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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무섭다 한들 대한민국 현실이 더 '괴물'
[논단] 2% 부족한 영화,〈괴물〉, 훌륭하지만〈살인의 추억〉만 못해
 
이태경   기사입력  2006/07/30 [21:42]
개봉 전부터 엄청난 기대를 불러일으켰던 봉준호 감독의〈괴물〉이 흥행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지금의 기세대로라면 관객 1000만 돌파도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니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작인〈왕의 남자〉의 흥행기록을 넘어설 욕심을 품어도 터무니없이 여겨지지 않을 정도다. 
 
▲한국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괴물>. 그러나 대한민국 현실은 영화 속 '괴물'보다 더 무섭지 않을까?     © 봉준호 필름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한강에 식인 괴물이 살고 있다는 발상의 신선함과 굴욕적 한미관계 및 무능한 국가권력에 대한 풍자, 가족 간의 눈물겨운 가족애를 무겁지 않게 풀어낸 솜씨, 거기에 그럴 듯한 비주얼을 갖춘 괴물의 존재 등이〈괴물〉의 성공요소일 것이다.
 
또한 변희봉,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 기실 각기 괴물이라고 불러도 좋을 수준의 배우들이 펼치는 눈부신 연기가 이 영화에 피와 살 역할을 했음을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박강두(송강호 분)의 딸 현서로 분한 고아성의 빛나는 연기이다. 
 
고아성은 실로 쟁쟁한 내공을 지닌 선배 연기자들과 견주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 고아성이 괴물의 서식처를 탈출하려고 시도하였다가 실패한 뒤 보여주는 복잡 미묘한 감정의 떨림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될 만한 명연이었다.
 
물론 모든 영화가 그렇듯이〈괴물〉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봉준호 감독은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괴물〉에서 하고 싶었던 나머지 시선이 분산되고 구성이 산만해지는 실수를 범했다. 이런 감독의 실수는 영화에 몰입하려는 관객들을 적잖이 불편하게 만들고 말았다.
 
봉 감독은 〈괴물〉을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가 한국에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국민을 보호하는데 거의 언제나 무력했던 국가권력의 무능과 무관심에 대해, 끈끈한 가족애에 대해, 한계상황에서도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를 보호하려는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한다.
 
봉 감독의 훌륭한 의도는, 그러나 〈괴물〉안에서 화학적으로 결합하기 보다는 물리적으로 조합되는 모양새를 보이고 만다. 바로 이것이 〈괴물〉이 지닌 치명적 약점이다.
 
〈괴물〉의 이러한 결점은 봉 감독의 전작인〈살인의 추억〉과 대비된다. 〈살인의 추억〉을 통해 봉 감독은, 80년대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했던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폭압적이기 그지없었지만 민생범죄에는 너무나 무기력했던 군사독재정권의 실상을 통렬히 묘사하는 데 성공한다.
 
〈살인의 추억〉이 지닌 장점은, 무엇보다 관객들을 영화 속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드는 구성의 탄탄함과 집중력에 있었다. 봉 감독은〈살인의 추억〉에서 시선의 분산이나 영화적 흐름의 방해를 허용치 않음으로써 자신이 추구하고자 했던 미학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괴물〉이 이룬 적지 않은 영화적 성과에도 불구하고〈괴물〉의 윗자리에〈살인의 추억〉을 놓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괴물〉에 대한 영화평을 하면서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괴물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은 괴물에 대한 예의(?)가 아닐 듯싶다.
 
〈괴물〉속에 등장하는 괴물은, 물경 50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어서 완성시켰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외양이나 움직임 면에서 기존 한국영화 속에 등장하는 괴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괴물이 처음 등장하여 고수부지에 모인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살육하는 장면과 마치 체조선수가 이단 평행봉을 하듯이 한강에 놓인 다리를 유연하게 이동하는 모습 등은 장관이다.
 
괴물은 태생만큼이나 기괴하게 생겼을 뿐 아니라 탐욕스럽게 인육을 찾아 헤맨다. 눈에 띄는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끼니로 여기는 것처럼 보이는 괴물은 배가 고프면 그 자리에서, 배가 고프지 않으면 자신의 거처로 인간을 포획해와 사정없이 잡아먹는다.
 
괴물은 인간과의 어떤 의사소통도 거절한 채 자신의 생존본능이 지시하는 대로 인간사냥과 포식에만 전념하는 듯하다.    
 
한 마디로〈괴물〉속에 등장하는 괴물은, 인간에게 너무나 위험하고 무서운 존재인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괴물〉속에 등장하는 괴물이 무섭다 한들 한국사회의 현실 보다야 더 하겠나 싶다. 자신의 절망적인 처지를 하소연하기 위해 단체행동에 나선 노동자가 전경이 휘두른 방패에 맞아 뇌사상태에 이른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데도 아무런 탈 없이 돌아가는 한국사회가,〈괴물〉속에 등장하는 괴물 보다 훨씬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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