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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민족, 독도에 흥분하는 당신께
[광화문생각] 한일 지배계급의 안전판 '민족'이라는 이름의 환상 거둬야
 
이태경   기사입력  2005/03/30 [15:18]
독도문제로 나라가 온통 소란하다. 일본 시마네현이 조례로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데서 촉발된 이 사태는, 줄곧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일본 정부의 태도와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일본 우익인사들의 망언이 더해지면서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독도문제를 둘러싼 일본 정부와 일본 내 일부 우익인사들의 태도는 항상 한국정부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었기에 그리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물론 일각에서는 최근 독도문제와 관련된 일본정부의 행보가 이전과는 사뭇 다른 차원의 것이 아니냐는 의혹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은 독도문제를 대하는 국민들의 반응이다. 이번 사태가 불거진 직후 대다수 국민들이 보여준 대일 감정의 농도와 그 표현방식은 매우 격렬한 것이었다. 거리에서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옛 노래가 새로운 버전으로 옷을 갈아입은 채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개그 프로그램과 CF에서도 독도를 소재로 한 내용들이 쏟아지고 있다.
 
또한 흥분을 가누지 못한 일부 시민들은 단지(斷指)와 분신마저 서슴치 않았고, 심지어 성급한 일부 네티즌들은 독도를 둘러싸고 벌어져는 한국과 일본의 무력충돌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를 쓰기에 여념이 없는 상태다.
 
반일정서로 달아오른 국민들을 진정시키고 냉정하게 해법을 모색해야 할 여야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조차 덩달아 격앙되어 만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을 함부로 하는 것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흥분을 가라앉히고 한발 물러나 이번 독도사태에서 배울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물론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는, 식민통치에 대해서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독도문제를 대외팽창의 지렛대로 이용하려고 하는 일본정부와 일본 내 극우세력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이면에 도사린 무엇인가가 있다. 일본과의 축구시합에 대한민국 국민들을 열광케 하고 반만년 한 핏줄임을 자랑스럽게 말하게 하는 그것은, 다름 아닌 '민족'이라는 존재이다.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민족'이라는 존재는 일제 식민통치를 경험한 한국사회에서 신성불가침의 절대선이었다. 이민족의 침략과 지배를 받은 경험은 한민족 전체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았고, 민족 혹은 국가라는 개념은 어떠한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지고의 가치로 격상되었다.
 
기실 매우 추상적인 개념일 뿐더러 일부 학자들에 의해서 '근대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라고까지 평가받고 있는 '민족'이 머무는 거푸집은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이후 인류는 팽창적 민족주의에서 저항적 민족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의 민족주의를 경험하였고, 여전히 세계 도처에서 민족주의의 기세는 등등한 형국이다.
 
그렇다면 아직도 대단한 위세를 떨치고 있는 민족주의가 인류에게 준 것은 복음이었나 아니면 재앙에 가까운 것이었나? 흔히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저항적 민족주의조차 사정이 호전되면 언제든 팽창적 민족주의로 전화할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민족주의가 인류에게 끼친 해악은 유익 보다 오히려 커 보인다.
 
본디 민족주의란 태생적으로 타민족에 대한 배척을 천형처럼 안은 채 출생한다는 점에서 '차별과 배제의 원리'가 작동한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차별과 배제의 원리'가 작동하는 한 인류가 이미 경험했고 아직도 진행중인 민족 간 갈등을 원인으로 한 참극은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멀게는 나찌에 의한 유태인 학살부터 가깝게는 유태인들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탄압에 이르기까지 민족주의가 인류의 정신과 육체에 아로새긴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만큼 깊다.
 
민족주의에서 민족을 추출해 낼 수 있지 않느냐고? 이론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리 가능할 것 같지 않다. 동일한 혈통과 언어, 집단적 기억과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교집합을 민족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관념상으로는 허락되겠지만, 낱낱의 개인을 특정 민족으로 규정하는 작업은 현실적으로 그닥 녹녹한 일이 아니다. 민족주의를 부추겨 현실의 온갖 모순과 병폐를 은폐하고 외적 전화를 시도하는 지배계급과 이들의 선동에 쉽게 호응하는 대중들이 각 민족 안에 온존하는 한에서는 더욱 그렇다.
 
