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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에 농락당하는 극우 수구세력들
[논단]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동은 위협전술, 냉정한 대응만이 정공법
 
이재봉   기사입력  2006/07/04 [19:01]
  북한의 미사일 또는 인공위성 발사 움직임에 관한 남한의 언론 보도를 보면서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생각을 다시 갖게 된다. 김정일 위원장의 속임수나 유혹 또는 위협 전술에 너무 쉽게 빠져드는 듯한 미국이나 남한의 극우 세력들이 참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7-8년 전 여름에 있었던 얘기 한 토막 소개한다.
 
  1998년 여름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군 간부들을 집무실로 불러 미국의 정찰위성이 북한 상공을 통과하는 시간에 맞춰 평안북도 금창리에 대형 비밀 공사를 하고 있는 것처럼 하라고 시켰단다. 축구공만한 물체도 찍을 수 있다는 미국의 정찰위성이 수천명의 군인들이 땅을 파는 모습을 놓칠 리 없었다. 국방정보국은 그 위성 사진을 분석하여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혹을 <뉴욕 타임스>에 흘렸다. 이른바 ‘금창리 지하시설’이 세상에 알려지고 남한 언론이 호들갑을 떨게 된 배경이다.
 
  미국은 북한에게 핵무기 개발 의혹을 제기하며 금창리 지하시설 확인을 요구했다. 북한은 그곳이 국가 안보에 중요한 군사 시설이라 그냥 보여줄 수 없다며 핵무기 개발 관련 시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위자료 3억 달러를 내라고 했다. 미국이 이를 거부하며 북한을 선제 공격할 수도 있다는 등 위협을 했지만, 북한은 움츠려들기는커녕 “전쟁이 일어나면 아예 미국을 날려버리겠다”고 오히려 큰소리쳤다. 이러한 험악한 말싸움 끝에 결국 협상이 이루어져 미국은 1999년 약 3억 달러 어치의 식량을 북한에 제공하고 금창리를 찾아가서 지하시설 내부와 주변 시설들을 살펴보았다. 결과는 그 시설들이 핵무기 개발과 관련 없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었으니 당시 미국 국방부장관의 말대로 텅 빈 땅굴 한 번 들여다보는데 막대한 관람료를 지불한 셈이다. 꾀와 배짱을 바탕으로 한 북한의 기만 전술이 힘과 오기의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고 경제 원조까지 받아냈던 것이다.
 
김정일의 속임수 또는 위협 전술
 
  작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2004년 6월 6자회담 제 3차 회의가 별 성과 없이 끝나면서 북미 관계 및 남북 관계가 꼬이기 시작했다. 2004년 7월 남한 정부가 김일성 주석 조문단의 방북을 불허하고 대규모의 탈북자들을 남한으로 불러들이면서 남북 관계는 얼어붙었고, 2005년 1월 부쉬 2기 행정부가 출범한 뒤 라이스 국무부장관이 북한을 “폭정의 전초 기지”로 규정하면서 북미 관계는 다시 험악해졌던 것이다. 이에 북한은 작년 2월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 무렵 함경북도 길주에서는 수상한 터널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작년 4월 <월스트리트 저널>은 북한이 지하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보도했고, 5월 <뉴욕 타임스>는 그 터널 공사가 1998년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하던 터널과 비슷하다고 전했다. 미국의 위정자들은 핵실험이 실시되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협박을 주저 없이 내놓았고, 남한의 수구 정치인들과 극우 언론인들도 덩달아 날뛰었다. 북한에 대한 비난이 줄을 이었고 곧 전쟁이 터질 듯한 긴장된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며 ‘6월 위기설’이 번졌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남북 당국자 회담을 제의했다. 긴장 속에서 나온 북한의 회담 제의는 전쟁 위기설을 한 순간에 날려버렸고 7월과 9월의 6자회담으로 이어졌는데, 9월 회의에서 뜻깊은 공동성명이 나오게 되었다.
 
  이제 요즘 북한의 미사일 또는 인공위성 발사 움직임이 나오게 된 배경이나 과정을 살펴보자. 작년 9월 6자회담에서 공동성명이 채택되었지만 미국은 이게 달갑지 않았던 것 같다. 북한을 왕따시키려던 미국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미국과 일본이 고립당한 상태에서 나온 결과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그 무렵부터 북한의 돈줄을 죄기 시작했고 11월부터는 고위 관리들이 여기저기서 북한의 달러 위조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며 북한을 ‘범죄 정권’이라고 몰아붙였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 기구를 통해 북한의 인권 상황을 비난하며 압박하기도 했다. 올해 3월말엔 남한에서 대규모 한미합동군사훈련 (RSOI)을 벌이는 등 군사적 위협까지 가했다. 참고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RC-135와 U-2를 비롯한 전략정찰기 및 RC-7B와 RC-12를 비롯한 전술정찰기들을 동원하여 북한에 대한 공중 정탐 행위를 3월엔 180여 차례, 4월엔 160여 차례, 5월엔 170여 차례, 6월엔 220여 차례나 감행했다고 한다. 이에 북한은 미국에게 몇 차례 협상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하자 6월 1일 다음과 같은 외무성 담화를 발표했다.
 
