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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은 '위기'인데 평론집은 '출판홍수'?
[컬처뉴스의 눈] 문학평론가 평론집 줄이어 출간, 문학비평의 역할 모색
 
위지혜   기사입력  2006/08/08 [20:27]
소설가 고종석이 지난해 『대산문화』 여름호에 "문학상이라는 인공호흡기를 통해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문학평론은 그 특권을 폐지해야 된다"고 신랄하게 비판한 데 이어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아예 「기어라! 비평」(『문예중앙』, 2005년 겨울호)이라는 글을 통해 그렇지 않아도 힘없는 비평에게 더욱 기라고 명령하고 나섰다.

'비평'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이처럼 우리 문학 안에서의 현실은 힘겹기만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평이 쓰여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러한 비평계의 우울한 상황과는 다르게 서점에는 평론집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임규찬의 『비평의 窓』(강), 신범순의 『바다의 치맛자락』(문학동네) 등 최근 3개월 동안 나온 평론집만 해도 종잡아 10여권이 넘는다. 특히 이광호, 김수이, 김영찬 등 문단의 쟁쟁한 평론가들의 평론집도 이번 홍수와 함께 나왔다. 이광호는 문학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경계'에 대한 날선 비판을, 김수이와 김영찬은 각각 지금의 시와 소설을 진단하고 있다.
이광호의 다섯 번째 비평집 『이토록 사소한 정치성』(문학과지성사)은 90년대 이후 한국 문학이 보여 온 개별적이고 사소한 일상과 그것에 기생하는 문학의 정치성에 대한 비평적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책머리에서 "한국문학은 '2000년대적인 것'의 '다른 몸'을 풍부하게 드러냈었고, 그것은 문학을 명명하고 구획 짓는 재래적인 방식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며 그러한 "낯선 움직임"들에 주목하면서, 이들을 향한 기존의 문학적 호명방식이 아닌 '다른 호명'을 찾을 것을 요구한다.

본문 앞에 놓인 「들어가며-잘못 부른 이름에 관하여」라는 글은 그가 '문학비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가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는 "문학비평이 만약 기존의 문학 제도를 공고히 하는 데 봉사하지 않으려면, 그것은 이데올로기적 호명을 비껴가면서 텍스트의 개체성을 읽는 방식을 모색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텍스트에 대한 굳어진 제도적 호명과 이데올로기적 척도에 의지하는 지금의 문학비평은 기존의 문학제도를 공고히 하는데 봉사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다른 곳'에서 '다른 시선'으로 대상을 '다시' 읽기를 권유한다. 작품의 개체성을 읽기 위해서는 새로운 호명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그러한 '새로운 호명방식을 찾아내는 일'만이 비평이 '해석'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생성'의 작업이 될 수 있다고 이광호는 강조하고 있다. 

▲김수이 문학평론가의 세 번째 평론집 『서정은 진화한다』     © 창비, 2006
김수이는 세 번째 평론집 『서정은 진화한다』(창비)에서 '다른 서정', '미래파' 등의 명명으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진 최근 시단에 대한 애정 어린 진단과 함께 처방전을 내놓는다.

그가 말하는 서정의 진화는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서정은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현재형으로 진화(進化)한다'와 '서정은 과거의 궤적을 끊임없이 현재형으로 진화(鎭火)한다'는 것이다. 결국 '새로움'만이 능사가 아니며, 또 '전통'만이 해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서정'은 "당대의 특수한 경험과 각각의 사유에 의한 시차(時差)와 시차(視差)의 산물"이며 그 '진화'(進化/鎭火)의 현장은 "오래됨과 새로움, 지속과 분리, 합일과 분열이 충돌하는 제로섬의 지점"이 된다. 그리고 그 '진화'의 방향성은 그것이 새로움이든 전통이든 간에 "동시대의 현실과 삶의 문제에 밀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서정의 진화' 현장에 부지런히 동참하면서 대상이 되는 시인들의 독특하고 다채로운 서정에 주목하면서, 그 진화의 과정에 대한 희망과 우려를 함께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2003년 등단 후 날카로운 시선으로 활발한 비평활동을 펼쳐온 김영찬은 첫 평론집 『비평극장의 유령들』에서 19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중견작가와 신세대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두루 꿰뚫으며 한국 소설문학의 다양한 증상들을 진단하고 있다.

그는 "문학이 지금 겪고 있는 무력함은 결코 부정할 수 없고 또 부정해서도 안되는 현실"이지만 "문학이 이제 더는 예전과 같은 위세와 입지를 주장할 수 없다 해서, 아니면 (가라따니 고진의 예단대로) 이미 죽어버렸다고 해서 지레 좌절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지금 증상으로서 한국소설은 현실의 뒤로 물러나 자아감각과 현실감각을 압도하는 사뭇 현란한 포스트모던 사물화의 응시를 무력하게 견디고 있는 중이지만, 다른 한편 바로 그 속에서 그 현란함이 은폐하는 근원적인 상실과 불행의 흔적을 누설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어쩌면 문학의 가치와 정신적 위엄은 역설적이게도 문학이 바로 그 증상 속에서 시대의 불행과 그 자신의 무력함을 온몸으로 앓고 있기에 더욱 절실하게 빛을 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예측한다. 

그리고 그는 "이 불행한 시대의 한 가운데에서 문학이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무력한 증상들을 세심히 따라 읽고 그것의 의미와 맥락을 부여하며, 그것의 공과(功過)를 따져 헤아리는 것"이 비평이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민예총 컬처뉴스 (www.culturenews.net) 에서 제공했으며, 본문의 제목은 원제와 조금 다르게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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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8/08 [20:2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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