최근에 불거지고 있는 독도사태의 본질 역시 민족주의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비호를 믿고 독도사태를 도발한 일본이나 군비증강과 한·미동맹의 강화로 이를 퇴치하려는 한국, 양쪽에서 모두 날 선 민족주의의 기미가 강하게 읽힌다.
 
일본정부와 우익인사들은 일관되게 팽창적 민족주의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일관성이라도 있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 청산에 소극적이었고 독도문제에도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한국정부와 국민들의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들의 격한 반응은 다소 엉뚱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긴 같은 핏줄을 타고났다고 여겨지는 조선족들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를 보면 민족과 핏줄에 끌리는 정이 그리 강렬한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독도사태를 둘러싸고 번지는 반일감정과 민족의식은, 부쩍 커진 국력과 2002년 월드컵의 경험 등으로 인해서 형성된 민족적 자신감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감은 자칫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독도영유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민족주의 내지 국가주의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영토수호라는 언뜻 그럴싸해 보이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독도문제를 민족 대결의 구도로 몰아가는 것은 한국과 일본 국민들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따름이다.
 
급격히 군사화 하는 일본과 민족주의의 과잉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이, 고조되고 있는 양국간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평화공존을 모색하려면 양국의 양심적 시민들이 연대하고 조직화하여 여론을 조성하고 양국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어김없이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들은 사회적 약자들이었고, 지배계급들은 더할 나위 없이 안전했다는 역사적 경험을 결코 잊어서는 않될 것이다.
 
이제 한국인들도 유령처럼 떠도는 민족주의의 주술(呪術)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한국인 노동자 철수와 이건희 회장 사이의 경제적·사회적 거리보다는, 한국인 회사원 '준태'와 일본인 회사원 '사이토'와의 거리가 훨씬 가깝다.  / 편집위원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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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3/30 [15:1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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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코파이 2005/04/25 [02:37] 수정 | 삭제
  • 정말 좌파들이 꼭 하고싶은 말을
    적나라하게 써주셔서 감사.....

    새겨들어라 이 민족주의자넘들아
  • . 2005/03/31 [16:20] 수정 | 삭제
  • 조선 놈은 맞아야 말을 들어 ~
    엽전들이 다 그렇지~
    조선 사람은 모래알 같다~

    이거 다 그 싸가지 없는 일본 쉐이들이 한 말들이다
    가끔은 분별 없는 한국 사람들도 사용하는 못된 말들인데
    왜 우리가 내 가족에 대해서 뜨거운 사랑을 느끼는가?
    왜 중국 일본과 전쟁일때 의병들이 궐기했나?
    당신의 말처럼 민족이라는 의미자체가 강해질때
    두려움을 가져야하는 그런 의미인가?
    그건 저들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나 합당한 말이라 생각한다
    우리 민족이 하나되어 했던 행위들이 주변국 침략이고 수탈인가?

    국가간의 평화 공존도 우리가 힘이 있을때 가능한게 아닐까?
    그리고 우리가 동과 서가 또 북한과도 하나될수 있는건
    같은 민족이란 의미가 전부일진데
    모든 사람이
    민족이란 의미앞에 딩신같은 해석을 내어 놓으면
    누가 이나라 를 지켜주고
    누가 당신을 지켜줄수 있단 말인가?
  • 김수민 2005/03/31 [15:23] 수정 | 삭제
  • 민족주의가 진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주사파들이랑 같이 다른 게시판을 만드시던가.
  • 2005/03/31 [13:35] 수정 | 삭제
  • 이런 인간들이 여기에 글을 쓰고 있으니...
  • 김수민 2005/03/31 [09:08] 수정 | 삭제
  • 이 정도도 수긍하지 못하고 합의되지 않는 한국인들은 아Q를 떠올리게 하는군요.