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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실종, 굴욕적인 영화시장 개방
[김영호 칼럼] 한국에 이득이라면 미국이 FTA 맺자고 안달하겠는가?
 
김영호   기사입력  2006/02/01 [11:31]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배우의 연기에다 음악과 미술이 아우러진 예술이라는 뜻이다. 현대영화는 여기에다 과학과 자본을 접목함으로써 거대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시각적-청각적 효과를 겸비하여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 또 집합적 장소로 옮겨가면서 대중을 감동시키는 집단적 전달력을 가졌다. 그 까닭에 헐리우드 영화는 미국의 이념을 전파하는 첨병역을 맡고 있다.

 영화는 미국이 항공, 무기, 담배, 곡물과 함께 세계를 지배하는 산업이다. 미국은 군사력을 배경으로 세계시장을 강압적으로 개방해 왔다. 그런데 1993년 12월 다자간 협상인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영화만큼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당시 프랑스는 영상물시장 개방은 곧 문화예속이라며 완강하게 반대했다. 일반상품과 달리 고유문화를 담고 있어 교역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UR은 영상물이 빠진 상태에서 타결됐다.

 미국은 쌍무간 협상을 통해서도 시장개방을 강압해 왔다. 대부분 국내시장은 1986년 7월 1일 ‘301조 일괄타결’이라고 해서 개방됐다. 그런데 영화는 실제 그 이전에 영화인들도 모른 채 슬그머니 열렸다. 1985년 9월 10일 미국 영화수출업자협회가 한국이 미국의 영상물 산업에 타격을 준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USTR(미국통상대표부)에 한국을 불공정거래 혐의로 미통상법 301조를 발동하도록 청원했던 것이다.

 그러자 당시 전두환 정권은 로비스트까지 고용해 그들에게 사정하면서 모든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 조건은 USTR에 대한 제소를 철회하는 것이었다. 그리곤 영화도 공식적으로 다른 시장과 함께 타결된 것처럼 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1988년 1월 28일 영화 배급업-제작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제한이 해제됐다. 미국업자의 현지법인 설립, 자국영화 직수입, 극장배급 및 제작이 허용됐던 것이다. 영화시장은 이렇게 정부간의 협상도 없이 굴욕적으로 개방되었다.

 영화는 제작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통-배급이다. 다시 말해 영화를 아무리 잘 만들더라도 관객과 만나는 유통-배급에 접근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런데 거대자본으로 무장한 미국업자는 그 때도 세계배급망을 군림하고 있었다. 지금은 세계시장의 85%가량 점유하고 있다. 그들이 국내시장의 유통권-배급권을 장악했으니 시장지배는 시간의 문제였다.

 이런 독점적 지위에 맞서는 장치가 있다면 그것은 스크린쿼터이다. 영화관으로 하여금 국산영화를 일정일수 이상 의무적으로 상영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산업도태를 막는 보루인 셈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1967년부터 시행되었으며 현행 일수는 146일이다. 그런데 정부가 영화인과 아무런 사전협의도 없이 절반으로 축소한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전제조건이라고 한다. 20년 전의 굴욕적 처사를 상기시키는 느낌이다.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줄이지만 FTA협상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축소일수를 복원하는 일은 불가능이다. 미국은 캐나다와 FTA를 맺으면서 문화다양성을 인정하여 이 분야를 제외했다. 미국은 남-북아메리카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는 범미자유무역지대(FTAA)를 2005년을 목표시한으로 잡고 10년간 추진해 왔다. 그런데 작년 11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미주정상회의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그 까닭에 한국을 차선의 선택으로 지목하고 채근하는 것이다.

 FTA는 산업별로 긍정적-부정적 효과를 동시에 수반한다. 그런데 정부는 이득만 있는 것처럼 말한다. 농업은 죽어도 좋은지 영화는 몰락해도 괜찮은지 따지지도 않고 말이다. 일방적 양보로는 호혜적 협정이 이뤄질 수 없다. 정부가 말하듯이 한국에 그토록 이득이라면 왜 미국이 안달하겠는가?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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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2/01 [11:3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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