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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과 신념, 강정구 교수를 돌려달라
[정문순 칼럼] 성추행 교수징계 침묵한 보직교수, 중징계 요구 각성해야
 
정문순   기사입력  2006/02/13 [14:44]
'6·25는 통일전쟁'이라는 대단치도 않은 발언으로 강정구 교수가 죄 없이 치렀던 곤욕이 한동안 가라앉는 듯하더니 다시 도지고 있다. 몇 년 전 만경대 발언으로 인한 파문이 있을 때부터 동국대에 밉보였던 강 교수는 이번에 대학 이사회의 직위해제 결정으로 검찰 기소와 더불어 자유로운 학문적 소신에 재갈이 물리는 신세가 되었다.

게으름과 배부름에 절어 있는 한국 교수사회에서 공부 열심히 하고 남의 눈치 안 보는 소신 있는 학자는 단언컨대 '천연기념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자기 학교 교수의 학문적 태도에 법의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학문 활동에 간섭하는 국가권력에 반발하기는커녕 사법부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몸을 사리고 그를 내치려는 대학이 있는 한 조만간 '천연기념물'은 박물관에서나 봐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강 교수는 냉전 의식을 벗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후진성을 일깨우는 보기 드문 사람 중 하나이며 그가 당하는 고난은 오히려 자신의 드문 가치를 더 두드러지게 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우리 사회의 냉전적 사고가 얼마나 끈질기고 악착같은지 보여주는 건 비단 검찰과 동국대 당국뿐만이 아니다.

사회 후진성 일깨우는 선각자

어떻게 보면 국가나 대학의 태도도 시민사회의 평균적 감수성과 동떨어진 채 따로 놀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강 교수는 외롭다. 그에 대한 사법적 처벌이나 대학의 징계에 반대하는 이들도 거의 예외 없이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지만…"이라는 단서를 닮으로써 한 풀 기가 꺾인 채 입을 연다. 누가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강 교수와 생각이 다름을 밝힌 뒤에 학문적 태도의 자율성을 옹호해야 하는 건 서글프다. 그를 편드니 빨갱이가 아니냐는 소리 들을까봐 짐짓 두려운 까닭이다.

나를 포함하여 어린 시절 반공교육을 받고 자라난 이들은 피해의식과 자기보호 본능만큼은 못 말릴 정도로 강하다. 철없는 나이에 어른들로부터 세상을 아름답게 볼 것을 배우기는커녕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는 것만 버릇을 들여야 했다는 사실이 몸서리쳐지면서도 냉전 의식을 탈탈 털어 내기 힘든 자신의 이중성을 발견할 때가 있다.

북한을 적으로 만들지 않으면 자신의 정당성을 유지할 수 없었던 군사 정권의 콤플렉스에 이용된 감수성의 상처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냉전 시대도 막을 내렸고 북한과의 체제 경쟁도 끝났다는 지금도 적지 않은 20대 이하의 세대들은 사회주의의 반대말이 민주주의인 줄 안다.

북한과 관련한 발언을 할 때면 지레 움츠러들어야 하는 자기검열과, 반공을 민주주의로 아는 무지가 여전히 살아 있는 시민사회에서 강정구 교수는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은 존재다. 그와 생각이 다르다면 토론과 논쟁으로 반박하면 될 일이다.

중징계 요구 교수들 각성해야

강 교수의 북한 인식은 풍부한 논쟁거리를 가지고 있다. 북한과 미국, 한반도의 미래를 보는 관점에 대해 얼마든지 그와 다른 견해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논리력은 형편없고,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건 증오하고 원한을 품는 것밖에 모르는 이들이 논쟁을 좋아할 리 없다. 논장에 불러내야 할 사람을 처벌해야 직성이 풀리는 태도는 오히려 강정구 교수의 학문적 논리가 가질 수 있는 맹점을 가리는 역효과만 날 것이다.

강 교수가 중징계 당하는데는 대학 보직교수들의 요구가 있었다고 한다. 몇 년 전 이 대학의 모 교수가 여학생을 성추행한 사실이 적발되었을 때 그의 구명 운동에 나선 이들도 같은 학교 교수라는 자들이었다.

학교 당국은 한술 더 떠 성추행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해임은 가혹하다며 경미한 징계만 취하더니 얼마 못 가서 복직을 시켜줬다. 성폭력범은 감싸안아도 학문적 신념을 가진 동료는 내쳐야 한다는 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국사회의 속 좁고 편협함을 일깨워주고 있는 귀한 지식인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니 교수 같잖은 교수들이 학자라고 설치는 곳이 이 나라 대학이 될 수밖에...
 
 
* 본문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 경남도민일보 http://www.dominilbo.co.kr 1월 13일자에도 실렸습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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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2/13 [14:4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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