  “조선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6개월이 넘도록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6자회담 과정을 달가와하지 않고 그것을 파탄시키려는 미국의 본심은 점점 더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l1월 l단계 5차 6자회담에서 6자가 2단계 회담 개최에 필요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쌍무적, 다무적 접촉을 적극화하기로 합의해놓았지만 미국은 우리와의 접촉을 회피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이 진실로 공동성명을 리행할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면 그에 대하여 6자회담 미국측 단장이 평양을 방문하여 우리에게 직접 설명하도록 다시금 초청하는 바이다.... 미국이 우리를 계속 적대시하면서 압박도수를 더욱 더 높여나간다면 우리는 자기의 생존권과 자주권을 지키기 위하여 부득불 초강경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여기서 ‘초강경 조치’는 핵실험이나 미사일발사를 가리켰으리라 짐작한다. 미국이 탐낼만한 석유도 없고 미제 상품이 유통될 수 있는 시장도 없는 북한으로서는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일 수 있는 수단이 핵이나 미사일 관련 속임수나 공갈협박밖에 더 있겠는가. 냉전 종식 이후 특히 9.11 이후 핵무기와 미사일을 비롯한 대량파괴무기 (WMD)의 확산 방지를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의 목표 가운데 하나로 삼아온 미국에게 핵무기나 미사일 개발은 덥석 물 수밖에 없는 협상 ‘미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듯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북한의 속임수나 유혹 또는 위협 전술에 미국이나 남한의 극우 수구 세력들은 너무 쉽게 빠져들었다. 연료 주입이 완료되었다거나 미사일 발사가 임박했다는 등의 추측에서부터 미사일이 발사되면 요격미사일로 떨어뜨려야 한다거나 미사일 기지를 폭격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에 이르기까지 온갖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남한의 한 신문은 “18일 오후 4-5시께” 미사일을 발사할 듯하다는 시간까지 확정한 기막힌 추측보도를 거리낌없이 내놓았다. 다른 신문은 “절체절명의 이렇게 긴박한 순간임에도” 남한 정부가 대북 강경 방침을 세우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이에 반해 남한 정부의 반응은 정말 차분하고 진짜 침착했다. “당장 우리의 머리 위에 미사일이 떨어질 것처럼 위기를 조장한” 미국과 일본 그리고 남한 언론의 행태가 바람직하지 않으며 “상황을 예단하여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은 사태의 악화를 바라는 의도에 말려드는 결과를 자초할 뿐”이라고 대응했던 것이다. 극우 수구 세력들의 주장처럼 남한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라면 중거리 미사일이나 태평양을 횡단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까지 필요 없다. 단거리 미사일만으로도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부산이나 광주 그리고 바다 건너 제주까지 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정녕 미사일을 군사적으로 사용할 목적을 갖고 있다면 될수록 비밀리에 준비해서 순식간에 쏘아올리면 되지 왜 미국의 정찰위성이 빤히 들여다보도록 하면서 미적거리고 있겠는가.
 
  금세 난리가 날 듯 온갖 방정을 떨고 호들갑을 부리는 극우 세력의 대응에 김정일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는 오히려 북한의 협상력을 높여준다면서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도 아무 일도 아닌 듯 냉정한 태도를 지키는 남한 정부의 방침에 은근히 당황하지 않을까.
 
  판문점의 경계병이 시커먼 색안경을 끼고 있는 이유는 남을 째려보는지 졸고 있는지 아니면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조차 상대방이 눈치챌 수 없도록 시선과 표정을 감추기 위해서다. 이른바 보수세력들은 굴종적인 친미감정과 호전적인 반북의식만 가지고서는 그들의 바람대로 김정일 체제를 무너뜨리거나 북한을 이길 수 없다는 점을 깨닫기 바란다.
 
 * 글쓴이는 원광대 교수로서 '남이랑북이랑'(http://pbpm.hihome.com)의 편집인이며, 본문은 소식지 88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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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7/04 [19:0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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