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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라는 명칭과 통치행위
대통령 명칭 바꿀 필요없고 통치행위는 따져봐야
 
이승훈   기사입력  2003/04/10 [01:06]
대통령이라는 명칭이 민주주의적인 의미를 가진 명칭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민주적인 명칭을 고안해보자는 주장이 있다.  그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대통령이라는 명칭이 비민주적인 의미를 가진 명칭은 아니라고 본다.

대통령(大統領)이라는 한자를 그대로 해석할 때 큰(대), 통치하거나 다스리는(통) 수장, 혹은 우두머리(령)라고 해석하면서 왕권에 버금가는 통치자의 권위- 비민주적인-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한자어에 대한 해석이  잘못되었다. 대통령이라는 명칭이 발생한 배경을 살펴봐도 그것이 비민주적인 의미를 가진 명칭이라고 할 수 없다.

[참고기사]대통령이라는 명칭부터 바꾸자(인터넷한겨레 왜냐면 3월 31일자)
서태영, '맞습니다, 맞고요'의 노무현과 완전한 나라, 대자보 99호

대통령의 클 대자가 권위적인 느낌을 준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 이 때의 대(大)는 크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라는 의미일 뿐이다. 대통령은 1인의 통령이라는 뜻으로서 '통령'에 대자를 수식한 것이다. 통(統)자는 실 사(絲)부에 채울 충(充)자가 결합된 형성자이다. 통에는 여러가지의미가 있지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주된 의미는 합친다는 의미이다. 실을 가로 세로로 규칙있게 채워 넣어서 하나의 천으로 만드는 것에서 우선적으로 합친다는 의미를 가지며, 여기서 파생된 의미가 여럿 나온다. 채울 때 규칙있게 씨줄과 날줄이 채워져야 하나의 천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통은 규칙, 법이라는 뜻도 가지며 법이라는 의미에서 다시 거느리다, 다스리다라는 파생된 의미도 가진다. 즉 통(統)의 정확한 뜻은 '여럿을 합침', '법에 의한 다스림(法治)'등이다 통(統)이 민주적이냐 비민주적이냐에 관한 가치 판단은 법의 형성과정, 내용, 적용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서 통(統) 그자체는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는 가치중립적인 것이다. 현대의 법치주의가 어떠한 내용의 법치이냐를 생각하면 통(統)이라는 것은 오히려 가치적극적(approve) 의미를 가진다고까지 할 수 있다.

그리고 령(領)은 하여금 령(令)에 머리 혈(頁)자가 결합된 형성자이다. 하여금 령(令)은 하게끔 하는 주체의 존재가 전제되어있는데 그 주체가 명(命, 名)이다. 령(令)을 좀 더 구체화한 글자로서, 즉 하게끔 하는 주체인 명(命,名)으로서 머리(頁)를 밝힌 형성자가 령(領)이다. 즉 어떤 조직체의 계통상 최고의 령(令)이 령(領)이다. 다스리다, 우두머리 등의 뜻은 여기서 파생된 의미에 불과하다. 계통의 범위, 한계에 따라 령(領)이라는 명칭 부여의 적절함의 여부는 달라진다. 예를 들자면 총리령은 부령과의 관계에서는 령(領)이 될 수 있지만 대통령령과의 관계에서는 령(領)이 될 수 없다. 대통령령(大統領令) 역시 행정부 전체 계통상에서는 령(領)이 될 수 있지만 헌법과의 관계에서는 대통령령은 령(領)이 될 수 없으며 주권자인 국민의 뜻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대통령령은 령(領)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절대왕정에서는 왕의 령(令)이 령(領)이 되며. 대한민국같은 민주공화국에서는 국민의 령(令)이 령(領)이 된다. 이런 식으로 령(領)은 계통상 최고의 령(令)이라는 뜻이다 령(領)역시 가치중립적인 개념이며. 령이라는 단어만으로는 그 것이 민주적인 의미를 가지느냐 비민주적인 의미를 가지느냐의 문제에 관해서 판단을 내릴 계제를 만들지 못한다. 일반적으로는 대통령이라는 용어는 통치구조론상의 용어이다. 즉 계통의 범위를 국가통치구조로 한정한 것이다. 이렇게 계통의 범위가 국가통치구조로 한정되었다면 대한민국 헌법상 행정부수반이며 동시에 외교, 국방등의 최고국가의사를 담당하는 그 누구를, 통치구조안에서 그 외 기타의 기관, 담당자들과 구별하면서, 가리키는 말에 대통령이라는 용어를 쓴 것은 적당하다.

대통령이라는 용어가 쓰인 역사적 배경을 보면, '승정원일기'에 고종이 미국의 국가원수를 대통령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승정원에서 미국의 국가원수를 왕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대통령이라고 표기한 것은 왕과 대통령의 다름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봐야한다. 비슷한 시기 유길준이 쓴 '서유견문'에도 '대통령'이라는 칭호가 기록되어있는데 서유견문에서는 미국의 '합중정체(合衆政體)'를 국민들이 함께 다스리는 정치 체제라고 소개하면서 합중정체에서는 임금 대신에 대통령이 통치한다는 기술을 하고있다. 우리 나라에서 대통령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을 때부터 최고 주권자가 국민이라는 개념과 민주 공화국의 개념을 이해하면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의 법치주의와 정부형태는 국민이 주권자라는 것과 대의제라는 것 등이 이미 전제되어있기 때문에 행정부 수반이자 국가원수로서의 의사를 표명하는 자를 지칭할 때 굳이 그자가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에 부합하는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 국민에 의해 선출된 자 중에서 계통상 최고에 있는 자라는 의미를 애써 부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 따라 새로운 명칭을 고려해본다면 '어금나라일꾼', 혹은 '代議護民官長'이라고나 할까?- 기존의 명칭을 바꾼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결론적으로 대통령이라는 말은 '법치주의에 따라 최고 의사(국민의 의사)들을 모아서 합침, 또는 '법치주의에 따라 최고 의사들을 합치고 이를 대행하는 자' 라고 해석되며, 여기에는 그 어떠한 가치소극적(disapprove)인 부분이 없다. 오히려 민주공화국의 가치에 부합하는 아주 훌륭한 명칭이다.

그런데 '통치행위(統治行爲)'에서 쓰인 '통'(統)은 '대통령'에서 쓰인 '통(統)'과 다르다. '통치행위'의 '통'은 일종의 학적개념(學的槪念). 즉, 컨셉션으로서의 개념이 아니라 컨셉트로서의 개념이다.  일반인들이 대통령이라는 명칭이 비민주적이며 권위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까닭은 학적개념으로서의 통(統)을 혼동했기 때문이다.

통치행위는 현재 일반인들에게는 법의 심판을 받지 않는 대통령의 권위적 행위로 해석되고 근절해야할 구시대의 유물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사실 권위주의 국가의 독재자가 권력을 남용하면서 이를 합리하기 위해서 들먹이는 것이 '통치행위'이다. 노무현대통령이 과거 청문회스타로서 비리 공직자를 맹공할 때 주된 메뉴도 통치행위였다. 요즘 대북송금행위를 두고 통치행위니 특검이니 하는 갈등이 있다. 당시 노무현대통령내정자가 통치행위를 운운할 때 야당의원들이 '노무현이 통치행위를 말할줄이야!' 라고 했다던데 통치행위에는 법의 심판이 대상이 되는 상대적통치행위와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 절대적통치행위가 있기 때문에 통치행위를 말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된다. 다만 상대적통치행위와 절대적통치행위의 구별이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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