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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병제와 군대문화, 시민사회 공공의적
[징병제의 역사와 신화1] 징병제는 시급히 타파해야 할 금기이자 신화
 
최재희   기사입력  2005/07/11 [18:17]
시민사회와 징병제
 
우리는 잊을 만하면 군대 내의 여러 문제들, 특히 탈영, 자살, 부대 내 각종 폭력에 관한 기사를 접한다. 여기에다 덧붙여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문제와 사고는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 그러나 이번과 같은 대규모 총기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회적, 정치적 문제로 확대된다. 문제가 발생할 경우, 언론이나 군 당국, 정치권의 반응은 한결같다. 당국은 철저한 진상 파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조치를 다짐한다. 비판자들은 군기문란을 한탄하며 책임자 처벌을 거론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문제가 터지면 다시 똑같은 과정이 되풀이된다.
 
이러한 과정이 판에 박은 듯이 반복되는 이유가 있다. 한 마디로 지금 현재의 구조로서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입대한 젊은이들은 서로 다른 인격체를 갖고 있다. 이들에게 입대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입대영장이 나오지 않았으면 군대와 어떠한 관련도 맺지 않았을 젊은이들이다.
 
다양한 인격체들에게 똑같은 규율을 적용하는 것 차체가 문제의 불씨를 이미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학력과 지식수준, 사회적 배경, 가치관, 인격이 서로 상이한 이들을 한 장소에 묶어 둔 것 자체가 문제의 출발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오직 국방을 위한 입영영장을 받았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현재 언론은 개성을 강조하는 신세대 장병의 특성을 부각하면서, 이에 걸 맞는 새로운 군대문화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현실을 파악하는 것은 또 다른 왜곡에 불과하다. 만일 이러한 진단이 올바르다면, 과거의 사고나 폭력, 인권유린은 무엇인가? 신세대가 아닌 과거 군대를 거쳐 간 사람들은 개성도 인격도 없는 사람들이었던가?
 
사회의 일반 교육 과정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이 바로 사회화 과정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그만큼 힘든 일이다. 예로부터 지배집단은 이러한 다양한 사람들을 통제하고 지배하기 위해 법, 도덕, 예절, 관습을 강요해왔다. 심지어 종교의 주요한 존재 이유도 이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당연히 폭력적인 처벌의 위협이 존재했다. 군대도 마찬가지이다. 전체 장병의 수에 비하면 군대 내 사고 수가 미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수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그 이유는 처벌에 대한 위협과 멈추지 않는 국방부 시계 때문일 뿐이다.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상급자와 하급자와의 관계를 살펴보자. 군대의 생명은 상명하복으로 대표되는 규율이라고 한다.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단지 먼저 입대해 계급이 앞선다는 것 외에 무엇이 있는가? 상급자가 하급자에 비해 군복무를 위한 전문성이나 경험, 또는 인격, 지식, 도덕성에서 뛰어나며, 이에 근거해 합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타당한 지시를 내리는가? 그렇다 하더라고, 하급자는 또 어떤가? 하급자는 상급자의 타당한 지시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과연, 입대 날짜라는 단 하나의 근거로 명령과 복종의 획일적인 체계가 아무 문제없이 유지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안일하고 무지하다. 복무기간이 5년 내지 10년이라 가정한다면, 문제를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징병제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국방의 의무를 신성시하며 징병제는 그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는 당연한 제도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남북관계, 미국, 공산주의, 노동운동 등 수많은 금기 조항이 존재해 왔다. 냉전과 분단의 산물인 이러한 금기들은 민주화 과정에서 하나씩 깨어져 갔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금기가 남아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징병제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징병제의 역사는 시민권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는 것, 즉, 징병제는 근대국가의 상징이며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국방의 의무를 이행한다는 이상의 실현이다." 이상은 징병제에 관해 주로 거론되는 일반론이다. 그리고 이것은 징병제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역할을 해 왔다. 권리로서의 참정권과 의무로서의 국방의 의무는 시민사회의 골간을 이룬다고 한다. 한 마디로, 근대 시민국가는 왕이나 귀족의 국가가 아닌 모든 국민이 주인인 시민국가가 되었기 때문에, 신분이나 재산여하를 불문하고 모든 국민은 그 국가를 방어할 의무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인가? 그러면 지금 징병제를 채택하지 않는 국가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전쟁이나 국방의 위험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국가인가? 아니면 방어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국가인가? 또는 근대시민국가로 취급할 수 없는 국가인가? 불평등한 국가인가? 현재 대부분의 국가 징병제를 폐지한 상황을 단지 냉전의 해체와 전쟁 위협의 감소로만 보아야 하는가?
 
