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석의 미디어 바로잡기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대한민국에서 삼성하고 살아가는 지혜
[언론시평] 삼성을 비판할 힘은 시민참여로 단체의 재정자립도 높여야
 
양문석   기사입력  2006/10/09 [19:48]
최근에 꽤나 재미있는 경험을 한다. 필자가 속해 있는 언론개혁시민연대(http://www.pcmr.or.kr/ 약칭: 언론연대)가 후원의 밤을 위해 날짜를 잡아 놓은 때였다. 사무처장이라는 직책이 살림살이 전체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이리 저리 ‘앵벌이’로 정신이 없을 때 친한 언론사 선배가 전화를 해 왔다.
 
“양박! 나도 브로커노릇 한 번 하자. 삼성 구조본에서 니 좀 보자고 한다. 몇 날 몇 시에 점심 약속 잡았는데...” 후후. 속으로 웃었다. ‘나에게 삼성 구조본이 전화를...’후후.
 
삼성구조본에서 만나자고 한다면...
 
우스개 소리로 삼성 구조본(지금은 삼성전략기획실로 이름 바꿈)으로부터 전화 한 통 받지 않은 ‘언론계 종사자들’은 둘 중 하나라고 얘기한다. 언론인으로서 무능력하거나 꼴통이거나...이 때 ‘꼴통’은 아무리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로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이 충만한 사람이다. 예를 들면 MBC의 이상호 기자가 바로 그 부류에 속할 것이다. 죽어라 이건희 이학수 홍석현을 향해서 ‘비수’를 들이대더니 결국 ‘안기부X파일’을 터뜨리고 만다. 이런 사람에게는 결코 삼성 구조본의 전화가 가지 않을 테고.
 
필자 또한 2002년 이후 ‘강호에 출두’한 이후 지속적으로 이건희 이재용부자의 탈법편법 상속문제부터 X파일까지 아주 집요하게 삼성 이건희 부자를 비판해 온 사람으로 ‘내 스스로 꼴통부류로 분류’해 왔다.
 
2000년 대학강사노조위원장을 할 때 성균관대에서 삼성의 교수사찰을 비판하며 대학본부 점거농성을 벌인 적이 있다. 학부총학생회 대학원총학생회 그리고 성대강사노조가 함께한 싸움이다. 30여 일간의 점거농성 중 삼성구조본의 관계자들이 집요하게 ‘만나자’는 연락을 보내 왔다. 하지만 당시 ‘만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결국 점거농성이 끝난 뒤 ‘해촉’(대학강사를 ‘일용잡급직’으로 분류하면 해고이겠으나 ‘자영업자’로 분류해 해촉이다)을 당했던 터.
 
더 이상 성균관대 강단에 설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날, 시내버스를 타고 명륜동에서 집으로 가는 도중 해촉보다 더한 충격을 받았다. 시내버스 차장을 스쳐가는 바깥 거리의 간판들. 당시 느낌으로 100미터 간격을 ‘삼성로고’가 늘어서 있는 것 같았다. ‘사고’칠 때는 몰랐는데, 사고치고 나서 징계 받고, 그 때까지 실감하지 못하다가 징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에 대해서 실감한 것이다. ‘한국에서 삼성의 그림자를 피해서 살기 어렵겠구나...’
 
그 때 그 무서움이란...지금이야 뭐 그 정도 갖고...하면서 픽 웃으며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오로지 모교에서 교수하는 꿈을 가진 박사과정의 학생으로서 성균관대의 주인인 삼성의 코털을 뽑아들었으니, 그것도 사방 곳곳에서 삼성간판이 유령처럼 내 눈 속으로 치밀고 뛰어드니...
 
그래서 나름대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한 생각이 바로 ‘삼성 이건희와의 싸움에 선봉이 되자’였다. 삼성의 그림자를 비킬 수 없으면 삼성의 그림자를 짓뭉개자. 이런 오기로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전국언론노동조합에 취직했고, 그 덕에 다양한 미디어에 기고하고 출연할 수 있었으며, 기회가 닿을 때마다 삼성의 이건희 부자에 대한 집요한 비판 글과 발언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내 스스로 삼성구조본으로부터 전화 받을 일 없을 것이라고 판단을 하고 있었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오고 나는 자연스레 그 점심 약속 자리에 앉았다. 언론노조 신학림 위원장이 항상 하는 말, “나는 누구든지 만난다. 만나자는 사람을 회피할 이유는 없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분명히 내공 차이가 엄연한데도 불구하고.
 
삼성, 회피한다고 정도는 아니다
 
삼성 구조본에서 전무 상무 부장이 나왔고, 내게 전화한 언론사 부장이 동석했다. 5명 모두 동문이었다.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 순 없겠지...동문들끼리 희희낙락. 점심만 먹고 나왔다. 재미있었다. 강호에 출두한 이래 동문선배들한테 점심 얻어먹은 것이 거의 처음이라 할 정도로 동문과 관계없이 살아왔는데 동문선배들과 점심 먹으며 옛날 이야기하니 재미있는 게 당연하지.
 
