 나도 모르게 몸이 긴장하게 된다.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말이 휙 지나갈 정도로 빠르니 말을 잡아채려고 몸이 그렇게 반응한다.
 
뉴스 보도에서 여자 아나운서들은 성량도 높고 말도 줄달음치듯 빠르도록 훈련된다. 표정은 찬바람이 일 듯 굳어 있어, 옆에 있는 남자 아나운서의 여유 있고 당당한 태도와는 뚜렷이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긴급속보라도 전할 듯한 입에서 나오는 정보라는 건, 빌 게이츠가 딸이 컴퓨터에 빠져서 고민이더라는 등의 시시콜콜한 가십이 대부분이다.
 
딱딱한 표정...극단적인 선택
 
처음에는 그런 우스꽝스러움이 격정적인 뉴스 진행으로 시청자들의 긴장과 집중력을 높여 채널을 다른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시청률 경쟁을 위해 텔레비전 뉴스는 갈수록 쇼 프로그램을 방불하듯 가벼워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여자 아나운서들의 살벌함 감도는 진행 태도는 누가 시켜서라기보다 그들 내면의 어떤 절박함과 무관치 않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햇병아리 신참일 때 덜컥 뉴스 진행에 배치되는 반면 30살만 넘어도 뉴스 데스크에 있는 여자 아나운서를 찾아볼 수 없는 기이한 방송 풍토에서 여자 아나운서들이 느끼는 초조함과 압박은 도를 넘을 것이다. 게다가 보수적인 시청자들은 젊은 여성이 전달하는 정보를 신뢰하는 데 인색한 경향이 있다.
 
여자 아나운서들은 자신의 정보가 충분히 신뢰할 만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라도 과장된 표정과 말투를 동원할 수밖에 없다. 불공정과 편견으로 얼룩진 현실을 이겨내야 하는 젊은 여자 아나운서들이 감당해야 할 고강도의 긴장은, 불편한 현실과 싸울 일이 적어진 나이든 여자 아나운서들에 이르러서야 풀리는 듯하다. 방송사 노조가 파업하여 뉴스 진행할 사람이 없을 때에야 대타로 나오는 중년의 여자 아나운서들에게는 '독기'나 살벌한 분위기가 더 이상 없다.
 
그나마 엘리트 여성들은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막된 대우를 받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예사로 사람들에게 치이고 밟히는 여성 연예인들의 처지보다는 나을지 모른다.
 
잇따른 여성 연예인들의 자살은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서만 풀 수 있었던 그들의 긴장을 가늠해보게 한다. 그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서마저, 언론은 생전에 늘 웃어야 했던 그들이 드러낼 수 없었던 마음의 스트레스를 제대로 알리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죽음마저 재미난 구경거리로 만들어 한 몫 챙기려고 한 포털사이트들에 의해 여성 연예인의 자살은 완벽한 흥행 이벤트로 전락할 뿐이었다.
 
고인이 된 그들은 자신의 죽음마저 생전에 대중에게 격정과 흥분을 주었던 연예 활동의 연장으로 취급된다는 것을 알았을까.
 
대중의 소비욕을 충족시켜야 살아남는 연예계는 남자들이 현실에서 바랄 수 없는 여성상이 노골적으로 관철되는 곳이다. 여성 연예인에게는 남자들의 천박한 판타지가 거리낌 없이 투영된다.
 
남자들은 여성 연예인들이 이슬만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일상에 치여 사는 누추한 존재라는 것도, 남자와 맞장 뜨거나 솔직하고 자율적으로 사는 것도 원치 않는다. 이를 어기는 여성에게 돌아오는 것은 외면이나 비난밖에 없다.
 
편견에 저항하기 위한 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지 않으려면 남편에게 폭력을 당해도 이혼하지 말아야 하고, 재혼은 더욱 안 되며, 성형수술과 무리한 다이어트를 통해서라도 외모와 몸매로 성적 자극을 주어야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성에 초연한 듯해야 한다.
 
이혼이나 재혼, 외도를 한 여성 연예인들이 욕을 들어먹는 이유는 오로지 성을 '밝히는' 것으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한갓 소모품으로 다루어지는 것과 저항하기 위해 여성들은 피곤하다. 전장에 나가는 병사와도 같은 표정의 여성 아나운서, 그런 긴장을 드러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여자 연예인들이 편안하고 넉넉한 얼굴을 찾기 위해서는 온갖 굴욕과 신산을 통과한 중년 이후에야 가능한가.
 
* 본문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 <경남도민일보> (http://www.dominilbo.co.kr) 3월 6일자에도 실렸습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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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3/13 [15:1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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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문순ㅉㅉㅉ 2007/05/01 [23:38] 수정 | 삭제
  • 문순님..

    나이 좀 드신분 같은데..
    딱 하시네요..

    ㅉㅉㅉ
  • 엥? 2007/03/30 [20:11] 수정 | 삭제
  • 아직도 나오네... 근데, 이름이 왜 아직도 석자여... 넉자가 유행인데...
    그럼 열심히, 현실을 숨기고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