우리는 수많은 신화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인권의 진보로 대표되는 역사의 진보과정은 신화의 타파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징병제에 관한 위의 논리 또한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가로막는 하나의 신화가 아닌가? 이 글은 징병제에 관한 신화와 잘못된 인식을 타파하고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국방정책에 대한 고려를 제언하고자 작성되었다. 이것은 민주군대를 위한 제안일 뿐만 아니라, 가정, 기업, 학교, 등 사회 각 부문으로의 민주주의의 사회적 확대와 평화통일, 동북아의 평화구축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주제이다
 
이제 징병제의 역사를 통해 본격적으로 그 신화를 파헤쳐보자.

1875년 제정 러시아는 징병제를 선택했다. 일본도 같은 해에 징병령을 발표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징병제를 국방정책으로 선택한 것은 1876년이었다. 프러시아는 이들 국가에 앞서 1814년에 징병제를 채택했다. 1871년 독일 통일과 함께 프러시아의 징병제는 전 독일로 확대 적용되었다.
 
이들 국가들은 모두 후발 자본주의국가였다. 또한 이들이 징병제를 채택한 것은 자본주의가 본격화되고 각국의 제국주의적 경쟁이 심화되는 시기였다. 즉, 징병제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전쟁과 맥을 같이 한다.
 
징병제를 근대 시민국가의 발전과 동일시하는 것은 너무나 허황된 허구이다. 징병제를 채택할 시기의 독일, 일본, 러시아, 오스트리아는 모두 전제적인 정치체제를 갖고 있었다. 귀족의 지위는 불변이었으며, 이들과 일반 국민과의 사회적 평등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국민들은 어떠한 시민적 권리도 갖지 못했다.(일부 명목상의 의미 없는 참정권이 부여되었을 뿐이다.) 억압적이고 획일적인 정치구조 하에서, 국민들은 자유와 평등은커녕 군대복무를 강제적으로 강요받았을 뿐이었다. 아니 군대복무뿐만 아니라 수많은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되어야 했다. 러일전쟁과 1차대전을 포함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수많은 전쟁은 자본주의의 이윤을 위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전이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농민과 노동자들은 국방을 명분으로 한 징병제에 의해 동원되어 피를 흘려야 했다. 1944년 일제에 의해 발표된 징병제의 의미와 역사를 보라. 반복하지만, 징병제는 제국주의자, 군국주의자, 자본가, 귀족 지배집단의 지배와 이윤을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또한 징병제는 지배집단의 지배를 용이하게 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억압적인 정치체제를 가진 국가는 항상 국민을 감시하고 억누른다. 독일을 통일한 비스마르크는 가톨릭과의 '문화투쟁'을 거쳐 자유주의를 억압하고 사회주의자 탄압법을 통해 사회주의를 불법화하면서, 프러시아의 군국주의를 전 독일로 확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모든 남성에게 입대를 강요함으로써, 규율과 복종을 중비시키고 그 군대문화를 전 사회로 확산시켰다. 외국과의 전쟁과 정쟁 위협 또한 국민의 인권을 무시하고 자유를 억압하고 지배집단의 이익을 보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먼 서구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독재시대 우리의 경험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규율과 복종, 획일성, 남성우위, 폭력에 대한 찬양, 이 모든 것이 사회 전반에 확대되었다. 학교, 가정, 회사 등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군대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우리의 민주화를 가로 막은 가장 큰 장벽은 지배권력 뿐만 아니라 이러한 군대 문화였다. 현재 민주주의의 사회적 확대를 가로막는 주요한 장벽 또한 이러한 군대문화이다.
 
19세기 후반에 징병제를 채택한 국가들에 비해, 우리가 소위 민주주의를 이끈 국가 또는 인권보장에서 앞섰던 국가들의 국방정책은 어떠했는가? 영국은 전통적으로 모병제였다. 그것도 17세기 후반에 크롬웰의 군사독재를 경험한 이후에는 의회의 군대 지배를 확고히 하면서 군대의 영국 내 주둔을 금지했다.(물론 여기에는 섬나라라는 특성이 작용했다.) 영국은 1차대전이 발발했을 때에도 전쟁발발 18개월이 지난 후에 마지못해 징병제를 채택하게 되었으며, 전쟁이 끝나자 바로 이를 폐지했다. 이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국가가 국민에게 생명을 희생하고 살육을 강제할 권리가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동시에 이것은 국민이 조국을 수호할 가치가 있는 대상으로 인식한다면, 자발적으로 위기에 빠진 조국을 위해 지원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대전 당시 "조국은 당신을 원한다"는 육군 장관 키치너의 유명한 포스트는 이를 잘 대변한다. 미국의 징병제도 참전 및 종전과 운명을 같이 했다. 소위 의회 제도를 정착시키고 인권을 중시하던 국가들은 징병제를 거부했다. 단지 프랑스만이 1970년 보불전쟁에서의 패전 이후 징병제를 채택했을 뿐이었다.
 
