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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 계란자국 남은 '열사 추모전시회'
권력에 숨진 이들 열거 전시회에 보수단체 거세게 반발…서울시도 "특정 이념 행사 허용않겠다" 동조
 
육덕수   기사입력  2006/09/15 [07:15]
서울 종로 종각역 네거리의 한 귀퉁이에는 최근 시민들의 눈길을 끄는 작은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다.

해방 이후 현대사 속에서 권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자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추모단체 연대회의가 마련한 전시회다.

전시회는 우리 현대사를 특징에 따라 크게 6개 시기로 구분해 설명하면서 당시 권력에 의해 숨진 이들을 열거하고 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숨진 이들을 위한 작은 분향소도 마련했다.

전시회는 지난 11일과 12일 이틀 동안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고,13일부터는 서울 종각역 주변에서 열리고 있다.

그런데 이 전시회에 대해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뉴라이트전국연합과 라이트코리아 등 보수단체들은 "민주열사 명단 속에 간첩활동을 했던 이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며 "추모제를 준비한 이들을 처벌하라"고 주장했다.

또 서울시가 반국가적 행사를 시청 앞에서 진행하도록 허용한 것은 어이없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지난 13일에는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이 전시회장에 계란을 던지며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고, 라이트코리아는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추모단체 연대회의를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전시회를 놓고 보수단체들의 반발이 커지자 서울시는 "앞으로 특정 이념에 치우친 행사에 대해선 서울광장 사용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보수단체 회원들의 행동과 그에 따른 서울시의 입장에 대해 행사를 준비한 희생자 추모단체 관계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추모자 명단은 각 단체들이 제출한 명단을 공개적으로 심사해 선정한 것이고 보수단체들이 공격하는 일부 인사들은 과거 정권이 조작한 사건에 연루돼 희생된 이들이기 때문에 간첩이라고 단정짓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몇 명의 비전향 장기수를 포함시킨 것은 남북분단 역사의 희생자를 상징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사상 때문에 같은 동족을 가두고 숨지게 하는 일이 한반도에서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지난 1986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대학생 아들을 잃은 한 유족은 "명단에 오른 모든 사람들은 결국 '통일'을 위해 희생된 사람들"이라며 보수단체 회원들의 비난에 가슴 아파했다.

한 관계자는 "서울시가 앞으로 광장사용을 승인하지 않기로 결정한 뒤 보수단체들의 반발이 그쳤다"면서 "결국 순수하게 이념을 문제삼고자 한 것이 아니라 서울광장 사용을 막기 위함이 아니었겠냐"고 말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추모제 전시회장을 떠난 뒤 민족민주열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전시물에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던진 계란 자국이 이념 갈등의 흔적으로 얼룩이 돼 남았다.

하지만 계란을 던진 이들도 생각해야 할 것은 오늘의 사회가 이념을 주장하는 시대가 아닌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을 논의하는 시대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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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9/15 [07:1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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