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행정, 사법, 이 삼권분립이 제도적으로 고착되어 잘 실현되고 있는 나라는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이다. 우리나라가 언제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암담하다. 사법부가 아직도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정치권의 문제가 아니라 사법부 자체의 문제이다. 헌법재판소의 존재 의의가 무엇인가? 민주주의가 잘 실현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를 거꾸로 퇴보시키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개인이 인권침해를 받았을 때, 사법적 절차를 통해 구제받지 못했을 경우 마지막으로 헌법재판소가 한 번 더 인권 구제 목적으로 판결을 내리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존재하는 목적 이외의 사항을 판결해 달라고 헌소를 제기한 경우에는, '헌법재판소의 판결 사항이 아니므로 정치권에서 해결하거나 국민 투표로 해결하라'고 판결했어야 사법부가 독립을 유지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이 참에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고 권력맛을 한번 보자 하면서 정치적 사항을 판결내리는 순간 사법부는 맛이 갔다. '노 대통령 탄핵안 심판', '행정수도 이전 심판', '신문법 위헌 심판' 이런 것들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요구하는 사항이 아니었다. 법조인들이 무엇을 심판할 수 있고, 무엇은 심판해서는 안 되는지 구분을 못하니 사법부는 부모 품에서 독립할 수 없는 어린애인가 이 말이다.
헌법재판소 관련법이 잘못된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판결할 수 있는 범위는 아주 협소해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이에 대해 뭐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대한민국의 엘리트들이 청춘을 반납하고 법조인이 되기 위해 희생하는 나날들은 어디로 다 증발해 버리는 것일까? 그렇게 소중한 인생들을 뜻 있게 잘 활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헌법재판소가 정치권에서 악용되고 있으므로 현재로선 헌법재판소를 없애는 것만 못하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사법부가 국민 위에 군림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해 온 법조인들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사법부가 권력을 휘두르려는 입장에서 판결을 했기 때문에, 가진 자 승소 원칙이란 사법부의 관행이 뿌리내려졌다. 헌법재판소의 여론재판 관행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의 엘리트들이 청춘을 희생하고 사법시험에 올인했던 목적은 바로 권력이었다고 고백하는 증거들이다.
그런 구성원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법부가 정치권에게 '삼권분립 하겠다'란 독립선언을 못하고 자연스럽게 때로는 권력의 하수인으로 때로는 권력의 제왕으로 활약해 왔던 것이다.
토끼는 풀을 먹고살아야 하는 것이지 사자 고기를 먹으면 돌아버린다. 정치권의 갈등을 헌법재판소가 떠안는 모양새, 더 이상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허락되어선 안 된다. 전효숙 사태를 맞이하여 사법부가 정치권의 만행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고 있으니 사법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가슴이 답답하다. 사자 고기를 먹고 돌아버린 토끼를 국민이 치료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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