징병제를 채택한 황제가 통치하는 전제 체제의 후발 자본주의국가와 징병제를 거부한 민주주의와 의회제도의 선발 자본주의국가는 이렇게 극명하게 대비된다. 히틀러는 권력을 장악한 이후 바로 즉시 군비재무장을 선언하고 징병제를 재도입했다. 5천만 명 이상이 희생된 인류최대의 비극 2차대전의 출발이었다. 2차 대전과 함께 영국과 미국은 다시 징병제를 채택한다. 이들 국가들은 종전 후에도 징병제를 유지했다. 냉전이 주된 이유였다. 냉전의 위협이 감소하고 징병제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서구 각국은 1960년대부터 징병제를 폐지해간다. 이상과 같이, 징병제는 전쟁을 위한 것이지, 시민사회의 발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징병제의 역사를 보면서도, 과연 징병제를 근대 시민사회의 당연한 전제조건으로 주장할 수 있는가? 징병제는 지배 권력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왔을 뿐이다. 그리고 인권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은 사악한 제도이다. 국제관계에서도, 징병제는 평화대신 전쟁, 이해와 협력대신 폭력과 갈등을 야기한 원인이었다.
 
과연 모든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공유해야 하는가? 사람마다 인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교육이나 경제, 치안 등도 중요하다. 모든 국민이 일정 기간 동안 생업 등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학교나 경찰서에 배치되어야 하는가? 과연 국가가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가? 국방이 국민의 의무라 하더라도, 과연 징병제가 그 의무를 수행하는 유일하고도 가장 합당한 방법인가?

우리 사회에서 징병제는 시급히 타파해야 할 하나의 금기이자 신화이다. 징병제라는 구조의 틀에 사로잡혀 있는 한, 이번의 총기사건과 같은 비극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치유되지 않고 되풀이될 것이다.
 
징병제는 아주 첨예한 논쟁과 대립을 동반하는 예민한 주제이다. 세계관과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우에는 역사적인 경험을 파악하는 것이 유용한 의미를 지닌다. 징병제에 관해 소개하는 다음의 글들은 그런 의미에서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논쟁과 문제해결을 위한 토대를 제공하리라 기대한다.
 
글실는 순서
 
징병제의 역사와 신화(2) - 징병제와 프랑스혁명
징병제의 역사와 신화(3) - 징병제에 의한 민주주의의 파괴
징병제의 역사와 신화(4) - 민주주의를 통한 징병제 저지
징병제의 역사와 신화(5) - 식민지에서의 징병제
징병제의 역사와 신화(6) - 양심적 징병거부
징병제의 역사와 신화(7) - 보이스카우트와 징병제
징병제의 역사와 신화(8) - 징병제의 경제적 의미
징병제의 역사와 신화(9) - 징병제와 사회주의
징병제의 역사와 신화(10) - 징병제와 평화운동

 
* 필자는 고려대 일본학 연구센터의 연구교수이다.
* 본 기사는 <대자보>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평화전문 인터넷신문 <평화만들기> http://www.peacemaking.co.kr/ 제공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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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7/11 [18:1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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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타도 2007/06/14 [15:41] 수정 | 삭제
  • 아무런 보상 없이 애국심 하나로 청춘을 버리게 하는것은 잘못됬다.
    그깟 애국심은 서민들을 위해 만들어진게 아니다. 다 윗대가리들 좋으라고 있는거다. 난 아들을 갖게되면 대한민국 국민으로 안만들 생각이다.
    고생해야 사람되고 군대가야 남자 다워지나? 그럼 외국 남자들은 사람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란 말인가?
  • 뭘모르네. 2005/07/12 [17:42] 수정 | 삭제
  • 미국은 모병제인데 어떻게 전쟁하지?
    욕이나 하지마라!
  • TKDGJGJ 2005/07/12 [14:25] 수정 | 삭제
  • 절로 터진 주둥이라고 함부로 이바구 하는게 아니다.
    징병제 아니면 누가 나라를 지키냐 거지 발싸게 새끼들아,
    의무는 다하지 못하는 놈들이 권리는 주장하려 들게 아니냐?
    의무를 이행하기 싫거든 이나라를 떠나면 될게 아닌가?
  • 2005/07/12 [11:35] 수정 | 삭제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징병제의 폐혜는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중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아직 자신만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정립되지도 않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남성들을 강제로 징집해서 국가주의와 서열문화를 주입시키는 현 군대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극우적 사고방식을 친숙하게 만들어서 그러한 논리들이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죠. 따라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큰 밑거름이 되어야할 젊은이들 중 많은 수가 극우적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친숙해하고 또는 그것을 세상사는 이치 정도로 판단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