문제는 다음 날 점심이었다. 점심 먹고 나오면서 ‘후원의 밤’이 있다는 사실을 끝내 말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점심 먹던 자리에서 ‘어제의 점심’과 ‘나의 아쉬움’을 주절주절 이야기하며 “참 내가 한심해요. 그냥 다음 주 금요일에 언론연대 후원의 밤이 있다고 한 마디만 했어도...” 그런데 그 자리에 함께 점심한 분 중 한 명이 삼성 구조본에 전화를 한 모양이다. 양박이 어제 점심 자리에서 후원의 밤이 있다고, 후원금 부탁한다고 한 마디 못해 아쉬워하더라고.
 
곧장 전화 한 통이 내 이동전화기를 두들긴다. “사무처장님 공문 한 통만 보내주십시오” 순간 갈등에 휩싸인다. 삼성 돈을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에게 전화했다. “김선배 어떻게 하죠?” “공문은 그렇고 초청장만 보내세요.” 받은 명함에 씌어져 있는 주소에 초청장만 발송했다. 후원의 밤이 열리는 아침. 삼성에서 또 전화가 왔다. 공문 하나만 보내달라고. 정중히 이야기했다. 공문은 그렇고 해서 초청장만 발송했다고. 다음에 필요하면 따로 부탁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시민단체의 사무처장 자리. 그것도 겨우 4개월짜리 초짜 사무처장. 그 사무처장의 한계를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낸 하나의 사건이었다.
 
삼성 비판할 힘은 단체의 재정자립에서 나와
 
삼성의 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아직도 이 어려운 문제를 풀 수가 없다. 여기서 분명히 밝히건 데, 무조건 삼성 돈은 받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직까지 받을 지 안 받을 지, 받으면 어떻게 받을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몇 십 만원이든 몇 백 만원이든 시민단체에 후원금을 내겠다는데 그것이 청와대면 어떻고 삼성이면 어떤가. 삼성 돈은 안 되고 정부 돈은 되는가? SK 돈이나 유한양행 돈은 괜찮은가? 현대 돈은 받을 수 있고 삼성 돈만 안 되는가? 민주노동당의 돈도 받고 한나라당이 낸 후원금도 받았는데, 주겠다고 하는 삼성의 돈만 거부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한가?
 
초짜 사무처장 입장에서는 활동가들 월급 때문에 월초만 되면 중소기업체 사장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받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하지만 사회적 정서, 우리끼리의 정서가 받아서는 안된다는 사람들이 받아도 된다는 사람들보다 더 많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고민한다. 어떻게 이 난제를 풀 것인지.
 
틀림없이 이러다가 갖가지 이유를 대고 논리적으로 빠져 나갈 논거를 만들고, 어쩌고저쩌고 하다가 돈을 받겠지. 양심만 팔지 않으면 된다며, 주면 먹고 때릴 때 때리면 된다며. 그러다가 주면 먹고, 정작 때릴 때 눈치 보며 때리는 흉내만 내고. 또 주면 먹고 때려야 할 때 다른 더 큰 일이 있는데 삼성이 관련됐다고 사소한 일까지 굳이 때릴 필요가 있겠냐며 슬쩍 회피하고. 그러다가 안 주면 삼성에 왜 안주냐고 항의하고, 그래도 안 주면 ‘정의의 주먹인 체’ 또 때리고.
 
받고 싶어 미칠 지경이지만, 한국 언론이 한국의 기자들이 걸어갔던 너무나 뻔한 다음 스토리가 준비되어 있는데. 핵심은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다. 평소 신문사 특강에서 나는 이렇게 말해 왔다.
 
“삼성의 돈이 그렇게 크게 보이지 않도록 독자들을 늘려라. 독자들에게 삼성을 제대로 비판하는 신문이라는 인식이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독자들이 늘어갈 것이다. 그것을 믿어라. 당장의 효과 만빵인 삼성 돈보다 더디지만 가장 안전한 독자로부터의 신뢰와 구독료를 받아내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신문사 경영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 시민단체도 시민들의 회비가 가장 일차적인 재원이 되어야 한다. 보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삼성이든 재벌이든 청와대든 한나라당이든 숨겨진 그들의 잘못, 드러난 그들의 문제를 정교하고 집요하게 비판함으로써 시민들의 신뢰를 얻으면 시민단체 사무처장의 눈에 삼성의 돈이 그렇게 크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시민회원들이 보내는 회비로 안정적인 단체운영을 할 수 있다면 그 때가서 삼성의 돈을 받아도 삼성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늦출 이유가 없어진다.
 
시민들의 회비로 인해 삼성 돈은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기 때문. 하지만 지금처럼 어려운 시점에 삼성의 후원금을 받는다면 당연히 재정 의존도가 높아짐으로 인해 삼성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느슨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추석 연휴가 끝나면 삼성 구조본에 전화해서 ‘회원 가입하라고 해야지...’ 독자여러분들 ‘언론연대시민회원’에 가입해 주세요.^^마지막으로 이상호기자...삼성에 밥 얻어먹었다고 너무 나무라지 마...
 
* 본문은 월간 <작은책> 10월호 기고문입니다.

* 글쓴이는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입니다.
언론학 박사이며,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과
대자보 논설위원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 : http://yms7227.mediaus.co.kr/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6/10/09 [19:48]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