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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괴물>을 둘러싼 논란, "이의 있습니다"
[컬처뉴스의 눈] 흥행아닌 영화계 다양한 주체들의 역할 나누어 봐야
 
안효원   기사입력  2006/08/05 [11:47]
지금 한국영화계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괴물>이다. '전국 620개 스크린 개봉', '개봉 7일만에 전국 400만 관객을 돌파' 등 <괴물>이 보여준 거침없는 흥행 행보는 어떤 부작용을 낳지 않을까 불안하기까지 했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스크린을 장악한 한국영화에 대한 비판이 속속 나타났고, 4일(금) 오전 각종 포털사이트를 장식한 '영화계, <괴물> 흥행으로 내분 조짐'이라는 기사는 <괴물>과 함께 한국영화계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난으로 이어졌다.

▲ 최근 벌어지고 있는 <괴물>을 둘러싼 논의들은 감상적인 헐뜯기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쇼박스 필름
먼저 논란이 되는 것은 <괴물>의 스크린 수이다.

"<괴물>의 스크린 수는 620개. 개봉 첫 주말 200만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독점적 배급력은 할리우드보다 더 무서울 따름이다. (…) UIP나 콜롬비아, 20세기 폭스, 워너 등 외국 직배사들도 강한 한국영화는 피해가기 바쁘고 3대 배급사 눈치보기에 급급하다."(OSEN 기사, '영화계, <괴물> 흥행으로 내분 조짐' 중(8/4))

이 기사는 어느 특정 시점의 문제를 한국 영화산업 전반의 문제로 확대 해석하고 있다. 영화산업을 분석할 때 특정한 한 시점만을 선택해서는 안된다. 영화진흥위원회 조사에 의하면 상반기 개봉영화 중 서울 시내 극장에서 100개 이상 스크린을 차지한 영화는 외화 세 편(<미션 임파서블3>, <다빈치 코드>, <액스맨: 최후의 전쟁>)이다. 또 지난 봄부터 초여름까지 헐리우드 영화가 약 3개월 동안 한국 극장가를 평정했다. 지금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지극히 일부지만)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고 해서, 한국영화가 '헐리우드의 독점적 배급력'을 넘어선다는 결론은 너무 성급하다.
 
지난해 12월, <태풍>이 전국 580여개의 스크린에서 개봉할 때에도 블록버스터의 스크린 장악 논란은 있었다. 하지만 관객들의 영화에 대한 실망이 커지면서 스크린 수는 급격히 감소했다. <괴물>은 그 반대이다. 깐느 영화제에서 시작된 호의적인 평가는 개봉 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괴물>의 경우 극장에서 더 많은 요구가 있었다고 한다.) 많은 스크린 수를 차지했더라도 작품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리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

스크린 독점 현상은 자연스럽게 한국영화계에 대한 비판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도배한 <괴물>의 간판이 영화의 의미와는 무관하게 '1000만 명 든 영화 한 편, 100만 명 든 영화 열 편보다 낫다'는 식의 70년대 성장지상주의로 물드는 듯한 충무로의 풍경을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한겨레, '괴물만 쫓는 영화판 이의 있습니다!' 중 (8/2))

먼저 '한국영화계'라는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영화계에는 영화제작, 배급, 상영, 배우, 스탭, 매니지먼트 등 다양한 주체들이 있다. 그 모든 주체들은 한국영화계라는 하나의 틀에서 일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각기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기도 하고, 배치관계에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한국영화계' 또는 '충무로'를 통으로 비판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한 영화가 전국 50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상영될 수 있는 것은 제작, 배급, 상영을 수직 통폐합시킨 대기업 자본의 힘이다. 그러나 '한국영화계'를 구성하고 있는 여타 제작사나 배급사, 중소극장업자, 영화스탭 등은 <괴물>의 스크린 장악에 현실적 힘을 미치는 존재가 아니다. 한국영화계 내에서 문제가 불거질 때에 그 문제를 야기 시킨 주체를 명확히 비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괴물>의 '스크린 독점 문제'가 전혀 다른 문제와 연관되어 비판되고 있기도 하다.

"영화 스탭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4시간에 달하지만 연봉은 700만원 정도에 불과하고, 무명 연기자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연봉 1000만원을 꿈꾸며 촬영에 들어간다"며 "연간 100여 편의 영화를 쏟아내는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를 맞이해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약자들에게 영화 <괴물>은 정말 '괴물' 그 자체라고 지적했다."(노컷뉴스, '영화 <괴물> 스크린 점유율 제한해 싹쓸이 막아야-문화평론가 김헌식과 인터뷰' 중(8/4))

영화스탭의 처우문제 등의 한국 영화산업 내 구조적인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괴물>이 많은 스크린에서 상영되어 혹자가 상대적 빈곤감을 느낀다는 것이 스탭 처우의 직접적, 본질적인 문제일까. 스탭 처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과 한국제작가협회 교섭단이 제4차 단체교섭을 벌이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러한 감상적인 접근 방식은 불필요하다.

더 큰 문제는 영화 개별의 논의가 제외된 비판, 영화계 내 다양한 주체들을 무시한 비판, 현상과 본질을 혼동한 비판 등이 단지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 있다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크린쿼터 축소와 관련해 그 어느 때보다 문화다양성과 한국영화산업의 위기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시기에 자본과 권력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영화 <괴물>이 스크린을 독식하고 있는 것은 모순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필름 2.0, '<괴물>, 흥행만큼 찬반 양론도 격화' 중(8/3))

'<괴물>의 스크린 독점=문화다양성 파괴=스크린쿼터 불필요성'이란 의견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차피 문화다양성 없는 한국 극장가에 스크린쿼터가 무슨 필요냐"라는 논리이다.

하지만 스크린 독점이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먼저 짚어봐야 할 것이다. 위 기사가 지적한 것처럼 스크린 독점은 대기업 자본 중심의 제작, 배급, 상영의 문제이지 스크린쿼터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스크린쿼터는 미국 헐리우드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지배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것에 대한 견제장치이고, 자국의 영화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이다. 스크린쿼터는 이러한 논란과 별개의 문제로 남겨져야 한다.

한편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는 영화인들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객이 영화인들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스크린쿼터가 문화다양성을 지켜주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영화인들이 이 지점에서 향후 투쟁 방향을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투쟁방법을 고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면, 거대 배급사와 싸워 많은 영화가 스크린에서 상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전국 500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는 영화 <괴물>은 스크린 안팍에서 다양한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최근 벌어지고 있는 <괴물>을 둘러싼 논란은 다분히 현상에 대한 감상적 비판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말 위기를 걱정한다면 소모적인 논란을 뛰어 넘어야 할 것이다.

* 본 기사는 민예총 컬처뉴스 (www.culturenews.net) 에서 제공했으며, 본문의 제목은 원제와 조금 다르게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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